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01화 (301/361)

301화. 다시 용병으로 - (1)

[거래의 시즌, 윈터 미팅 시작됐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12월 9일, 뉴욕에서 베이스볼 윈터 미팅이 시작됐다.

구단 관계자, 에이전트, 언론인 등이 모여 4일 동안 야구와 관련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 그런데 단순한 친선 모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윈터 미팅에서 성사된 계약도 적지 않은 편, 최근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제임스 콜튼은 올해 최대급 FA 선수 2명을 손에 쥐었다.

이 패를 잘 흔들어서 성공적인 계약을 끌어내야 다른 고객도 내게 관심을 보이겠지, 콜튼 뿐만 아니라 다른 에이전트에게도 윈터 미팅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이게 누구신가, 고객 잘 둬 출세한 친구 아냐?”

이때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콜튼의 귓가를 맴돌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때 NBA 구단주였던 조 노리스, 4년 전 구단 지분을 매각하고 스포츠 에이전트로 전직했지만 어쨌든 에이전트 세계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이다.

야구, 축구, 농구까지 노리스의 손을 거쳐 간 선수만 30명, 겨우 4년 만에 이렇게 많은 선수의 계약을 이끌어 냈다는 건 그만큼 수완이 좋다는 거겠지.

하지만 직설적인 화법과 상대를 도발하는 말투 때문에 인간적으로 좋은 평가는 못 받았다.

“다카기가 나와 함께 했다면 4억 5천만 달러는 받을 수 있었을 거야.”

조 노리스는 제임스 콜튼을 고객 잘 만나 출세한 인간이라고 놀려댔다.

하지만 에이전트는 원래 선수 덕을 보고 사는 존재,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낼수록 에이전트가 구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에이전트가 선수 가치를 활용하는 방식도 중요한 법, 콜튼은 그동안 나름대로 수완을 발휘하며 13년 3억 9천만 달러, 그리고 9개의 광고계약을 다카기에게 안겨줬다.

이런 내가 선수 잘 만나 출세한 인간이라니, 제임스 콜튼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자네는 올해 대형 급 FA 선수를 몇 명이나 쥐고 있나?”

“뭐 … 음 … ”

“능력 있는 선수는 능력 있는 에이전트를 고르는 법이지, 자네 수완도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방 먹은 조 노리스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반격할 수 있는 카드가 없을까. 노리스는 툭 튀어나온 콜튼의 배에 주목했다.

“배가 많이 불렀군, 아이가 태어나면 뭐라고 이름을 지을 건가?”

이제는 체형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건가, 하지만 천성적으로 화를 잘 못 내는 콜튼은 씩 웃으며 답을 했다.

“아들이면 콜튼이라고 짓고 여자라면 마리아(콜튼의 아내)라고 지을 거야, 유산되면 노리스라고 부를 생각이네.”

또 한 방 먹은 노리스는 침묵, 경쟁자를 떨쳐낸 콜튼은 다른 구단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카기 좀 우리한테 보내줄 수 없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뉴욕의 단장 로버트 아담스는 콜튼에게 실현 불가능한 농담을 던졌다.

2009년 이후 18년 동안 우승이 없는 뉴욕, 올 시즌도 ALCS까지 진출했지만 패배하면서 통산 27번째 우승은 다음 시즌으로 미뤄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월드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을까. 아담스 단장은 다카기를 데려오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8년 동안 6번이나 우승을 이끌어낸 철벽의 에이스, 그 활약은 올 시즌도 건재했다. 문제는 보스턴이 다카기를 내줄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 그래도 에이전트가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분위기를 만들어 주면 뭔가 일이 성사되지 않을까.

하지만 콜튼은 어림없는 소리라며 손을 저었다.

상대는 대학시절 동기지만 이건 사업이 걸린 일, 아무리 친구라도 사업을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왕이 날 해고할거야. 꿈 깨라고”

“그럼 수더랜드 그 친구를 찔러 보라고, 뭘 원하는지 알아야 우리도 대가를 지불할 거 아닌가.”

제임스 콜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친구는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진심인가, 뉴욕과 보스턴이 어떤 사이인지 모르는 야구팬은 아무도 없다.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기 때문에 트레이드도 잘 안 하는 편, 양 팀이 선수를 맞교환 한 건 무려 12년 전, 그 정도로 서로 교류가 없다.

‘버리는 카드라도 너한테는 못 줘.’

‘나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방출하고 말지’

이런 적의에 가득 찬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는데 팀의 주축 선수를 팔아넘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거기다 다카기는 이제 보스턴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런 선수를 보스턴이 뉴욕에 내줬을 때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폭동이 안 일어나면 다행, 콜튼은 꿈 깨라는 의미로 수더랜드 단장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었다.

“이 친구가 다카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합당한 대가도 지불할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한 말씀 해주시죠.”

콜튼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수더랜드 단장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다카기를 노리겠다니, 뉴욕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숀 스팸에 앤드류 브루스터, 제레미 브라운을 준다면 생각해 보겠네.”

“그건 좀 무리한 요구 아닌가?”

“아니, 누구도 그렇게 생각 안 할걸?”

다카기는 올 시즌 WAR 9가 넘는 대 활약을 펼쳤다.

그렇다면 뉴욕의 주축 3인방의 활약은 어땠을까, 일단 숀 스팸은 올 시즌 타율 0.271, 홈런 41개, 113타점을 올렸다.

정확도가 다소 흔들리며 고전했지만 2년 연속 40홈런을 넘기며 3억 달러를 받는 체면치레는 했다.

다만 수비에서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1루수 부문 최다 실책을 저질렀다는 게 흠, 그래도 매력적인 거포라는 건 분명하다.

앤드류 브루스터는 올 시즌 19승을 올린 뉴욕의 히트 상품, 뉴욕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라 트레이드는 절대 불가능하다.

제레미 브라운도 2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수준급 내야 자원,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의 가치는 그 세 명을 능가한다며 콧대를 세웠다.

‘그냥 못 준다고 할 것이지’

로버트 아담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보스턴이 다카기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했으니, 미련은 두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얼마든지 있어. 내가 소개시켜 줄까?”

이 틈에 제임스 콜튼은 장사에 나섰다.

다카기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 하지만 지금 시장에 나온 수준급 선수는 얼마든지 있다.

선발투수가 필요하다면 올 시즌 애리조나에서 13승 9패, 평균자책점 3.07을 기록한 마이클 코너웨이도 있다.

5년 1억 1천만 달러를 생각하고 있는 제임스 콜튼, 하지만 로버트 아담스는 너무 비싸다며 발을 뺐다.

“아니, 다카기를 사겠다는 사람이 코너웨이가 비싸다고 하면 어쩌나?”

“그 친구는 우리가 살 거야. 절대 저기에 팔지 말라고”

수더랜드 단장이 끼어들면서 테이블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보스턴도 선발보강이 필요한 입장, 2년 전 숀 스팸을 두고 뉴욕과의 영입 경쟁에서 패배했지만 이번만큼은 지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자네가 사겠다니까 갑자기 구미가 당기는데?”

“그래? 그럼 올해도 한 번 붙어보자고”

수더랜드가 코너웨이 영입에 관심을 보이자 아담스도 맞불을 예고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두 구단이 영입경쟁을 벌이면 선수 가치는 더 오르겠지, 은근 이런 전개를 기대하고 있던 제임스 콜튼은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 * *

‘또 졌네, 단장 요즘 왜 이래 이거?’

해를 넘긴 1월, 일본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다카기는 보스턴이 뉴욕과의 영입경쟁에서 또 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2년 전, 숀 스팸을 뉴욕에게 내준 건 당연했다.

당시 보스턴은 다카기 - 알 디즌에게 5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한 탓에 숀 스팸까지 영입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입장이었다.

거기다 타선이 약했던 것도 아니라, 보스턴은 여론전을 벌이며 숀 스팸의 몸값만 높여놓고 뒤로 빠져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무너진 타선과 투수진, 지금 있는 선수들이 예전 기량을 회복한다면 다행이지만 외부 영입으로 전력을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 그 수완 좋은 수더랜드 단장이 코너웨이를 뉴욕에 넘겨줬다니,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

‘뭐 … 다른 대안이 있겠지?’

그래도 다카기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선수를 영입하는 건 단장의 권리, 내가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해야 되나. 보기에도 안 좋고 그럴 권리도 없는 입장, 묵묵히 훈련에 매진했다.

“자기야, 오늘 운동 다했어?”

“응,”

집에 왔더니 또 끈적끈적 매달리는 아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다카기는 자리를 피했다.

“왕이시여, 오늘은 저와 오붓한 밤을 보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 ~ 진짜 왜 이래, 우리 당분간 조심하기로 했잖아.”

다카기는 요즘 아내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다. 딱히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딸이 태어난 지 4개월도 지나지 않았다.

여기서 또 불꽃이 튀었다가 식구가 한 명 더 늘면 어쩌나, 아내의 출산과정을 지켜본 충격도 한 몫 거들었다.

“나는 한 명 더 태어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우 ~ 무서워. 도망쳐야지”

“가긴 어딜 가, 훈련 끝났으면 가족한테 신경 써야지.”

다카기는 다시 아내 옆으로 끌려왔다. 말이 왕이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신세, 그렇게 또 묘한 분위기에 휩쓸릴 뻔했지만 막내딸의 울음에 구원받았다.

“우리 공주님 뭐가 마음에 안 드세요?”

“으에엥 ~ ”

“배고파? 이거 어쩌나, 아빠가 젖은 못 주는데”

다카기는 품에 안고 어르던 딸을 아내에게 넘겨줬다.

비겁하다며 눈총을 쏘는 키리코, 그러건 말건 다카기는 아내 품에 안긴 딸을 지켜봤다. 배가 고프진 않았던 모양, 잠에서 깼는데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불안했던 거 아닐까.

엄마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던 아기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누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울까요?”

“저요 ~ 저요 ~ ”

딸 옆에서 부부는 작은 목소리로 만담을 이어갔다.

눕히면 한쪽 팔만 위로 올리고 자는 딸, 선생님의 질문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아이 같지 않나.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녀석, 다카기는 딸의 작은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으에엥 ~ ”

“아 ~ 진짜 누구야 눈치 없이”

그런데 이때 거실에 놔둔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겨우 재웠는데 놀라서 깨버린 딸, 아내가 딸을 달래는 사이 다카기는 눈치 없는 손님의 부름에 응했다.

발진 번호는 수더랜드 단장,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일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 받았습니다.”

[지금 통화 괜찮나?]

“예, 최악의 타이밍이지만요.”

자초지종을 들은 수더랜드 단장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지금은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라 굵은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으음 … 자네도 들었겠지만 … 투수보강에 실패했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게,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의 눈치를 살폈다.

팀이 최근 2년 동안 FA에서 이렇다 할 외부영입을 하지 않았으니, 팬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거기다 다카기는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한 선수, 구단의 이런 행보에 실망하진 않았을까. 수더랜드 단장은 온갖 아부로 다카기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보스턴엔 자네가 있어. 그러니 올해도 분명 괜찮을 거야]

“하하 ~ 아부하려고 전화하셨어요? 이럴 시간 있으면 다른 선수에게 전화 한 번 더 거세요.”

다카기는 얼른 일하라며 단장의 등을 떠밀었다.

코너웨이는 놓쳤지만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을 거 아닌가, 선수가 없으면 만들어 내라는 협박까지 넣었다.

“제가 작년처럼 해도 팀이 받쳐주질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신경 좀 써주세요.”

[알겠네, 노력은 해보겠네]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전력보강이 가능하겠나, 보스턴은 원래 외부 영입보다 유망주 육성으로 성적을 유지했던 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