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36화 (336/361)

336화. 잠깐의 휴식 - (5)

[도쿄 자이언츠, 성적 부진으로 단장과 감독 모두 사퇴]

경영진과 선수단 모두 나름대로 애는 써봤지만 도쿄 자이언츠는 센트럴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센트럴리그 우승만 42회를 달성한 명문구단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성적, 후카와 단장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사임을 표했다.

3년 전 시작된 후카와 단장 체제는 출발부터 말이 많았다.

스포츠 기자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다 메이저리그로 무대를 확장, 이후 NPB 사무국 직원으로 활동했고 2027년부터 사카이 라이노스 프런트(홍보담당)로 재직했다.

문제는 그가 전문 경영인 출신이 아니었다는 것,

후카와 단장은 외부 선수 영입을 최소화하고 유망주로 주력 선수를 채우는 보스턴의 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예산 초과가 없었던 도쿄 자이언츠, 좋게 말하면 절약을 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뭘 잘못 이해하고 있군.’

다카기도 내색은 안 했지만 후카와 단장의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수더랜드 단장이 추구한 건 팜 시스템 집중 운영이 맞다.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전력 수급이 안 된다는 것, 메이저리그는 트레이드가 활성화돼 있고 때가 되면 언제든 선수 맞교환이 가능하다.

문제는 일본은 그게 안 된다는 것,

일본야구는 선수에게 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메이저리그처럼 리그 규모가 큰 게 아니라 트레이드가 되면 친정팀과 얼굴을 맞댈 수밖에 없고, 선수나 팬들 모두 이런 분위기를 껄끄럽게 여긴다.

■ 2030년 : 5명

■ 2031년 : 13명

■ 2032년 : 9명

최근 3년의 통계만 봐도 NPB에서 팀을 옮긴 선수는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트레이드가 활성화되고 전력 충원이 가능하겠나.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이 이끄는 보스턴은 아니다.

유망주 중심으로 팀을 육성하지만 트레이드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선수들을 시장에 내놓고 필요한 걸 받아온다.

한 마디로 후카와 단장이 추구한 보스턴의 팜 시스템은 일본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환경에 맞지도 않는 제도를 억지로 들여왔다가 아무것도 해내질 못했다.

일본야구도 이젠 바뀌어야 할 때, 다카기는 인터뷰에서 소신을 밝혔다.

“유망주 중심의 야구를 하고 싶다면,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유망주는 팀의 자원입니다. 가치를 계산해 앞으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필요가 없다면 다른 팀에 넘겨주고 대체 자원을 받아와야죠. 그리고 그 가치를 따져보려면 그만한 애정과 관심을 줘야 합니다.”

국가들도 서로 필요한 자원은 주고받지 않나.

하지만 무역길이 막힌 일본 야구, 많은 유망주들이 빛도 못 보고 사라지는 이유가 이거다.

다른 팀에선 충분히 빛을 발휘할 수 있는데 무역길이 막혔으니 쓰이질 못하고 있는 것, 그래서 단장들은 언제든지 쓰고 버릴 수 있는 외국인 용병을 더 선호한다.

돈은 좀 들겠지만 트레이드 실패로 따라오는 비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또 이게 편하다.

유망주는 구단이 키워야 하기 때문에 육성계획을 짜고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만 용병은 쓰다 아니다 싶으면 버리면 그만이다.

이런데 어떻게 유망주 중심의 야구를 할 수 있겠나.

유망주 야구를 하고 싶다면 그만큼 프런트의 일이 많아지는 법, 도쿄 자이언츠는 유망주의 미래를 위한 플랜을 짜낼 만큼 열정이 있었는가.

일단 그것부터 생각해보라며 일침을 날렸다.

[계획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지침이 없었다]

마침 익명을 요구한 도쿄 자이언츠 구단 관계자가 인터뷰를 남겼다.

유망주를 데려오기만 했지 어떻게 키울지 구체적인 대안이 없었던 후카와 단장 체제, 후카와 단장은 그 선수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를 통해 확인했다.

직접 봐도 뭐가 장단점인지 알 수가 없으니 현장 관계자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그 보고서가 대부분 엉터리였다.

이러니 2군 선수들을 승격, 강등시키는 일만 반복

성적을 내면 남는 거고 그게 아니면 그대로 2군에 처박혔다.

단순하고 무책임한 유망주 육성 계획, 그냥 기회를 주는 게 전부가 아닌데 후카와 단장은 팜 운영을 잘못 이해했다.

[그럼 다카기 고문은 팀을 바꿀 수 있나?]

때가 되자 여론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육성 방안을 잘 알고 있다면, 팀을 개조시킬 수 있는 건가.

다카기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일본에선 감독이 현장의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의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되죠. 기업 관계자들도 눈앞에 보이는 성적을 원합니다. 그런데 제가 팀을 재건할 수 있는 시간을 줄지 모르겠네요.”

한 마디로 나에게 전권을 달라는 뜻,

그동안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했던 도쿄 자이언츠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자기는 단장 하라면 할 거야?”

“다 줘야 할 거야. 어설프게 권력 줄 거면 안 하고 말지”

키리코는 남편의 본심을 슬쩍 들춰봤다.

그런 말을 했다는 건 욕심이 없다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단장에게 그만한 막강한 권한을 줄 구단이 있을까.

최근 일본에선 단장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감독의 힘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단장은 구단을 보조하는 사무직에 불과, 실제로 모기업 회장이 단장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단장에게 전권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구단이 있을까. 그런데 그 구단이 동화 속의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났다.

[시간이 되면 찾아봬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러브 콜을 보낸 구단은 사카이 라이노스, 다카기는 왜 날 필요로 하는지 구체적인 답을 요구했다.

“저희는 그동안 너무 편한 야구를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구체적인 육성 계획 없이 유망주들은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죠. 부족한 전력은 용병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솔직히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건 제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 아닙니까. 왜 절 필요로 하는지 답을 안 해주셨는데요.”

어색한 미소를 짓는 모기업 관계자는 한 마디로 모든 걸 정리했다.

“이기고 싶습니다. 당신이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1 ~ 2년 안에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5년 계약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에 어떤 토도 달지 않겠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 … 그렇게 하시죠.”

이렇게 덜컥 계약이 성립됐다.

다카기는 바로 자이언츠 고문 사직서를 냈고, 학창 시절의 열정이 녹아있는 오사카로 돌아왔다.

고시엔이 열리는 지역답게 야구에 대한 사랑이 강렬한 도시, 오사카 팬들은 돌아온 걸 환영한다며 열렬한 지지를 표했다.

하지만 다카기는 공식 행사없이 바로 단장 직을 수행, 유망주에 대한 보고서는 측근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외국인 용병 수혈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한데?’

측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유망주 중심으로 팀을 운영한다고 하지 않았나? 눈치를 보던 사원이 슬쩍 입을 열었다.

“단장님, 정말 저희들이 해도 되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아니 … 유망주 중심으로 팀을 짠다고 하셨는데 단장님은 지금 … ”

“나는 신이 아니네. 일은 나눠서 해야지”

다카기는 일단 측근들을 믿어봤다.

이 사람들이 무능해서 그동안 유망주를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 건가? 아니면 감독이 제대로 쓰질 못한 건가.

이건 성급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뭣보다 단장이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는 법, 신인 단장은 사원들 앞에서 본심을 털어놨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초인이 아니네. 내가 단장이 됐다고 팀이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나? 유능한 측근이 있어야 단장도 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 난 자네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아는 게 전혀 없어, 그래서 일을 시켜 보는 거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아 … ”

그제야 다들 이해했다는 표정, 그렇게 측근들에게 일을 떠넘긴 다카기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드래프트는 운에 따라 갈리지만, 용병은 눈에 띄는 선수가 보이면 그대로 낚아챌 수 있다.

트레이드와 FA 영입이 제한적인 일본에선 용병 영입도 중요한 일, 미국 여론은 단장이 돼 돌아온 다카기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눈은 틀림없다.”

“저 단장이 찍은 선수는 절대 넘겨주면 안 된다.”

선수 시절, 다카기는 상대 선수의 장단점을 해부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건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 저런 단장이 콕 집어낸 선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물론 신입단장은 기자들이 퍼뜨리는 헛소문에 코웃음을 쳤다.

‘일본에서 통한다고 미국에서 통할까?’

다카기는 지난 1년 동안 일본 투수들의 수준을 확인했다.

제구는 잡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는 게 메이저리그, 실력의 차는 명확했다. 일본에서 통할만 한 선수를 찾는 게 내가 여기에 온 목적, 메이저리그 승격 여부는 관계없었다.

“자네 일본에서 뛸 생각 없나?”

선택을 받은 선수는 레인 벨리 치프스(미네소타 산하 트리플 A)에서 뛰고 있는 마크 프리젤, 8년 전 전체 6라운드 142번째 지명을 받은 선수다.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파워와 출루능력을 보여줬지만, 통산 메이저리그 성적은 타율 0.231 7홈런(197타석), 전형적인 AAAA급 선수였다.

“설마 당신에게 선택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사실 두 사람은 인연이 있는 사이다.

4년 전, 다카기는 미네소타 원정경기에 등판했고 대타로 나온 마크 프리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때 기회를 잡았다면 메이저리그에 정착할 수도 있었는데,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고 존재감 없는 선수로 보낸 세월, 30이 다 된 나이라 프리젤은 다른 길을 가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찾아온 일본행 기회, 그곳에선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다카기는 립 서비스 없는 평가를 내렸다.

“자네 나하고 붙어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끔찍했죠. 이 세상의 공이 아니었어요.”

“일본으로 오면 모든 공이 귀여워 보일 거야. 마음껏 귀여워해주라고”

프리젤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내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일본은 뛰어난 투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심지어 다카기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초토화 시킨 수준, 일본으로 간다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자네라면 괜찮을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투수도 투수 나름이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 자네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시간은 있으니까 생각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그날 이후 프리젤은 고민을 거듭했다.

내 메이저리그 도전기는 여기서 끝나는 건가. 한 번 만 더 도전 해보자는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트리플 A에서 3할에 30홈런 친다고 승격되는 거 아니다.

30이 다 된 선수와 20대 초반에 접어든 유망주 중 누굴 택하겠나. 내가 단장이라도 유망주에게 기회를 줄 거다.

승격됐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한 내 잘못, 메이저리그 꿈을 버리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돈까지 벌며 야구를 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한 입장, 프리젤은 이상이 아닌 현실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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