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90화 (290/361)

290화. 암사자 - (4)

[보스턴 최고의 매력남은 누구인가]

브라이스 전(前) 감독의 스캔들과 알 디즌이 팬들의 사인에 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으로, 보스턴 구단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한 기자가 이상한 기사를 내보냈다.

좋은 성적을 위해 몸을 단련하는 게 운동선수들, 하지만 그게 좋든 싫든 여성 팬의 관심을 끄는 건 당연하다.

거기다 명문 구단에 소속됐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들, 어느 선수가 유혹에 대비해야 하나, 기자는 몇몇 선수를 두고 비교질을 시작했다.

[참고로 다카기가 올슨보다 더 뒤에 있다.]

클럽하우스로 출근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제임스 올슨이 조금 더 앞서 갔고 다카기는 그 뒤를 따라갔다.

다카기는 선천적으로 넓은 어깨를 타고난 편, 반면 제임스 올슨은 운동으로 어깨를 키웠다.

그렇다고 올슨이 어디 가서 떨어지는 몸매는 아니지만, 승모근이 약간 두드러진 탓에 어깨가 좀 처져 보여 보인다.

거기다 두 선수의 신장 차는 약 11cm, 올슨도 작은 키는 아니지만 195cm에 달하는 다카기 옆에 서니 아이처럼 보였다.

어쨌든 기사의 본질은 다카기가 이성에서 섹스어필을 할 위험요소가 크다는 것, 보스턴 구단은 지금 불난 짓에 기름을 붓는 거냐며 폭발했다.

“당장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수더랜드 단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최근 12년 동안 무려 9번이나 우승을 한 보스턴, 잘 나간다고 대놓고 견제하는 건가. 하긴 누가 정상에 서 있으면 그 꼴을 못보고 떨어뜨리려는 인간들이 있다.

그게 실력이든 모함이든 방법은 상관없겠지, 실력으로 끌어내린다면 모르겠는데 이런 유치한 기사로 흔드는 건 비겁한 일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그게 임신한 아내를 둔 남자에게 할 말인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다카기도 인터뷰에서 불쾌함을 드러냈다.

지난 8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겨우 20살에 아이까지 본 남자한테 들러붙어 가정파괴를 일으킬 인간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결혼을 일찍 한 게 정답, 뭣보다 셋째를 임신한 아내를 둔 남자에게 섹스어필이 뭔가. 대놓고 바람 피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 기사를 양산하는 기자에게 철퇴를 날렸다.

“그 기자는 앞으로 보스턴 클럽하우스에 발을 들이지 못할 겁니다.”

“정말입니까?”

“네, 구단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단호한 보스턴 구단의 대응, 문제의 기자는 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지만 구단은 그 기자를 출입 명단에서 영구제명 처리시켰다.

출입증은 구단에서 발급하기 때문에 앞으로 클럽하우스 입장은 절대 불가, 정보 수집 없이 쓰는 기사가 소설밖에 더 되겠나.

그제야 기자들은 알아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이렇게 커?’

반면 제임스 올슨은 다카기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슬쩍 옆에 다가서니 더욱 두드러지는 체격 차, 혹시 조상 중 서양인이 있는 게 아닐까. 순수한 일본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이상했다.

“너 정말 일본인 맞아?”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아니, 누가 봐도 일본인답진 않아서 하는 말이야.”

“뭐 … 굳이 말하면 순수한 일본인은 아니지.”

다카기는 자신의 몸에 한국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

역사를 봐도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던 한국인, 그 중에서도 다카기의 조상들은 체격이 두드러졌다.

스기토모 그룹의 창시자이자 다카기의 고조 할아버지인 이명출, 나이를 먹어 키가 많이 줄었는데도 사망할 당시의 키는 186cm이나 됐다.

지금 기준으로도 큰데 당시 기준으론 어땠을까. 여기에 타고난 강골에 힘도 좋아서 서울로 노동을 하러 상경했지만, 제주도 출신이라고 차별을 받아 일본으로 일을 하러 왔다고 들었다.

친가 식구들은 다 큰 편, 어머니 쪽도 만만치 않다.

외할아버지가 운동선수, 어머니도 학창시절 수영선수에 키가 170cm나 되는데 호랑이 사이에서 강아지가 태어날까.

내가 좋은 몸을 타고 난 건 조상들 때문, 물론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타고난 유전자가 큰 지분을 차지했다.

“아니야, 분명 네 조상 중에 서양인이 있을 거야.”

“없다니까. 헛소리할 거면 저리 가.”

하지만 올슨은 넌 동양인이 아니라고 계속 우겼다.

깊게 파인 눈에 입체적인 이목구비, 저게 동양인 사이에서 나올 수 있는 얼굴인가. 더는 상대하기 싫었는지 다카기는 자리를 피해버렸다.

“아들, 오늘 하루 잘 보냈어?”

[네에 ~ ]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보금자리, 다카기는 보스턴에 있는 장남과 영상통화를 나눴다.

미국에서 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아들, 그 젖먹이가 벌써 학교를 다닐 줄이야. 아직 30도 안 된 젊은 나이지만 다카기는 흘러간 세월을 실감했다.

“엄마 아빠 없다고 서운하지 않아?”

[저는 이제 컸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옆에 할머니도 있고요.]

“그래 ~ 우리 아들 씩씩하네.”

다카기는 영상 속의 아들을 빤히 쳐다봤다.

젖먹이 시절 때는 쭈글쭈글했는데 이제는 제법 자리가 잡힌 이목구비, 나이는 어리지만 벌써 싹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녀석, 할아버지와 부모님이 날 바라보던 시선도 이와 다르지 않겠지, 먼저 간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부모로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 교차했다.

“아들 ~ ♡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드는 키리코, 엄마의 넘치는 사랑이 부담스러웠는지 타다요시는 얼른 전화를 꺼버렸다.

얘가 벌써부터 엄마를 멀리하는 건가, 애가 탄 키리코는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남편이 말리고 나섰다.

“언제까지 어린애 취급할 거야?”

“그럼 당신이 나하고 놀아줄 거야?”

이쪽으로 튄 불똥, 다카기는 끈적끈적 들러붙는 강아지를 거부하지 않았다.

“난 솔직히 자기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

“나 참 … 뭐가 그렇게 불안한데?”

알고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상황, 괜한 말해서 분위기가 묘해지면 누구 손해인가. 하지만 키리코는 섬뜩한 예고를 이어갔다.

“나 자기한테 접근하는 여자 있으면 가만 안 둘 거야.”

“아니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가지고 그래?”

“여자는 무서운 직감이라는 게 있어.”

키리코는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스즈에처럼 대놓고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기집애도 있지만, 음지에서 나와 남편의 연애를 시기하고 모함하는 것들도 있었다.

근거 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가증스러운 것들, 다카기는 원래 무신경한 성격이고 또 워낙 바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그런 음지의 소문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키리코는 친구도 별로 없고 소심했지만 귀는 밝았던 편, 그래서 남편에게 접근하는 수상한 움직임은 금방 캐치해 냈다.

“자기 야구부에 있었을 때 매니저 4명이나 있었지?”

“응, 그런데?”

“걔들 다 자기 좋아해서 야구부 들어온 거야.”

“에이 ~ 당신 진짜 왜 그래?”

“농담 아니라니까, 진짜야.”

키리코도 그 대열에 낄 뻔했지만 남편의 저지로 그만뒀다.

애인이 있다는 걸 알고도 질척거렸던 매니저들, 키리코는 그년들 얼굴을 다 갈아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당시 남편이 진심으로 나만을 바라봐주지 않았다면 진짜 그렇게 돌변했을지 누가 알겠나.

조금 무서운 고백에 다카기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거 다 오해야. 그때 당신은 자신감이 너무 없었어. 그러니까 사소한 것도 그렇게 보이는 거야.”

“ … 그런 거야?”

“그렇다니까. 이제는 좀 대범해져야지.”

학창시절의 아내는 차분하고 별 말이 없던 사람, 성적은 명문고에서도 탑에 들었고 아버지는 경제적 사회적 능력을 갖춘 병원 원장,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됐을 거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던 사람, 처음엔 단순한 관심이었지만 이제 그 감정은 이렇게 결실을 맺었다.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야. 그러니까 좀 더 당당해져”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그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랑 결혼했지.”

키리코는 다시 한 번 남편에게 빠져들었다.

생긴 것도 잘났고 능력도 있는데 이런 배려심까지 갖췄으니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겠나. 남편을 믿기로 했다.

‘그래, 우리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들러붙는 것들이 문제지, 남자의 매력엔 죄가 없어.’

하지만 들러붙는 것들은 처단할 뿐, 스프링캠프 기간만이라도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이어갔다.

* * *

스프링캠프도 이제 막바지, 시범경기를 앞두고 다카기는 특별한 손님들을 지도했다.

앤디 프론스키의 아들 카일 프론스키도 그 중 한 명, 카일은 2년 전 보스턴 구단이 운영하는 야구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00승을 넘긴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며 나름 실력을 쌓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너 그렇게 해가지고 나 이기겠냐?”

아니나 다를까, 다카기는 그 옆을 슥 지나치면서 면박을 줬다.

몇 년 전 전화통화에서 당신을 넘어서겠다고 공언한 녀석, 그런데 이런 실력이라면 평생 걸려도 어렵겠다며 견제를 넣었다.

“왜 그래?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데”

“좀 더 자극 받으라고 한 말이야.”

프론스키는 은근 아들 바보, 다카기에게 좋은 평가를 받길 바랐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녀석, 다카기가 그런 말을 한 것도 이해는 됐다.

“그리고 너도 내년에는 붙어야지, 지금부터라도 기자들하고 친하게 지내라고”

“아 ~ 됐어, 나는 그런 짓은 못해.”

친구의 참견에 프론스키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1월 22일,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공개됐다. 불의의 사고로 일찍 은퇴한 프론스키도 표를 받았는데 득표율은 57%에 그쳤다.

통산 216승에 만테냐 어워드 2회 수상, 월드시리즈 2회 우승을 거둔 선수가 첫 회 득표에서 거둔 성적치고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물론 언젠가는 들어갈 명예의 전당이지만 기왕이면 빨리 들어가는 게 좋겠지. 하지만 표를 주는 건 기자들 몫, 현역 시절 프론스키는 기자들에게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다.

아예 인터뷰 요청을 무시한 적도 수십 차례, 프론스키가 뇌 부상으로 은퇴할 때도 기자들은 안타깝다는 기사는 쓰지 않았다.

그냥 덤덤하게 은퇴 소식을 알렸을 뿐, 프론스키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쓰레기들에게 표를 구걸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말지, 최근 보스턴 구단을 상대로 여론전을 벌이는 꼴만 봐도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난 솔직히 네가 80%는 무난히 넘길 줄 알았어.”

“훗 ~ 진심이냐?”

“당연한 거 아냐? 그 정도는 받아야지. 뭔가 잘못 됐어.”

프론스키는 씩 웃어보였다.

내 능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 기자들보다는 이 녀석에게 인정받은 게 더 기뻤다.

“넌 역시 멋진 녀석이야.”

“그렇다고 들러붙지는 마라. 고백한 건 아니니까”

프론스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카기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가끔 걸음걸이가 어긋날 때가 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한동안 세상과 단절했을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 그게 바로 프론스키다.

그래도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꾸준히 손을 내밀어 준 친구,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역시 멋진 녀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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