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암사자 - (1)
[다카기, 작년 순수익 5천만 달러?]
시즌이 끝난 후 다카기는 수입으로 주목을 받았다.
놀랍게도 이게 전체 수익이 아니라 순수익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데, 기사에 실린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이랬다.
“다카기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순수 보장금만 4천만 달러, 그 외 포스트 시즌 선발 수당으로 5백만 달러, 월드시리즈 우승 상금을 추가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버블 헤드, 베이스볼 카드, 유니폼 등 선수협의 허가를 받은 라이센스 수입이 대략 15만 달러, 팬 사인회, 그리고 개인 사업 등으로 수익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다카기는 이동식 주택을 가진 사람들에게 임대료를 받는 사업을 예전부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주에 낸 세금을 따져보면 대략 2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정,
여기에 할아버지가 물려준 일본의 빌딩에서 받는 임대료, 행사 초대 비 등등 순이익만 따져도 한 해 수입이 5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게 기자의 주장이었다.
자본주의 미국 사회에선 문제될 게 없는 수입 활동, 다카기는 여론의 호들갑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죄송한데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습니까?]
“뭔데요?”
[쇼핑몰에서 사인회 제안이 들어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출국을 이틀 앞두고 에이전트 제임스 콜튼의 전화가 날아들었다.
선수가 사인회에 참석하는 루트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구단의 스폰서가 초대하는 행사, 에이전트를 통한 사인회, 그리고 자선단체 사인회 등이 있는데 구단 스폰서가 낀 행사는 무조건 수입이 붙는다.
작년에 다카기가 구단 스폰서 행사로 받은 수입은 1시간당 약 1만 3천 달러 정도, 에이전트를 통한 사인회도 당연히 수입이 붙는다.
이건 에이전트가 주도한 행사라 선수와 에이전트가 수입을 나눠 가지게 되는데 다만 시간당 보수가 꽤 높은 편이다.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 시즌은 끝났지만 다카기는 오프 시즌에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몇 시간이나 있다 올 거야?”
“글쎄, 한 2 ~ 3시간 정도? 금방 올 거야.”
“잠깐만 있어 봐.”
키리코는 집을 나서는 남편의 옷차림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워낙 잘난 남편이지만 사람의 품격은 옷으로 완성되는 법,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됐어. 완벽해.”
“고마워요 ~ ”
다카기는 아내 입술에 소소한 애정을 표했다.
내 새끼를 뱃속에 품고 있으니 예뻐 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날 언제나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 일찍 결혼을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나 없으면 심심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얼른 와. 다른 길로 새지 말고”
“내가 언제 다른 길로 샜다고 그래?”
다카기는 그렇게 집을 나섰다.
아들들은 아직 자고 있는 이른 시간, 아빠 놀아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전에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미안하다 아들들아, 아빠가 돈을 벌어야 너희들도 훌륭하게 자라지’
수입이라면 누구보다 많지만 다카기는 돈에 대한 욕심이 무척 강했다.
아니, 그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구 아닌가. 뭣보다 사람이 돈을 못 벌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감정은 전염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지 않은가.
내가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에 선수들도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는 법, 아내의 말대로 사람의 품격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련을 거듭했는가? 그러니 사인회 몇 시간 하고 남들이 1 ~ 2년에 벌 돈을 손에 쥐는 것, 다카기에게 사인회는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확인하는 또 다른 무대였다.
내가 훌륭해져야 아들들도 영향을 받는 법, 그렇게 생각하면 사인회라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여러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아니!! 역대 최고의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와아아 ~ !!”
시간이 되자, 다카기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행사장은 이미 만석, 이번에 새로 문을 연 클라우드 쇼핑몰은 280여개의 상점과 레스토랑이 들어선 곳이다.
창업주 브래드 페니는 미국 48개 주 지역에 500개 지점을 둔 재력가, 다카기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이 사람 앞에선 한 수 접어야 했다.
그러니 사인회에 시간당 3만 5천 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 거겠지, 돈을 받는 입장인 만큼 다카기는 사인에 친절히 응했다.
‘시간 지났는데?’
약속된 2시간이 지났지만 다카기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물론 고용주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만, 사인회를 주선한 제임스 콜튼은 고객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인 더 한다고 돈 더 주는 거 아니다.
저렇게 고객이 약속된 시간을 초과해 무료 봉사를 하면 나중에 행사를 잡을 때, 보너스 시간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놈들이 있다.
에이전트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전개, 지극히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제임스 콜튼은 고객의 몸값이 떨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도 간다.’
하지만 다카기는 사인회를 계속했다.
에이전트의 눈치는 이해했지만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것도 중요한 법, 주최 측도 무조건 공짜를 바라는 건 아니다.
사인회를 두 시간 한다? 그럼 대략 몇 명에게 사인을 할 수 있는지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행사 전에 추첨을 해서 사인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선별, 그 이상은 받아주지 않는다.
지금 내 사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추첨을 받은 정당한 고객,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고 해서 자리를 뜨는 건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
“3시간을 했다고?”
“네”
“아니, 무슨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렸나?”
고용주 브래드 페니는 측근의 보고를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팬 한 명 한 명에게 친절하게 응하다 보니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진 것, 마지막에 줄을 선 팬은 무려 2시간 55분을 기다렸지만 그래도 만족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카기는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해준 거지만, 그래도 고용주 입장에선 기분 좋은 일, 계약대로라면 7만 달러를 지불해야겠지만 브래드 페니는 11만 달러를 꽉 채워 제임스 콜튼에게 보냈다.
‘오옷 ~ 이건?!!’
입금 내역을 확인한 콜튼은 펄쩍 뛰었다.
7만 달러만 주면 솔직히 서운할 뻔했는데 보너스까지 챙겨주다니, 다음에도 행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달라며 굽실거렸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사업에 대해 얘기해 보지 않겠습니까?]
“사업이라니요?”
[브래드 씨가 다카기 선수를 아주 좋게 보신 것 같습니다. 전속 계약을 맺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 ]
돈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상대는 미국 최대의 쇼핑몰을 운영하는 거부(巨富), 아직 논의 단계지만 현실로 이뤄내면 대박이다.
이걸 추진하는 건 내 능력,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를 손에 쥐고 있으니 돈을 버는 건 에이전트의 수완에 달렸다.
이런 선수가 언제 또 내 손에 들어오겠나.
그리고 지금 내 명성을 드높여야 나중에 다른 스타급 선수들도 날 고용하겠지, 몸값을 높이기 위한 몸부림은 제임스 콜튼도 다르지 않았다.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제임스 콜튼은 이 사실을 슬쩍 여론에 흘렸다.
증거가 있으니 날개 돋친 듯 퍼져 나가는 소문, 이 소식을 접한 구루지마 쿠니오도 슬쩍 관심을 보였다.
‘우리도 어떻게 안 되나?’
구루지마 쿠니오는 파칭코 사업으로 돈을 번 한성태의 손자,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서 다카기와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파칭코만으로는 사업 확대가 어려워 다방면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데, 개인적 친분이 있는 다카기의 명성을 빌리고 있었다.
[시간당 최소 3만 달러는 주셔야 합니다.]
“아니 … 몸값이 그렇게 비쌉니까?”
[얼마 전 다카기 선수 사인회 한 거 아시죠? 3시간 동안 11만 달러 받으셨습니다.]
구루지마의 측근은 제임스 콜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에 할 말을 잃었다.
물론 회장님이 이 정도 금액도 지불 못 할 재력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덩치라는 건 사실, 회사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다.
“자선사업에 초대하는 건 어떨까요?”
“자선사업?”
“네, 자선사업은 무료로 해주는 선수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때 한 직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그룹 이미지 개선을 위해 구루지마 쿠니오는 봉사 활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이 없는 자리에 메이저리그 스타급 선수가 온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해줄지는 의문이다.
뭣보다 돈도 있는 그룹이 구차하게 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끼워 팔기를 시도했다.
[자선 사업 사인회 2시간 + 그룹 홍보 사인회 2시간]
총 4시간에 9만 달러를 주는 계약, 이건 너무 염가 계약 아닌가.
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경제적 격차가 있는 나라, 미국에서 적용하는 룰을 고집하면 앞으로 일본에서 고객의 사인회를 개최할 수 있을까.
조금 아까웠지만 콜튼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기야, 그 사람 좀 너무한 거 아냐?”
“뭐가?”
“얼마 전에 사인회 했잖아. 그런데 무슨 사인회를 또 해?”
키리코는 이번만은 반대했다.
제임스 콜튼은 에이전트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 하지만 남편도 좀 쉬어야 할 것 아닌가.
가뜩이나 작년 시즌에 무리를 많이 한 남편, 키리코는 이번엔 거절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그래도 가서 몇 시간 있으면 … ”
“그 돈 못 벌어서 우리 굶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자기 이미지 안 좋아져서 안 돼.”
키리코는 단호했다.
파칭코가 불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지가 안 좋은 건 사실, 에이전트가 수수료 떼어 가면 남편이 쥐는 돈은 대략 5만 달러 정도다.
물론 이것도 일반인들 입장에선 큰돈이다.
하지만 남편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행사, 이번만은 절대 안 된다며 말렸다.
‘그럼 … 어쩔 수 없지.’
다카기는 고집은 있어도 아내 말은 잘 따르는 편, 제임스 콜튼도 그렇게 탐탁하게 여겼던 사인회가 아니라 거절의 뜻을 표했다.
“아니,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저희 고객의 와이프께서 반대하십니다.]
“네?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구루지마 측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세상을 뒤흔드는 다카기가 아내의 말 한 마디에 뜻을 굽혔다? 우리 그룹의 이미지 때문에 그럴듯한 핑계를 대서 거절을 하는 게 아닐지, 일단 혹시나 하는 마음에 키리코에게 접근했다.
“안 돼요.”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는 자선 행사를 주최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키리코는 마지막까지 철의 장막을 접지 않았다.
남편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수 있는 요인은 쳐내야 하는 법, 조금 과잉행동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카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것보다 오프 시즌에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내가 안쓰러웠던 거겠지, 그 마음을 알고 있으니 잔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 은근 공처가인가? 아니? 애처가?’
다카기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딱히 아내의 눈치를 보고 사는 건 아닌데, 그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이건 아내를 무서워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