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89화 (289/361)

289화. 암사자 - (3)

“오랜만이네.”

“그러게”

이곳은 스프링캠프가 진행되는 플로리다, 다카기 가족은 특별한 손님을 집에 초대했다.

불의의 사고로 은퇴를 택한 앤디 프론스키와 그의 아내 마리아 프론스키, 스프링 캠프 때 선수 가족들이 서로 교류를 나누는 경우는 흔하다.

프론스키는 은퇴했지만 올해부터 보스턴 구단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게 된 정식 직원, 초대를 해도 문제될 건 없었다.

“이런 일은 잊을 만하면 일어나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프론스키는 화제를 브라이스 감독을 둘러싼 스캔들로 옮겼다.

젊은 나이에 돈과 명예가 따라오는 스포츠 스타들, 사무국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잊을 만하면 터지는 게 이런 스캔들이다.

‘잠깐,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고?’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브라이스 감독의 일을 제외하면 그렇게 큰 사건이 터진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 녀석은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프론스키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놨다.

“내가 애리조나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

“무슨 일인데?”

프론스키는 그동안 가슴에만 담고 있던 정보를 풀어냈다.

섹스 스캔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

선수가 혈기를 이기지 못해서? 아니면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 탓? 놀랍게도 양측을 이어주는 전문 브로커가 있다.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잠자리를 한 사실로 여자가 선수를 협박하는 일도 있지만 그 반대의 일도 얼마든지 있는 법, 어느 선수는 문제의 여성과 잠자리는 물론 가끔 데이트도 즐겼는데 이 과정에서 상습적인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아니, 여자를 왜 때려? 그러다 진짜 폭로하면 어쩌려고?”

“복종하게 하는 거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입막음이야.”

폭력을 당한 여자는 바로 신고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여자 입장에선 일반인 남자가 화를 내고 폭력을 휘둘러도 무서운데, 덩치가 산만 한 운동선수가 폭력을 휘두르면 어떤 공포를 느낄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여자는 자연스럽게 남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여자들을 입막음시키는 선수들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200승을 거둔 대선수가 풀어내는 말, 믿기 어렵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 입을 막는 방법을 알려주는 선수들도 있다고?”

“어, 이 세계가 그렇게 깨끗하진 않아. 내가 봤을 때 … 브라이스 감독이 노려진 것도 이해는 돼”

프론스키는 담담하게 이번 사건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여자 입장에선 돈 많고 젊은 남자 유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요즘 메이저리거들이 잠자리 한 번으로 당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

프론스키의 말대로 폭력을 휘둘러서 입막음을 시키는 것도 있고, 그렇다면 여자 입장에선 감독이나 코치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다.

맹수가 사냥하기 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것과 같은 이치, 선수들에 비하면 나이도 많고 힘도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자들은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상대를 물색한다.

브라이스 감독은 월드시리즈 9번 우승을 이끌어 낸 명장, 아주 딱 좋은 먹잇감 아닌가.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 이때 가만히 있던 키리코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당신도 선수 시절에 여자들에게 유혹을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럼요. 제가 젊은 시절엔 꽤 잘나갔거든요.”

다카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내도 옆에 있는데 이 자식은 어쩌자고 이런 말을 하는 건지, 하지만 마리아 프론스키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남편이 이런 말 하는데 아무 생각 안 듭니까?”

“지금은 제 곁에 있잖아요. 그거면 됐어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남편, 아내 입장에선 불안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 유혹도 몇 번 당했던 남편, 그런데 아내 입장에선 이걸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다.

그렇게 했다간 남편이 질려서 날 떠났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모른 척 넘어갔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결혼하고 다른 여자하고 잠자리한 적 없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해? 찔리는 거 있어?”

“나 참 … 말을 하지 말아야지.”

사소한 부부싸움으로 분위기를 올리는 프론스키 부부, 하지만 키리코의 표정은 심각했다.

겉보기엔 얌전하지만 질투심은 꽤 강한 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강하다.

그런데 다른 여자가 내 남편 근처를 기웃거린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지만 상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너도 조심해라. 수입 공개됐으니까 집적거릴 여자들 많을 거다.”

“아 ~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다카기는 프론스키의 장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잖아도 아까 하버스태드가 비슷한 말을 했는데 왜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하는 건가. 뭣보다 경기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는 편, 원정 경기 때도 호텔 밖을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기분전환용 산책 정도, 이 이상 가정의 평화를 깨지 말라며 철벽을 쳤다.

‘으응? 뭐야?!!’

그런데 며칠 후,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브라이스 감독이 진실을 털어놓은 것, 본인이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문제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게 맞다는 것, 끝까지 발뺌했지만 계속되는 심리적 압박에 진실을 털어놨다.

설마 했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다니, 다카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책임을 지고 사퇴한 감독, 스프링 캠프가 한창인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보스턴은 청교도 논리가 엄격한 지역, 월드시리즈 9회 우승을 달성한 감독이라도 기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쉴드를 쳐 줄 수가 없었다.

‘나 참 …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특히 다카기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실망했다.

매사 모범적이고 선수들을 대하는 야구철학도 뚜렷했던 사람, 그래서 내심 존경했고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본인이 그늘에서 했던 짓이 그동안 쌓은 업적과 가족을 파괴하는 짓이라는 걸 몰랐을까. 이런 일은 선수들에게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어쨌든 이번 사건으로 브라이스 감독은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퇴장했다.

어떻게든 뒷수습을 해야 하는 보스턴, 일단 다니엘 보드킨 코치에게 지휘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선수단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와 단독 면담을 나눴다.

“자네가 캡틴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또요?”

“지금 클럽하우스에 자네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 없어.”

다카기는 냉정하게 현실을 분석했다.

지금까지 보스턴은 브라이스 감독의 유순한 리더십과 다카기의 채찍질로 기강을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툭 하고 떨어져 나간 브라이스 감독, 다니엘 보드킨 코치도 나름 이름이 있는 사람이지만 선수단을 통제할 카리스마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선수단을 리드했던 다카기에게 다시 힘을 실어주는 게 맞겠지, 정확히 말하면 이제부터 선수 겸 코치나 다름없다.

“자네가 요구하는 건 앞으로 뭐든 다 해주겠네.”

“여보세요. 단장님 … ”

“연봉도 올려주겠네. 그러니까 부탁하네.”

수더랜드 단장은 연봉 인상도 약속했다.

다카기는 보스턴과 총 13년 3억 9천만 달러에 합의를 했지만, 여기에는 추가 조항이 붙었다.

나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 선수가 나타나면 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보장해 달라는 조항, 사실상 연봉 수정 조항이나 다름없다.

선수에 코치까지 하고 있는데 연봉 더 받는 건 당연, 수더랜드 단장은 올 시즌 연봉 4500만 달러를 약속했지만 다카기는 거절했다.

“제가 베테랑으로서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은 해줄 수 있어요. 그리고 클럽하우스 분위기도 통제해야겠죠. 그런 책임감을 이런 식으로 짊어지긴 싫습니다.”

뭣보다 코치들이 있는데 내가 앞으로 나선다는 것도 웃긴 일, 이건 코치가 아니라 사실상 감독이다.

브라이스 감독의 빈자리가 큰 건 사실이지만, 선수들이 서로 합심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안 되면 모래로 쌓은 성처럼 무너질 뿐, 한 명이 모범을 보인다고 팀이 제대로 굴러가나?

다카기가 모범을 보여도 선수들이 호응해주지 않는다면 꽝, 그래서 이런 식으로 책임을 짊어지긴 싫었다.

각자 알아서 자기가 맡은 일만 하면 그만, 다카기의 진심을 확인한 수더랜드 단장도 이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Please ~ !!”

다음 날도 예정대로 진행되는 스프링캠프 일정,

선수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훈련장으로 향했고 그 입구에 진을 친 팬들은 사인을 요구했다.

‘이게 뭐야?’

볼을 잡은 알 디즌은 문제의 여성을 흘겨봤다.

전화번호가 적힌 볼,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건가. 다카기만큼은 아니지만 디즌도 2억 달러가 넘는 대형계약을 맺은 몸,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휙 ~

보란 듯이 뒤로 던져버린 공, 이 행동은 현장에 있던 팬들과 기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이봐요 디즌, 왜 팬의 사인 볼을 던져버린 건가요?”

“전화번호가 적혀있더군요. 더 설명이 필요합니까?”

스프링캠프는 각지에서 팬들이 몰려온다.

그만큼 이상한 인간들도 많은 법,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건가. 기자들은 문제의 팬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고, 보스턴 여론도 구단에 팬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요구를 쏟아냈다.

“어려운 조치다.”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은 난색을 표했다.

몇몇 쓰레기들이 무섭다고 그 먼 길을 달려온 팬들을 외면할 수 있나. 선수들이 조심할 수밖에, 다카기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도 뭔가 해야겠어.’

이때 키리코가 혁명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왜 우리 아내들은 집에 나간 남편을 늘 걱정해야 하는 건가.

남편을 믿는 건 소극적인 방법, 남편에게 들러붙는 쓰레기들을 우리 손으로 소탕해야겠다는 뜻을 품었다.

얼마 전 사건에 휘말린 알 디즌의 아내 수잔 디즌은 이 목소리에 동조, 다른 선수들의 아내도 적극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남편을 감시할 순 없는 거잖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감시를 하는 건 남편이 아니에요. 그 주변을 기웃거리는 쓰레기들이죠. 그년들은 우리가 응징을 해야 돼요.”

아내들은 흠칫했다.

겉보기엔 체격도 작고 온순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과격한 언동, 역시 사자의 아내도 사자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일단 클럽하우스 직원들을 잘 이용해야 돼요. 그 사람들은 늘 남편들과 같이 있잖아요.”

“우리가 매수를 하자는 건가요?”

“못할 것도 없죠. 그리고 수상한 정보가 들려오면 우리가 진상 파악에 나서서 응징을 하는 거죠.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모이자고 해서 모였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뭣보다 클럽하우스 직원이라고 해도 남편과 같은 남자 아닌가.

서로 알아도 모른 척해주는 게 있겠지, 하지만 키리코는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일어난 사건 때문에 단장도 지금 신경이 곤두섰을 거예요. 당연히 직원들에게도 뭔가 지시사항이 내려왔겠죠.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릴 배신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주장, 몇몇 아내들은 부담스럽다며 발을 뺐지만 키리코의 주도하에 10여 명의 아내들이 뜻을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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