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21화 (321/361)

321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7)

‘배짱은 보여주고 간다.’

다카기는 고심 끝에 파트너에게 보낼 사인을 정했다.

딱 하나의 공을 던져야 한다면 투수는 어떤 공을 던질까.

지금까지 수많은 공을 던졌지만 다카기의 선택은 몸 쪽, 제구가 불안하거나 경험이 부족한 투수는 택할 수 없는 코스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몸 쪽 승부는 벤치나 포수가 투수의 그날 제구나 컨디션을 보고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몸 쪽 볼 사인을 스스로 낼 수 있다면 팀 내에서 입지가 그만큼 높은 투수라는 뜻, 김재성 포수는 사인대로 포구를 준비했다.

‘엇?’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고 있던 린지성은 예상 못한 코스에 당황했다.

몸을 틀며 피하다 보니 배트에 맞아버린 공, 다카기는 타구를 1루수에게 넘겨주고 7회를 마무리했다.

배짱과 경험으로 만들어낸 아웃카운트, 한국 대표 팀의 김준호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KBO 투수들과 비교하기엔 레벨이 다른 선수라는 걸 깨달았다.

이날 한국 대표 팀은 에이스의 7이닝 무실점 호투를 앞세워 2대 0 승리를 거뒀고,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서 질문을 받았다.

“다카기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라면 역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그 공이겠죠. 역시 몸 쪽을 노리고 던진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만약 그 공으로 타자를 잡아내지 못했다면 저는 그대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죠. 그래서 타자의 스윙을 이끌어낼 가장 확실한 공을 던진 겁니다.”

기자들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투구의 70%는 바깥쪽, 당연히 타자들은 그곳에 포인트를 맞추고 타석에 들어선다. 몸 쪽이 들어오면 타자들은 섣불리 나가기 어려운 입장 아닌가.

그런데 몸 쪽이 스윙을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니,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러분들은 연습경기나 전지훈련에서 몸 쪽 승부를 하는 투수들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당연하겠죠. 연습경기니까 상대를 다치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 선수니까 던지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투구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선수들이 실전에서 몸 쪽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오면 공이 하나 두 개 정도 빠집니다.”

그 망설임이 타자에게 기회를 주는 법, 몸 쪽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나.

그래서 타자들은 바깥쪽 빠른 볼을 노리는 것, 이때 역으로 몸 쪽 빠른 볼을 던져주면 배트가 돌아갈 확률이 높다.

실전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볼 배합, 타자를 맞추더라도 내가 살겠다는 이기심과 배짱, 여기에 실력이 갖춰줘야 가능한 투구다.

누가 이런 투구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겠나. 다카기는 정말 좋은 투수가 되려면 몸 쪽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요즘 투수들은 너무 얌전한 것 같습니다. 투 스트라이크나 위기 상황이 되면 다들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 또는 체인지업을 던지죠. 하지만 이런 소극적인 피칭으로는 타자를 압도할 수 없습니다.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선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몸 쪽 승부를 잘 했다는 겁니다. 어린 선수들이 제가 던지는 메시지를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기자들은 이 말이 사실인지 조사에 나섰다.

정말 몸 쪽 승부는 투수에게 영향을 주는 건가? 이건 사실로 드러났다.

작년 시즌, KBO 투수들은 평균 21%의 몸 쪽 공을 구사했다. 바깥쪽 -가운데 승부가 80%나 될 정도로 몸 쪽 승부를 거의 안 했다는 뜻.

특히 몸 쪽 승부가 17%밖에 안 되는 자이언츠는 2년 전에 비해 피안타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투수라고 몸 쪽 공 던지기 싫겠나, 그만한 제구와 배짱을 갖춘 선수가 없다는 것, 한국에서 투수로 명성을 쌓은 신정철 위원은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우투수가 좌타자에게 몸 쪽을 던지면 투구 궤적이 대각선을 그리기 때문에 타자의 눈에 띄기 쉽죠. 하지만 그래도 던져야 합니다. 몸 쪽에 바짝 붙는 공은 풀스윙이 어렵기 때문에 눈에 보여도 제대로 치긴 어렵습니다.”

정확히 일치하는 양측의 주장,

이날부터 몇몇 한국 투수들은 다카기의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

“일단 한가운데 공을 던질 줄 알아야지.”

“한가운데요? 그럼 맞잖아요?”

“준비과정이야, 처음부터 몸 쪽 잘 던지는 투수가 어디 있어?”

메이저리그에는 바깥쪽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자신을 먹여 살리고, 몸 쪽 공을 잘 던지는 투수는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몸 쪽을 던질 줄 알아야 성공한다는 뜻,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몸 쪽은 안타를 맞을 위험과 타자를 잡아내는 기회를 동시에 지닌 공, 다카기도 몸 쪽 승부를 하다가 홈런을 맞은 경우가 많지만, 그 덕분에 바깥쪽 승부를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도전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는 법, 홈런이 무섭다고 몸 쪽을 포기했다면 내가 이렇게 대성할 수 있었을까. 다카기는 그런 약해빠진 생각부터 버리라고 충고했다.

“안타? 맞을 수도 있어. 타자를 맞추면 주먹다짐을 해야겠지. 그래서 나는 오프 시즌 동안 격투기도 연습해, 덤비는 놈은 날려버리려고”

“헉 … 진짜 격투기도 연습하세요?”

“당연하지. 그만한 배짱도 없이 어떻게 투수를 해?”

선수들은 경악했다.

손을 보호하는 건 투수의 의무, 실제로 손을 보호하기 위해 평생 동안 아들을 투구를 하는 반대 손으로 안아준 선수도 있다.

그런 선수도 있는데, 이 사람은 몸 쪽 승부가 유발하는 벤치 클리어링에 대비해 격투기를 한다는 건가.

다들 못 믿겠다는 표정, 그러건 말건 다카기는 자신의 이론을 펼쳤다. “너희들 작년 시즌 내 피안타율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몸 쪽은 0.227, 바깥쪽은 0.201이었어. 그럼 바깥쪽만 계속 던졌을 것 같아? 아니야, 맞더라도 던졌어. 내가 바깥쪽만 계속 던졌다면 절대 그 피안타율 안 나왔겠지. 한국 야구가 발전하려면 너희들이 몸 쪽을 던질 줄 알아야 돼, 그래야 타자들의 기량도 상승하고 서로 상부상조 하는 건지, 그런데 너희들이 그만한 역량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카기는 메이저리그에서 점차 사라지던 몸 쪽 승부를 다시 끄집어내 유행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선수들은 리그의 유행을 바꿀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있나. 너희들은 안 될 거라며 도발했다.

‘아니, 던지고 싶어도 못 던지겠지.’

다음 날, 한국 대표팀은 2라운드 진출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단판승부를 벌였다.

오늘 포수 마스크를 쓴 선수는 이동인, 이동인은 벤치의 사인대로 투구를 리드했다.

거의 다 바깥쪽, 저 패턴에 거역할 수 있는 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그래도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면 다들 팀에서 인정받는 투수일 텐데, 이렇게까지 자율권을 침해받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몸 쪽 승부를 마음껏 할 수 있겠나.

바깥쪽이 정답이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는 리드, 다카기는 이게 한국 야구의 한계라는 걸 실감했다.

‘저러면 누가 못 쳐?’

3회가 되자 네덜란드 타선은 대놓고 바깥쪽 공을 밀어치기 시작했다.

안타를 맞으면 변화구로 도망치는 투수들, 솔직히 프로가 아니라 고등학생 경기를 보는 착각이 들었다.

[따악 ~ !!]

“아 … 이 타구가 다시 내야를 빠져나가는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스코어는 3대 0이 됩니다.”

“지금 너무 소극적인 투구를 하고 있어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도 될 텐데 말이죠.”

중계석에 앉은 신정철 위원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제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변한 게 없는 김준호 감독의 투수 리드, 오늘도 형편없는 타선, 2라운드 진출은 어렵겠다는 걸 직감했다.

김준호 감독은 공격의 막힌 혈을 대타 투입으로 풀어내려 했지만 이것도 실패, 4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7회 말을 맞이했다.

하위 타선부터 시작하는 경기, 쓸 만한 대타는 다 써버렸고 어떻게 해야 하나. 메이저리그에서 타격 능력을 인정받는 다카기도 생각해봤지만 실천에 옮기진 않았다.

따악 ~ !!

“그렇지!! 그렇지!!”

이때 8번 타자 신형욱의 안타가 터졌다.

오늘 경기 첫 선두타자 출루, 1점 만회로 만족할 상황이 아니라 보내기 번트는 나오지 않았다.

9번 타자까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재미있어진 경기, 벤치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다카기도 슬쩍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 김인호 선수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대회에서 11타수 2안타,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타격에는 일가견이 있는 선수죠. 기대를 해 보겠습니다.”

김인호는 몸 쪽 빠른 볼을 지켜봤다.

생각보다 몸 쪽 승부를 잘하는 네덜란드 투수들, 오늘 이 공을 따라다니다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조금 더 정교한 선구안이 필요하겠지, 2구는 바깥쪽으로 들어왔지만 골라내면서 볼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가 됐다.

‘지금 쳐야 한다.’

바깥쪽 약간 높게 들어온 공, 하지만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고 다카기는 아쉬움 섞인 한숨을 뿜어냈다.

너무 소극적인 친척 형의 타격, 답답했지만 응원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딱 ~ !]

“아, 이게 파울이 되는군요.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지금도 약간 높았거든요. 어퍼 스윙으로는 높은 공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지금 같은 자세는 조금 곤란해요.”

신정철 위원은 타자의 자세를 문제 삼았지만 다카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높은 공에 어퍼 스윙을 하면 안 되나? 배트 컨트롤을 위해 손목을 약간 늦게 돌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퍼 스윙 자세가 된다.

임팩트 순간에 높은 공을 들어 올리는 타자들의 전형적인 모습, 높은 공을 칠 때 진짜 문제가 되는 자세는 다운스윙이다.

다운스윙이 되면 깎여 맞으면서 뜬공이 되거나 임팩트가 너무 앞에서 이뤄지면서 땅볼 밖에 안 나온다.

친척형은 높은 공을 어떻게 쳐야 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편, 또 높은 공이 들어올 확률은 거의 없지만 기대가 됐다.

딱 ~ !!

“돌아!! 돌아!!”

드디어 터진 적시타,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한국은 첫 득점을 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부터 추격에 나서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다카기는 더그아웃 보호 펜스를 두들기며 선수단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후속 타자의 진루타와 적시타가 터지면서 스코어는 순식간에 4대 3, 다카기는 먼 길을 돌아온 친척 형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왜 그렇게 필사적이야?”

“널 이대로 보낼 순 없으니까.”

김인호는 동생에게 수줍은 고백을 했다.

온갖 논란을 이겨내며 한국 대표 팀 유니폼을 입은 동생, 그런데 1라운드 탈락은 아니지 않은가.

최소 2라운드까지는 같이 가야 녀석도 체면이 살지 않겠나.

한국 대표팀은 9회 말에 1점을 더 추가하며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10회 초 네덜란드의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정말 여기서 기적이 이뤄지는 건가.

하위타순부터 시작되는 공격이지만 다카기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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