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24화 (324/361)

324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0)

[레스터 브라운 약물복용 적발]

[50경기 출장 정지]

6월 중순에 접어든 시즌, 잘 가고 있던 메이저리그는 암초에 부딪혔다.

올 시즌 타율 0.337, 홈런 14개, 39타점을 기록하며 순항하던 레스터 브라운(필라델피아 소속)의 약물 적발, 올스타 출전이 거의 확정적인 선수라 팬들의 충격은 상당했다.

“내가 아는 레스터는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을 하는 선수였다. 약물이 얼마나 도움을 줬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스턴 내부에서 잡음이 일어났다.

문제의 발언을 한 선수는 댈러스 레이븐, 스포츠 세계에선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약물 복용을 옹호한 건 둘째 치고 이중적인 행동이 문제가 됐다.

“약물 검사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감기를 이용해 검사를 피하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걸 막기 위해서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검사를 해야 합니다.”

약물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친구를 변호하기 위해 말을 바꿔도 되는 건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 논란을 부추긴 경우, 선수 개인이 SNS에 올린 일이라 구단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레이븐, 좀 더 성숙해져야.]

[이래서는 다카기의 자리를 잇기 어렵다.]

보스턴 여론은 벌써부터 염려를 표했다.

다카기의 뒤를 이을 선수가 이렇게 가볍게 행동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다카기는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여론에서 뭐라고 하고 있으니 레이븐도 뭔가 반응을 보일 거 아닌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굳이 혼낼 필요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레이븐은 서둘러 사과를 표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 친한 사람이 논란에 휩싸이면 보호해주겠다는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그게 옳은 일이라곤 할 수 없지만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친구의 잘못을 감싸 안는 게 나을까 아니면 짚고 가는 게 좋을까.

답은 다 알고 있지만 늘 상식이 통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을 거다.

메이저리거라고 완벽할 수 있겠나. 가끔은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행동을 하기 마련, 그래도 레이븐은 알아서 사과를 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이 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레이븐은 시즌 9승 사냥을 위해 뉴욕과 일전을 치렀다.

다카기는 뉴욕 킬러지만 레이븐은 정 반대, 통산 4승 4패, 평균자책점 5.33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정말 다카기의 후계자가 되겠다면 같은 지구 라이벌에게 강점을 보여야겠지, 본인도 의식을 하는지 1회 말부터 강속구를 뿌려댔다.

따악 ~ !!

하지만 선두 타자 모리슨에게 안타를 맞고 말았다.

모리슨의 통산 1892번째 안타, 뉴욕 역사상 좌익수 자리(1690경기)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선수로 올라섰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팬들의 박수, 모리슨은 헬멧을 벗어 감사를 표했다.

‘쓸데없이 폼 잡기는’

레이븐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흘겨봤다. 겨우 안타 하나 치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최근 반항기가 부쩍 심해진 레이븐은 순간 욱하고 말았다.

“자, 이제 타석에는 대니 콜드웰이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94, 홈런 17개, 48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활약이죠. 특히 빠른 볼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레이븐은 신중해야 합니다.”

[따아악 ~ !!]

“초구 타격!! 좌측으로 멀리 가는 타구가 펜스 뒤로!! 그대로 담장을 넘어가는군요!! 대니 콜드웰의 시즌 18호 홈런!! 뉴욕이 선취점을 냅니다!!”

“레이븐은 오늘도 뉴욕의 악몽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건가요. 원정만 오면 이렇네요.”

뉴욕 원정에서는 6.43으로 더욱 안 좋아지는 평균자책점, 욱한 레이븐은 느릿느릿 1루를 통과하는 콜드웰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300피트 넘기니까 기분 좋냐? 어?!!”

야구장은 홈 플레이트에서 좌우 펜스까지 거리가 최소 325피트는 돼야 한다.

물론 오래된 야구장은 제외, 뉴욕의 홈구장은 홈 플레이트부터 우측 펜스까지 거리가 310피트(94m) 밖에 안 된다.

그나마 이것도 수정된 것, 1932년에는 275피트밖에 안 됐다.

덕분에 뉴욕은 역사적으로 많은 좌타 거포를 배출했지만, 이게 그렇게 자랑거리인가? 보스턴 팬들은 틈만 나면 뉴욕의 작은 홈구장을 비하하며 신경을 긁었다.

그런데 이번엔 선수가 직접 도발을 나선 것,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콜드웰은 무시했지만 레이븐은 2루로 향하는 타자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다른 구장이었으면 잡혔어 이 자식아!! 폼 잡지 말고 얼른 뛰라고!!”

“넌 뭐야 이 자식아?!! 왜 자꾸 XX 하는데?!!”

그 사이 홈을 밟은 모리슨은 마운드로 향했다.

성깔이라면 이쪽도 지지 않는 편, 두 선수가 격한 충돌을 일으키면서 순식간에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넌 다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후계자?!! 까불지 말라고!!”

모리슨은 대놓고 레이븐의 역린을 건드렸다.

우리 홈구장이 작아서 홈런을 잘 치는 거라고? 그럼 저 자식은 뭘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건가. 다카기는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장에서도 뉴욕 타자들을 압도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에 비해 레이븐은 여기만 오면 말 그대로 털리는 신세, 너 같은 놈이 다카기의 뒤를 잇는다니, 보스턴의 미래도 알만 하다며 도발을 계속했다.

“뭐야?!! 너 이리 와 봐!!”

시비를 걸었는데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신세, 양 팀 선수들이 싸움을 겨우 떼어놨지만 흥분한 레이븐은 더그아웃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고 붙들린 몸, 주먹다짐을 한 레이븐과 모리슨은 바로 퇴장당했다.

[레이븐, 자진 퇴장으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다음 날, 뉴욕 여론은 레이븐을 조롱하는 기사를 특보로 내보냈다.

더 처맞아야 했을 놈이 퇴장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강판 됐으니, 현명한 태도였다며 속을 긁었다.

거기다 그날 패배까지 한 보스턴, 이래저래 망신을 당한 레이븐은 속이 상했는지 그날부터 입을 닫아버렸다.

‘남자가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뭘 … ’

다카기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호기 있게 시비를 걸던 그 건방짐은 어디로 간 건가, 얌전한 것보다는 건방진 게 나은 프로의 세계, 한마디 할까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 * *

“마지막 올스타전인데 오늘은 쉬는 게 어떤가?”

“아니요. 한 경기라도 더 뛰어야죠.”

올스타전을 사흘 앞두고 다카기는 감독으로부터 휴식을 권유받았다.

올스타전을 위해 정규경기를 포기하는 게 옳은 일인가. 은퇴를 발표했으니 그날은 내가 주인공이 되겠지, 그래도 은퇴를 위한 경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할 거 다하고 참석하면 그만, 휴식 대신 시즌 17번째 등판을 택했다.

“자, 다카기 하루요시가 보스턴의 선발투수로 나섭니다. 올 시즌 16경기 등판 7승 2패 평균자책점 1.76, 112이닝 동안 볼넷 29개, 탈삼진은 154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승운이 별로 없죠. 그래도 200승은 채우고 은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카기는 지금까지 193승을 거뒀다.

올 시즌 14승을 해야 200승을 채우고 은퇴한다는 뜻, 피트 오어는 득점지원 받쳐줬다면 벌써 14승을 채웠을 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다카기는 올 시즌 16경기에서 3실점 이상을 한 경기가 2게임 밖에 없다.

올 시즌 리그 평균 득점을 대입해 보면 최소 14승은 거뒀어야 했는데, 작년부터 이상하게 안 따라주는 승리, 오늘 경기는 미소를 짓길 기원했다.

따악 ~ !!

하지만 다카기는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여기에 진루타가 이어지며 1사 주자 2루, 다음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다.

[따악 ~ !!]

“이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가는군요!!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여기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아 … 충격이 생각보다 큰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고의적인 행동 아닌가요?”

주심은 주자의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홈 플레이트 우측에 자리를 잡고 있던 포수, 주자의 진로를 막을 의도는 없어 보였다.

송구를 받은 다음에 태그를 시도했는데 그대로 달려와 받아버린 주자, 충격이 큰지 개리 우드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최근 화를 낸 적이 없는 다카기도 이때만큼은 욱했다.

분명 악의를 가지고 한 플레이, 2안타를 맞은 것보다 개리 우드가 부상을 당한 게 더 짜증났다.

그래도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투구에 집중, 포수 마스크를 쓴 존 포르투나와 호흡을 맞췄다.

‘하겠지?’

이닝이 끝나고 포르투나는 다카기의 눈치를 살폈다.

부상을 당한 개리 우드를 위해서라도 복수를 하긴 해야 되는데, 저 녀석 공에 맞았다가 사람 하나 죽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난 분명 처맞을 거다.’

이곳은 오클랜드의 벤치, 개리 우드를 병원으로 보낸 로니 라보이에는 각오를 다졌다.

여기서 반드시 득점을 내야겠다는 의욕에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그렇다고 빈볼이 무서워 도망치는 건 꼴사나운 일, 동료들에게도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반응하지 말라고 미리 언급을 줬다.

‘너 잘 걸렸다.’

이닝은 돌고 돌아 3회 초 오클랜드의 공격, 다카기는 사인교환도 없이 자세를 잡았다.

이제부터는 피의 축제가 벌어질 뿐, 맞는 입장도 아닌데 포르투나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다독였다.

‘위험해!! 죽는다!!’

얼굴로 날아오는 강속구, 맞는 것도 각오한 입장이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낀 라보이에는 급히 머리를 숙였다.

한눈에 봐도 가슴 철렁했던 장면, 이러다 사람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심은 마운드와 양쪽 벤치에 모두 주의를 줬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지만 다카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헤드 샷을 날렸다.

이번에는 101마일 강속구, 선수가 피하면서 맞진 않았지만 주심은 바로 퇴장을 지시, 암살에 실패한 다카기는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라보이에에게 경고를 날렸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넌 조만간 내가 죽일 거야. 기대하고 있어”

라보이에는 착잡한 얼굴로 폭언을 받아냈다.

선수를 다치게 했으니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날 죽이겠다니, 올스타전에서도 헤드 샷을 던졌던 선수 아닌가.

저 말이 단순한 협박처럼 들리진 않았다.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은퇴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라보이에를 맞출 생각입니까?”

“네, 제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커리어를 걸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완전히 보내버릴 겁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말이죠.”

경기가 끝나고,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서 은퇴를 번복했다.

전례가 있으니 웃어넘길 수가 없는 상황, 그래도 공식 석상에서 죽이겠다는 발언은 너무하지 않는가. 하지만 다카기는 난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암살을 예고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그만했으면 좋겠다.”

헤드 샷이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날아왔으니 라보이에도 흠칫했겠지.

개리 우드는 겁을 줬으니 만족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피해자가 저런 말을 하는데 내가 총을 빼들 명분이 있겠나.

라보이에가 사과한다면 암살은 고려해보겠다며 입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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