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잠깐의 휴식 - (6)
‘특이한 선수군.’
용병을 찾기 위한 신인단장의 행보는 계속됐다.
주목을 끈 선수는 샬롯 나이츠의 피터 스마일리, 컨택은 좋지 않지만 수준급의 선구안, 파워를 갖춘 OPS형 히터로 분류됐다.
‘과연 그럴까?’
스마일리의 타격을 지켜보던 다카기는 의문을 품었다.
컨택이 좋지 않은 선수라고 적혀있는데, 아마추어 선수처럼 방망이를 짧게 잡고 하체는 거의 쓰지 않으면서 상체만으로 타구를 툭툭 밀어내고 있다.
이런 선수는 속구보다 변화구에 강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빠지는 변화구는 잘 걸러내지만 존 안으로 들어오는 빠른 볼에 약점을 보이는데, 일본 투수들의 구속이 MLB보다 느리다고 해도 최근엔 꽤 올라온 수준이다.
저런 타격 폼으로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그냥 넘기려다 타격 폼이 워낙 특이해서 계속 지켜봤다.
따악 ~ !!
“오?”
스마일리는 3번째 타석에서 완벽한 백스핀이 걸린 드라이브 타구를 날렸다.
그것도 빠른 볼 타격, 앞선 타석에선 빠른 볼에 땅볼을 때렸지만 이번엔 달랐다.
저런 타구를 날릴 수만 있다면 문제는 되지 않겠지, 뭣보다 요즘 선수
들과 달리 컨택에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행히 계약은 잘 이뤄졌고, 프리젤 - 스마일리를 확보한 다카기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투수 용병은 장바구니에 넣지도 않은 행보, 그래도 투수 출신인데 투수는 눈에 안 들어오는 건가. 다카기는 인터뷰에서 입장을 밝혔다.
“투수는 딱히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NPB에서 외국인 선수는 몇 명이든 영입해도 된다.
그래서 즉시 전력 감보다는 문제가 생겼을 때 보험용으로 데려오는 선수가 더 많은데,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만큼 내국 선수 보유 한도도 같이 줄어든다.
지금 팀 선수 명단에 방출해야 하는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외국인 선수를 더 장바구니에 담아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
처음부터 영입해야 할 용병은 2명이었고, 바구니가 채워지자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너무 일찍 돌아오신 거 아닙니까? 11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하셨으니, 만나야 할 사람도 있지 않았나요?”
“저는 이제 단장입니다. 옛 친구를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보는 게 낫죠.”
다카기는 일본으로 돌아온 후에도 일관된 행보를 보였다.
선수가 아닌 단장의 모습, 모두 받아들이기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했다.
“단장님, 이번에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수고했습니다.”
드래프트를 앞두고 사카이 라이노스 운영진은 정리한 학생 명단을 단장에게 제출했다.
■ 모리미츠 츠토무 : 오고 싶어 하지 않음
■ 오기 나가야스 : 오고 싶어 함
보고서에는 특이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지명을 받으면 사카이 라이노스에 입단할 건가. 지명받고 가기 싫다며 거부감을 표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다카기는 그 자리에서 오기 싫다는 학생들은 지명 빼버렸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오기 싫다는 선수도 설득을 해야 되는데,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단장, 한 측근이 슬쩍 입을 열었다.
“단장님, 이번에 드래프트 나오는 모리미츠는 저희가 예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유망주입니다.”
“그래서요?”
“아니 … 저희가 설득을 해 봐야 하지 않나 해서 … ”
“오기 싫다는 선수 설득해서 뭐 할 겁니까?”
다카기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유망주가 팀을 가릴 입장인가? 자기가 프로에서 뭘 보여줬다고 팀을 가리나.
당장 1군 명단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고 어떻게든 출장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게 신인의 마음가짐,
이상하게 명문구단에 집착하는 학생들이 많다. 다카기도 미국 명문 구단 보스턴에 입단하긴 했지만 그건 본인이 선택한 게 아니라 보스턴의 지명을 받은 것뿐이다.
약체 팀이 날 선택했다면 메이저리그 행을 포기했을까.
안 가는 게 멍청이, 일단 어느 팀이든 일단 프로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지닌 선수를 원했다.
이번 드래프트 최대어라 불리는 모리미츠 츠토무는 이렇게 지명 명단에서 탈락, 대신 오기 나가야스가 1순위 지명 명단에 올랐다.
고교 3년 동안 42홈런을 때려내며 준수한 파워를 보여줬고, 특히 이번 고시엔에서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는 선수, 용병도 그렇고 드래프트도 너무 타자만 뽑는 거 아닌가.
이때 눈치를 살피던 한 측근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저희 너무 타자 쪽만 보강하는 거 아닙니까? 투수도 좀 … ”
“드래프트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다카기는 사카이 라이노스의 드래프트 역사를 되짚었다.
사카이 라이노스는 지금까지 사회인 야구, 대학 야구를 경험한 투수 위주로 드래프트 1라운드를 지명했다.
시간을 들여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당장 쓸 생각으로 영입을 한 것, 그런데 1년 차부터 활약하는 유망주는 거의 없다.
활약을 한다고 해도 고교야구나 대학야구에서 너무 혹사를 당해 1 ~ 2년 안에 수술대로 직행이다.
운영진이 일단 쓰고 보자는 마인드로 드래프트를 하는데, 선수 육성 체계가 제대로 잡혔을까?
다카기가 고문으로 활동했던 도쿄 자이언츠는 정식 선수든 육성 선수든 일단 많이 뽑아 놓고 방목했다.
돈이 많으니 가능한 일,
유망주 육성 시스템은 개판이지만 방목해서 살아남는 선수들을 쓰겠다는 건데 사카이 라이노스는 그게 안 된다.
선수를 많이 뽑을 여유도 없고, 미래를 위해서는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하는 게 낫다.
당장의 성적에 얽매이면 고생고생해서 데려온 유망주도 무리시키게 되고 그러다 부상으로 아웃, 유망주 시스템이 개판이라 내부 수혈도 안 된다.
라이노스는 이런 역사를 지난 10년 동안 반복한 거 아닌가.
5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단장 생활, 다카기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 * *
‘내가 지명 될 수 있을까.’
‘나는 무조건 3라운드 안이지.’
이곳은 드래프트가 열리는 행사장, 양복으로 말끔히 차려입은 예비 프로 선수들은 구단의 선택을 기다렸다.
불안과 자신감이 공존하는 얼굴들, 시간이 되자 각 구단 관계자들도 하나둘 자리에 착석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단장은 다카기, 겨우 32살에 단장이 된 건 일본 야구 역사상 최초다. 은퇴 후에도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신인 단장, 하위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번 드래프트는 그 출발점, 풋내기 유망주들도 그 존재감을 의식했다.
분명 이 자리는 우리가 주인공인데, 저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기분이랄까. 저 백마 탄 왕자님의 선택을 받는 신데렐라는 누가 될 것인가.
시선이 마주치자 몇몇 학생들은 뜨끔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습니다.’
‘설마 내가 뽑히는 건가?’
‘위험해 분명 나다.’
물론 다카기는 이미 뽑아둘 선수를 정해뒀다.
착각은 자유, 시간이 되자 사카이 라이노스는 예정대로 오기 나가야스를 지명했다. 다른 구단도 선택을 했다면 경쟁을 벌여야 하겠지, 결과는 운명에 맡겼다.
“자 … 오기 나가야스 학생은 사카이 라이노스와 나고야 파이터스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사회자의 선언에 들썩이는 행사장, 나고야 파이터스의 단장 하치무라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가슴은 격하게 요동쳤다.
아무도 안 뽑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명을 했는데 경쟁자가 나타날 줄이야, 이제 양 팀의 운명은 추첨으로 넘겨졌다.
‘어느 곳이든 좋다. 뛸 수만 있다면’
오기 나가야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시엔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번 드래프트에서 나보다 더 주목을 끈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1라운드 선택을 받은 것만 해도 감사할 일, 행사장에 참석한 부모님도 뛰는 가슴을 다독이며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카이 라이노스가 우선 협상권을 가져가는군요!! 오기 선수, 축하드립니다!!”
운명은 라이노스를 택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오기 나가야스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눈물을 쏟았다.
내 아들이 이런 영광을 안을 줄이야, 사카이 라이노스 뿐만 아니라 지명을 해준 나고야 파이터스 쪽에도 고개를 숙였다.
물론 나고야 분위기는 초상집,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선택이 빗나갈 줄이야. 박수는 쳐줬지만 하치무라 단장은 끓는 속을 겨우 다스렸다.
“오늘 바로 계약하시죠?”
“네,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는 바랄 게 없습니다.”
다카기는 드래프트가 끝나자마자 계약서를 내밀었다.
보통은 하루 지난 다음에 계약을 맺지만 다카기는 한 번 찍어둔 선수는 절대 놓치지 않는 성격, 계약금 8천만 엔에 연봉 1700만 엔으로 합의를 봤다.
사카이 라이노스 역사상 야수 출신으로 가장 높은 계약금, 오기 나가야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단장의 선택을 받을 대단한 인재였나.
여론의 관심은 나가야스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좋은 조건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1라운드에 지명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구단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1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니, 내가 이것만큼은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하는 게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 그냥 열심히 하는 것 외엔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장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오? 그렇습니까? 다카기 단장이 무슨 말을 했죠?”
“1라운드 지명자라고 성공하는 거 아니고 하위 지명자라고 실패하는 거 아니라고 하셨죠. 일단 프로에 들어오면 출발선은 모두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노력해야겠죠.”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대학 진학을 선언한 모리미츠 츠토무와는 너무 다른 태도,
모리미츠 츠토무는 이번 드래프트를 앞두고 본인이 3라운드 밑으로 지명 되면 무조건 대학 갈 거라고 여론에 공표를 했다.
하지만 지명은 5라운드로 넘어갔고, 자존심이 상한 모리미츠는 지명을 받은 나고야 파이터스의 계약을 거부했다.
스카우터와 단장 보좌가 지명 다음 날 모리미츠의 모교를 찾아가 입단할 것을 설득했지만 모리미츠는 대학 진학을 택했다.
대학에서 다시 도전을 해 상위 지명을 받겠다는 건데, 이런 건방진 태도는 구단 관계자들의 헛웃음을 이끌어 냈다.
‘3라운드 밑으로 지명 되면 대학 간다고?’
‘마음대로 하시지’
모리미치는 140km 중반의 빠른 볼과 수준급의 슬라이더를 갖췄다.
거기다 좌완, 이 정도면 어느 팀이나 군침을 흘릴 법한데, 특유의 성격 때문인지 마운드에서 기복이 너무 심했다.
이번 고시엔에서도 성깔이 폭발하면서 강판, 이런 미성숙한 모습 때문에 상위 지명을 받질 못했다.
그래도 나고야 파이터스는 그 재능을 인정해 5라운드 지명권을 썼지만 모리미츠는 그것마저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