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19화 (319/361)

319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5)

[다카기 하루요시, 한국 입국]

[정말 한국 대표로 WBC 출전?]

12월 27일, 다카기는 홀로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설마 했던 등장에 입구를 에워싼 팬들은 환호를 보냈고,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지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다카기는 덤덤한 표정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한국어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완벽하진 않은 편, 통역을 옆에 두고 영어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정말 한국 선수로 WBC에 출전하시는 겁니까?”

“일단 한국이 절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느닷없는 선언에 기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국에서 국가대표란 나라를 대표하는 몸, 하지만 미국 -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는 다카기에게 그런 명분은 별 의미가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날고 기는 포수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내 구위를 받아낼 수 있는 포수가 한국에 있을까.

그런 포수가 없다면 한국대표로 출전해 봤자 무의미, 일단 호흡을 맞출 파트너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가 아무리 좋은 공을 던져도 그걸 제대로 받아줄 포수가 없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너희가 나한테 맞추라는 뜻, 한국 역사상 이렇게 오만한 국가대표가 있었나, 하지만 여론이 뭐라고 하든 말든 다카기는 자신의 행보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팀을 이끌게 될 김준호 감독, 김준호 감독은 베어스의 주전 포수 이동인을 추천했다.

그 선수는 나중에 만나보면 될 일이고, 볼 배합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건가. 다카기는 한국야구가 메이저리그와 같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네는 빠른 볼을 잘 던지니까 빠른 볼 위주로 가면 되지 않겠나?”

“그건 아닙니다. 저는 빠른 볼 두 가지에 슬라이더, 체인지업도 종류를 구별해서 던집니다. 이걸 어떻게 조합하느냐는 그날 컨디션과 상대할 타자들에 따라 달라지죠.”

메이저리그에선 코칭스태프가 볼 배합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좋은 포수와 투수가 짝을 이루고 있다면 대부분 위임하는 편, 그래서 등판하는 날만 되면 다카기는 파트너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볼 배합을 결정한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좋은 포수도 별로 없으니 벤치가 포수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

흔히 포수 리드 능력을 얘기하는데 이건 한국과 미국에서 적용되는 기준이 조금 다르다.

“투수 리드는 블로킹 잘하고 포구 잘하고 도루 저지 잘하면 됨”

벤치 사인으로 볼 배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한국에서, 포수는 기본적인 능력만 갖추면 된다.

하지만 포수의 자율성이 조금 더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와의 소통 능력도 중요, 다카기는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한국야구에 맞춰야 하나, 아니면 한국야구가 나한테 맞춰야 하나.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대표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한국에 입국한 것,

하지만 김준호 감독은 단체훈련이 1월 4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선수들을 소집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거 왠지 불안한데’

다카기는 일단 일주일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혹시 나는 쓸데없는 선택을 한 건가, 하지만 이건 너무 성급한 결론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보내다 1월 4일부터 한국 대표 팀에 합류했다.

“와 줘서 고맙다.”

“그런 말 하기엔 아직 이른 거 아냐?”

다카기의 친척 형 김인호는 동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한국 대표로 뛰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은 편, 일단 감독이 추천한 이동인이라는 포수의 기량을 살폈다.

‘왜 이래 이거’

공을 던진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수는 공이 들어올 위치에 미트를 고정시키는 게 상식, 미트나 포수의 몸이 흔들리면 투수의 제구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런데 이동인은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미트를 거의 바닥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리며 포구를 했다.

물론 포수가 이렇게 하는 건 이유가 있다. 포수 미트 무게는 약 750g, 실제로 껴 보면 꽤 무거운 편이다.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긴 어려우니 일단 내렸다가 다시 자세를 잡는 것, 하지만 다카기에겐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미트를 고정시켜 줄 수 있습니까?”

“알았어요.”

이동인은 투수 요구대로 해줬지만 내심 불쾌했다.

본인이 하는 방식은 옳고 내가 하는 방식은 틀렸다는 건가. 한국 대표로 뛰겠다면 본인이 여기에 맞춰야지, 왜 팀이 저 선수 한 명에게 맞춰가야 하는가. 여론에서 반기는 분위기라 불만을 삼켰지만 솔직히 불쾌했다.

‘이것도 뭔가 아닌데’

불편한 건 다카기도 마찬가지, 한국에서 손꼽힐만한 포수라고 하는데 직접 상대해보니 그게 아니다.

미트와 몸을 움직이는 건 그렇다고 쳐도 변화구를 받아낼 때, 스텝이 앞으로 전진 하는 건 뭔가.

블로킹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모습, 저렇게 하면 주자가 변화구라는 걸 알아채고 도루를 할 수 있다.

이게 정말 국가대표인가, 다카기는 김준호 감독에게 다른 포수를 요구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나?”

“미트 질에 블로킹까지 뭐 하나 기본이 안 됐습니다. 저 선수와는 호흡 못 맞춥니다.”

김준호 감독은 경악했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뽑은 선수를 그렇게 평가하다니, 결국 선수를 보는 내 눈이 부족하다는 건가. 그러지 말고 조금 더 호흡을 맞춰보라고 달랬지만 다카기는 이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포수가 그 선수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선수와도 호흡을 맞춰보고 싶습니다.”

“ … 알았네.”

김준호 감독도 다카기를 슬슬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거라고 대우를 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와도 되는 건가. 혹시 대회 기간 내내 이렇게 나오는 건 아닌지, 다카기도 묘한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일단 모른 척하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에 집중했다.

‘이 선수는 괜찮네.’

다카기는 드디어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찾았다.

이동인처럼 KBO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둔 건 아니지만, 포수로서 나름대로 능력을 인정을 받는 김재성,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구위에 김재성도 애를 많이 먹었다.

한국 야구에서는 빠른 볼이라고 해 봤자 145km를 넘지 못한다.

거기다 변화구는 떨어지는 공이 대부분, 포수는 주저앉으면서 공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벽을 쳐야 한다.

그런데 다카기의 공은 옆으로 휘고 꺾이고 아주 난리를 치는데, 이런 투수 앞에선 유격수처럼 몸을 날리는 수비가 필요했다.

이동인은 그걸 못하겠다는 입장, 그럼 나는 누구와 파트너를 이뤄야 하나. 다카기는 김재성을 낙점했다.

[김재성, 메이저리거의 선택을 받다]

[KBO의 신데렐라 되나?]

다카기의 선택에 한국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이동인은 KBO에서 공수를 겸비한 포수로 칭송을 받고 있다. 작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72, 홈런 19개, 61타점, 골든 글러브까지 수상했고 FA 계약으로 4년 57억을 받았다.

그에 비해 김재성은 연봉 1억 1천만 원에 타격 능력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편, 백업 포수로 국가대표에 입성한 선수가 메이저리그 최고 선발투수의 선택을 받을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말 그대로 왕의 선택을 받은 신데렐라, 하지만 관심을 받는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커졌다.

왜 하필 나였을까. 김재성은 다카기에게 수줍은 고백을 했다.

“왜 절 선택하셨어요?”

“마음에 드니까. 다른 설명이 필요해?”

미인에게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닌데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 다카기는 그런 후배의 목덜미를 가볍게 주무르며 관심을 표했다.

“네 수비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수준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나는 빈말 안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가다듬어서 한국 최고의 포수가 되도록 노력해.”

“메이저리그도 갈 수 있을까요?”

“그건 조금 어렵겠다. 수요가 없거든”

다카기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동양야구에서 원하는 선수는 1순위가 투수, 그 다음이 홈런 타자다.

나머지는 등급 외, 그런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영입할 이유가 없다. 딱히 김재성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그게 현실, 그래도 한국야구 최고의 포수가 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다카기는 너는 가능성이 있다며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야, 네 동생 도대체 뭐냐?”

물론, 이동인은 다카기의 행보에 인상을 구겼다.

내가 한국 국가대표 팀으로 짬밥이 몇 년인데, 이렇게 대놓고 무시해도 되는 건가. 그렇다고 직접 뭐라고 할 순 없고 그나마 만만한 김인호를 붙잡았다.

하지만 김인호도 짬밥이라면 밀리지 않는 편,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되물었다.

“내가 그 자식한테 김재성 선택하라고 한 게 아니잖아? 감독도 허락한 일인데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냐?”

김인호는 친척 동생이 자신의 사회적 입지와 지위를 이용해 팀을 좌지우지할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말 그런 성격이라면 벌써 소속 팀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나왔을 거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아무 말도 없지 않았나.

거기다 메이저리그에서 200승을 넘긴 전설 앤디 프론스키는 다카기에게 아들의 양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이 에피소드는 이미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일,

제멋대로 굴고 팀 분위기까지 해치는 선수에게 자기 아들의 미래를 맡기는 부모가 있나.

오히려 사회적 입지를 악용하고 있는 선수는 이동인, 국가대표 주전 포수는 내가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건방진 생각에 동조할 이유는 없었다.

[다카기, 한국 대표 출전 확정]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1월 10일, 한국 국가대표팀은 일본 오키나와로 둥지를 옮겼다.

날씨가 워낙 추운 한국은 훈련을 하기엔 부적합한 장소, 사방에서 몰려온 팬들과 취재진이 뒤섞이면서 주위는 발 디딜 틈도 찾기 어려웠다.

“이 배신자!! 당장 한국으로 꺼져라!!”

“너는 이제 이곳에 돌아올 수 없어!!”

“거기 조용히 안 해?!!”

“누가 배신자라는 거야?!!”

몇몇 일본 팬들은 다카기의 한국 출전을 비난했다.

차라리 미국 대표로 뛸 것이지, 한국이 웬 말인가.

하지만 다카기는 여론을 통해 자신이 왜 한국 대표로 뛰는지 충분히 설명한 입장, 여기에 얼마 전 그동안 일본 지역사회에 기부한 돈만 20억 엔이 넘는다는 기사가 떴다.

일본을 배신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돈을 사회에 기부했나? 다카기 팬들이 반발하면서 주위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그러건 말건 다카기는 무시하고 훈련에만 집중, 쉬는 시간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 선수들과의 생활은 어떤가요? 지낼 만한가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그냥 평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눈에 띄는 선수가 있나요? 훗날 메이저리그에 진출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이어지는 질문에 다카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새벽까지 술과 담배를 즐긴 선수들이 있다고 말한다면 기자들이 믿겠나.

심지어 오늘은 오후 1시에 열린 훈련, 술을 마실 여유가 어디에 있나. 그런데 이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미국 현지에선 상상도 하기 어려운 광경이라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나 여기 괜히 온 것 같아. 이게 솔직한 마음이야.’

운동선수는 몸 관리가 생명, 이런 환경에서 무슨 메이저리거가 나오겠나. 그건 잘 모르겠다며 질문을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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