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다시 용병으로 - (11)
[타키야마 요이치, 프로 통산 첫 퇴장]
8월 초, 다카기는 일본에서 날아온 후배의 소식을 접했다.
지난 8년 동안 퇴장 한 번 없었던 후배의 일탈,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일인가.
일본야구에서 퇴장은 선수의 불명예라는 인식이 강하다.
뭣보다 심판의 권위가 권위적이라 퇴장 자체를 용납하질 않는 분위기, 그래서 선수들은 이게 잘못된 판정이라는 걸 알고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잘못된 일, 다카기는 일본 야구에 일침을 날렸다.
“언제까지 선수가 퇴장당하는 게 불명예로 기록돼야 하는가? 선수와 심판은 동등한 관계다, 일신독립하여 일국독립한다는 말도 모르나?”
메이지 시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개인과 정부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존재로 봤다.
그리고 강한 국가란 학문에 힘쓰고 생업에 종사하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 무리를 이루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건 야구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언제부터 심판이 선수 위에 군림하는 존재였나, 잘못된 판정에 침묵한다면 그게 깨어 있는 선수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심판이 권위를 세우고 야구협회가 선수에게 벌금을 때려버리니, 일본에서 퇴장은 곧 불명예라는 딱지가 붙어버린다.
이러니 하나둘 침묵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심판과 야구협회의 권위만 높아지는 꼴, 다카기는 심판과 야구협회 모두 선수 위에 설 수 없는 존재라고 못을 박았다.
“선수는 심판과 동등한 존재이며 판정에 항의할 권리가 있다. 일본야구협회는 벌금을 부과하는 징계성 퇴장을 줄이고 단순 퇴장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자유롭게 항의를 할 수 있다. 선수들의 입지가 바로 서야 판정도 공정해진다.”
오랫동안 눈감아줬던 심판의 불합리한 권위, 이걸 견제하는 건 선수와 팬들이다.
입을 닫고 있는 게 성숙한 사회인가?
세계는 일본인들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다카기는 일본 사회를 정상적으로 보지 않았다.
불합리한 일에 입을 닫아버리고, 국민도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이게 일신독립하여 일국독립한다는 후쿠자와의 사상을 떠받드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가?
다카기는 일본 사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개 선수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를 호령하는 거물의 일침,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타키야마는 바로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울화통이 터져 죽겠는데 또 뭐라고 하면 논란만 반복되겠지,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이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다니, 당장 미국으로 달려가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나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야지 왜 가슴에 담아두고만 있냐?”
하지만 다카기는 후배에게 훈계를 이어갔다.
가만히 있으니까 선수들이 바보인 줄 아나, 다카기도 고교시절에는 잘못된 판정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와서 생각이 달라졌다.
“퇴장!!”
“뭐라고?!! 너도 퇴장!!”
여기서는 잊을만하면 항의와 퇴장이 난무한다.
그리고 다음 날 허허 웃으며 다시 나타나 경기를 하는 선수와 판정을 내리는 심판, 뭣보다 벌금이 부과되는 징계성 퇴장이 거의 없다.
그날 퇴장당하고 다시 나오면 그만,
다만 다카기는 타자의 머리를 노린 위협구를 몇 번 날렸다. 이건 단순 퇴장으로 넘어가긴 어려운 일, 그래서 출장정지 처분도 받았지만 우리 선수가 당한 보복으로 한 일이라 후회는 없었다.
“너 같은 스타 선수가 항의를 해야 다른 선수들도 항의한다. 앞으로도 할 말 있으면 해. 그게 문화를 바꾸는 거다.”
[알겠습니다.]
다카기는 여기에 한 가지 충고를 더 붙였다.
사회는 위에서부터 개혁되는 건가 아래에서부터 개혁되는 건가.
분명한 건 아랫사람들이 일어나도 위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위와 아래가 따로 놀면 그건 개혁이 아니라 피를 보는 폭력으로 이어지는데, 이건 역사적으로 증명된 일이다.
타키야마는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 이런 선수가 잘못된 판정에 항의를 하지 않으면 그 아래 선수들은 항의는 꿈도 못 꾼다.
위에서 끌어줘야 아랫사람들도 용기를 얻고 목소리를 내는 법, 다카기는 너 같은 스타 선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후배를 격려해줬다.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다. 나라면 이런 말은 절대 못할 텐데’
선배를 향한 타키야마의 존경심은 끝없이 치솟았다.
예전부터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격상됐다고 해야 되나.
한마디로 일본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존재감, 나도 이 정도 선수는 못 되더라도 따가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야구협회, 벌금 취소했다]
얼마 후, 일본에서 놀라운 소식이 날아왔다.
협회가 부과한 벌금과 출장정지가 취소된 것, 여기에 출장정지 조치도 단순 퇴장으로 바뀌었다.
이미 2경기를 결장했지만 타키야마의 명예가 회복된 조치, 반대로 제멋대로 판정을 남발하던 심판진의 권위는 산산조각 났다.
예전부터 이렇게 됐어야 했던 일, 이 사건으로 다카기는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NPB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했다.
“자기 은퇴하면 정치할 거야?”
“아니”
“해 봐, 배경도 괜찮고 목소리에 힘도 있잖아. 자기가 일본을 바꿀지 누가 알아?”
그날부터 키리코는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약을 올렸다.
말도 못하고 소심하게 학창생활을 보내던 날 바꿔준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남편, 키리코는 남편이 사람 -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봤다.
“나 놀리니까 재밌어?”
“놀리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권유하는 거야.”
“아이고 ~ 됐습니다.”
다카기는 아내의 장난을 뒤로하고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등판 일정이 없는 날, 평소처럼 더그아웃에 앉아 선수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나 오늘은 홈런 칠 것 같은데?”
“야, 말로만 하지 말고 좀 쳐 봐.”
다카기는 허세를 부리는 개리 우드에게 태클을 걸었다.
올 시즌 87경기에서 7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개리 우드, 신인 포수가 이 정도 공격력이면 정말 훌륭한 거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가 확 떨어졌다는 것, 4 ~ 5월에 6홈런을 치더니 이후 28경기에서 홈런 1개에 그치고 있다.
반면, 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존 포르투나는 작년 시즌, 콜 업 후 2달 만에 12홈런을 때려냈다.
공격력에서 확실히 차이가 나는 두 선수, 내년에 포르투나가 복귀하면 주전포수 자리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포르투나가 예전 기량을 회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보스턴은 유망주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팀, 개리 우드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진짜 친다니까. 느낌이 좋다고”
“그래, 별 기대는 안 하지만 기대는 해 볼게”
별 기대 안 한다는 태도에 개리 우드는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최근 장타가 너무 없는 것도 사실,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 볼!!”
주심의 콜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오늘 보스턴의 선발 투수는 댈러스 레이븐, 작년에는 부진했지만 올해는 10승 4패,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보스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 선수, 하지만 오늘은 제구가 애를 먹으면서 고전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짜증 게이지는 급상승, 4회까지 볼넷을 3개나 내주며 고전했지만 어찌어찌 막아내는 투구를 펼쳤다.
“야, 홈런 언제 나오는 건데?”
다카기는 4회 초를 마치고 돌아온 개리 우드에게 잔소리를 날렸다.
현재 스코어는 3대 2, 보스턴이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뭔가 한 방이 터져야 분위기가 확 기울 텐데, 홈런을 치겠다고 호언장담한 개리 우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번 타석에서 칠 거야.”
“빨리 쳐, 그래야 저 자식이 안심하고 퇴장당하지.”
불똥은 이제 레이븐에게 튀었다.
아까부터 판정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 레이븐, 하지만 팀이 앞서고 있으니 함부로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다.
여기서 한 방 터지면 마음 놓고 내려갈 수 있겠지, 레이븐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을 완전히 꿰뚫어 보다니, 듣기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자, 이제 보스턴의 4회 말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알 디즌,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볼넷으로 출루했습니다.”
“올 시즌 볼넷이 벌써 72개거든요. 이 페이스라면 128볼넷까지 얻어낼 수 있습니다.”
알 디즌은 올 시즌 출루율 메이저리그 전체 1위(0.458)를 달리고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2타석 중 1번은 출루, 타격도 0.326, 19홈런, 70타점으로 최상급이다.
중견수로 뛰면서 이 정도 타격이라면 역사에 남을 시즌 아닌가. 현재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33홈런 120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 전문가들도 올 시즌 유력한 MVP로 알 디즌을 꼽았다.
따아악 ~ !!
우측으로 밀어친 타구, 홈런을 직감한 알 디즌은 타구를 감상하며 천천히 1루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서둘러 2루로 진루, 하지만 중계플레이가 신속하게 이뤄지면서 1루에 만족해야 했다.
“우우 ~ 우 ~ !! 이 멍충아!! 우우 ~ 우 ~ !!”
이때 보스턴 더그아웃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범인은 다카기, 얼른 뛸 것이지 산책이 웬 말인가. 팔을 마구 돌리며 항의를 거듭했다.
“우우 ~ 우 ~ !!”
이에 질세라 야유에 합류하는 선수들,
다카기 다음으로 인지도가 있는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디즌은 피식 웃고 넘어갔다.
“자, 이제 베논 리퍼드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는 아직 안타가 없고 시즌 타율은 0.276까지 하락했습니다.”
“그래도 한 방이 있는 선수죠. 괜히 디즌 다음에 배치된 게 아닙니다.”
[따악 ~ !!]
“말씀드리는 사이!! 초구를 받아치는군요!! 좌익수 옆을 빠져나갑니다!! 1루 주자는 그사이 2루를 지나 3루!! 홈까지 내달립니다!! 추가 득점!! 보스턴이 4대 2로 앞서나갑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해선 안 되죠. 여기서 더 몰아붙여야 합니다.”
동료들이 더그아웃에서 축제를 벌이는 사이, 개리 우드가 타석에 들어섰다.
시즌 성적은 타율 0.268, 홈런 8개, 38타점, 그렇게 눈에 띄는 성적은 아니지만 방심할 타자도 아니라 템파베이 배터리는 신중을 거듭했다.
따아악 ~ !!
“어?!!”
본인이 치고도 놀란 타구, 홈런을 확신한 개리 우드는 1루로 달려 나가며 한 선수를 지목했다.
“봤지?!! 봤지?!! 아니 왜 안 봐?!!”
다카기는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고, 개리 우드는 얼른 저거 보라며 항의를 거듭했다.
하지만 다카기는 끝까지 무시, 레이븐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너 이제 퇴장당해도 되겠다.”
“됐어. 마지막까지 던져 볼래.”
결국 레이븐은 5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5회도 못 채우고 어떻게 승리를 거두겠나.
다카기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