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2)
“자!! 모두들 집중!!”
이곳은 펜실베니아 주 사우스 윌리암스, 매년 8월 이곳에선 리틀 야구 경기가 열린다.
처음엔 미국만의 리그였지만 이제는 세계 각지의 지역 팀이 우승을 두고 격전을 벌이는 무대, 다카기의 장남 타다요시도 미국 지역 팀 일원으로 리그에 참가했다.
‘위대한 건 아버지지 내가 아니야.’
타다요시는 팀원들 사이에서 쓸데없이 우쭐거리지 않았다.
야구를 잘 하는 건 아버지지 내가 아니지 않나, 코치님이 하는 말 잘 듣고 동료들과 부딪치며 하나라도 더 배우라는 게 아버지의 말씀,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 다치면 안 되는데’
관중석에 앉은 키리코는 아들의 활약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봤다.
남편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내 아들이 뛰는 건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다소곳이 모은 양손을 입에 붙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까앙 ~ !!
마침 날아온 유격수 강습, 겁이 날 법도 한데 타다요시는 타구를 막고 신중하게 1루 송구를 마쳤다.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는 안정적인 수비, 더그아웃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키리코는 나지막한 한숨을 뱉어냈다.
까앙 ~ !!
“됐어!!”
“들어와!! 들어와!!”
맹활약은 타석에서도 이어졌다.
2 - 3루 주자를 불러들이는 적시타,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친 타다요시는 팀을 지역 예선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야구에서 재능을 보이는 녀석, 경기가 끝난 후 빅터 필립스 감독은 인터뷰에 응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이기면 월드시리즈 진출인데 어떤 기분이십니까?”
“저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희는 어느 팀보다 열심히 훈련했죠. 그 보상을 받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 질문을 안 하고 넘어갈 순 없겠죠. 타다요시 선수가 아주 인상적인 활약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를 평정할 재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필립스 감독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백인들로 이뤄진 팀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녀석, 솔직히 다카기의 아들일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그렇게 뛰어난 아버지가 있는데 이렇다 할 커리어도 못 쌓은 내 밑에서 지도를 받고 싶어 할까?
그런데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타다요시는 감독이 하는 말에 집중, 훈련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뭣보다 재능이 있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능은 있습니다. 팀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지켜볼 가치가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재능이 있는 건가요?”
“본인은 투수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제 눈에는 야수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카기 선수도 학창 시절 유격수로 활약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쪽 재능을 강하게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다시 타다요시에게 몰려갔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잠시 생각을 정리한 타다요시는 입을 열었다.
“어느 쪽에 재능이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말씀대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혹시 아버지에게도 야구를 배우고 있나요?”
“시즌 때문에 바쁘시잖아요. 감독님 말씀 잘 들으라고 하셨어요.”
기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 감독 말 들으라고 했을까. 혹시 아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은퇴를 하는 건 아닐지, 아버지에 대한 질문도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위대한 선수가 되고 싶나요?”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요. 솔직히 야구 선수가 되고 싶긴 한데 … 그래도 혹시 몰라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너무 올바르게 자라고 있는 거 아닌가요? 지금 아버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요?”
이때 한 기자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다카기를 강판시키려면 보스턴 선수를 다치게 하면 된다고 했던 로날드 카버트는 기어이 헤드 샷을 맞았다.
그런 짓을 벌인 선수가 아들은 이렇게 올곧게 키운 건가. 아버지를 닮아 약간 욱하는 성격이 있는 타다요시는 의젓함에 가려져 있던 날카로움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이유 없이 그런 행동 하실 분이 아닙니다. 동료가 다쳤는데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요? 그리고 어린 아이에게 그런 질문 하는 건 어른다운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기자는 바로 사과했다.
아들 잘못 건드렸다가 이번엔 내가 표적이 될지도 모를 일, 실제로 다카기는 특정기자의 출입을 금지시킨 적도 있다.
그리고 그만한 힘이 있는 선수, 어린 아이 괴롭혀서 기사거리를 뽑아내려고 한 건 실수였다.
“우리 월드시리즈 진출할 수 있겠지?”
인터뷰가 끝난 후, 타다요시는 친구의 질문을 받았다.
아버지는 농구선수지만 본인은 야구를 하고 있는 로버트 패터슨,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아들이 농구로 갈아타길 원하고 있다.
이젠 포기할 법도 한데 언제까지 저러실 건지, 패터슨은 홧김에 아버지에게 약속을 해버렸다.
“이번에 월드시리즈 진출해서 우승하면 앞으로 저한테 농구하라는 말 하지 마세요. 대신, 월드시리즈 진출 못하면 농구할 게요.”
“정말이지? 너 약속한 거다?”
“네!! 약속!! 그러니까 아빠도 약속 지켜요.”
어쩌자고 그런 약속을 해 버린 걸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앞으로 2승, 여기서 떨어지면 너무 억울한 거 아닌가. 친구의 입을 통해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당연히 진출 해야지, 그런 걸 뭐 하러 물어?”
“그렇긴 한데 조금 떨려서, 나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한테 월드시리즈 우승 못하면 농구선수로 갈아탄다고 했어.”
“너 바보냐?!!”
타다요시는 버럭 했다.
우리 아빠는 공부든 운동이든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응원해 주는데, 그 사람은 왜 아들이 가는 길을 억지로 틀려고 하는 건가.
끈질긴 회유에 넘어가 그런 약속을 한 친구도 바보, 우승을 하든 못 하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약속까지 했는데?”
“기억 안 난다고 해.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데 뭐 어때?”
“음 … 그렇겠지?”
오늘따라 죽이 잘 맞는 두 녀석, 로버트는 돌아선 친구 등을 툭툭 건드렸다.
“또 왜?”
“너희 아빠 은퇴하면 뭐 하신데?”
“나도 몰라, 왜?”
“시간 되면 가서 좀 배우려고, 안 될까?”
타다요시는 답을 망설였다. 이건 아버지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할 일, 일단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다.
[오라고 해]
“정말요?”
[아빠는 오는 사람 안 막는다. 언제든지 오라고 해]
“야호 ~ !! 아빠 저 끊을게요!!”
타다요시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와 함께 야구를 배울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일단 리틀 야구 월드시리즈 우승이 먼저, 우승을 하든 못 하든 야구를 하는 건 친구의 권리지만, 그래도 약속까지 깨가면서 하는 건 멋없는 짓이다.
그럼 당당하게 우승하고 야구 배우면 될 거 아닌가.
이후 타다요시와 로버트는 맹활약을 펼치며 지역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어 냈다.
‘이 자식들 귀엽네.’
다카기는 아들의 우승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언제 크나 했는데 리틀 야구 우승이라니,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에 있겠나. 아들이 우승을 했는데 아빠가 밀리면 창피한 일, 통산 8번째 우승을 위해 고삐를 바짝 틀어쥐었다.
“자, 다카기가 시즌 30번째 등판에 나섭니다. 올 시즌 13승 3패 평균자책점 1.76, 203과 2/3이닝 동안 볼넷 43개, 탈삼진은 278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승만 더 하면 통산 200승이죠. 오늘 달성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소 경기 200승입니다.”
통산 318경기 만에 앞둔 200승, 후반기에 승운이 따라주면서 대기록에 성큼 가까워졌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던졌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지난 10년, 할 건 다 해봤으니 미련은 없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마무리를 짓느냐는 거겠지, 지켜보는 눈도 있고 최선을 다했다.
“엄마, 아빠가 야구하는 건 안 불안해요?”
“응”
“왜요?”
아들의 질문에 키리코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학창시절부터 늘 야구와 함께했던 남편, 그런데 그 모습이 또 멋있었다. 뭔가에 열중하는 남자의 옆모습만큼 여자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아들은 남자가 아니지 않나. 엄마 곁에서 애교만 떨어도 충분히 귀여운 녀석, 남편은 다 하라고 하는데 솔직히 타구가 아들에게 날아갈 때마다 섬뜩했다.
“엄마, 저 다 컸어요. 그런 거 무서워할 나이는 지났다고요.”
“그래도 엄마 마음은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농구하면 안 될까? 아니면 축구 어때?”
“에효 ~ 됐어요.”
타다요시는 귀를 막아버렸다.
틈만 나면 이러는 엄마, 아빠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따악 ~ !!
“투수 강습!! 3루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합니다!! 원 아웃!! 아 ~ 그런데 지금 괜찮을까요?”
“어깨를 직격한 것 같은데요. 다니엘 감독이 급히 마운드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이때 불필요한 장면이 연출됐다.
강습 타구를 맞고 어깨를 움켜쥔 아버지, 남편은 걱정 안 한다고 큰소리를 쳤던 키리코도 발을 구르며 불안함을 표했다.
“괜찮으니까 신경 쓸 것 없어요.”
“정말 괜찮나? 무리하지 말고 일단 내려가는 게 … ”
“제 몸은 제가 더 잘 알아요.”
감독을 돌려보낸 다카기는 연습 투구 몇 번 하고 실전에 돌입했다.
10년 동안 이렇다 할 고장 한 번 없이 버텨준 몸, 보란 듯이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1회를 마무리했다.
깜짝 놀랐던 보스턴 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지만, 타다요시가 머물고 있는 특별석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확실히 좀 위험해 보이기도 … ’
어린애들이 치는 타구는 맞을 만한 편, 그런데 저건 총알 아닌가.
아버지가 반응도 못할 정도라면 정말 위험했던 공, 나는 저기서 씩씩하게 투구를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조금 겁이 났다.
그렇게 위험한 일이 있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투수 앞 땅볼이나 강습 타구를 처리하는 아버지, 대단하다는 표현도 부족했다.
이날 다카기는 6이닝을 2실점으로 막아내며 시즌 14승을 수확, 안타를 제법 맞았지만 특유의 위기관리 능력과 수비 능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역대 최소 경기 - 최연소 200승 투수의 탄생, 그런데도 키리코는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왜 울어요?”
“아니야.”
아들의 물음에 키리코는 서둘러 얼굴을 돌렸다.
남편이 야구를 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 남편이 지난 10년 동안 저 자리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키리코는 잘 알고 있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훈련과 몸 관리에 집중했던 나날, 그 고생을 알고 있었기에 아들이 같은 길을 가는 건 원치 않았다.
제일 쉬운 게 공부, 운동은 취미로만 하길 바랐다.
“너 오늘 아빠가 하는 거 봤지?”
“네”
“투수는 타구를 겁내면 안 돼, 타격이 되는 순간 내가 야수가 됐다고 생각해야 된다고, 알았지?”
경기가 끝난 후, 다카기는 아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 키리코는 서운한 눈빛을 보냈고 다카기는 내가 뭐 잘못했냐며 되물었다.
“난 솔직히 자기 운동하는 것도 안쓰러워. 그런데 아들 앞에서 그런 말 해야 돼?”
“세상에 쉬운 거 하나도 없어. 타구를 겁내는 투수가 어떻게 공을 던지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버지의 물음에 타다요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는 그냥 생각 없이 본 아버지의 투구, 그런데 야구를 하면서 저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투수도 괜찮지만 … 야수도 나쁘지 않겠지. 내 몸은 소중하잖아.’
타다요시는 슬쩍 방향을 틀었다.
야구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목표가 약간 수정된 것뿐, 아버지에게 야구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도 굳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