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10화 (310/361)

310화. 다시 용병으로 - (10)

“저기 오는 것 같은데요.”

이곳은 올스타전이 열리는 애틀랜타, 행사장 입구에 자리 잡은 리포터는 점차 뚜렷해지는 존재감에 관심을 보였다.

올 시즌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다카기의 올스타전, 팬들도 큰 관심과 환호를 보냈다.

“잠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지만 다카기는 잠시 리포터의 말을 끊었다.

솔직히 이번 올스타전의 주인공은 J.D 아사로와 존 미드키프 감독이다.

아사로는 원래 세인트루이스 소속이었지만 애틀랜타로 트레이드 됐고 이곳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미드키프 감독도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커리어를 마무리, 하지만 다카기는 내년에 은퇴를 하는 입장이다.

올해 퇴장하는 것도 아닌데, 관심이 쏟아진다면 두 사람에게 돌아갈 관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다카기는 필요 이상의 관심은 거부했다.

“올해가 제 마지막 올스타전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년에도 이 자리에 설지 모르니까요.”

“하하 ~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전반기 최고의 투수는 본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리포터는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올 시즌 전반기 최고의 투수는 누구였을까 이 주제는 애틀랜타 현지에서 제법 큰 화젯거리다.

■ 다카기 하루요시(보스턴)

= 15경기, 5승 3패, 평균자책점 1.82, 105이닝, 볼넷 14개, 탈삼진은 140개, 피안타율 0.198, 피출루율 0.217, 피장타율 0.252

■ 웨인 클린턴(애틀랜타)

= 15경기, 6승 1패 평균자책점 1.90, 99와 1/3이닝 볼넷 40개, 탈삼진 120개, 피안타율 0.158, 피출루율 0.271, 피장타율 0.241

애틀랜타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웨인 클린턴,

이 정도면 다카기와 견줄만한 선수 아닐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선수를 비교하는 건 실례라고 선을 그었다.

일단 웨인 클린턴은 피안타율이 0.158밖에 안 됐지만 높은 볼넷 때문에 피출루율은 다카기보다 훨씬 높다.

그래도 120개나 되는 삼진을 잡았다는 건 구위가 그만큼 받쳐준다는 거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140개를 잡아낸 다카기는 뭔가.

애틀랜타 팬들은 클린턴을 다카기와 동급의 선수로 올려놓고 싶었지만, 다른 지역 팬들의 반응은 싸늘, 그렇다면 다카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최고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이 흘러나왔다.

“이곳은 애틀랜타입니다. 저는 일개 손님일 뿐이죠. 손님이 집주인 앞에서 거드름 피우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은 넣어두시죠.”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지만 다카기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대접을 받는 건 보스턴이면 충분, 여기서 환대를 받는 건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저기요, 그거 실례되는 질문 아닌가요?”

그런데 이때 다카기의 장남 타다요시가 리포터에게 적극 항의했다.

여기가 보스턴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메이저리그에서 대단한 업적을 쌓은 선수다.

그렇다면 그 입지를 존중해 줄 것이지, 전반기 최고의 투수가 누구였냐고? 상당히 불쾌했다.

“솔직히 우리 아버지가 클린턴보다 훨씬 위대해요. 그러니까 그런 실례되는 비교는 하지 말아주세요. 아버지, 우리 얼른 가요.”

화가 난 타다요시는 아버지 손을 잡고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전투력이 높은 건지, 다카기는 아직도 씩씩거리는 아들을 다독였다.

“넌 내가 다른 선수랑 비교당하는 게 싫니?”

“비교할 걸 비교해야죠. 어딜 감히 … ”

“어머 ~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럴까.”

사태를 관망하던 키리코도 아들을 다독였다.

얼마나 분한지 눈물까지 보이는 타다요시, 아홉 살이나 된 녀석이 그깟 일로 왜 눈물을 보일까.

다카기는 아들을 번쩍 안아 올렸다.

떠올려 보면 나도 어린 시절 잘 흥분하는 편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조금 괜찮아졌는데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

남자가 그까짓 일로 뭘 우냐고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말없이 안아주기만 했다.

‘이러다 은퇴하는 날은 펑펑 울겠네.’

나는 괜찮은데 그날 아들이 대성통곡하는 거 아닐까.

이 녀석을 다독이는 방법은 내일 마운드에서 최고의 투구를 하는 것뿐, 다카기는 간만에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네 가족은 어디에 있어?”

“호텔에 있어. 저녁은 룸서비스로 해결한대”

“아니 왜?”

올스타 전야제가 끝난 후, 다카기는 친분이 있는 선수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아직 심기가 불편한 아들을 데리고 와 봤자 분위기만 칙칙해질 뿐, 혼자 자리에 나온 다카기는 친구들 앞에서 자초지종을 털어놨다.

“그건 리포터가 잘못했네. 나라면 주먹을 날렸을 거야. 솔직히 클린턴이 너와 비교될 레벨은 아니지”

빈센트 맥킬립은 타다요시의 편을 들어줬다.

말리진 못할망정 오히려 부추기다니, 다카기는 역시 이 자리에 아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건 정답이었다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내일은 좀 강하게 나올 수도 있다.”

“강하게 나온다니?”

“우리 아들 심기가 불편하거든, 달래주려면 희생양이 필요해.”

올스타전에서 설렁설렁 뛰는 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죽자 살자 달려드는 선수도 없다.

적당히 즐기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만, 하지만 다카기는 내일 진심으로 투구할 테니, 너희들 모두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설마 몸 쪽 공 던지는 건 아니지?”

“그것만은 참아 줘라. 그냥 아웃 당해줄게”

“농담 그만해, 나 지금 진심이다. 그렇게 알아 둬”

다음 날, 다카기는 예고대로 진지한 자세로 마운드에 올랐다.

내가 언제까지 아들에게 위대한 아버지로 남을 수 있겠나. 언젠가는 스스로 일어서야겠지, 그래도 아들은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다.

아버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겠지 않겠나, 나는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줬다.

‘장난이 아니구나.’

1회 말 내셔널리그 팀의 공격,

선두 타자로 나선 빈센트 맥킬립은 몸 쪽 빠른 몸에 움찔했다.

다카기와 맞붙어 본 건 3타석뿐, 잠깐 보스턴에서 함께 뛰었지만 맥킬립은 바로 애리조나로 트레이드됐다.

그러다 다시 보스턴에 컴백했다가 한 경기도 못 뛰고 세인트루이스로 트레이드, 지금은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있다.

커리어 대부분을 내셔널리그에서 뛰었고 소속 팀이 포스트 시즌과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다카기와 얼굴을 마주한 건 올스타전이 전부다.

예전엔 이렇게까지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들의 눈물이 저 녀석의 승부욕을 깨워버린 걸까.

이러다 은퇴 번복하고 계속 뛰는 건 아닌지, 일단 다음 공에 집중했다.

[따악 ~ !]

“파울입니다.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지금은 슬라이더죠. 몸 쪽으로 붙이고 바깥쪽에 걸치는, 전형적인 패턴이지만 대응이 쉽진 않습니다.”

다카기는 98마일 빠른 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맥킬립은 심심하면 유니폼을 갈아입지만 그저 그런 선수라면 올스타에 뽑혔겠나.

지난 9년 동안 눈에 띄지 않지만 꾸준하게 커리어를 적립한 선수, 통산 성적은 타율 0.282, 홈런 199개, 779타점이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93, 홈런 17개, 51타점, 전력을 다해 눌러버렸다.

‘저 자식, 진심이었네.’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돌린 맥킬립은 씁쓸한 얼굴로 돌아섰다.

처음부터 봐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저 녀석과 제대로 한 판 붙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공 4개 만에 삼진이라니, 저 녀석은 클린턴과 비교될 대상이 아니라는 걸 재확인했다.

“자, 이제 타석에는 제이슨 홉킨스가 들어섭니다. 애틀랜타 소속, 올 시즌 타율 0.310, 홈런 19개, 58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첫 올스타전 출장이죠. 다카기를 상대로 장타를 치겠다고 선언했는데, 일단 지켜보시죠.”

몸 쪽 볼에 놀란 홉킨스는 타석에서 벗어났다.

옆으로 휘면서 살짝 가라앉는 볼, 슬라이더였지만 타자 눈엔 빠른 볼로 보였다.

“슬라이더였어?”

“응”

“아 … ”

포수와 잡담을 나눈 홉킨스는 공 하나로 다카기의 무서움을 이해했다.

메이저리그에는 수많은 마구가 존재하지만 다카기의 슬라이더는 그중에서도 독보적,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92마일 이상을 찍은 슬라이더는 744개다.

그 중 다카기가 던진 게 472개,

무브먼트도 뛰어나지만 빠른 볼과 구속 차이는 3마일 정도라 타자가 눈으로 보고 구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올 시즌 140탈삼진을 잡았는데 그 중 53개를 슬라이더로 잡았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거기다 슬라이더 피안타율은 0.173, 홉킨스는 눈뜬장님이 됐다.

“이거 슬라이더였지?”

“아니, 빠른 볼인데?”

헛스윙을 돌린 홉킨스는 다시 포수와 잡담을 나눴다.

눈으로 보고 치려니 더 헷갈리는 공,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고 그대로 돌려버렸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카기가 두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는군요!!”

“지금도 슬라이던데 떨어트렸죠. 느린 슬라이더입니다.”

빠른 볼과 슬라이더 조합에 낙엽처럼 쓸려나가는 타자들, 1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한 다카기는 덤덤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발을 들였다.

“2회에도 나갈 건가?”

“일단 지켜보고요.”

다니엘 감독이 교체를 권했지만 다카기는 상황을 지켜봤다.

클린턴이 2회에도 마운드에 오른다면 물러설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클린턴은 1회만 던지고 교체, 한 이닝 더 던질 수도 있는데 후반기를 위해 힘을 아껴두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힘을 아낄 뿐, 누가 진짜 메이저리그 최강인지 승부는 후반기에 가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무리한 올스타전 등판, 다카기는 헤드폰을 끼고 해설위원과 잡담을 나눴다.

[어제 당신 아들이 리포터의 무례한 질문에 발끈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화가 많이 나 있나요?]

“네, 달래주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민망한 질문, 그래도 프로답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클린턴이 당신과 비교될 선수라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비교되든 말든 별 관심 없었는데 지금은 좀 기분이 나쁘네요.”

[기분이 나쁘다고요?]

“네,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들은 잠자는 사자를 깨운 겁니다.”

은퇴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심기를 건드리나.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밟은 애틀랜타, 올 시즌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면 확실하게 밟아주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간만에 투지가 끓어올라서 좋았습니다. 잘 하면 현역 생활이 조금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오? 지금 은퇴를 번복하시는 겁니까?]

“은퇴는 제가 정하는 거지 당신들이 결정할 게 아닙니다. 공을 던질 이유가 생겼다면 더 던질 뿐이죠.]

이 인터뷰에 메이저리그는 들썩거렸다.

아들의 눈물 덕분에 공을 더 던질 이유가 생겼다니, 다카기의 은퇴를 내심 기대하고 있던 보스턴의 경쟁자들은 발끈했다.

알아서 기어들어 가겠다는 사자의 꼬리를 밟아 심기를 건드렸으니, 그 피해는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반면 보스턴 팬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타다요시를 칭찬했다.

아버지의 꺼진 승부욕에 불을 붙여준 기특한 녀석, 마침 야구를 하고 있다니 이대로 잘 자라서 제2의 다카기가 돼 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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