340화. 잠깐의 휴식 - (9)
[사카이 라이노스 이번 교류전에서도 고전]
[7승 11패, 전체 9위로 마무리]
교류전에서도 라이노스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났다.
작년처럼 7연패를 당하며 최하위 10위를 기록하는 망신은 면했지만, 9위 했다고 칭찬해주는 팬들이 있을까.
교류전이 끝나고 다카기는 팬과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사람이 언제나 뛸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쉬어가야 하죠.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라이노스는 포스트 시즌 진출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이건 잠깐 쉬는 게 아니라 게으름일 뿐이죠. 저는 신입 단장이지만 팬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뛴다고 1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말씀은 감히 못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3년, 3년 안에 팬 여러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습니다. 만약 그때까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어떤 비난이든 감수하겠습니다.]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린 단장,
다카기가 유명한 선수라도 팀을 개혁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문제가 생기면 변명거리부터 찾던 전임단장에 비하면 솔직한 사람, 교류전 9위에 분노하던 팬들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투수도 타격을 해야지 왜 번트만 대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다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퍼시픽리그 구단 전체에 질문을 던졌다.
이번 교류전에서도 퍼시픽리그는 센트럴리그에게 말 그대로 압살당했다.
최근 10년 동안 퍼시픽리그 팀이 교류전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겨우 1회, 센트럴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퍼시픽리그는 투수가 타격을 한다.
이 때문인지 투수교체가 잦은 퍼시픽리그,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번트를 대거나 대타로 교체된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는 어떨까.
메이저리그도 투수에게 좋은 타격을 기대하진 않지만 적어도 의미 없이 아웃카운트를 소모하진 않는다.
어쨌든 배트를 휘두르고 맞추려고 노력은 하는 편, 언제까지 투수에게 소극적인 타격을 강요할 건가.
잦은 투수교체로 경기 시간이 늘어나는 건 둘째 치고, 팬들은 번트 자세를 잡은 투수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팬들도 맥 빠지게 하는 플레이, 다카기는 앞으로는 투수들도 타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세이버매트릭스 분석에 따르면 투수가 번트를 포기하고 타격에 집중하면 매년 3 ~ 4점을 더 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1년에 겨우 3 ~ 4점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점수는 점수다.
1점 때문에 승패가 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1년에 3 ~ 4점이면 무시 못 할 수치 아닌가.
마침 도쿄 자이언츠의 용병 투수 마이크 허블러도 동의를 표했다.
나름 잘 던지고 있는데 투수 타석이라고 번트를 지시하거나 대타를 투입하는 감독, 이것 때문에 길게 가는 투구를 못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불펜 투수의 비중이 중요해지면서 투수 교체가 잦아지고 있지만 일본의 퍼시픽리그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한 편,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는 일본이다. 일본의 야구 문화도 존중해야 한다.]
여기는 일본인데 왜 미국 메이저리그 문화를 들이 대냐는 것, 하지만 다카기는 바로 맞불을 놨다.
“센트럴리그는 1973년대에 미국에서 도입된 지명타자 제도를 왜 받아들인 건가? 마무리 투수는 왜 쓰는 건가? 그것도 미국에서 시작된 제도 아닌가? 예전의 일본 야구에선 한 투수가 9이닝을 전부 책임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는 팀 아무도 없다. 잘못된 게 있으면 수정하면 되는 건데 왜 거기에 일본의 문화를 들이대는 건가? 심판 문제도 그렇다. 메이저리그는 기계판독을 도입해서 스트라이크 정확도를 95%까지 끌어들였는데 일본은 지금도 판정 정확도가 90%가 약간 안 된다. 떨어지는 정확도도 일본의 문화인가?”
맞받아치려다 되로 받은 보수주의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다카기는 오가야 감독에게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는 경기 전에 투수들도 타격 연습시키세요.”
“예, 알겠습니다.”
안하던 타격을 하려니 어색했지만, 그래도 단장의 명이라 투수들은 매일 연습을 해야 했다.
훈련을 안 하겠다면 그것도 자유, 단 중요한 상황에서 대타로 교체되는 건 감수해야 했다.
‘쉴 시간이 어디에 있어. 지금 당장 뛰어도 될까 말까인데’
다카기는 하루도 빠짐없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봤다.
뭐 하나 허투루 넘기는 게 없는 단장, 그것도 메이저리그를 호령한 선수 출신 아닌가. 단장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들도 있지만 그 앞에선 감히 다른 소리를 하지 못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떤가?”
“그냥 그런 것 같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다카기는 용병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스마일리와 프리젤은 타선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선수, 스마일리는 시즌 초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활약을 해주고 있지만 프리젤은 최근 주춤한 페이스를 보이고 있다.
잠깐 쉬어가는 건 괜찮지만 그게 길어지면 게으름일 뿐, 다카기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들이댔다.
“그냥 그래선 안 되지, 자네는 내가 영입한 용병이야. 자네가 활약한 만큼 내 체면도 산다고”
“알고 있습니다.”
프리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 정도면 그냥저냥 봐줄 만하지 않나. 체면 같은 건 안 따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금 더 힘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자네도 잠깐 나 좀 보자고”
신입단장의 잔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 4년 차의 히야마 치카마사, 나이는 26살로 아직 젊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3.60으로 나쁘지 않은 편, 그런데 승운이 정말 없다. 33승을 하는 동안 41패를 적립, 팀 전력이 약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투구 스타일이 너무 소극적이다.
평균 145km의 좋은 속구가 있는데 변화구 비율이 너무 높은 편, 조금 더 빠른 볼 비율을 높이라고 조언했다.
“저는 그렇게 안 배웠는데요?”
“그럼 어떻게 하라고 배웠는데?”
“일단 느린 구속으로 타이밍을 뺏으면서 타자를 유혹해 놓고, 그 다음에 빠른 볼로 … ”
“어떤 머저리가 그딴 소리 했어? 누구야?”
여과장치 없는 폭언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실제로 히야마의 변화구 구사 비율은 대략 40%를 웃돈다.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앞세우는 스타일이라 슬라이더 비율이 높은 건 당연한데, 그래도 너무 높은 게 사실이다.
변화구를 너무 많이 던지다 보니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빠른 볼을 던지는 비율도 높은 편, 다카기는 어정쩡한 변화구를 던질 바엔 차라리 빠른 볼을 던지라고 조언했다.
“알겠습니다. 다음 경기에선 빠른 볼 많이 던지겠습니다.”
“자네는 빠른 볼만 잘 던져도 괜찮아. 괜히 변화구 남발하지 말라고”
그렇게 더그아웃을 한바탕 휩쓸고 간 신입 단장, 다카기는 특별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다행히 오늘은 실점 없이 넘어간 1회 초, 라이노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난 그동안 너무 많이 쉬었어. 이제는 달릴 때라고’
타석에 들어선 마츠다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3년 동안 벤치 멤버로 출전하다 겨우 잡은 스타팅 기회, 내가 지금 쉴 때인가.
잠깐의 휴식도 용납할 수 없는 입장, 주춤거리는 팀 성적과 달리 마츠다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따악 ~ !!]
“강한 타구!! 2루수가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아웃!! 간발의 차이로 잡아냅니다!!”
“지금은 위험했죠. 출루하면 골치 아픈 선수를 잘 잡아냈습니다.”
안타를 놓친 마츠다는 격한 아쉬움을 표하며 벤치로 향했다.
아웃은 됐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선수, 다음 타자 스마일리도 그 의지를 이었다.
따악 ~ !!
“와아아 ~ !!”
시원하게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 스마일리는 단숨에 2루까지 내달렸다.
3루까지 뛰고 싶었지만 신속하게 이뤄진 중계플레이, 2루 근처를 맴돌다 자리를 잡았다.
“자, 이제 마크 프리젤 타석입니다. 올 시즌 타율 0.284, 홈런 11개, 30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11경기에서 홈런이 없죠. 장타가 줄어들면서 라이노스의 공격도 주춤하고 있습니다.”
프리젤은 특이하게도 몸 쪽 변화구에 약점을 보였다.
특히 우완이 던지는 몸 쪽 변화구가 문제, 구속이 느려도 몸 쪽에 바짝 붙어 날아오기 때문에 타자는 움찔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변화가 심한 공이라 타격이 돼도 장타는 잘 안 나오는 편,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확실히 제구는 좋다.’
초구를 지켜본 프리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플 A 투수에 비하면 훨씬 느린공을 던지는 일본 투수들, 하지만 제구력은 분명 한 수 위다.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만 해도 변화구를 이렇게 몸 쪽으로 붙이는 투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미국과는 확실히 다른 야구, 특히 퍼시픽리그 투수들은 변화구 구사 비율이 월등히 높다.
적응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을 뿐, 타이밍을 변화구에 맞추고 배트를 돌렸다.
[따악 ~ !!]
“당긴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득점!! 사카이 라이노스가 앞서나갑니다!!”
“지금은 변화구가 약간 몰렸죠. 프리젤이 잘 받아쳤네요.”
칭찬이 쏟아지는 중계석과 달리, 특별석에 앉은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리젤은 빠른 볼의 반발력을 이용해 장타를 뽑아내는 스타일, 변화구를 때렸을 때는 장타력이 명백히 떨어진다.
그걸 눈치채고 변화구만 던지고 있는 투수들, 프리젤이 못한다는 건 아닌데 뭔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 선수는 기대 이상이고’
그에 비해 피터 스마일리는 예상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볼을 많이 보고 방망이를 짧게 쥐고 휘두르는 스타일이라 홈런은 많아 봤자 20개 전후로 예상했다.
그런데 임팩트 순간에 힘을 잘 실어주면서 벌서 15홈런, 퍼시픽리그 전체 4위 기록이다.
거기다 선구안과 인내심도 좋아 이대로 NPB에 정착하면 활약은 확실한 선수, 프리젤이 기대에 못 미친 건 아쉽지만 그래도 한 명은 건진 걸 다행으로 여겼다.
[따아악 ~ !!]
“당긴 타구가!! 좌측으로 멀리 ~ !!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피터 스마일리가 시즌 16호 홈런을 쓰리 런으로 장식하는군요!! 스코어 6대 0!! 라이노스가 오늘은 게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퍼시픽리그 홈런 3위로 올라서죠. 기대 이상의 활약입니다.”
이날 스마일리는 3회에 쓰리 런, 7회에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홈런 단독 2위로 올라섰다.
빠른 볼, 변화구를 가리지 않는 잡식 스윙, 비율 스탯마저 타율 0.306, 출루율 0.402, 장타율 0.593으로 완벽하다.
내년이면 다른 구단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겠지, 다카기는 스마일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모기업에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적지근한 구단의 태도, 다카기는 홧김에 큰소리를 쳤다.
“그런 식으로 나오시겠다면 제 돈으로 잡겠습니다.”
“뭐 … 뭐라고요?”
“제 돈으로 잡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알아 두십쇼.”
MLB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누적 연봉만 2억 8천만 달러를 넘겼다.
여기에 광고 수익과 사인회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사카이 라이노스 구단도 인수할 수 있다.
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선수가 나타났는데 쓸 돈이 없다고 밍기적거리면 어쩌자는 건가.
모기업이 이 지경이니 팀이 제대로 돌아가겠나.
신입단장의 거침없는 행보에 주주들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