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잠깐의 휴식 - (7)
[연봉상승도 없지만 삭감도 없다.]
다카기는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했다.
사람들은 조직을 개혁하려면 일단 사람을 개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게 정말 효과가 있는 정책일까.
작년 시즌, 사카이 라이노스는 주전 유격수 모리 모토시바에게 80%의 연봉 삭감을 지시하며 자진 퇴단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채운 선수는 3군 경력 2년 차에 접어든 신인이었다.
연봉 5만 달러를 받는 베테랑 관리자를 1만 달러짜리 신입으로 교체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장은 인건비가 줄어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임금을 받는 신입 사원은 경험도 없고 느리고 효율성도 없다.
회사 입장에선 그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비용을 써야 할 것이고 결국 예전과 다를 게 없는 상황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대안이 없는데 왜 퇴단을 하게 만들어?’
다카기는 기업가 집안에서 자란 만큼, 사업에 대한 노하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인건비를 무조건 줄이는 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또 사카이 라이노스는 지금 주전들의 연봉을 깎고 교체한다고 해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럼 주전 선수들의 연봉을 동결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예년 같으면 계약보류를 선언했을 선수들이 군말 없이 협상 테이블에 도장을 찍고 나왔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 이 행보는 일본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성적이 부진한 선수의 연봉은 깎고 보는 게 일본야구 문화, 그런데 이걸 동결시킬 줄이야.
하지만 다카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깎을 것도 없는데 뭘 깎아?’
일단 도쿄 자이언의 슈퍼스타 타키야마 요이치의 작년 시즌 연봉은 7억 엔이다.
자이언츠 팀 연봉은 약 69억 엔, 공룡구단답게 엄청난 총액을 자랑한다. 그에 비해 사카이 라이노스는 33억 엔, 자이언츠에 비해 절반도 안 되고 이것도 2년 전에 비해 1억 9천만 엔 줄어든 수치다.
주전 유격수의 연봉을 80%나 깎아 쫓아내는 게 사카이 라이노스가 지금까지 유지한 정책, 이런 팀에선 연봉 깎으면 안 된다.
오히려 선수들의 사기를 죽이고 팀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까지 죽일 수 있다. 이러니 선수들이 신인 단장의 연봉 동결 조치에 아무 말 없이 도장 찍은 거다.
내가 팀을 개혁하겠다고 연봉에 칼질을 했다면 선수들은 마지 못 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겠지,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
대안이 없다면 지금 선수들을 믿고 가는 게 최선인데 당연한 일을 신기한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여론, 이해하기 어려웠다.
“올 한해 잘 부탁드립니다.”
“예, 저야말로”
이제는 감독을 만날 차례, 라이노스의 감독은 올해 49살이 된 오가야 아사히로다.
사카이 라이노스에서 선수로 13년을 보내고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오른 인물, 그만큼 팀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선수단은 내 마음대로 꾸렸지만 그걸 운영하는 감독, 다카기는 오가야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물러나라, 능력도 없는 감독]
[왜 오가야가 감독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오가야 감독은 지난 3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 했다.
라이노스 팬들은 오가야는 상황 판단력이 떨어진다. 말이 느려서 멍청해 보인다 등등, 엄청난 혹평을 쏟아내고 있는데, 선수들 말을 들어보면 그렇게 나쁜 감독은 아니었다.
감독으로서 적극성이 떨어지고 작전 구사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선수단을 관리하는 능력은 아주 뛰어나다.
오가야 감독은 자신의 판단보다 선수들의 능력을 믿는 편, 그리고 자기 팀 선수뿐만 아니라 상대 팀 선수들도 칭찬을 자주 해준다. 사람만 보면 정말 좋은 감독,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감독님, 저희 안 좋은 얘기 좀 할까요?”
“아 … 그러시죠.”
“작년에 교류전에서 팀이 10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무슨 생각 하셨습니까?”
오가야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교류전은 일본시리즈처럼 스폰서를 따로 두고, 우승팀까지 선정할 정도로 NPB에서 나름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최강자 논쟁, 팬들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중 어느 리그가 최강자냐며 논쟁을 벌인다.
그 증거 자료로 내세울 수 있는 교류전, 일본 시리즈는 최대 7경기 하고 지나가지만, 교류전은 아니다.
전 구단이 108게임을 치르는데, 사카이 라이노스가 소속된 퍼시픽리그는 작년 시즌 승률 0.558을 거두며 우세를 보였다.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게 사카이 라이노스, 교류전에서 7연패를 당하며 퍼시픽리그 승률을 깎아먹었다. 감독 커리어 중 가장 치욕적이었던 순간, 그때도 사람 좋게 허 ~ 허 ~ 웃었을까.
그렇다면 문제가 될 일, 다카기는 추궁을 이어갔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저라면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건 다 부숴버렸을 텐데요. 그때 선수단 분위기는 어땠나요?”
“뭐 … 침울하긴 했죠.”
“아니, 그러니까 그게 다가 아니라니까요. 제가 실례되는 말 좀 하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시면 저는 감독님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팀이 연패에 빠지면 선수들을 다그치고 타순도 바꿔가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되잖아요.”
오가야 감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3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는데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 답이 없는 팀이라 선수들을 믿는 게 최선이라고만 생각했지, 내 손으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의지는 거의 없었다.
“저는 감독님께 시간을 드릴 겁니다. 성적이 안 나온다고 팬들이 뭐라고 해도 기다릴 겁니다. 그러니까 감독님이 생각하는 야구를 해 보세요. 선수들만 멍하니 지켜보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오가야 감독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답답하고 멍청해 보인다며 욕을 먹는데 조카뻘 되는 단장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으니, 솔직히 부끄러웠다.
‘할 일은 다 했다.’
그렇게 끝난 선수단 구성, 다카기 단장은 특별석에 앉아 개막전을 지켜봤다.
내가 서른을 겨우 넘긴 나이에 단장 노릇을 할 줄이야, 양복차림으로 나오긴 했지만 솔직히 어색했다.
‘우승하면 티셔츠 입고 출근하자.’
단장은 복장이 아니라 성적으로 위엄을 드러내는 법,
막말로 티셔츠 한 장 입고 나타나도 팀이 1위면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다. 보여준 게 없으니 그런 기행을 하면 안 되지, 표정 없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원정팀 요코하마 웨일스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라이노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자, 피터 스마일리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해가 NPB 데뷔전, 시범 경기에서는 타율 0.281, 홈런 없이 4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다카기 단장이 고심 끝에 선택한 용병이죠. 하지만 시범경기 성적은 평범했습니다.”
스마일리는 시범 경기에서 장타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출루율 0.370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일각에선 똑딱이를 용병으로 데려왔다며 말이 많지만 그건 지켜봐야 아는 일, 다카기는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이걸 잡아주네.’
스마일리는 차분히 볼을 거르며 투 볼 원 스트라이크를 만들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초구 타격 비율은 10%도 안 됐던 선수, 자신만의 스타일은 여기서도 유지됐다.
메이저리그는 투구 분석 시스템을 통해 심판을 평가하고 있고 이건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시스템의 정확도는 99%, 사무국은 이를 토대로 심판 판정에 제재를 가했고, 판정 정확도는 95%까지 올라왔다. 문제는 일본은 그게 아니라는 것, 여론은 심판의 권리가 기계의 의견에 침범당하는 걸 불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건 주심의 권리가 아니라 정확한 판정, 일본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판정 정확도는 90%가 약간 안 된다.
한 마디로 엉망, 스마일리는 이런 낯선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다.
“이번에도 들어옵니다.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너무 소극적인데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치는 게 좋을 겁니다.”
2구를 지켜본 스마일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까지 판정이 오락가락일 줄이야, 그래도 방망이를 짧게 쥐는 타법으로 공을 밀어내며 승부를 풀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이런 매력 때문에 영입한 선수, 용병이면 다들 삼진 아니면 홈런을 떠올리지 않는가.
스마일리는 그 편견을 깨는 선수, 내가 선택한 선수가 활약하는 것만큼 단장으로서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다카기는 흥미로운 눈으로 결과를 지켜봤다.
[딱 ~ !!]
“좌측으로 가는 타구가!! 좌익수 글러브에 걸리는군요!! 요시오카가 7구 만에 첫 타자를 잡아냅니다.”
“시범경기에서도 그랬지만 쉽게 물러나는 법이 없어요. 이런 선수가 첫 타자부터 나온다면 투수 입장에선 정말 골치 아프겠네요.”
타구 방향을 확인한 프리젤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아웃은 됐지만 의도대로 밀어친 타구, 다음 타석은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적극적으로 나간다.’
스마일리의 타격을 지켜본 프리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판정이 오락가락한다면 어지간한 공은 치는 게 낫겠지, 물론 이런 타격은 보다 정확한 선구안을 요구한다.
잘못하면 유인구에 속아 넘어갈 뿐, 그리고 일본 투수들은 그 공을 던질 줄 안다.
프리젤은 초구 바깥쪽 높은 공을 골라냈고, 2구를 힘껏 잡아당겼다.
[따악 ~ !!]
“3루 강습!! 하지만 내야를 빠져나갑니다!! 프리젤이 사카이 라이노스의 올 시즌 첫 안타를 장식하는군요!! 2사에서 주자가 출루합니다.”
“다카기 단장이 용병은 잘 뽑은 것 같네요. 요시오카가 만만한 투수가 아닌데, 스마일리도 그렇고 확실하게 공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굴러들어온 돌의 활약은 박힌 돌을 자극했다.
연봉 삭감까지 각오했는데 그걸 동결시켜준 단장, 하지만 신입단장이 베푼 친절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베테랑 선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친절이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착각하는 법, 다카기는 이미 오가야 감독을 통해 경고를 했다.
작년 시즌 교류전에서 7연패를 당하고도 식당에서 희희낙락했던 몇몇 선수들, 나는 그 꼴 못 본다는 게 신입단장의 뜻이다.
수틀리면 내년에는 피의 바람이 불겠지, 타석에 들어선 오바타 도이는 각오를 다졌다.
‘나는 라이노스맨이다. 여기가 내 집이라고’
5년 연속 20홈런을 넘긴 라이노스의 상징,
작년 시즌에도 22홈런을 쳤지만 타율이 0.257로 대폭 떨어졌다.
전임 단장이었다면 연봉부터 깎으려고 달려들었을 텐데, 일단 한 번 봐준 신입단장, 프로의 자존심이 있지 그런 친절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스윙!! 초구부터 크게 돌려보는군요.”
“오바타가 작년에 삼진 124개를 당했거든요. 원래 삼진을 많이 당하는 선수지만 타율과 장타율도 같이 떨어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바타는 의욕을 앞세웠지만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라이노스의 1회 말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특별석에 앉은 다카기는 그러려니 넘어갔다.
지금 저 선수의 능력을 단정 짓는 건 무리, 대안도 없으니 딱히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