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9)
‘난 지금 팀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건가.’
개막 후 3주가 지난 시즌,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돌아왔지만 포르투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개막전에서 극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감격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그것뿐, 공격과 수비 모두 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성적은 타율 0.253, 홈런 1개, 7타점, 보스턴 구단이 포르투나에게 기대하는 건 솔직히 수비보다 방망이다.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갖춘 포수는 존 페렐티에, LA 머린스 소속으로 통산 OPS는 0.727에 불과하지만 올스타 7회에 뽑혔다.
그런데 지난 2027년, 포르투나는 OPS 0.892를 기록, 겨우 두 달 동안 치른 시즌이지만 공격력에서 확실한 강점을 보여줬다.
수비가 조금 안 된다고 해도 공격력에서 강점을 보여준다면 경쟁력이 있는 선수, 하지만 그것마저 안 되니 초조해졌다.
‘어쩌면 나는 이대로 무너질지도 몰라.’
꿈에도 그리던 그라운드 복귀,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형편없는 플레이를 반복하고 그게 심리적 압박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내 손으로 이 유니폼을 벗어버리는 게 아닐까. 감독과 상담을 해 보고 싶었지만, 이런 나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어느 감독이 중용하겠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거렸다.
‘이 선수를 어떻게 한다.’
다니엘 감독도 포르투나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지난 4월 16일, 포르투나는 패배의 원인이 되는 송구 실책을 저질렀다.
마운드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도 변화무쌍하게 날아가는데 포수가 2루로 던진 공은 얼마나 더 심하게 변할까.
먼 거리를 날아가는 만큼 공의 궤적은 예측 불가능, 그만큼 포수는 정확한 송구를 위해 피땀을 흘려야 된다. 이렇게 험난한 포수의 길, 그런데 자기 어깨만 믿고 포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송구를 하는 선수도 있다.
않은 자세에서 송구를 하는 게 그렇게 멋진 플레이인가?
조금 늦더라도 포구를 확실히 한 다음에 송구를 하는 게 야구의 기본, 이것도 못하는 선수가 앉아 쏴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난 경기에서 포르투나가 저지른 실책이 바로 이것, 그에 비해 개리 우드는 포수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작년 시즌 주전 포수를 보며 경험을 쌓았으니 당연하겠지, 다니엘 감독은 수더랜드 단장에게 개리 우두를 주전 포수로 쓰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래도 조금 더 써 보지 그러나?”
“영웅 만들기를 하다 팀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포르투나는 앞으로 간간이 1루수로 기용하겠습니다.”
수더랜드 단장은 철저한 합리주의자, 쓸모없다고 판단한 선수는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포르투나는 암 투병을 극복하고 돌아온 선수, 여기에 방망이 재능도 있는 선수다. 포수 자리에서 방망이만 조금 쳐 주면 올스타에 뽑힐 수 있지 않을까.
구단 홍보를 위해서는 영웅 만들기도 필요한 법, 현장 관계자들은 포수는 수비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표를 던지는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공격력이 화려한 선수에게 눈길이 가기 마련, 조금 더 써 보라며 다니엘 감독을 다독였다.
‘기다려줬는데도 안 되면 포기해야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더랜드 단장도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영웅 만들기는 팀의 홍보를 위한 것, 우리가 자선사업 단체도 아니고 못하는 선수를 끌고 갈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암투병을 마치고 돌아온 선수 앞에서도 프로 무대의 현실은 냉정했다.
“뭘 그렇게 불안해하냐?”
이런 흐름을 대략 간파한 다카기는 포르투나에게 조언을 건넸다.
한눈에 봐도 성급한 플레이, 이 녀석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캡틴 완장은 3년 전에 벗어던졌지만 사실상 팀의 리더로서 어린 선수들을 조율했다.
“난 팀원으로서 아무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도움이 못 된다고?”
“어, 도움이 안 되는 선수는 팀에 필요 없잖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약한 목소리에 다카기는 입꼬리를 들썩였다.
이 녀석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 무대는 그런 게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건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야.”
“아마추어?”
“그래, 나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팀을 위해 어떻게 희생해야 하나? 이런 거 아냐?”
고개를 끄덕이는 포르투나, 상대의 동의를 얻어낸 다카기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팀을 위해 선수가 희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게 프로라고 생각해? 왜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었는지 생각해 봐.”
메이저리거는 미국 사회에서 손꼽히는 엘리트, 부와 명예를 모두 쥘 수 있는 꿈의 무대다.
이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유망주들이 경쟁을 벌였는가, 다 내 성공을 위해서 아닌가.
그런데 언제부터 메이저리거가 팀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이 되었나. 다카기는 정말 뛰어난 선수가 있다면 팀이 거기에 맞추는 게 당연하다는 사상을 지닌 선수, 포르투나가 정말 뛰어난 선수라면 팀을 위해 희생할 필요도 없다.
내 활약이 곧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그게 희생인가?
다카기는 팀을 위해 뭘 하겠다는 생각은 집어치우라고 경고했다.
“잘 들어, 넌 성공하기 위해 메이저리거가 된 거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맞지?”
“ … 어”
“그러니까 팀을 위한다는 X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워, 성공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만 생각하라고, 알아들었냐?”
그제야 포르투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왜 팀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팀이 이기면 행복하겠지만, 일단 내가 잘 나가야 진짜 행복한 거 아닌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소극적으로 변한 플레이, 이제부터는 내 야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경기는 토론토와의 원정 3연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다니엘 감독은 포르투나를 주전 포수로 출전시켰다.
‘난 개리 우드가 더 좋은데 … ’
마운드에 선 댈러스 레이븐은 이 조치에 불만을 품었다.
저 자식에게 기회를 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피해가 돼선 안 되겠지, 팀원이고 자시고 다 나 잘되자고 하는 짓 아닌가.
포구 능력이 약간 불안정한 포르투나가 내 공을 잘 받아줄 수 있을까. 솔직히 믿음이 서질 않았다.
‘상관없다. 나는 내 일을 할 뿐’
포르투나도 레이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눈치챘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경력 4년 차에 접어든 선수, 작년에는 다카기를 제치고 팀 내 최다승(18승) 투수에 올라섰다.
저런 선수가 내 입장을 배려해주겠나.
내가 저쪽에 맞춰야 하는 입장, 팀원은 서로 돕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플레이 볼!!”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경기, 1회 초, 보스턴은 주자 3명이 나갔지만 1득점에 그쳤다.
이어지는 토론토의 1회 말 공격, 댈러스 레이븐은 평균 95마일의 빠른 볼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웠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도지는 제구 불안, 계속 공이 옆으로 튀었지만 포르투나는 몸을 날려 막아냈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날렵한 움직임, 중계진도 포르투나의 플레이에 주목했다.
“다시 빠집니다. 주자는 움직이지 못하는군요.”
“지금도 볼이 홈 플레이트 쪽에 떨어지도록 블로킹을 했죠. 포르투나 선수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수비 능력은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공격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죠. 오늘은 그 진가가 나오고 있네요.”
포수가 던진 공을 받아든 레이븐은 고개를 돌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민망한 투구를 하고 있는데 그걸 다 받아주는 포르투나, 저 자식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속으로 흉을 봤는데 이게 무슨 꼴불견인가. 부끄러움 때문에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건 말건 포르투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 3회 초 공격에서 방망이를 곧추세웠다.
‘좋은 긴장감이다.’
남들은 포수를 보면 공격력이 약간 떨어진다고 하는데, 포르투나의 생각은 달랐다.
홈 플레이트 뒤에 앉으면 언제나 집중해야 한다. 그런 적당한 긴장감이 타석에서의 집중력으로 이어지는 법, 그걸 알고 있는데 왜 난 그동안 안절부절 못했던 걸까.
아직 시즌은 초반, 부진을 만회할 기회는 충분했다.
“골라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지난 경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네요. 충분히 볼을 골라낼 수 있는 선수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 4할 출루율을 3번이나 기록했죠.”
다음 공도 골라내면서 카운트는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 이대로 볼넷으로 나가는 건가.
그런 안일한 생각이 실투를 놓치는 원인, 포르투나는 쓰리 볼이라도 좋은 공은 치겠다며 긴장감을 유지했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펜스까지 굴러가는 타구!!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 멈추지 않고 계속 뜁니다!! 3루까지 들어가는 포르투나!! 첫 타석부터 기분 좋은 장타를 기록합니다!!”
“운동 능력이 좋기 때문에 발도 빠른 편이죠. 지금은 랜던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토론토의 중견수 브랜든 랜던은 미간을 찌푸렸다.
포수라 약간 느릴 거라고 방심했던 게 사실, 상대 선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였다.
여기에 후속 타자의 적시타가 터지면서 스코어는 3대 1, 추가점을 낸 보스턴 벤치는 적당히 분위기를 냈다.
우리가 하루 이틀 이기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호들갑은 금물, 메이저리그 최강 구단다운 품위를 유지했다.
‘내가 별로 할 일이 없는데’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다카기는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나 없이도 알아서 잘하는 녀석들, 할 일도 없는데 소파 위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다카기, 코치가 찾아.”
“왜?”
“사인 지시해야지.”
하지만 일탈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치가 직접 사인을 내리면 상대 팀 선수들도 그걸 볼 거 아닌가. 그래서 대리인을 앞세우는데, 다카기는 경력이 굵은 만큼 다양한 사인을 내릴 수 있다.
코치가 거짓 사인을 내는 동안 진짜 사인을 보내는 게 다카기의 임무, 느릿한 발걸음으로 벤치에 복귀했다.
‘다들 잘 보고 있지?’
능숙하게 지시를 내리는 에이스,
다카기만큼 그날 팀이 해야 할 플레이와 사인을 완벽히 숙지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운동능력도 좋지만 이해력과 암기도 상당한 수준, 과장을 조금 보태면 플레잉 코치와 다를 게 없다.
공만 잘 던져줘도 되는데 이런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구단 관계자들이 보내기 싫어하는 건 당연, 연봉 더 주고 눌러 앉힐 순 없을까.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연봉 4천 5백만 달러로 올려줄 테니, 자네가 설득 좀 해 보게.”
“말은 해 보겠습니다.”
에이전트 제임스 콜튼은 고객을 다시 설득했다.
30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거기다 다카기는 보스턴에 없어선 안 될 선수, 코치까지 겸하고 있는 걸 고려해 연봉 45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러다 혼자 5천만 달러를 찍을 기세, 하지만 다카기는 은퇴 번복은 없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코치는 연봉 4천만 달러를 주는 구단에 서비스로 해주는 일, 돈을 받겠다고 하는 짓이 아니라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