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잠깐의 휴식 - (1)
“너희들 신발은 벗고 들어와라.”
“네에 ~ ”
은퇴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외부 손님,
다카기는 지난 8월에 한 약속대로 아들의 친구, 로버트 패터슨의 방문을 허락했다.
아버지가 농구선수인데 야구를 하겠다는 녀석, 일단 대화를 나누며 분위기를 풀었다.
“너희들 배는 채웠니?”
“아니요.”
“그럼 밥부터 먹자.”
다카기는 막내딸을 아내에게 넘기고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다.
그새를 못 참고 쪼르르 따라 붙는 녀석들, 관객들 옆에서 왕년의 메이저리그 스타는 솜씨를 발휘했다.
간이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해 군데군데 껍질을 파낸 단호박,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간장 소스에 졸여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지만 신기해하는 아이들, 이외에도 다카기는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를 뚝딱 해냈다.
“아저씨는 요리도 배웠어요?”
“어깨 너머로 배운 거야.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식사는 알아서 챙겨야 했거든, 사 먹는 게 질리면 가끔 이렇게 이것저것 해보곤 했지.”
질문을 던진 패터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차려준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까. 한껏 기대를 품고 젓가락을 들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젓가락질 처음 해보니?”
“네, 신기해요.”
패터슨은 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을 잘도 집어 먹었다.
차려준 사람이 무안해하지 않을 정도, 장남 타다요시도 그 옆에서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아빠,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가?”
“얼마 전에 계약하자고 전화 왔잖아요.”
패터슨은 친구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은퇴한 게 불과 두 달 전인데 계약이라니, 관심 없는 척하면서 귀는 열어뒀다.
“친구 앞에서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아 … 알았어요.”
아빠의 눈치를 살피던 타다요시는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
얼마 전 다카기는 시카고의 단장, 알 알테이너의 러브 콜을 받았다.
제시받은 계약은 6년 2억 8천만 달러, 이게 은퇴를 한 선수에게 할 말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천하의 배신자가 되는 것, 보스턴과 2년 8천만 달러 계약이 남아있는데도 은퇴를 택했다.
실력이 없어서 연장 계약을 못 맺은 것도 아니고, 내가 그동안 쌓은 업적과 명예를 모욕하는 짓이라 단칼에 거절했다.
다 언론에 공개해버리고 싶었지만 그게 최선일까.
까짓거 마음만 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은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큰 사건을 터뜨리고 싶진 않았다.
‘이러다 덜컥 계약하는 거 아냐?’
‘다른 팀이랑 계약하려고 은퇴한 건 아닐까?’
잘못하면 보스턴 팬들에게도 의심을 살 수 있다.
남아있는 2년 계약을 완수하고 다른 팀으로 갔어도 섭섭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은퇴한 다음에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
아무리 돈을 받고 뛰어주는 용병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시카고의 단장은 그 선을 넘어선 것, 그냥 엮이는 것 자체가 싫었다.
‘얘는 입이 조금 가벼운 게 문제인 것 같은데’
다카기는 밥을 먹는 아들을 유심히 살폈다.
말이 너무 없어도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을 하고 해야 되는 법, 더 지켜봐야겠지만 조금 경솔한 면이 보였다.
그래도 밥을 먹는데 잔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식사가 끝나고 소파 위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너 혹시 아빠 은퇴한 게 서운해서 그러니?”
다카기는 나긋한 목소리로 아들의 속마음을 들춰봤다.
은퇴식 때 나도 안 울었는데 펑펑 운 녀석, 계약을 입에 담은 건 아빠가 그라운드로 돌아가길 원하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친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생각해 봐야 할 일, 질책을 하기 전에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 … 솔직히 서운하긴 해요”
“뭐가 서운해? 네가 은퇴한 것도 아니잖아.”
“ … 그냥 그래요.”
소파 위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쭈뼛거리는 타다요시, 이때 차남 나가요시가 지나가면서 펀치 한 방을 날렸다.
“형은 울보래요 ~ ”
“누가 울보야?!!”
“어? 지금도 울려고 하잖아.”
다카기는 두 아들의 대치를 지켜봤다.
타다요시는 감정표현이 충실한 편, 말이 많고 눈물도 많다. 반면 나가요시는 뭐든 좋다고 헤헤거리는 성격,
형을 놀리는 것도 악의가 담긴 행동은 아니다. 그냥 같은 놀자고 하는 애정 표현, 그런데 타다요시는 그걸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같은 엄마 아빠를 뒀는데 어쩜 이렇게 다르게 태어난 건지, 다카기는 형 놀리기에 맛이 든 차남을 품에 안아 들었다.
“너 자꾸 형 놀릴래? 형이 지금 봐주는 거야. 그러면 안 되지”
“알아요. 그래서 놀리는 거예요.”
나가요시는 벌써부터 지능적인 면을 보였다.
형이 자기를 때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마음껏 놀릴 수 있는 것, 거기다 나랑 놀아줘야 할 형이 친구를 데려온 것도 못마땅했다.
투닥거려도 역시 형을 좋아하는 녀석, 이런 녀석도 있어야 집안이 재미있지 않겠나.
다카기는 이해해줬다.
“아빠 이제부터 형들한테 야구 가르쳐 줘야 해. 너도 같이할래?”
“음 … 그렇게 할게요.”
나가요시는 마지못해 엉덩이를 일으켰다.
야구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형하고 같이 놀려면 어쩔 수 없겠지, 볼 보이 노릇을 자처했다.
“너희들 수비 연습 많이 하니?”
“네, 많이 해요.”
“그럼 이런 것도 해?”
다카기는 외야에 타구가 떨어졌을 때 하는 릴레이 플레이를 선보였다.
특히 이건 유격수가 잘 해줘야 하는 일, 야구는 우타자가 많기 때문에 좌중간으로 날아가는 타구가 많다.
외야에서 전달받은 송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일도 부지기수, 특히 타다요시는 리틀리그에서 유격수, 패터슨은 중견수를 보는 입장이라 이런 플레이는 중요했다.
“잘 봐, 송구를 하기 전에 발이 어디로 향하고 있어?”
“홈이요.”
“그래, 공을 잡았을 때 이 자세가 돼야 바로 송구를 할 수 있겠지? 잘 기억해 둬.”
아들을 지도한 다카기는 다시 패터슨에게 관심을 줬다.
홈 승부를 하는 건 유격수지만 어쨌든 외야수도 정확한 송구를 해 줘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은 송구를 할 수 있을까, 다카기는 몇 가지 팁을 제시했다.
“솔직히 급할 때는 스텝을 의식 못 하지, 그런데 여유가 있을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아.”
다카기는 글러브를 낀 팔 쪽의 다리를 뒤에 두고 오른 다리를 앞으로 향하는 스텝을 잡았다.
글러브를 낀 쪽의 다리가 앞으로 나가 있으면 송구를 할 때 스텝을 한 발 더 밟아야 하지만, 그 반대라면 한 박자 빠른 송구가 가능하다.
이런 기본을 무시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은데, 지금 메이저리그에 수비가 형편없는 외야수가 넘쳐나는 게 우연일까.
뭐든 기본이 중요한 법, 다카기는 좋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면 이런 동작들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어디 해 봐.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을 거야.”
“네에 ~ ”
그렇게 연습이 시작됐다.
타구가 날아오면 빨리 가서 잡을 생각만 했지, 스텝까진 고려하지 않았던 게 사실, 패터슨은 친구 아버지가 던져준 가상의 타구를 쫓아갔다.
‘어라? 왼발을 어떻게 하라고 했지?’
분명히 배웠는데 1분도 못 가 지워진 기억, 어찌어찌 송구를 하긴 했는데 엉망인 건 타다요시도 마찬가지였다.
스텝을 홈 쪽으로 틀어야 되는데 돌아간 건 고개뿐, 한 번 더 스텝을 해 주면서 홈 승부가 늦고 말았다.
“아니야, 아니야, 다시”
다카기는 거듭 아이들을 지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분명 제대로 알려줬는데 왜 이해를 못하는 걸까, 이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가요시가 슬쩍 손을 들었다.
“아빠, 나도 해 봐도 돼요?”
“그래, 한 번 해 봐.”
글러브를 낀 나가요시는 외야로 향했다.
우리보다 두 살이나 아래에 정식으로 야구를 배운 적도 없는 동생, 설마 제대로 해낼까? 타다요시는 그럴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어!! 그래!! 자세는 맞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아직 어려서 힘이 덜 붙어서 그렇지 자세는 좋은 녀석, 패터슨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노력을 해도 안 됐는데 저 아이는 그걸 한 번에 해냈다니,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다시 할게요.”
패터슨은 다시 외야로 나갔다.
그 뒤를 바짝 쫓는 타다요시, 그렇게 연습이 시작됐지만 다카기의 관심은 차남에게 쏠려 있었다.
“너 야구 안 해 볼래?”
“야구요?”
“어, 너는 재능이 있다.”
어떻게 그걸 한 번 만에 따라 했을까. 우연일 수도 있지만 아주 자연스러웠던 스텝, 이 녀석이라면 좋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나가요시는 야구는 관심 없다며 장벽을 쳤다.
“아빠, 우리 놀아요. 네?”
“지금 놀고 있잖아.”
“야구 말고 다른 거 해요. 카드게임 할까요?”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해보자. 아빠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완전히 동생 쪽으로 쏠린 아빠의 관심, 약간 욱한 형들은 잘 될 때까지 수십 번을 반복했다.
“너희들 좀 쉬어라. 그렇게 지친 상태로 하면 훈련도 안 돼.”
“네에 ~ ”
못난 형들은 느린 발걸음으로 다카기 곁으로 돌아왔다.
리틀야구 월드시리즈까지 달성한 우리가 꼬맹이한테 지다니, 자존심이 상했는지 패터슨은 멍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봤다.
그 옆에 있는 타다요시는 반드시 아빠에게 칭찬을 받겠다는 의욕을 불태웠고, 훈련은 계속 됐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열심히는 하네.’
다카기는 그런 아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솔직히 저걸 처음부터 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흘린 땀만큼 나아지는 실력, 솔직히 재능도 타고나야 하지만 기본을 갖추지 못한다면 헛일, 될 때까지 한다는 끈기는 인정했다.
“어떠니? 야구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지?”
“네, 그래도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훗 ~ 그래, 그런 자세면 됐다.”
다카기는 패터슨의 자세도 칭찬했다.
이런 정신상태와 노력이 이어진다면 뭐든 못 해내겠나.
나에게도 한때 이런 열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불태우고 여유롭게 생활하고 있는 신세, 그래도 어린 새싹들을 위한 최소한의 열정은 남아있지 않겠나.
다카기는 이후에도 지도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20년 동안 쌓은 지식을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내는 건 무리,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아빠는 야구 하면서 하루도 쉰 적 없어.”
‘정말요?”
“그래, 쉬는 날에도 연습했지.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달리는 것도 안 좋아. 매일 달릴 수 있도록 조절을 해야 해, 그건 너희들 몫이다.”
타다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패터슨도 동의했고, 다카기는 두 녀석이 쉬는 동안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했다.
“자기 이제 살림꾼 다 됐네?”
“그럼,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키리코는 그런 남편을 유심히 지켜봤다.
시카고가 2억 8천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한 팔이 간식을 준비하는데 쓰이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 아닌가.
하지만 은퇴는 남편이 택한 길, 이미 끝난 일이고 이래저래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