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31화 (331/361)

331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7)

‘내 마무리는 이 정도면 충분해’

이곳은 보스턴과 시카고의 월드시리즈 6차전이 벌어지는 보스턴 브라민 파크, 다카기는 더그아웃에서 브랜든 바이어의 투구를 지켜봤다.

시리즈 전적은 3승 2패 보스턴의 리드, 오늘도 9회까지 7대 4 리드를 지키고 있다.

바이어가 승리를 거두면 올 시즌은 이렇게 종료, 커리어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다카기의 얼굴엔 아쉬움보다 커리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됐다는 미소가 드러났다.

[딱 ~ !]

“땅볼!! 유격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합니다!! 투 아웃!! 이제 보스턴의 역대 17번째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뿐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아쉬운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요. 제 말이 들린다면 답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피트 오어 위원은 8회부터 시즌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반복했다.

내년부터는 볼 수 없는 그 선수의 얼굴, 지금이라도 거짓말이라고 해준다면 웃어넘길 수 있을 텐데, 중계석 카메라에 잡힌 다카기의 얼굴엔 아쉬움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서운한 기분, 다카기의 열혈 팬을 자처해온 피트 오어는 이별을 받아들였다.

딱 ~ !

다시 땅볼, 타구를 잡아낸 제임스 올슨은 한 박자 쉬고 1루 송구를 마쳤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포르투나 포수는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고 브랜든 바이어도 다소 느릿한 발걸음으로 파트너와 손을 맞잡았다.

거한 마무리치고는 다소 밋밋한 세리머니, 팬들이 보내는 환호성도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았다.

‘나도 서둘러야겠군.’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수더랜드 단장은 서둘러 그라운드로 향했다.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뤘던 에이스의 은퇴식,

월드시리즈 우승 무대가 마지막이 됐으니 축하를 해 줘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선수들이 우승 세리머니를 나누는 동안 분주히 움직이는 구단 직원들, 준비가 되자 다카기는 단장 앞에 섰다.

팬과 동료들 그리고 이 자리에 서기까지 거쳤던 수많은 인연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자리, 잠시 뜸을 들였지만 굳게 닫혀 있던 입이 열렸다.

“이렇게 은퇴사를 하는 선수는 아마 제가 처음일 겁니다.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준 구단 관계자 그리고 동료들 무엇보다 열정적인 환호를 보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 분위기가 다소 잠잠해지자 다카기는 못다 한 말을 이어갔다.

“시간을 11년 전으로 돌려보면 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미래는 불확실했죠. 이런 제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를 표합니다. 그날 보스턴이 제게 손짓을 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영광도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최고의 동료들, 최고의 팬들과 함께 지난 10년 동안 후회 없이 그리고 즐겁게 야구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해준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다시 한 번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그 사이엔 다카기의 가족들도 끼어 있었다.

아버지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서운한 건지, 장남 타다요시는 엄마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생, 나가요시는 엄마를 붙잡았다.

“엄마, 형 울어요.”

“괜찮아. 형이 좀 서운해서 그래.”

키리코는 두 아들을 품에 안고 달랬다.

학창시절부터 남편의 야구를 지켜봤던 입장에서 지금 이 순간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 하지만 언젠가는 찾아 올 일이었다.

10년 동안 누구보다 화려한 업적을 쌓은 남편, 그렇게 열정을 바쳤던 무대를 스스로 등지는 것 아닌가.

이 결단을 내릴 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 알았기에 그 입장을 존중했다.

“누가 이렇게 묻더군요.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는 게 아쉽진 않느냐고 말이죠.”

키리코는 뜨끔했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질문, 무슨 말이 이어질지 긴장했다.

“물론 가끔 이 무대가 그리워질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동안 야구선수로서 완벽한 활약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오다 보니 아이들에게 잘 자라는 인사 한 번 해주지 못했죠. 아내에게도 언제나 미안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이 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차례입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아쉬움 섞인 박수,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돌아오라는 말이 날아들었다.

“감사를 표해야 하는 건 우리들입니다.”

선수의 소감이 끝나고 수더랜드 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다카기를 메이저리그로 인도했던 열혈 단장, 35살에 단장으로서 첫 발걸음을 뗀 수더랜드는 이제 48세의 중년이 돼 버렸다.

무려 9번이나 팀 우승을 이끌며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단장으로 올라선 몸, 하지만 수더랜드는 그 공을 다카기에게 돌렸다.

“보스턴은 지금까지 17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중 8번을 다카기 선수와 함께 했죠. 그는 포스트 시즌에서 31승을 거뒀고, 10년 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팀을 지탱해 줬습니다. 그가 보스턴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는 저와 감독 그리고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카기는 저희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다고 했지만, 사실 보스턴은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연설이 끝나고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날 필요로 하는 팀에서 용병으로 뛰어준 것뿐이고, 받는 만큼 보스턴에 대가를 지불한 것뿐이다.

철저한 계약관계였을 텐데 가슴 한 쪽이 징 울리는 건 기분 탓인가.

은퇴식과 우승 세리머니가 끝나고 클럽하우스에서 이어지는 뒤풀이, 샴페인 공격은 한 선수에게 집중됐다.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장난, 다카기는 동료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우승 세리머니 참석 안 할 거야? 벌써부터 왜 이래?”

“난 여기까지야. 미안하다.”

존 포르투나는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제 막 젖을 뗀 내게 메이저리거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준 선수, 암 투병을 할 때도 이 선수의 응원과 관심이 큰 힘이 됐다.

조금 더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는데 떠나보내야 한다니, 얼굴을 덮은 샴페인으로 슬픔을 감췄다.

“생각나면 가끔 전화해서 잔소리 좀 해줘.”

“됐어. 앞으로 너희들 얼굴 보는 일 없을 거야.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정을 떼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이렇게 다카기는 길고도 짧았던 커리어 10년을 마무리했다.

* * *

“이거 입을 거야?”

“음 ~ 음 ~ 이거”

이곳은 보스턴 시내 외곽의 저택, 다카기는 가정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그동안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 입던 막내딸은 이제 자기주장이 확실해졌다. 특히 예쁜 공주님 스타일을 좋아하는 녀석, 3살이라도 여자는 여자인가.

그 옆에서 시종 노릇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아빠가 해준 거 맛있어?”

“응 ~ ”

내친김에 식사까지 서비스, 아빠가 차려준 밥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코는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치사하다.”

“응? 뭐라고?”

다카기는 귀를 의심했다.

일본어로 또렷하게 표현한 말, 뭐가 그렇게 치사한 걸까. 딸의 성장에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 아빠는 귀를 활짝 열어젖혔다.

“뭐가 그렇게 치사한데? 뭐가?”

하루코는 손가락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이렇게 맛있는 걸 해 줄 수 있는데 왜 그동안 차려주지 않은 건가. 너무 늦게 맛본 아빠의 요리, 그제야 의미를 깨달은 다카기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그동안 이거 너 안 주고 혼자 먹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별말 없이 웃기만 하는 녀석,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알아들은 건가.

있는 힘껏 안아주고 싶었지만 식사 중이시라 건드리진 않았다.

“자기야, 전화 온다.”

“어”

이때 날아든 누군가의 관심, 지난 10년 동안 11월이 되면 언제나 받았던 전화라 대략 짐작은 됐다.

[안녕하세요. 미국야구연구협회입니다.]

“예, 무슨 일이신가요?”

[축하합니다. 골드 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은퇴는 했지만 아직 받을 게 남아 있는 상, 다카기는 그거 집에 8개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통산 9번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셨는데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글쎄요. 이미 은퇴한 몸이라 다음 시즌에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는 말은 못하겠네요. 그런데 제가 올해 그렇게 수비를 잘 했나요?”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시즌은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내가 최고의 수비를 한 투수였다니, 혹시 은퇴하는 선물로 하나 찔러주는 거 아닌가.

다카기는 연구협회에 정확한 자료를 요구했다.

MVP나 만테냐 어워드와는 달리, 골드 글러브는 각 팀의 감독과 코치들이 뽑는다. 각 팀마다 감독과 코치 1명을 선정해 투표권을 주는데, 자기 팀 선수에 투표권을 던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선수의 객관적인 능력보다 인기투표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았고, 2013년부터 미국야구연구협회가 분석한 세이버매트릭스 지수를 합산해 투표에 반영하게 됐다.

하지만 이 비율은 25%에 불과, 여전히 인기투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받는 선수가 계속 받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1974년 뛰어난 3루수로 명성을 날렸던 짐 크누센은 무려 16년 연속 골드 글러브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그 중 일부는 명백한 허상, 특히 1978년부터 1982년까지 기록은 심각했다.

당시는 세이버매트릭스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당연했겠지만, 아담 맥스웰이라는 선수는 DEF나 UZR에서 크누센보다 명백히 나은 3루 수비를 선보였다.

하지만 타격이 떨어져 임팩트가 부족했던 게 흠, 맥스웰은 뛰어난 수비를 하고도 통산 골드 글러브 수상 1회에 그쳤다.

진짜 받아야 할 선수들이 못 받고 있는 게 메이저리그의 현실,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다카기는 연구협회가 제시한 자료를 철저히 분석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본인이 생각해도 올해는 수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시애틀의 보비 브리든이 한 수 위, 골드 글러브는 순수하게 수비만 따지고 주는 상 아닌가?

그런데 왜 내가 수상을 받아야 하는 건지, 역시 은퇴 선물로 각 구단 감독과 코치들이 찔러준 거였다.

“그거 브리든에게 주시죠. 솔직히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표를 던진 분들 성의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저는 양심에 찔리는 상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스스로 떳떳하지도 않고요. 표를 주신 분들에겐 따로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야구연구협회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정말 브리든으로 발표를 해야 되나, 다카기가 수상을 거부하면서 골드 글러브 수상자 발표는 하루 늦춰지게 됐다.

“아빠 이제 운동하러 가도 돼?”

“아니야 ~ 아니야 ~ ”

공주님은 체육관으로 가겠다는 아빠를 꼭 붙잡았다.

은퇴는 했지만 운동은 매일 하는 편, 은퇴하면 살이 갑자기 찌거나 체형이 변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다카기는 그런 허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행동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모범이 되겠지,

하지만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 공주님 때문에 오늘은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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