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5)
[딱 ~ !!]
“고메즈가 날아오릅니다!! 경기 종료!! 보스턴이 5차전에서 반격에서 반격에 성공합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2승 3패!! 승부는 6차전으로 넘어갑니다!!”
“이번 시리즈 2승은 전부 다카기 손에서 만들어지네요!! 역시 보스턴은 아직 이 선수가 필요합니다!!”
고메즈의 멋진 수비가 나오면서 경기는 보스턴의 승리로 끝났다.
호수비가 없었다면 안타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타구, 완봉승을 따냈지만 다카기는 표정 없이 프로투나 포수와 손뼉을 마주쳤다.
내가 저 천방지축의 도움을 받다니, 오늘 경기로 몇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
경기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 다카기는 약간 피곤한 얼굴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포스트 시즌 통산 29승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마지막에 모리슨을 거르고 콜드웰을 상대했는데, 멋지게 승리를 거두셨군요. 오늘 삼진만 3개에 … ”
“죄송하지만 그 얘기는 칭찬을 받을 일은 아닙니다.”
다카기는 질문을 회피했다.
포스트시즌에서 팀 승리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렇다면 모리슨을 볼넷으로 거를 게 아니라 잡아내고 끝냈어야 했는데, 순간 승부욕을 이기지 못했다.
여유 있게 앞서고 있었지만 그래도 승부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베테랑답지 못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마지막 타구는 고메즈가 잘 잡아준 겁니다. 솔직히 힘도 떨어졌고 안타가 됐다면 저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을 겁니다.”
다카기는 고메즈의 플레이를 칭찬했다.
내가 마운드에 등판했을 때 저지른 실책이 몇 개인가.
그걸 생각하면 당연한 보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늘 고메즈는 결정적인 쓰리 런 홈런 포함, 호수비까지 펼치며 팀 승리를 도왔다.
그 녀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이제는 내 잔소리가 필요 없는 선수가 됐다며 실력을 인정했다.
“고메즈는 앞으로 보스턴을 이끄는 중요한 선수가 될 겁니다. 가끔 그 친구에게 1억 달러를 지출한 건 너무 과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팬들은 없겠죠. 지켜봐 주면 믿음에 보답할 선수입니다. 비난보다는 칭찬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저는 그러질 못했지만요.”
다카기는 내가 없어도 이 팀은 괜찮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내가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며 팀을 이끌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가.
올 시즌 은퇴를 발표하긴 했지만, ‘아직 이 팀엔 내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오늘 경기로 확실히 깨달았다.
“혼자서 챔피언십 시리즈 2승을 책임지셨는데 너무 겸손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그동안 실컷 건방을 떨었습니다. 마지막이라도 겸손해야 투표 때 유리하지 않을까요?”
명예의 전당 투표를 위한 사전 작업, 기자들은 실없는 미소를 지었고 다카기는 개인적인 소감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콜드웰은 언젠간 리그를 지배하는 선수가 될 겁니다. 그 선수의 활약은 보스턴의 어린 선수들에게도 자극이 되겠죠. 실력이란 서로 자극을 주면서 발전하는 겁니다. 상대 팀 선수가 뛰어나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처음부터 위대한 선수는 아니었죠. 어렸을 때는 날아오는 공이 무서워 타석에 제대로 서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이 활약하는 걸 보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번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콜드웰의 맹활약이 뉴욕의 승리로 이어지며 보스턴 선수단의 사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벼랑 끝에 몰릴수록 발악하고 성장하는 법, 다카기는 다음 경기도 좀 더 발악해야 한다며 동료들을 몰아세웠다.
‘우리가 이긴다.’
‘지는 건 너희들이고’
6차전부터 ALCS 무대는 보스턴으로 옮겨졌다.
5차전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아직도 2승 3패로 끌려가는 입장, 보스턴 선수단은 좀 더 절박해지라는 다카기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다.
“자, 뉴욕의 1회 초 공격으로 6차전의 막이 오릅니다. 선두 타자는 잭 모리슨, 이번 시리즈에서 타율 0.222, 홈런 없이 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카기와의 맞대결에서 7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걸 제외하면 11타수 4안타, 나쁘지 않거든요. 만만히 볼 선수가 아닙니다.”
마운드에는 댈러스 레이븐,
올 시즌도 다카기를 제치고 팀 내 최다승(18승) 투수에 올라섰지만 라이벌 뉴욕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홈에서는 조금 강한 면모를 보였다는 것,
나는 왜 뉴욕을 상대로 고전하는 걸까. 지난 이틀 동안 충분히 고민을 했고 이젠 실전에서 보여주는 것만 남았다.
‘고쳤네?’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헛스윙을 돌린 모리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븐은 전형적인 패스트 볼을 던진다.
손바닥이 타자를 향하고 검지와 중지가 공 뒤에 딱 붙는 그립, 그런데 슬라이더를 던질 때 그립에서 약간 차이가 드러난다.
손바닥이 타자를 향하는 건 똑같지만 검지만 공에 걸려있는 느낌, 일반인이라면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라면 이야기가 다른 법, 거기다 슬라이더를 던질 때는 상체도 패스트 볼을 던질 때보다 약간 기울어진다.
덕분에 뉴욕 타자들은 그동안 슬라이더를 문제없이 골라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시 슬라이더!! 모리슨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지금은 다카기 선수의 슬라이더와 거의 비슷한 궤적이었어요. 본인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했는데, 오늘은 뭔가 다릅니다.”
후속 타자 콜드웰도 레이븐의 변화를 눈치챘다.
커브와 체인지업도 가끔 던지지만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쓰는 선수, 슬라이더 그립만 잘 파악해도 공략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 슬라이더 그립이 이제는 빠른 볼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 빠른 볼 평균 구속도 95마일이 넘는 선수라 타자 입장에선 꽤 피곤했다.
따악 ~ !!
“쳇!!”
안타를 허용한 레이븐은 아쉬움을 표했다.
빠른 볼을 밀어치는 콜드웰의 장기, 다카기도 저 타법에 고전하지 않았나. 딱히 나만 얻어맞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분한 건지.
하지만 시기와 질투는 레이븐의 성장 동력, 다음 타자 숀 스팸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았다.
“음 … 다시 볼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레이븐은 분명 좋은 투수인데, 공이 전부 다 낮게 들어오잖아요. 빠른 볼을 높게 던질 수 있어야 떨어지는 슬라이더도 효과를 볼 텐데, 구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숀 스팸까지 볼넷 출루, 포르투나 포수는 급히 마운드를 방문했다.
너무 낮게 던지는 데 주력하고 있는 레이븐, 다카기처럼 정교한 제구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코스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화는 잘 내도 문제가 뭔지는 인정할 줄 아는 선수, 레이븐은 마음을 다잡고 투구를 이어갔다.
‘조금 더 옆으로 빠져나가게 던져도 될 텐데’
다카기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빠른 볼 그립과 슬라이더 그립이 차이가 나는 게 문제일까?
다카기도 슬라이더를 던질 때는 빠른 볼과 다른 그립을 쥔다.
실제로 검지를 약간 이탈시켜 슬러브와 비슷한 궤적을 주기도 하는데, 정말 중요한 건 일정한 팔각도와 상체 기울기를 유지하는 거다.
타자가 기계도 아닌데, 18m가 넘는 그 먼 거리에서 투수의 그립을 일일이 구별해 내겠나?
그걸 해 내는 선수들도 있지만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
레이븐도 생각이 있으니 검지가 살짝 공에 걸치는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했겠지, 그럼 자세만 일정하게 유지하면 되는데 그립이 빠른 볼과 비슷해지면서 슬라이더가 떨어지기만 하고 있다.
슬라이더는 기본적으로 옆으로 휘는 구질, 그런데 이렇게 무브먼트를 단순화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식이라면 오늘도 오래가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경기는 흘러 3회 초 뉴욕의 공격, 다니엘 감독은 레이븐을 강판시켰다.
구위는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뉴욕의 타선, 어중간한 팀을 상대했다면 레이븐은 오늘 6이닝 이상을 던지며 호투했을 거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세계에도 레벨이 있는 법, 레이븐은 딱 거기까지였다.
“자, 여기서 찰스 비딸레(Vitale)가 올라오는군요. 올 시즌 26경기 등판, 3승 3패, 평균자책점 3.38, 79와 2/3이닝 동안 볼넷 35개, 탈삼진은 88개를 기록했습니다.”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한 선수죠. 최고 99마일 빠른 볼,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데 특히 슬라이더가 뛰어납니다.”
“문제는 제구겠죠. 그것만 된다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선수입니다.”
찰스 비딸레는 좋은 구위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뉴욕타선을 찍어 눌렀다.
특히 슬라이더의 변화량이 엄청난데, 본인도 자신이 있는지 포심과 슬라이더를 거의 1대 1 비율로 던진다.
좌타자에 약점이 있고 제구 기복이 좀 심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만 개선하면 훗날 보스턴의 선발 자리를 차지할 재목, 다카기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역시 슬라이더는 대단하다.’
우타자 입장에선 정말 욕 나오는 무브먼트,
과장을 조금 덧붙이면 누가 옆에서 볼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거기다 떨어지기까지 하니 맞추는 건 더더욱 어려운 편, 하지만 저런 공을 좌타자 상대로 활용하는 건 어렵다.
커브나 체인지업도 던지지만 실전에서 활용하기는 무안한 수준, 어떻게 보면 레이븐과 거의 비슷한 스타일이다.
그래도 구위나 슬라이더 무브먼트는 레이븐보다 앞서는 선수, 조금만 가다듬으면 결과를 낼 게 분명했다.
“빠른 볼!! 따라 나옵니다!! 비딸레가 높은 공으로 로버트를 돌려세우는군요.”
“오늘은 제구가 나쁘지 않네요. 보스턴 입장에선 좋은 신호입니다.”
비딸레는 3회 초 원 아웃에 올라와 5회까지 안타 하나 내주지 않았다.
여덟 타자를 상대로 삼진 6개를 강탈,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을 철저히 봉쇄하며 팀에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따악 ~ !!
5회 초까지 1대 0으로 끌려가던 보스턴은 5회 말부터 타선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5차전의 영웅 고메즈가 안타를 뽑아냈고 다음 타자 제임스 올슨은 볼넷으로 출루하며 1사 주자 1 - 2루, 보스턴의 프랜차이즈 스타 알 디즌이 타석에 들어섰다.
“바깥쪽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디즌이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타율이 0.188, 대신 출루율이 0.393죠. 공을 보는 눈은 살아 있습니다. 기다리면 분명 한 방이 나올 겁니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는 우측으로 높게!! 우중간으로!! 중견수가 따라붙지만 잡지 못합니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1루 주자도 2루를 지나 3루로 향합니다!!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까지!! 질주는 멈추지 않습니다!! 적시 2타점 3루타!! 보스턴이 5회에 역전을 만들어 냅니다!!”
“역시 기다리면 해주는 선수죠!! 저는 믿었습니다!!”
시리즈 내내 잠잠했던 알 디즌의 한 방,
여기서 흔들린 균형의 추는 단숨에 보스턴 쪽으로 기울었다.
보스턴 타선은 6회에도 4안타, 2볼넷, 폭투 하나를 묶어 대거 4득점, 경기가 6대 1로 벌어지자 비딸레는 공격적인 투구로 뉴욕을 몰아세웠다.
5와 2/3이닝을 삼진 9개,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6차전의 영웅으로 등극, 팬들은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에이스의 등장에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