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3)
“시선을 조금 아래에 두는 게 좋지 않겠어?”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5차전을 앞두고 다카기는 코치와 함께 피츠버그의 선발투수 잭 스튜어트를 분석했다.
투수가 타자 분석할 시간도 없는데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투수라도 타석에서 팀에 도움은 되는 법, 뭣보다 다카기는 스튜어트에게 관심이 있었다.
스튜어트는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을 던진다.
Late Break라고 해서 타자가 공을 인식하고 휘두르는 구간이 있다. 각 구단의 분석원은 이때 일어나는 공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선수들에게 알려주는데, 스튜어트의 체인지업은 말 그대로 치트키였다.
배트를 휘두를 때, 타자가 생각한 것보다 평균 8인치 정도 떨어지는 궤적, 이 정도면 좌우 무브먼트가 문제가 아니다.
타자가 생각한 궤적보다 20cm 정도 더 떨어진다는 건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스튜어트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 중지가 공에 걸쳐 있는데, 다른 손가락은 확실히 펴진다.
전형적인 체인지업 그립, 그런데 손목 움직임이 빠른 볼과 비슷해 실전에서는 거의 구별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회전축이 되는 몸통 움직임이 빠른 볼을 던질 때와 거의 차이가 없으니, 눈으로 보고 구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이 선수는 절대 공략할 수 없는 투수인가?
다카기는 체인지업 투구법에 주목했다.
“체인지업을 스트라이크 존 낮은 쪽으로 던지고 있어. 타자들이 심리를 역이용 하고 있는 거야.”
스튜어트는 올 시즌 바깥쪽 낮은 코스로 체인지업을 166개 던졌다. 그리고 그중 100개를 타자가 따라갔는데,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앞서 말했지만 스튜어트의 체인지업 낙폭은 상상 이상이다.
이렇다 보니 타자들은 의도적으로 시선을 낮게 하고 있고, 스튜어트는 그 허점을 파고들어 체인지업을 확실히 빼주고 있다.
그렇다면 빠른 볼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올 시즌 스튜어트는 전체적으로 공을 낮게 던진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공 피안타율은 0.286, 한가운데는 0.378, 바깥쪽 가운데 코스는 0.278을 기록했다.
공을 높게 던졌을 때 맞아나간다는 뜻, 몸 쪽 피안타율은 0.214로 괜찮은 편이지만 쉽게 던지긴 어려울 거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오지 않았나.
전체적으로 낮게 투구를 하는 스튜어트, 그리고 체인지업을 던질 때는 더더욱 낮게 던진다.
타자가 의도적으로 시선을 낮출수록 유인구에 말려들기 마련, 일반적인 투수라고 생각하고 치는 게 정답이었다.
“이것도 주목해야겠네.”
영상을 계속 돌려보던 다카기는 눈에 띄는 점 하나를 더 포착했다.
스튜어트가 커브를 던질 때의 모습, 볼이 다른 구종을 던질 때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릴리스 된다는 걸 눈치챘다.
검지와 약지 사이가 벌어지는 것도 포인트, 체인지업과 달리 커브는 쓸만한 구질이 못 된다. 그걸 아니까 본인도 체인지업에 집중하는 거겠지, 하지만 혹시 어떻게 될지 누가 아나.
커브는 실밥이 빨간색 줄을 띄며 타자 쪽으로 날아온다.
그에 반해 패스트 볼은 타자 쪽으로 날아올 때 거의 흰색, 가끔 빨간 점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희멀건 놈이 날아오면 빠른 볼이라고 봐도 좋다.
구별이 확실한 구종, 날아온다면 마다할 생각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대강 끝낸 분석, 준비를 마친 다카기는 불펜에서 몸을 풀며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자, 오늘 피츠버그는 잭 스튜어트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올 시즌 12승 9패, 평균자책점 3.33, 197과 2/3이닝 동안 볼넷 62개, 탈삼진은 176개를 기록했습니다.”
“빠른 볼,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죠. 하지만 커브는 던질 줄 아는 수준이고 체인지업이 주무기입니다. 슬라이더도 괜찮은 편이지만 구사율은 높지 않죠.”
1회 초 보스턴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주앙 고메즈는 시선을 높게 유지했다.
낮은 공은 철저하게 골라 치고 높은 공은 적극적으로 나가는 게 정답, 초구부터 낮은 공이 들어왔다.
‘역시 거의 비슷하네.’
체인지업도 패스트볼처럼 거의 흰색으로 날아오는데, 가끔 빨간 점이 보여 타자를 더 헷갈리게 한다.
눈에 보이는데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거기다 스튜어트는 공에 비스듬히 회전을 줘서 스크류 볼처럼 역회전이 걸리게 체인지업을 던진다.
중지와 약지로 공을 잡기 때문에 공을 회전하는 힘이 거의 전달되지 않아 회전수가 줄어드는 것, 회전수가 줄어든 만큼 공은 훨씬 더 많이 떨어진다.
이래저래 체인지업은 공략하기 어려운 선수, 높게 들어오는 빠른 볼만 노렸다.
“몸 쪽,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초구 체인지업을 보여주고 몸 쪽으로 찌르는, 스튜어트가 자주 쓰는 볼 배합이죠. 보스턴이 스튜어트를 많이 상대해보진 못했겠지만, 1차전에서 한 번 붙어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히 잡혔을 겁니다.”
스튜어트는 심리적으로 약간 몰렸다.
빠른 볼 위력이 생각만큼 위력적이질 않으니, 바깥쪽 낮은 공이나 몸 쪽 코스에 타자들이 반응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안 통한다면?
스튜어트는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등판, 6이닝 1실점을 하며 제 몫을 다했지만 8이닝 무실점 투구를 한 다카기에 막혀 패전투수가 됐다.
5차전 상대는 바로 그 다카기, 내가 여기서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 오늘 지면 내일이 없는 피츠버그, 고독한 에이스는 책임감을 짊어졌다.
‘걸렸다.’
3구는 높은 볼, 이걸 기다리고 있던 고메즈는 스윙을 돌렸다.
2루수 쪽으로 갔지만 힘이 실린 타구는 내야를 통과, 선두 타자가 출루하면서 보스턴 벤치는 환호에 휩싸였다.
“자, 이제 제임스 올슨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18타수 4안타, 타율 0.222, 홈런 없이 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슬라이더를 좀 더 활용하겠죠. 어차피 서로의 장단점은 다 알고 하는 게임입니다.”
좌완과 좌타의 대결, 슬라이더를 좀 더 활용하는 게 정석이지만 스튜어트의 슬라이더 활용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대신 역회전을 줄인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던지는 편, 패를 보여주고 하는 이 카드 게임은 어떤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
홈팬들은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스튜어트를 응원했다.
따악 ~ !!
올슨은 바깥 쪽 낮은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밀어쳤다.
앞발을 홈 플레이트에 붙였다는 건 처음부터 그 코스를 노렸다는 뜻, 그렇다고 치기 쉬운 공은 아니었다.
1차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이렇게 보스턴은 차근차근 피츠버그를 몰아세웠다.
“다시 빠집니다. 스튜어트가 흔들리는데요.”
“이게 이 선수의 한계죠. 한 눈에 봐도 투수를 하기엔 체구가 너무 작잖아요. 체구가 작다고 빠른 볼을 못 던지는 건 아니지만, 타자를 압도하기엔 부족합니다.”
스튜어트의 빠른 볼 구속은 대략 92마일 정도, 구속이 전부는 아니지만 체인지업은 속구가 어느 정도 받쳐줘야 던질 수 있다.
빠른 볼과 체인지업의 구속 차이는 10km 정도, 이것도 엄청난 거지만 속구와 변화구의 간격이 20km 정도 되면 떨어지는 체인지업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아니면 다카기처럼 97마일 빠른 볼과 고속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도 방법, 하지만 스튜어트는 그런 축복 받은 신체를 물려받지 못했다.
빠른 볼이 받쳐주질 못하니 코너를 찌르고 볼넷이 많아지는 것도 단점,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공략 못 할 투수도 아니었다.
‘오늘은 쉽게 가겠군.’
한편, 보스턴의 다니엘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1차전과 달리 스튜어트를 잘 공략하고 있는 타선, 아웃 카운트 하나도 못 잡았는데 투구 수는 13개다.
노 아웃에 주자 1 - 2루, 여기서 디즌이 한 건 하면 그대로 경기 종료 아니겠나.
팔짱을 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여유를 부렸다.
“다시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역시 낮은 공에 배트가 안 나가고 있어요. 잡아 줄 만한 공도 콜이 안 되고 … 이렇게 되면 스튜어트는 던질 공이 없는데요.”
오늘따라 낮은 코스에 인색한 주심, 하지만 이건 최신 스트라이크 존을 반영한 결과다.
예전에는 무릎 아래까지 스트라이크 콜을 줬지만 지금은 무릎 위쪽으로 올라온 스트라이크 존, 스튜어트처럼 낮게 던지는 투수들에게 불리해졌다.
작년 시즌 2.53을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올 시즌은 3.33으로 폭등 그리고 늘어난 볼넷, 그래도 어떻게든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는 일, 스튜어트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낮은 공을 구사했다.
따악 ~ !
“됐어!!”
유격수 정면, 3루를 거친 공은 2루를 지나 1루로 전달됐다.
스튜어트는 내심 삼중살을 기대했지만 1루에서 세이프 판정이 내려지며 2사 주자 1루가 됐다.
‘하아 ~ 그걸 내가 왜 건드렸을까’
한편, 1루에 안착한 알 다즌은 격한 한숨을 뿜어냈다.
계속 낮게 던지기에 한 번 나가봤는데 생각보다 더 떨어진 공, 경기 전에 이미 분석했던 패턴 아닌가.
순간의 욕심에 휘말려 망친 무사 주자 1 - 2루 기회, 대량득점을 기대했던 보스턴 벤치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지.’
불펜에서 몸을 풀던 다카기는 그러려니 하는 얼굴로 투구를 이어갔다.
생각대로 다 되면 인생이 얼마나 편하겠나. 그게 안 되니 삶은 고통의 연속, 그런데 생각대로 흘러가는 인생도 재미없다.
나는 은퇴 후에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은퇴 하고 사업한다고 까불다가 전 재산을 말아먹는 선수들도 있는데, 나도 혹시 늘그막에 돈을 벌기 위해 선수로 복귀하는 건 아닌지, 이미 몇 가지 사업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잘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인생, 평소처럼 덤덤한 얼굴로 마운드에 올라섰다.
“초구!! 잡아냅니다.”
“스튜어트와는 정반대의 투구스타일이죠. 한눈에 봐도 화끈합니다.”
다카기의 투구 스타일은 1차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고 변화구로 마무리, 하지만 오늘은 슬라이더가 아니라 체인지업을 적극 구사했다.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피츠버그 타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다카기는 고속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 그런데 오늘은 스튜어트처럼 역회전이 걸리며 낙폭을 살려주는 써클 체인지업을 던지고 있다.
빠른 볼도 엄청난데 그보다 25km 정도 더 느린 체인지업을 던진다?
체인지업은 다른 구종보다 디셉션이 중요한 편, 다카기의 체인지업 딜리버리는 패스트볼이나 슬라이더과 비교해 크게 다를 게 없다.
똑같은 자세에서 세 가지 구종이 튀어나오는데 구별을 어떻게 하나.
체인지업만 잘 던지는 스튜어트도 공략하기 어려운데, 피츠버그 타자들은 세 가지 구종 중 하나를 찍어 쳐야 하는 입장,
1차전보다 더 어려워진 시험지 앞에서 볼펜을 굴리는 짓은 반복됐다.
“따라 나옵니다!! 삼진!! 다카기가 산뜩하게 출발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농락이네요. 타자가 아니라 스튜어트에게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카기는 평소 스튜어트가 하는 투구를 그대로 재현했다.
빠른 볼을 낮게 던지고 체인지업을 더 낮게 던지는 패턴, 그런데 빠른 볼 구위가 받쳐주니 훨씬 더 효율적인 투구가 이뤄지고 있다.
스튜어트 입장에선 열불이 나는 도발, 어떻게든 저항해 봤지만 실력의 차는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