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15화 (315/361)

315화. 아낌없이 주는 선수 - (1)

‘내가 요즘 왜 이러지?’

ALCS 3차전을 앞두고 제임스 올슨은 타격 훈련을 반복했다.

갑자기 탄도가 낮아졌다고 해야 되나, 올 시즌 27홈런을 치며 나름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포스트 시즌 들어 죽어버린 장타력, 부진의 원인을 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자네 요즘 타구가 좌측으로 곧장 가잖아. 자연스러운 스윙을 해야 한다고”

이때, 옆에 있던 코치가 충고를 건넸다.

올슨은 좌타자, 풀 히팅이 되면 당연히 타구는 우측으로 간다.

그런데 타구가 좌측으로 간다는 건 의도하지 않은 밀어치기가 된다는 뜻, 이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요즘은 인 앤 아웃 스윙을 강조하는 시대, 그런데 이게 만능이 아니다.

짧게 돌아 나온 스윙이 배트 스피드를 끌어올리고 타구를 강하게 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 가능한 일, 아무리 배트 스피드가 빨라도 스윙거리가 확보가 안 되면 타구가 안 뻗는다.

뭣보다 짧게 돌아 나온 스윙이 몸에서 멀어지면서 퍼지는 스윙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올슨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의도하지 않은 밀어치기의 원인은 과도한 인 앤 아웃 스윙이 문제, 코치는 자연스러운 스윙을 강조했다.

‘한소리 해줘야겠네.’

하지만 잘 안 되는 분위기, 다카기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공 하나 줘 봐.”

갑작스러운 에이스의 타격 시범, 어쨌든 다카기는 불펜 코치가 던져준 공을 외야로 날려버렸다.

한눈에 봐도 시원한 풀 스윙, 다음 공도 힘껏 잡아당겨 담장 너머로 보냈다.

시범을 보여줬으니 그다음은 비결을 알려줘야겠지, 다카기는 스윙을 억지로 바꾸지 말고 겨드랑이에 여유를 주라는 조언을 했다.

“스윙이 짧게 돌아 나오는 게 문제야? 그럼 이렇게 하면 되잖아?”

정말 잘 치는 선수들을 보면 하체를 먼저 리드하는데, 이때 겨드랑이 사이에 여유를 주면서 스윙 거리를 확보한다.

그리고 임팩트 순간, 겨드랑이가 몸에 붙으면서 콤팩트 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스윙으로 이어진다. 이게 바로 인 앤 인 스윙, 인 앤 아웃 스윙보다 한 단계 더 고차원적인 스윙이다. 타구를 센터 쪽으로 보내는 타자들의 전형적인 모습, 그걸 투수가 해내고 있으니 지켜보는 입장에선 기가 막혔다.

“좋은 스윙은 좋은 자세에서 나오는 거야. 너는 스윙만 신경 쓰니까 자세가 무너진다고”

“알았어.”

올슨은 다시 배트를 잡았다.

인 앤 아웃 스윙에 집중하느라 겨드랑이가 몸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조금 떨어뜨려 놔도 임팩트 순간에 붙는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정말 중요한 건 자연스러운 리듬, 스윙보다 자세에 집중했다.

“오늘 자네가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건 어떤가?”

“됐어요.”

타격 코치는 다카기에게 슬쩍 농담을 건넸다.

실제로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고 요즘 타자들 치는 모습 보면 답답할 정도, 하지만 다카기는 그건 내 일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자, ALCS 3차전, 원정팀 보스턴의 선공으로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주앙 고메즈, 이번 시리즈에서 타율 0.500, 홈런 1개, 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타격감이 아주 좋죠. 2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도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따악 ~ !!]

“초구 타격!! 2루수 옆을 빠져나갑니다!! 선두타자 안타!! 고메즈의 방망이는 오늘도 불을 뿜습니다!!”

“1억 달러 가치가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네요. 이제 이 선수 연봉 많이 받는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1루에 안착한 고메즈는 코치와 손뼉을 마주쳤다.

올 시즌은 타격도 잘 된 편, 타율은 0.271로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홈런을 17개나 치면서 장타력이 폭발했다.

포스트시즌 들어 정교함까지 갖추게 된 스윙,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FA 계약을 맺는 게 낫지 않았을까.

고메즈는 코치에게 1억 달러는 염가계약이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계약서에 사인한 건 자네야. 딴소리하지 말라고”

“알고 있어요. 그냥 해 본 소린데 너무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지 말라고요.”

농담을 끝낸 고메즈는 1루에서 멀어졌고, 이제 타석에는 제임스 올슨이 들어섰다.

포스트 시즌 들어 0.154로 부진하고 있는 올슨, 그래도 보스턴의 다니엘 감독은 정규시즌 27홈런 타자의 실력을 믿었다.

“바깥쪽, 지켜봅니다. 카운트는 노 볼 원 스트라이크”

“오늘은 신중하네요. 어제까지의 올슨이라면 배트가 나왔을 겁니다.”

올슨은 차분하게 다음 공을 기다렸다.

인 앤 아웃 스윙을 하게 되면서 바깥쪽 공을 적극적으로 칠 수 있게 됐는데, 그게 장타력 회복으로 이어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나친 인 앤 아웃 스윙이 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밀어치기가 되고 성적은 폭락, 스윙 궤적에 들어올 공을 기다렸다.

[따아악 ~ !!]

“오 ~ !! 이 타구는 멀리!! 우측!!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제임스 올슨의 투런 홈런!! 잠들어 있던 한방이 이곳에서 터집니다!! 스코어 2대 0!! 보스턴이 리드를 선점합니다!!”

“뉴욕은 이래저래 안 풀리네요. 홈에서도 분위기 반전에 실패한다면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겁니다.”

뉴욕 벤치는 침묵에 빠졌다.

보스턴을 물리치고 아메리칸 리그 1위를 확정지었을 때만 해도, 올해는 잘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ALCS에서 보스턴에게 2연패, 오늘도 지면 3패다. 거기다 시리즈 내내 침묵하고 있던 올슨의 한 방, 생각보다 충격은 컸다.

“후우 ~ ”

한편, 동료들과 세리머니를 마친 올슨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부진할 때는 숨도 못 쉴 만큼 답답함을 느꼈는데 이제야 좀 살아난 느낌, 부진 탈출에 도움을 준 다카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앞으로는 인 앤 아웃 스윙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스윙을 해야겠어.”

“그런데 너 마무리가 조금 안 좋았다.”

다카기는 맞장구 대신 잔소리를 택했다.

인 앤 인 스윙의 마무리는 피니시 동작, 임팩트가 되는 순간 몸과 어깨가 함께 회전해야 한다.

그래야 임팩트 직후 양팔을 쭉 뻗어주면서 더 자연스러운 스윙이 되는데, 올슨은 홈런을 때렸지만 마지막에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냥 잘 했다고 칭찬해 주면 안 돼?”

“나 은퇴하면 너한테 누가 관심이나 주겠냐? 잔소리도 고맙게 생각해라.”

은퇴라는 말에 올슨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면 다카기와는 이런저런 일로 엮였다. 도박을 직접 한 건 아니지만 지인들에게 보스턴에 돈을 걸라고 조언한 건 사실, 누가 뭐라고 하기 전까진 그게 잘못된 행동인지도 몰랐다.

또 다른 사건은 경기 중 에이스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던 일, 그때는 동료들에게 얻어맞을 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메이저리거의 품위, 부정하고 싶어도 다카기는 올슨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런 선수가 은퇴를 발표했을 때 마음이 편했을까. 한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너 은퇴하지 마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뛸 수 있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서 떠나려고 하는 건데?”

“내가 결정한 일이다. 더는 묻지 마라”

다카기는 냉정할 정도로 관심을 밀어냈다.

지난 9년 동안 나름대로 쌓아올린 경험치, 떠나는 몸이라면 같은 팀 선수들에게 다 주고 가는 게 좋지 않겠나.

그래서 요즘 틈만 나면 동료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주고 있다.

은퇴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밑밥을 깔아두는 작업, 올 시즌 우승하고 깨끗하게 은퇴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10년은 채워야 하지 않겠나, 지금은 은퇴라는 딱딱한 주제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경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3차전을 잡아낸 보스턴은 파죽지세로 4차전까지 접수, 통산 16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NLCS, 마지막까지 간다.]

한편 아메리칸 리그와 달리 내셔널리그는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워싱턴과 피츠버그의 경기, 전문가들은 워싱턴의 우위를 점쳤지만 피츠버그는 예상보다 끈끈한 조직력으로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이 무려 50년 전의 일, 피츠버그는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를 앞세웠다.

‘오 ~ 대단한데?’

10월 21일, 피츠버그는 7차전 승리를 거머쥐며 50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감격을 누렸다.

내심 워싱턴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던 다카기는 의외라는 반응, 여론은 기적이니 뭐니 하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 아닌가.

방심하지 않고 월드시리즈 1차전을 맞이했다.

통산 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도전, 휴식도 충분히 했겠다. 내일이 없는 투구를 선보였다.

“흘러나갑니다!! 삼진!! 다카기가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메이저리거도 마이너리거로 만들어 버리는 슬라이더죠. 참고로 다카기는 통산 우타자 피wOBA(가중출루율)가 0.180밖에 안 됩니다. 우타자는 이 선수 앞에서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죠.”

가중출루율은 타수 당 그 선수가 얼마나 공격에 기여를 했는지 나타내는 지수,

1920년대 이후 타자의 평균 wOBA는 대략 0.330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투수의 우타자 피 wOBA는 0.180, 이 정도면 리그 평균을 깎아 먹을 수준의 위용이다.

좌타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여전히 우타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메이저리그, 평범한 숫자지만 다카기의 위용을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그냥 서 있다 들어오는 것 같은데’

피츠버그의 감독 피트 올랜도는 아무것도 못하는 타선에 쓴 웃음을 지었다.

다카기가 우타자에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다고 좌타 라인으로 세우기 애매한 게, 다카기는 체인지업이라는 또 다른 결정구를 가지고 있다.

좌우타를 가리지 않는 공, 우타 중심으로 타선을 짜고 간간이 좌타를 배치해 투구 리듬을 흔들어 주려고 했는데, 계획은 1회부터 어긋났다.

아무리 좋은 투수라도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번갈아 던지는 건 어려운 일, 그런데 저 선수는 그 짓을 해내고 있다.

도무지 답이 없는 공, 다카기를 보유한 보스턴은 1승을 먹고 들어간다는 기사가 허풍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피츠버그는 1, 2회에 한 명도 주자를 밟지 못했고, 그 사이 보스턴은 2회 말 공격에 나섰다.

[따악 ~ !!]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득점!! 하위 타선이 폭발하면서 보스턴이 앞서나갑니다!!”

“이렇게 되면 경기 끝난 거나 다름없네요. 오늘 다카기는 한 점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그래도 혹시 모르죠. 3점만 따면 됩니다.”

올 시즌 유독 득점 지원을 못 받은 다카기, 3패를 당했는데 그 중엔 1실점 패배가 2번이나 있다.

반면 타선이 3점 이상을 지원한 경기에서는 무패, 존 올러우는 3점 무패론을 앞세웠다.

하지만 이날 보스턴 타선은 1득점에 그쳤고, 다카기는 8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브랜든 바이어가 9회 초를 마무리하며 경기 종료, 경기가 끝난 후 보스턴 기자들은 다카기의 승리에 필요한 지원은 1득점이면 충분하다는 허세 가득한 기사를 내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