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97화 (297/361)

297화. 정점에 선 남자 - (1)

“우리 햄버거 먹으러 안 갈래?”

어느덧 8월에 접어든 시즌, 경기가 끝난 후 존 포르투나는 동료들을 햄버거 가게로 유도했다.

“미쳤어?!!”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마!!”

하지만 천박하다며 소리를 지르는 선수들, 클러비 매니저도 거긴 가지 말라고 말렸다.

“구단에서 왜 자네에게 식사비를 지급하는 줄 알아? 그런데 가지 말라고 주는 거야.”

포르투나는 시즌 중반에 콜 업 됐지만 지금은 엄연한 메이저리거다.

최저연봉을 받아도 품위 유지비와 식사비가 나오는데, 메이저리거가 일반인 사이에 섞여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일반인들이야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세계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그만큼 메이저리거로서 지켜야 하는 품위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지금은 안 보이니까 괜찮겠지?’

물론 선수도 사람이라 가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선수 전용주차장이 있는 옥상에선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후줄근한 반팔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데, 그래도 퇴근할 때는 스포츠카를 몰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렇게 출퇴근을 하다 원정경기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양복 차림으로 비행기에 오르는 게 메이저리거, 너무 가식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메이저리거는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게 이 사회의 룰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다 지켜보는 앞에서 햄버거를 먹겠다고?

하버스태드는 그 순간 너는 메이저리거가 아니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맛있는데 … ’

포르투나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햄버거 하나 먹자고 한 것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구박을 당해야 하나. 메이저리거가 돼서 좋긴 한데 어울리지도 않는 귀족 생활을 하는 게 너무 불편했다.

‘그러고 보니 먹어 본 적이 없네.’

이때 다카기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미국 생활 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그런 소박한 곳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구단에서 절대 가지 말라고 몫 돈까지 얹어줬고 왕으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멀리한 게 사실, 그런데 동화책을 보면 서민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변장을 하고 그 사이로 파고든 왕의 일화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데 가서 밥 먹으면 안 되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 나도 한 번 가 보자.”

“정말?”

“어, 너 평소에 자주 가는 데 있냐?”

다카기는 주차장에서 프로투나에게 은밀한 귓속말을 흘렸다. 다들 날 욕했는데 왕께서 내 뜻에 동참해 주실 줄이야. 포르투나는 햄버거는 내가 대접하겠다며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었다.

“I'd like everything all the way”

= 재료 몽땅 다 넣어주세요.”

다카기는 햄버거를 주문하는 프로투나를 유심히 살폈다.

원래 재료는 다 넣어주는 거 아닌가? 남들이 들으면 믿기 어렵겠지만 다카기는 일본에서도 햄버거를 사 먹어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광고를 보면 다들 속이 꽉 찬 햄버거를 보여주지 않나?

혹시 빵과 고기만 기본이고 나머지는 추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원래 그렇게 주문하는 거야?”

“뭐 못 먹는 거 있어? 있으면 빼 달라고 하면 돼”

포르투나는 서민 세계를 처음 경험하는 왕을 위해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상대는 마운드에서는 고귀한 자태를 자랑하는 왕이지만 여기서는 햄버거 주문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길 잃은 어린양, 포르투나는 무슨 큰 도움이라도 준 것처럼 우쭐거렸다.

‘어린애는 어린애구나.’

다카기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거렸다.

햄버거를 먹으려다 레스토랑 음식을 먹으려니 입맛에 안 맞는 거겠지, 하지만 그걸 뭐라고 할 순 없다.

뭣보다 포르투나는 앞으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파트너, 가끔 그 기분에 맞춰줘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너 여기서 자주 먹냐?”

“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다카기는 여기서 끊고 말았는데 포르투나는 숨겨진 속사정을 털어놨다.

“실은 나 집에서 밥 먹은 기억이 별로 없어.”

“왜?”

“엄마가 요리를 엄청 못 하거든, 지금은 혼자 살아서 그냥 대충 때우고 있어”

부모님 직장 때문에 바쁘다 보니, 포르투나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엄마가 식사를 차려놓고 나가긴 했지만 맛도 없고, 결국 이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시작했다는 것, 입맛이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

“그런데 너 앞으로 메이저리그 생활 계속하려면 식단도 신경 써야 돼”

“알고 있어, 그런데 바꾸기가 쉽지가 않아.”

미국은 신선한 채소나 과일을 구하기 정말 어렵다.

그런 식단을 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여유 있는 삶을 증명하는 지표,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는 주정부는 교육 시간에 채소 종류를 설명하고 직접 먹어보는 과목까지 신설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미국인의 영향 불균형, 그런데 몸이 재산인 선수가 이런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다카기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며 충고를 이어갔다.

“너 내일 우리 집으로 와라.”

“왜?”

“밥 먹고 가, 집사람한테도 얘기해 둘게”

입맛 개조에 나설 시간, 그렇게 궁전으로 끌려온 포르투나는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건강식을 마주했다.

‘아 … 이런 거였구나.’

식탁 위를 뛰어다니는 동물도 보이는데 대부분 풀 아닌가. 메이저리거가 돼서 비싼 음식을 먹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나도 결혼을 하면 집에서 아내가 차려주는 이런 밥상을 먹어야 되는 건가. 이래저래 생각이 복잡해졌다.

“어머 얘!!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으면 어떻게 해!!”

이때 엄마표 레이더망에 과자를 입에 문 둘째 아들이 포착됐다.

깜짝 놀란 나가요시는 과자를 물고 도주, 그런데 저게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걸까. 포르투나는 호화 밥상보다 아이 손에 쥐어진 간식이 더 눈에 띄었다.

“네 것 아니니까 눈독 들이지 마라.”

“알았어.”

그 사이 날아든 왕의 충고, 결국 포르투나는 접시를 싹 비웠다.

그런데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는 마법, 매일 빵 - 고기 - 과자로 배를 채우다 보니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하아 ~ 배고프다 … ”

“그거 착각이야 인마, 원래 그런 것만 먹으면 과식하게 돼 있어.”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와이프가 의사야 인마, 의사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할 말 없게 만드는 왕, 여기서 탈출하면 햄버거 하나 먹으려고 했는데 그것까지 읽은 다카기는 꿈도 꾸지 말라며 막아섰다.

“구단에서 너한테 돈 주는 건 몸 관리 하라고 그러는 거야. 어지간하면 레스토랑에서 먹어, 지금부터 조절해야 오래 간다.”

“알았어.”

포르투나는 충고를 받아들였다.

다른 선수들은 미쳤냐며 대뜸 구박부터 했지만 다카기는 그러지 않았다. 어울려 주는 척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교육자의 의무, 그런데 이때 엄마를 피해 도망쳐 온 나가요시가 포르투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입에 물고 있는 과자, 프로투나는 맛있냐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이거 먹고 싶어요?”

“응”

“그럼 사서 드세요. 아저씨 야구선수면 돈 많이 벌잖아요.”

“하아 ~ 네 아빠가 안 된다고 하잖아!!”

이젠 정말 울고 싶은 심정, 보다 못한 다카기는 둘째 아들을 단속했다.

“너 과자 그만 먹고 얼른 가서 밥 먹어”

“히잉 ~ ”

“얼른, 아빠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먹는 건 신경 쓰는 다카기, 아빠의 눈빛에 떠밀린 나가요시는 식탁 앞에 앉았다.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겠어.’

포르투나는 사람 냄새 나는 집에 흥미를 느꼈다.

아직 22살밖에 안 됐으니 결혼을 논하는 건 이르다. 집에 들어섰을 때 흐르는 적막감을 은근 즐기는 성격, 그래도 가끔은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언젠간 이런 평온한 가정에서 가족들과 소소한 나날을 보내는 때가 오겠지? 다카기의 저녁식사 초대가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다카기,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 먹었다]

그런데 며칠 후, 한 기사가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연봉 4천만 달러를 받는 선수가 품위 없게 햄버거를 먹었다니, 팬들은 물론 같은 메이저리거들도 왕이 품격을 버렸다며 불만을 표현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지껄이지 마라.”

이때 포르투나가 변호에 나섰다.

다카기는 그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동료를 챙겨준 것뿐, 기자들 앞에서 자세한 사정을 털어놨다.

“다카기는 제가 햄버거로 식사를 때우는 모습을 안 좋게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어울려 주는 척하면서 충고를 해준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얼마 전엔 절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몸이 건강해지는 식단이었죠. 다카기는 사람을 지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배경이 숨어 있었다니, 기자들은 다시 다카기 앞에 마이크를 내밀었다.

“별로 그런 거창한 생각으로 벌인 일은 아닙니다.”

다카기는 동료를 바른 길로 인도한 건 우연이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국에 온지 8년이나 됐는데 패스트푸드 점을 못 가 봤다니, 그리고 왕은 그런데 가면 안 되는 건가? 서민이 뭘 먹고 사는지 보는 것도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당신은 그런 곳에 있어선 안 될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왕으로서 품위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보스턴의 단장도 이번 사건은 불문에 붙였다.

고액 연봉자가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었다니, 이건 징계 감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교육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겠지,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이런 축복이 다 있다니!!’

그런데 이 사건으로 문제의 패스트푸트 점은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사건 이전에도 미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인지도를 자랑했지만, 다카기가 다녀가면서 더욱 높아진 인지도, 여기에 다카기가 뭘 먹었는지 물어보는 손님의 문의도 급증했다.

[왕을 위한 버거]

심지어 그날 다카기가 먹었다는 메뉴를 브랜드화시켰는데, 다카기는 난 그런 거 먹은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저는 감자튀김도 안 먹었고 밀크셰이크도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제가 먹었다고 선전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럼 뭘 드신 겁니까?”

“그냥 햄버거 하나 먹고 나왔습니다.”

다카기가 먹은 메뉴라며 끼워 팔기를 시도하는 패스트푸드 점, 그리고 이건 선수 이름을 파는 행위라 선수협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식으로 다카기와 계약을 맺고 팔던가, 그렇지 않으면 메뉴에서 치워버리라는 것, 그제야 본사에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자는 제의가 날아왔다.

“저는 햄버거 안 좋아합니다.”

[아니 … 그래도 돈이 걸린 일 아닙니까? 협조만 해주신다면 … ]

“저 돈이라면 벌 만큼 법니다. 그것 때문에 광고 찍고 싶지 않습니다.”

다카기는 본사에 몇 가지를 요구했다.

햄버거를 먹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들에게 신선한 음식의 중요성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나.

광고를 할 때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뿐만 아니라 신선한 채소들도 집중 조명해달라고 요구, 그리고 수익금 일부를 식생활 개선 사업에 투자할 것도 추가했다.

“Everything all the way, It's for your own good”

= 다 넣어 드세요. 당신의 건강을 위한 겁니다.

결국 다카기는 햄버거 광고를 찍었다.

마지막에 채소는 빼고 먹는 편식쟁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추가, 이게 의외로 큰 호응을 얻으면서 다카기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