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33화 (333/361)

333화. 잠깐의 휴식 - (2)

[다카기, 은퇴 확실한 듯]

해가 지난 3월, 보스턴 여론은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은퇴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길 바랐지만 다카기는 끝내 플로리다 캠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놔 줘야 할 때, 그렇게 왕년의 에이스는 그라운드가 아닌 집에서 4월을 맞이했다.

‘이게 뭔 소리냐?’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다카기는 보스턴에서 일어난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보스턴은 12년을 보낸 정든 도시, 하지만 암울한 면이 없는 건 아니다.

연간 소득이 8만 5천 달리 이상인 흑인 가구 비율은 4%에 불과, 하버드, MIT 같은 명문대가 즐비하지만 흑인 학생의 비율은 30년째 7%대를 유지하고 있다.

가정의 경제적 뒷받침이 안 되는데, 어떻게 명문대생이 나오겠는가? 당연히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해야 하는 야구 경기장 객석에서 흑인을 보는 것도 어렵다. 불평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게 특히 심각한 보스턴, 묵혀왔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런 곳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

문제는 보스턴의 명문 고등학교 야구팀이 흑인 촌에서 열린 원정경기를 취소하고 기권 패를 선택하면서 일어났다.

원래 학교는 예정대로 경기를 치를 생각이었지만, 아이들을 통해 흑인 촌으로 원정경기를 간다는 소식을 들은 학부모들이 펄쩍 뛰었다.

사전 통보도 없이 학부모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일,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학교 관계자들은 서로 만나 오해를 풀어야 했다.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민사회는 물론 주지사까지 나서 유감을 표했다.

어른들은 이런 행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봤을까.

이번에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던 사우스 케이트 고등학교는 보스턴에서도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고교 야구 경기를 치렀지만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학교가 흑인 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보스턴 사회에 박혀있는 흑인차별은 그만큼 뿌리가 깊었고, 기분이 상한 사우스 케이트 고등학교는 다시는 그쪽 학생들을 초대하지 않을 거라며 엄포를 늘어놨다.

“그럼 내가 세인트 코스의 대표로 가겠다.”

이때, 다카기가 중재에 나섰다.

지금 사우스 케이트 고등학교는 세인트 코스 학부모들의 편견에 불만을 품고 경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럼 내가 세인트 코스의 대표가 되면 문제없는 거 아닌가.

뭣보다 어른들이 이렇게 싸움을 벌이면 아이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마련, 보스턴에 정이 있는 만큼 이번 문제는 넘어가기 어려웠다.

“6월 안에 일정 잡자. 어물쩍거리면 이번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다카기는 여론을 통해 행동을 촉구했다.

2월부터 5월까지만 진행되는 고교야구 리그, 세인트 코스 야구팀이 기권 패를 선언하면서 이번 사건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하지만 여름방학부터 겨울까지 외부 클럽 팀이나 메이저리그 구단이 진행하는 합숙 캠프 등, 고교 선수들이 경기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일, 다카기가 양쪽에서 중재자 노릇을 했다.

“우리 애들 공부 시켜야 해서 안 됩니다.”

하지만 세인트 코스 학부모들은 중재안을 거부했다.

학교마다 요구하는 학점이 있는데 그걸 통과하지 못하면 야구 선수로 뛸 수가 없다는 것, 특히 세인트코스는 보스턴에서도 상류층 학생들이 재학 중인 명문 중의 명문이다.

야구 리그가 끝나면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카기가 직접 만나본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네, 하루 정도 더 뛴다고 학업에 지장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다카기가 만나본 세인트 코스 학생들은 대부분 학업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평균 C 학점 밑으로 내려가면 야구팀에서 제명을 당하지만 대체로 B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편, 이 정도면 스스로 공부를 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냥 경기시키기 싫은 거네.’

다카기는 학부모들의 본심을 알아챘다.

아이들의 학업은 핑계에 불과, 사실은 흑인 촌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 자체가 싫었던 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기를 할 생각이 있는데, 사우스 케이트 고등학교가 거부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는 세인트 코스 학부모들, 모든 고등학교가 이런 건 아니겠지만 다카기는 보스턴에 뿌리 깊게 박힌 인종차별에 실망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학부모들이 동의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데리고 원정경기를 떠나겠는가.

호기 있게 팔을 걷어 올렸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다시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자기야”

“응?”

“우리 애들 여기서 계속 학교 다니게 해도 괜찮은 걸까?”

이때, 키리코는 남편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자라게 하는 게 최선일까. 예전에 비해 나아졌다고 해도 인종차별이 현존하는 미국, 키리코 본인도 마트에서 백인 남성에게 동양인이라고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

머리통을 유리병으로 후려갈겨 본때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찝찝한 건 사실,

남편의 커리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이들 의견도 물어봐야지. 걔들은 이미 이곳에 익숙해졌잖아.”

“그건 그렇지 … ”

“그러니까 애들 의견도 물어보자. 결정은 그 다음이야”

다카기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녀석들은 여기서 행복한 걸까. 그렇다면 일본으로 갈 이유도 없고, 그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저는 이곳이 좋아요.”

“저는 일본 가고 싶어요!!”

장남과 차남의 의견이 엇갈렸다.

장남 타다요시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모든 교육과정을 여기서 보냈다. 거기다 친구들도 많이 생겼는데 이제 와서 일본으로 가라니, 납득하기 어려웠다.

반면 차남 나가요시는 일본행에 흥미를 보였다.

이곳 생활도 재미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 친지들이 있는 일본도 마음에 드는 게 사실, 벌써부터 의견이 엇갈렸다.

‘참 어렵다, 어려워’

다카기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은 입장, 그럼 따로따로 지내야 하는 건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은 없는 법, 이 문제는 앞으로도 논의를 거듭했다.

[그럼 나한테 맡기는 게 어떠니? 억지로 일본 보내는 것도 안 좋아]

“정말 그래 주실래요?”

[그럼, 탓짱은 내 아들이나 다름없지.]

이때 미국에 살고 있는 다카기의 고모가 대안을 제시했다.

딸만 둘을 키우고 있는 고모, 아들이 없어 다카기를 친자식처럼 여기고 살았다. 그 조카의 아들이 내 품으로 온다면 대환영, 대학교 등록금까지 책임져 주겠다며 지원군을 자처했다.

“난 우리 탓짱이랑 절대 못 헤어져.”

문제는 아내가 결사반대하고 있다는 것,

이제 겨우 11살인데 왜 엄마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건가. 키리코는 아들에게 일본으로 가자며 설득을 이어갔다.

“너 여기 남으면 엄마랑 헤어져야 돼. 그래도 괜찮아?”

“ … 아니요.”

“그렇지? 그러니까 일본으로 가자. 응?”

“그런 식으로 애 협박하지 마.”

다카기는 아내에게 주의를 줬다.

결정권은 아들에게 있는 것, 여기 남고 싶다면 고모 집에서 지내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분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요?”

“캘리포니아, 네가 정말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미국에선 매년 45만 명의 고교야구 유망주가 쏟아져 나온다.

그중 절반이 쏠려 있는 캘리포니아, 야구 좀 한다는 놈들이 몰려 있으니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눈에 띄기도 어렵다.

이러니 야구만 잘해서 졸업과 동시에 프로가 되는 건 말 그대로 바늘구멍 통과하기, 운동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학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프로에 진출 못하면 학창시절의 야구는 좋은 추억으로 남을 뿐, 야구 선수가 되는 것도 못 되는 것도 아들의 능력이나 노력에 달린 일이라 다카기는 어느 쪽도 강요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기다려줄게. 엄마 아빠는 앞으로 너희들 위주로 움직일 거야.”

“ … 정말요?”

“그래, 엄마가 너 부담 주려고 저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남편이 눈치를 주자 키리코는 시키는 대로 따랐다.

하긴, 아이들의 행복이 우선이지 내 고집을 앞세우는 건 욕심, 아들이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일본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날부터 타다요시는 미래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버지는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작한 게 아니다.

일본에서 실력을 쌓고 두각을 드러내자 알아서 찾아온 스카우터, 뭣보다 유망주들이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내가 눈에 띌 수 있을까.

그렇다면 경쟁이 비교적 덜 심한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스카우터가 찾아오길 기다리면 되겠지.

그게 안 된다면 내 실력은 거기까지일 뿐, 더는 미련 두지 않았다.

“엄마, 저 일본 갈래요.”

“정말이니?!”

“네, 거기 있는 게 눈에 더 띌 것 같아요.”

키리코는 잘 생각했다며 아들을 끌어안았다.

이런 날이 올지도 몰라 틈틈이 일본어 공부도 시켰으니 문제 될 건 없겠지, 일단 아이들이 다닐 학교부터 알아봤고 때가 되자 다카기의 가족들은 모두 일본으로 넘어왔다.

“미안하다.”

[아니야. 우리 약속이 깨진 건 아니잖아?]

미국을 떠나기 전, 타다요시는 친구 로버트 패터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젠간 메이저리거가 돼서 함께 뛰자고 약속했는데, 내가 일본으로 가게 됐으니 서운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지만 패터슨은 일본에서도 메이저리그 진출은 가능하지 않느냐며 이해해줬다.

[너 메이저리거 되는 꿈 포기한 거 아니잖아?]

“당연하지, 일본에서 주목 못 받을 정도면 메이저리거가 되는 건 불가능하잖아? 일단 낮은 곳에서 천천히 도전해 보고 싶어.”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여기서 나름대로 노력할 테니까, 언젠간 다시 만나자]

“그래 … 고마워”

타다요시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겨우 다스렸다.

3년 동안 정말 친하게 지낸 친구, 이게 영원한 이별은 아니겠지만 왠지 친구를 놔두고 도망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시 만나려면 언젠가는 미국으로 돌아가야겠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일본에서 학창생활을 시작했다.

“겨울 캠프에 가고 싶다고?”

“네, 허락해주실 거죠?”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겨울, 타다요시는 아버지를 졸라댔다.

일본은 중학교 시절엔 경식야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안전의 문제도 있고 진짜 야구를 하고 싶다면 겨울 캠프에 참가해야 한다.

그건 미국도 마찬가지, 친구와 한 약속도 있고 타다요시는 지금부터 진짜 야구를 하고 싶었다.

“아빠는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잖아. 엄마만 설득하면 돼.”

“아니, 그게 아니라요 … 캠프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저 연습 좀 시켜주세요.”

“코치님들 있잖아?”

“최고의 코치님이 여기 있잖아요. 저 훈련 시켜주려고 그동안 운동하신 거 아니에요?”

속마음을 들킨 다카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몸 관리를 못해서 배가 불뚝 나온 사람이 이런저런 충고를 해줘봤자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겠나.

운동을 가르치려면 이쪽도 그에 걸맞은 몸과 정신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법, 여생을 아이들의 미래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몸이라 하루도 게을리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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