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39화 (339/361)

339화. 잠깐의 휴식 - (8)

[다카기 단장의 마법?]

[사카이 라이노스, 첫 10경기 7승 3패 질주]

시즌 개막 후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지난 7년 동안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라이노스는 초반 상승세를 타며 퍼시픽리그 1위를 질주했다.

여론은 신입단장의 마법이라며 분위기를 띄웠지만 다카기는 측근들 앞에서 단호한 입장을 표했다.

“단장님,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올해는 포스트 시즌 진출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또 뭔가 안 좋은 얘기를 할 분위기, 신입 단장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한 측근들은 눈치를 살폈다.

“나는 솔직히 우리 팀이 못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런저런 유망주를 써 볼 명분이 있으니까요.”

팀이 잘 하든 못 하든 라이노스는 개혁이 필요한 팀이다.

올 시즌 반짝했다고 노장들을 내년에도 끌고 가야 되나?

다카기가 주전들 연봉을 동결해 준 건 대안이 없어서 그랬을 뿐, 솔직히 몇 명 못한다고 해도 팀에 큰 타격은 없다.

팀은 분명 기회를 줬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선수는 잘라낼 뿐, 다들 연승행진에 들 떠 있는데 뒤에서 그런 칼을 갈고 있었을 줄이야, 측근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아, 그리고 저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어디 가십니까?”

“네, 아주 중요한 자리죠.”

다카기는 오늘 누나의 약혼남을 만나기로 했다.

친누나 미사키는 올해로 34살, 만혼의 시대라고 해도 적은 나이는 아니다. 늦게 하는 결혼인 만큼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누나, 하지만 다카기는 굴러들어온 돌을 경계했다.

누나의 약혼남은 29살의 평범한 직장인, 누나보다 5살이나 어린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가족 사업에 끼어드는 건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업 경영권을 쥐고 있는 건 누나, 동생인 나도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누나에게 힘을 실어줬는데, 자기가 뭘 안다고 거기에 참견을 하나.

그리고 모든 가족이 환영을 해 줄 필요도 없다.

집안에 무서운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함부로 날뛰지 못하겠지. 첫 만남부터 확실하게 견제를 하기로 했다.

[일 끝났니?]

“어, 지금 끝났어.”

그새를 못 참고 전화를 한 누나, 다카기는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얼른 와, 그 사람 기다리고 있잖아]

“기다리라고 해, 내가 그 사람 스케줄까지 맞춰가며 움직여야 돼?”

[아 … 아니 그건 아니지만 … ]

미사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동생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하긴 부모님도 약간은 망설인 결혼 아닌가. 깐깐함만 따지면 세상에서 당할 사람이 없는 동생,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거 … 거대하다.’

그렇게 성사된 만남, 코이스케 히데야는 훗날 처남이 될 남자 앞에 잔뜩 위축됐다.

190이 훌쩍 넘는 장신에 운동으로 단련된 체격, 듣던 대로 얼굴은 잘생겼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에 압도되고 말았다.

“아 …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우리 누나가 아깝네.”

훅 치고 들어오는 엄청난 압박, 미사키는 약혼남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야, 너 왜 그래 진짜.”

“그냥 농담 좀 해본 거야. 그리고 남자는 자기보다 나은 여자를 만나야 행복한 거고,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 … 네 … 뭐 … ”

코이스케는 연신 식은땀을 닦아 냈다.

넌 아내에 비해 나을 게 없으니 알아서 기어 다니라는 뜻 아닌가, 양쪽 집안을 따져보면 경제적 차이는 명확했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결혼은 부모님께서 허락하셨으니까. 저는 다른 말 하지 않겠습니다. 누나하고 행복한 가정 꾸리길 바랍니다.”

“예 … 감사합니다.”

어찌어찌 끝난 만남, 신혼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코이스케는 격한 한숨을 뿜어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아니 … 동생 … 원래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야?”

“어, 나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어.”

자신이 받아들인 사람에겐 한없이 정을 베푸는 동생, 그런데 수틀리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땅 가지고 싸운 한국 친척들에게 한없이 냉정했던 할아버지의 재림이랄까. 집안에 무서운 사람도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그 뜻은 이해했지만, 솔직히 동생이 아직도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가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걔도 마음 열거야.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마.”

“어 … ”

미사키는 오늘 일어난 일을 어머니에게 보고, 대략 상황을 파악한 다카기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누나 약혼남한테 뭐라고 했니?]

“남자는 자기보다 잘난 여자 만나야 행복한 거라고 해줬어요.”

[어휴 ~ 얘는 … 그런 말을 뭐 하러 했니?]

“이해하세요. 저는 교통정리 하는 사람이라 하하 ~ 호호 ~ 거릴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질 않는 아들, 단장이 되면서 까칠한 성격이 더 심해졌다고 해야 되나.

다카기의 어머니는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사아카이 라이노스 최근 4연패, 퍼시픽리그 3위로 추락]

어느덧 5월에 접어든 시즌, 다카기는 여느 때처럼 특별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예상은 했지만 훨씬 빨랐던 추락, 원인은 간단했다.

투타의 총체적 난국, 라이노스는 원래 강팀이 될 자격이 없었다.

첫 1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40을 기록했던 마운드는 5월 들어 6.10을 찍으며 붕괴, 팀 타선도 OPS 0.756에 그치고 있다.

투수가 못 던지고 타자가 못 치는데 어떻게 승리를 하겠나. 다만, 다카기가 영입한 프리젤과 스마일리는 생각보다 빨리 NPB에 적응했다.

스마일리는 지금까지 타율 0.282, 홈런 6개, 18타점을 기록, 특히 볼넷을 34개나 얻어내며 출루율 0.394를 기록하고 있다.

프리젤은 타율 0.299, 홈런 10개, 31타점, 이 두 선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타자들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이제 한 번 휘둘러볼까?’

다카기는 두 달 동안 잘 갈아둔 칼을 빼들었다.

연봉 동결까지 시켜줬는데 제 역할 못하는 베테랑, 목을 날리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건가.

일단 팀 프랜차이즈 스타 오바타 도이를 2군으로 강등시켰다.

오바타가 두 달 동안 거둔 성적은 타율 0.212, 홈런 2개, 어지간한 2군 선수가 올라와도 이보다 못하긴 어렵다.

오바타를 시작으로 휘몰아치는 피의 숙청, 베테랑들은 다음은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휩싸였다.

“자네 오늘은 2루수로 나가게.”

그러던 어느 날, 라이노스의 마츠다 코사쿠는 감독으로부터 선발출장 통보를 받았다.

지난 3년 동안 227경기 출장했지만 거의 대주자나 대수비로 활약, 선발 출장은 정말 오랜만이라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연패에 빠진 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웃을 수도 없는 입장, 몸을 풀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이번에 기회를 잡지 못하면 또 벤치 신세, 땅볼 하나에도 이를 악물었다.

“자, 2회 말, 2대 0으로 뒤진 사카이 라이노스의 공격입니다. 타석에는 마츠다 코사쿠, 올 시즌 타율 0.222, 홈런 없이 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루만 해주면 언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죠. 수비도 괜찮은데 역시 공격이 문제입니다. 뭔가 보여줘야 할 텐데 말이죠.”

“안타를 못 치면 주전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비와 주루가 좋아도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안타에요.”

[딱 ~ !]

“유격수 방향!! 잡아서 1루에 길게 송구!! 발이 빨랐다는 판정입니다!! 선두 타자 출루!! 라이노스가 기회를 잡습니다!!”

내야 안타를 때린 마츠다는 2루를 훔쳐내더니 내친김에 3루 도루까지 해버렸다.

2할 5푼에 출루율 3할 초반대만 찍어줘도 하위 타선에 기용할 수 있는 선수, 다카기도 그 이상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호 ~ 이건 의외의 수확인데?’

그런데 이날 마츠다는 7회까지 3안타 포함 도루 3개를 해버렸다.

별로 눈에 띄던 선수도 아닌데 기대 이상의 활약, 라이노스의 오가야 감독도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9회 말 5대 4로 뒤진 라이노스의 공격, 마츠다는 4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따악 ~ !!]

“당긴 타구가 이번에도 내야를 빠져나갑니다!! 오늘 마츠다는 4안타!! 생애 최고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데요. 어제 만루 홈런 2개를 친 우에다의 활약보다 이게 더 충격적입니다.”

해설위원들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 반면 라이노스 팬들은 달려라를 외치며 도루를 유도했다.

오늘 마츠다에게 도루 3개를 헌납한 미요스 호크스 배터리는 지나치게 도루를 의식, 볼넷까지 내주면서 무사 주자 1 - 2루 위기에 몰렸다.

‘지금은 1점을 짜내야겠지?’

라이노스의 오가야 감독은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다.

어지간해서는 작전 지시를 하지 않지만 지금은 동점을 만드는 게 우선, 지시가 내려지는 동안 2루 주자 마츠다는 생각을 정리했다.

상대 팀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3루수가 베이스 앞으로 튀어나가길 기다렸다.

“초구 골라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도루 시도!! 송구가 빗나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마츠다의 과감한 주루 플레이!!!! 라이노스가 9회 말 공격에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립니다!!!! 이제 노 아웃에 주자는 3루!! 이제 팬들은 역전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에다가 너무 성급했어요. 타구를 보고 뛰어들었어야 했는데 틈을 열어주고 말았습니다.”

미요시 호크스의 3루수 마에다는 자신의 성급한 판단을 자책했다.

베이스 앞으로 뛰쳐나간 탓에 백 스탭을 밟으며 송구를 받아야 했고, 결국 악송구가 됐다. 전부 내 실수, 그 틈을 파고 든 마츠다의 주루 능력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여한이 없다.’

그 사이, 홈을 파고 든 마츠다는 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3년 동안 벤치를 지키며 이렇다 할 활약도 없었던 내가 한 경기에서 4안타 4도루를 해내는 날이 오다니, 목청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고 싶었지만 복잡한 감정에 목이 막혀버렸다.

따악 ~ !!

“와아아아 ~ !!”

그 사이, 후쿠이의 안타가 터지면서 사카이 라이노스는 4연패에서 벗어났다.

팀 성적은 안 좋아도 언제나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주는 오사카 팬들, 극적인 끝내기에 고시엔 구장은 환호로 들썩였다.

이 날의 MVP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마츠다, 처음으로 수훈선수 인터뷰라는 걸 해본 마츠다는 쑥 들어온 마이크 앞에 고개를 숙였다.

“마츠다 선수, 오늘 활약과 팀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올 시즌 첫 선발출장이었는데 정말 놀라운 활약을 해주셨습니다. 지금 소감이 어떠신가요?”

“어 …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게 현실인지 아직도 감이 안 잡히네요. 이런 멋진 추억을 선물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정말 …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28살밖에 안 된 선순데 분위기는 은퇴식,

앞으로도 이런 날이 반복될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건가?

다카기는 측근을 통해 마츠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네의 커리어는 이제 막 시작된 거야. 오늘 같은 날이 반복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진심이 담긴 편지에 마츠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냉혈단장인 줄 알았는데 이런 면도 있었을 줄이야,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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