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25화 (325/361)

325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1)

[다카기를 강판시키려면 보스턴 선수 한 명에 부상을 입히면 된다. 그는 동료의 부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던 그때, 오클랜드에서 잡음이 나왔다.

문제의 발언을 한 선수는 오클랜드의 로날드 카버트,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건가.

진짜 강판을 시키려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동료를 아끼는 행동을 띄워주려고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카기는 한번 해 볼 테면 해 보라며 경고를 날렸다.

[동료를 다치게 해서 날 강판시키겠다고? 어디 해 봐, 세상에 사람을 죽일 총알은 얼마든지 있어. 그래도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있는 건 그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어디 해 봐. 무슨 일이 벌어지나]

다소 섬뜩한 발언에 로날드 카버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솔직히 다카기가 보복구를 던진 게 하루 이틀인가? 그렇다고 매번 벌벌 떠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법, 그래서 약간 놀려준 것뿐이다.

하지만 다카기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헤드 샷을 던질 수 있다.

단지 그게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뿐, 그런데 이딴 식으로 나온다면 헛소리하는 놈들 다 날려버릴 수 있다.

총알은 얼마든지 있는 법, 까부는 놈들 머리에 아낌없이 한 방씩 박아주겠다며 전쟁을 예고했다.

[그날은 내가 실수한 거다. 개리 우드에게 사과한다.]

반면 우드에게 부상을 입힌 라보이에는 서둘러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러다가 우리 선수들 다 총 맞을 지경, 오클랜드 구단도 유감을 표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다.

[다음 경기에서 오클랜드는 응급차를 준비해두는 게 좋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 사람을 죽일 총알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다카기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쓸데없이 입이 가벼운 놈들, 내가 은퇴하더라도 너희들 버릇은 고쳐놓고 가겠다며 위협을 가했다.

“은퇴하겠다는데 왜 자꾸 건드리나? 그는 메이저리그의 화약고다. 건드리지 마라. 강판시키겠다고 헤드 샷을 맞을 공이 아니다.”

이때 또 다른 입이 등장했다.

뉴욕의 프랜차이즈 스타 잭 모리슨, 모리슨은 다카기를 치워내야 메이저리그에 평화가 온다는 발언을 했다.

계속 자극하다 은퇴를 번복하면 어쩌나. 너는 위대한 선수라며 박수를 쳐서 얼른 쫓아내야 할 생각을 해야 할 거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말도 다카기의 심기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모리슨은 SNS에 올린 글을 지웠다.

하지만 이미 날개를 달고 퍼져나간 소문, 계속되는 쓸데없는 리플레이에 다카기는 인상을 구겼다.

[Forget it, I don't want any trouble]

= 지난번 일은 잊어버려, 난 문제가 생기길 바라지 않아.

모리슨은 바로 사죄의 글을 올렸다.

다카기와 10년 동안 투닥거렸으니 그 위험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편, 넌 화약고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흥행을 이끄는 최고의 선수라며 눈에 보이는 아부까지 덧붙였다.

‘이것들이 내가 은퇴하는 걸 은근 기대하고 있네?’

다카기는 약간 오기를 부렸다.

기왕 은퇴하는 거 총알은 다 쓰고 가야겠지, 아낌없이 나눠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올스타전 당일, 마지막 올스타전을 앞둔 전설에게 필라델피아 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필라델피아는 최근 10년 동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덕분에 다카기에게 이렇다 할 피해는 안 당한했다.

덕분에 그럭저럭 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철벽의 에이스는 표정 없는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다.

“자 이 선수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업적을 보시지요. 평균자책점 1.89, 2219이닝 동안 3026개 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2000이닝 이상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통산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데드 볼 시대에서도 안 나온 기록을 현대야구에서 기록한 선수죠. 최근 3년 동안 모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거기다 통산 9이닝 당 탈삼진이 12.27개나 됩니다. 다른 세계를 누비던 선수였죠. 이제는 지구를 떠나 외계를 침공할 게 분명합니다.”

쓸데없는 말이 오가는 사이, 다카기는 초구를 몸 쪽 깊숙한 곳에 박아 넣었다.

올스타전이라고 선수들이 대충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몸 쪽 빠른 공을 반길 리가 없다.

생각보다 훨씬 위협적인 공, 타석에 선 찰스 슈왈츠(필라델피아)는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타석에 섰다.

따악 ~ !

이번에도 몸 쪽, 쳤지만 비켜 맞은 타구는 발등 근처에 떨어졌다.

딱히 뭘 잘못한 게 없는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슈왈츠는 포수 마스크를 쓴 잭 포르투나를 건드렸다.

“나 지금 저 친구한테 뭐 실수한 거 있어?”

“아니”

“그런데 왜 자꾸 몸 쪽을 던지는 거야? 위험하잖아.”

선수들이 나누는 대화는 마이크를 통해 중계석에 전해졌다.

올스타전에서 몸 쪽을 이렇게 던지는 투수는 처음, 슈왈츠는 홈 플레이트에서 최대한 먼 곳에 자리를 잡았다.

무서워서 타격을 못할 지경,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바깥쪽 꽉 차는 공에 삼진을 당했다.

“나는 몸 쪽 공은 빼줘”

다음 타자는 스티브 도허티,

샌프란시스코와 대형 계약을 맺고 잠시 부진에 빠졌지만, 천재타자로 명성을 날렸던 만큼 간단히 무너지진 않았다.

다만 세인트루이스 시절부터 다카기와의 상성은 별로 안 좋았던 편, 두 선수는 1년 동안 보스턴에서 동료가 되기도 했지만, 도허티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안 좋게 헤어졌다.

지금도 얼굴을 마주하긴 어색한 관계, 도허티는 포르투나에게 몸 쪽 공은 좀 빼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여기가 무슨 레스토랑인 줄 알아? 뭘 빼 달라고?”

“난 다치기 싫다고, 그러니까 알아서 해 줘.”

“몸 쪽 공 두려우면 타자 때려치워야지”

계속되는 신경전, 포르투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 쪽 공을 요구했다.

미트를 벌린 곳으로 정확히 들어오는 빠른 볼, 도허티는 뒷걸음질 치며 타석을 벗어났다.

지난 2년 동안 부상에 타격 부진까지 겹친 몸이라 이런 볼 배합은 사절, 찰스 슈왈츠와 같은 길을 택했다.

“이봐요 스티브, 왜 타석에서 도망친 거죠?”

“저 자식은 총알을 던집니다. 피하는 게 상책이죠, 마음 같아선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어지는 중계석과의 인터뷰, 도허티는 강도를 만난 무고한 시민처럼 양손을 높이 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보스턴에서 안 좋게 헤어졌지만 다카기의 승부욕과 실력은 인정하는 편, 그동안 숨겨왔던 본심을 털어놨다.

“제가 저 친구와 손을 잡았다면 보스턴은 더 위대한 역사를 쓸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가벼운 성격이라 다카기와 서로 맞질 않았죠. 가능하면 제 손으로 끌어내리고 싶었습니다.”

도허티는 세인트루이스에서 2번이나 월드시리즈를 치렀지만 모두 다카기에게 막혔고, 지금도 손에 채워진 월드시리즈 반지는 한 개도 없다.

그에 비해 7개를 가져간 저 녀석, 어차피 은퇴할 거라면 내 손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도 난 저 자식에게 지기만 했으니, 솔직히 속이 쓰렸다.

“그럼 다카기를 이대로 보내선 안 되죠. 조만간 한 번 붙자고 한 마디 해주시죠.”

“됐어요. 저 자식은 얼른 이곳에서 쫓아버리는 게 맞습니다. 은퇴 축하한다!! 너는 최고였어!!”

도허티는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돌아섰다.

얼른 사라져야 내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지겠지, 그 사이 3번 타자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운 다카기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다음 이닝도 던질 건가?”

“그래야죠.”

다니엘 감독은 교체를 권했지만 다카기는 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 경기에서 3이닝도 못 채우고 강판당했으니 체력은 충분, 적극적인 몸 쪽 승부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밤하늘의 별 들을 떨어뜨렸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섯 타자 연속 탈삼진!!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누가 이 선수 좀 말려주시죠. 이러다 여럿 다치겠어요.”

중계석은 다카기가 너무 진지한 거 아니냐는 반응을 내놨다.

그래도 즐기자고 하는 게임인데 혼자 흥분한 느낌,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저거 우리한테 하는 무력시위다. 틀림없어.’

벤치에 앉은 라보이에는 머리를 굴렸다.

헤드 샷이 연속 날아왔던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한데, 팀 동료가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어떻게 기분을 풀어줄 순 없을까. 하지만 대놓고 아부를 하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프로라면 그런 기싸움에서 밀려선 안 된다.

이미 사과를 했는데 또 비굴하게 머리를 숙일 필요는 없겠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건가?’

타석에 들어선 알렉스 메이나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104마일, 뭔가 잘못된 거 아닌가. 팬들도 못 믿겠다는 분위기, 반면 다카기는 표정 없는 얼굴로 투구를 계속했다.

‘우왓!!’

이번에는 몸 쪽 102마일, 깜짝 놀란 메이나드는 타석에서 후퇴했다.

왜 앞선 타자들에게는 98마일짜리 던져주더니 왜 나는 특별대우인가. 넘치는 은혜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스윙!! 다시 삼진입니다!! 여섯 타자 연속 탈삼진!! 올스타 타선도 이 선수를 넘어서진 못합니다!!”

“그냥 얌전히 보내줘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괜히 자극하지 말자고요.”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갈채, 굴욕을 당한 메이나드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도저히 칠 엄두가 안 났던 공, 도허티가 왜 저 선수 공을 총알에 비유했는지 이해가 됐다.

‘관두자. 난 내 마음대로 했어.’

한편, 다카기는 미련 없이 감독에게 교체를 통보했다.

올스타전 여섯 타자 연속 탈삼진은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대기록, 한 이닝 더 던져서 9타자 연속 탈삼진을 노려볼까 했지만 다른 선수들도 던져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조금 과하게 승부욕을 발산한 것도 사실, 혹시 지금 나 혼자 흥분한 거 아닌가.

일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사이 날아든 인터뷰 요청, 다카기는 헤드폰을 쓴 채 중계석과 대화를 나눴다.

“오늘 힘이 넘치는 것 같던데 한 이닝 더 던져보는 건 어떻습니까?”

“당신이 다음 이닝에 타석에 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 ~ 그건 좀 어렵겠네요.”

마크 톰슨 해설위원은 그건 좀 어렵겠다며 몸을 사렸다.

톰슨은 통산 2324안타를 기록하고 은퇴한 실력자, 앤드 프론스키와 함께 필라델피아의 통산 2번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승부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다카기와 맞대결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오늘 유독 몸 쪽 승부를 많이 하던데 이유가 있었습니까?”

“네, 얼마 전 절 강판시키려면 보스턴 선수를 다치게 하면 된다고 떠벌린 멍청이가 있었죠. 오늘 투구를 봤다면 뭔가 깨달은 게 있겠죠.”

“당신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헤드 샷을 날릴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가끔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거의 다 맞췄습니다. 그건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죠. 다만 아직 어린 선수들은 제가 하는 말이 허풍이나 농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가르쳐 줄 생각입니다.”

“당신은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가능한 자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은퇴를 앞둔 제가 뭘 망설이겠습니다. 다른 선수를 다치게 하면 본인 머리가 깨질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합니다. 다음 오클랜드 전 기대하세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다시 한 번 못을 박은 암살 계획, 기어이 피를 보겠다는 건가.

라보이에도 오늘 사건으로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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