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6)
“오늘 이기고 월드시리즈 가자고”
“당연한 일을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 마.”
6차전을 잡아낸 보스턴 선수단은 다음 날 열린 7차전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다카기는 오늘 졌을 경우를 대비해 기자들 앞에서 할 인터뷰를 준비해 왔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뒤 그동안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 좋겠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나. 이번에 상대하는 뉴욕은 그 정도로 강한 팀, 긍정적인 사고도 좋지만 그렇다고 방심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팽팽한데’
6대 1, 완승을 거뒀던 6차전과 달리 7차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나리오로 전개됐다.
뉴욕의 선발 론 볼드윈은 1회에 1점을 내줬지만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4회까지 무실점, 보스턴의 다니엘 감독은 후안 피셔를 3회까지만 투입하고 불펜을 총동원했다.
다카기가 5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불펜진은 숨을 골랐고, 여기에 6차전의 영웅 비딸레의 활약 덕분에 불펜진의 체력은 충분했다.
불펜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보스턴, 다니엘 감독은 점수가 더 안 나더라도 불펜으로 틀어막으면 된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우우 ~ 우 ~ ”
“이 꼬맹아!! 너한테 월드시리즈는 100년은 이르다고!!”
그렇게 경기는 흘러 5회 초, 1대 0으로 뒤지고 있는 뉴욕의 공격
보스턴 팬들은 타석에 들어서는 콜드웰을 향해 야유와 조롱을 퍼부었다. 이번 시리즈에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저 선수를 두려워한다는 증거, 다카기는 쓸데없이 강한 척하는 팬들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대니 콜드웰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24타수 8안타, 홈런 3개, 7타점, 5차전부터 약간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몸 쪽 빠른 볼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보스턴 불펜에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한 두 명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방심해선 안 됩니다. 이 선수가 올 시즌 어떤 성적을 기록했는지 잊어선 안 되죠.”
콜드웰은 올 시즌 역대 급 도장 깨기를 선보였다.
마이너리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승격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은 대략 4년, 그런데 콜드웰은 이 기간을 1개월로 단축시킨 선수다.
싱글 A 플로리다 리그에서 16경기를 치르며 타율 0.444, 홈런 9개를 찍으며 더블 A 서든 리그로 승격, 여기서 8경기 만에 5홈런을 때리더니 바로 트리플 A 인터내셔널 리그로 승격했다.
트리플 A에서 고작 2경기 뛰고 메이저리그 데뷔, 130게임 만에 36홈런을 때려내 버렸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그렇게 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뉴욕의 단장 로버트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며 입장을 밝혔다.
고등학생 선수가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를 수상했다면 믿겠나.
골든 스파이크 어워드는 미국 야구 협회가 그해 눈에 띄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들에게 주는 상, 모든 아마추어 선수를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 대학리그 선수에게 시상하는 게 원칙이다.
1978년 이후, 고등학생이 골든 스파이크 상을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관례를 50년 만에 깬 사람이 바로 콜드웰, 덕분에 콜드웰은 메이저리그에서 배트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스포츠 전문지의 표지 모델이 됐다.
천하의 뉴욕이 고교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승격 조건이 포함된 계약서를 내민 것도 역사상 처음, 콜드웰은 걸음마 시절부터 천재성을 입증한 선수다.
그리고 그만한 활약을 하고 있는 중,
마운드 위의 스티븐 루카스도 공 하나하나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스윙!! 떨어집니다.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
“루카스도 이제 슬라이더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네요. 루키 시즌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데뷔 시즌, 루카스는 좋은 구위와 슬러브 비슷한 커브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횡적 움직임만 23cm에 달하는 엄청난 무브먼트, 하지만 그 마구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변했다.
정말 중요한 건 무브먼트가 아니라 투구 로케이션, 공이 꺾이기 시작하는 위치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횡적 움직임이 17cm정도로 줄었지만 대신 구속이 87마일 정도로 올라왔다.
커브와 슬라이더 사이를 오가던 공이 확실하게 슬라이더로 자리를 잡은 것, 이런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슬라이더 헛스윙률은 올 시즌 25.9%까지 상승했다.
올해 31살이지만 아직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덕분에 우타자 상대로 9이닝 당 15개가 넘는 삼진을 기록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좌타자 상대로 살짝 약하다는 것, 올 시즌 우타자 상대 피 OPS는 0.516에 불과했지만, 좌타자 상대로 0.626을 기록했다.
물론 이것도 엄청난 수치, 공교롭게도 지금 타석에는 좌타 콜드웰이 들어섰다.
이 승부는 어떤 결과를 맺을 것인지, 관중석을 채운 팬들은 다음 투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딱 ~ !!]
“커트해 냅니다. 볼 카운트는 원 볼 투 스트라이크를 유지하는군요.”
“타격감이 떨어진 선수에게 계속 유인구를 던질 필요는 없습니다. 과감하게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에요.”
피트 오어 해설위원의 말대로 존 포르투나는 바깥쪽에 미트를 벌렸다.
콜드웰이 바깥쪽 빠른 볼에 강점이 있다는 걸 알고도 택한 볼 배합, 루카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따아악 ~ !!
“됐어!!”
“계속 가라!!”
4구 타격, 경쾌한 타격음은 뉴욕 선수들을 더그아웃 밖으로 이끌었다.
좌중간을 넘어가는 포물선, 동점 홈런을 뽑아낸 콜드웰은 공중에 연신 어퍼컷을 날리며 베이스를 돌았다.
이번 시리즈에서만 4개째 홈런, 한 방을 허용한 루카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95마일 빠른 볼이었고 위치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홈런을 맞다니, 다카기가 왜 저 녀석에게 고전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마지막에 방심하다니’
보스턴의 다니엘 감독은 아쉬움을 표했다.
계속 슬라이더로 가는 게 나았을 텐데, 빠른 볼 사인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이야. 다 본인 책임이라 선수를 탓하진 않았다.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이어지는 5회 말 보스턴의 공격, 존 포르투나가 타석에 들어섰다.
암 투병을 이겨내고 복귀한 무대, 여기까지 와서 미끄러질 건가.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보스턴은 포르투나에게 우승 반지를 선물해줬다.
하지만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선수에게 그런 위문품은 아쉬움을 더할 뿐, 올 시즌은 내 손으로 우승을 달성하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앞길을 막는 자는 짓밟을 뿐, 바깥쪽 약간 높은 공을 힘껏 잡아당겼다.
[따악 ~ !!]
“3루수 쪽!! 라인 선상에 떨어집니다!!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좌익수가 송구하지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그 사이 주자는 3루를 지나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포르투나의 질주!!!! 보스턴이 다시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스코어 2대 1!! 이게 바로 보스턴의 저력입니다!!”
“지금은 송구를 하면 안 됐어요. 콜드웰이 주제 넘는 짓을 했습니다.”
이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피트 오어 위원은 독설을 쏟아냈다.
올 시즌 콜드웰은 좌익수로 뛰며 수비지표 마이너스 12.13을 기록했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수치를 기록한 선수는 13명뿐, 타격은 최상급이지만 수비는 아쉬운 편이다.
1루에 숀 스팸(올 시즌 37홈런), 지명타자에 마이클 본(올 시즌 33홈런)이 버티고 있으니 1루수나 지명타자로 뛰기도 어려운 입장,
참고로 마이클 본은 지난 2년 동안 좌익수에서 수비지표 마이너스 43.3을 기록했다.
수비만 놓고 보면 메이저리그 최악의 좌익수, 그나마 콜드웰이 나아서 좌익수를 보고 있다.
본인의 실력을 알았다면 무리한 송구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뉴욕의 영웅은 이렇게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됐어!! 저 자식 별거 아니야!!”
한편, 더그아웃에 입성한 프로투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내가 콜드웰보다 못할 게 뭐가 있나. 시즌 초반엔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제는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타율 0.266, 홈런 18개를 때려낼 정도로 포수로서 공격력도 최상급, 동료들도 네가 저 자식보다 낫다며 맞장구를 쳐줬다.
‘솔직히 그건 아니지.’
다카기는 그 흐름에 타지 않았다.
수비는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밀어서 홈런을 칠 수 있는 재능은 타고 나야 된다.
내가 단장이라도 콜드웰을 택할 텐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있나. 립 서비스는 절대 못하는 성격이라 끝까지 침묵했다.
“와아아 ~ !!”
“렛츠 고 보스턴!! 렛츠 고 보스턴!!”
이후 보스턴은 철벽 불펜을 앞세워 8회까지 2대 1 리드를 지켜갔다.
분위기는 이미 월드시리즈 진출 확정, 은퇴 연설까지 준비해 왔는데 괜한 짓을 한 건가.
그래도 다카기는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갈 때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자, 이제 뉴욕의 9회 초,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마운드에는 브랜든 바이어, 올 시즌 57경기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43, 34세이브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승패 없이 2세이브, 평균자책점은 제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몽둥이를 바꿀 때가 됐죠. 바이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바이어는 앞선 투수들과 달리 불같은 강속구는 보유하지 못했다.
빠른 볼과 체인지업을 앞세워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투구, 메이저리그 투수의 빠른 볼 평균 수직 무브먼트는 대략 9인치 정도다.
바이어는 대략 11인치, 거기다 횡 움직임도 뛰어나 우타자의 몸 쪽, 좌타자의 바깥쪽으로 공이 휘어져 나간다.
한 마디로 끝내주는 무빙 패스트 볼,
평균 구속은 대략 91마일 정도지만 타자가 실제로 느끼는 구속은 93마일 이상이다. 여기에 엄청난 낙폭을 가진 체인지업까지 갖췄으니 도망치는 투구를 할 이유도 없었다.
‘이 빌어먹을 공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헛스윙을 돌린 모리슨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앞선 투수들보다 느린공인데 닿질 않는 방망이, 보스턴은 강속구 투수가 많은 팀이라 뉴욕 선수들도 대부분 그 공에 초점을 맞춰두고 연습을 했다.
이런데 어떻게 공략이 되겠나, 공과 배트의 거리 차이는 확연했다.
“바깥쪽!! 삼진입니다!! 바이어가 공 3개로 모리슨을 돌려세우는군요!!”
“이런데도 이 선수가 파이어볼러가 아닙니까? 대놓고 스트라이크 던지잖아요? 그런데 못 칩니다.”
후속타자 콜드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분명 타이밍에 맞춰 휘둘렀는데 헛스윙, 보스턴 팬들의 함성이 높아질수록 어린 선수의 심장은 격하게 요동쳤다.
2구도 휘둘렀지만 바깥쪽으로 가라앉으면서 노 볼 투 스트라이크, 바이어는 전매특허인 체인지업을 선물했다.
타자의 가슴 높이에서 바운드 성으로 떨어지는 궤적, 삼구 삼진을 당한 콜드웰은 방망이를 바닥에 내팽개쳐버렸다.
반으로 쪼개진 배트는 패배를 앞둔 뉴욕의 자존심을 상징했고, 바이어는 후속 타자 숀 스팸마저 삼진으로 처리하는 위엄을 보여줬다.
최종 스코어는 2대 1, 짜릿한 승리를 거둔 보스턴 선수단은 마운드에서 승리의 함성을 부르짖었다.
오늘 은퇴할 수도 있었는데 동료들의 활약 덕분에 연장된 커리어, 다카기는 그렇게 마지막 여정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