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무책임 - (1)
보스턴은 휴스턴을 물리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 애틀랜타와 우승을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됐다.
문제는 경기 전 외부에서 수상한 잡음이 들려왔다는 것,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다카기가 등판하는 날은 진흙을 조금 더 많이 묻힌다. 그래야 스플리터 움직임이 살아난다.]
문제의 남성은 자신을 전(前) 보스턴 클럽하우스 직원으로 소개했다.
메이저리그는 다른 야구 리그와 달리 경기 전 볼에 진흙을 묻힌다. 공이 투수 손에서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작업, 경기 시작 전 심판 또는 클럽하우스 수행원이 볼에 진흙을 문지르는 작업을 하는데, 명확한 기준은 없다.
[MLB 규칙 4.01 (c) : 야구공의 광택이 제거되도록 적절하게 문질러야 한다.]
규정이 있긴 하지만 광택을 제거하는 적절한 정도가 뭘 뜻하는 건가.
결국 현장 관계자들이 알아서 진흙을 문지르는데 특정 선수의 구위를 살려주기 위해 진흙의 양을 조절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일단 공을 교체해주는 건 심판이다.
그 많은 볼 중 심판이 스플리터를 던지기 쉬운 볼을 택해서 포수에게 건네주는 게 가능할까? 황당하고 바보 같은 주장, 보스턴 구단은 문제의 글을 SNS에 올린 남자를 잡아내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바보짓도 정도껏 해야지.’
다카기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주장 아닌가. 이물질이 많이 묻은 공은 손과 가죽의 마찰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공의 회전이 죽으면서 뚝 떨어지는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부정투구가 허용되던 시절엔 투수들이 알아서 공에 이물질을 묻혔고 심판도 묵인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사방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상대 팀도 우릴 보고 있는데 부정투구가 가능할까. 실제로 시도한 투수들이 있지만 어지간하면 다 걸렸다.
그런 글을 쓴 놈이나 혹해서 귀를 쫑긋거린 자가 있다면 모두 바보 천치들, 상대해 줄 가치도 못 느꼈다.
[제임스 올슨이 도박에 연루됐다.]
그런데 소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단에서 입막음을 했던 사건을 누군가가 공개한 것, 구단 내부에 스파이라도 있는 건가.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터져 나온 악재에 수더랜드 단장은 경악했다.
“어떤 놈인지 당장 찾아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꼬리가 잡히질 않는 범인, 그 사이 제임스 올슨은 기자들 앞에서 해명에 나섰다.
“친구에게 기왕 걸 거면 다른 팀이 아니라 보스턴에 걸라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입니까?”
“그래도 타인에게 도박을 권하는 건 규정 위반 아닙니까?”
사소한 것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기자, 짜증이 난 올슨은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요. 분명히 말했지만 나는 도박을 하겠다는 친구를 상대로 말한 거예요. 이미 도박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인데, 보스턴에 걸라고 조언을 한 게 그렇게 큰 죄입니까? 당신들 마음대로 생각해요. 결정은 사무국이 하겠죠.”
올슨은 자신은 죄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마쳤다.
기자들의 마이크가 향한 곳은 다카기, 하지만 다카기는 인터뷰를 거부했다. 캡틴이라면 팀을 대표해 입장을 내놨겠지만 지금 나는 일개 선수,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해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당신들이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올슨의 일은 구단 내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내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팀의 핵심선수로서 책임감은 느끼지 않으십니까?”
이때 한 기자의 질문이 호랑이의 심기를 건드렸고, 다카기는 그쯤 해두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봐요. 내가 무슨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을 좀 해보시죠.”
“아, 아니 … 요즘 일어나는 사건이나 논란에 대해서 … ”
“당신은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에 책임을 느낍니까?”
공에 진흙을 묻혔느니 마니 지껄인 건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묻힌 것도, 묻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책임을 느끼고 해명을 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괘씸한 질문, 다카기는 침묵에 빠진 기자들을 뒤로하고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다들 진정하자고, 세상이 넓은 만큼 미친놈도 많은 법이야.”
월드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브라이스 감독은 살짝 흥분한 선수들을 다독였다.
우리가 그런 언론 플레이에 흔들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보스턴의 우승을 원치 않는 누군가의 소행이겠지, 보란 듯이 우승으로 갚아주자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자, 월드시리즈 1차전!! 오늘 보스턴은 로버트 클레이튼이 선발로 나섭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2경기 등판,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12, 12이닝 동안 볼넷 2개, 탈삼진은 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카기와 레이븐은 그렇다고 쳐도, 클레이튼이 부활한 건 보스턴 입장에서 아주 좋은 신호죠. 월드시리즈 1차전 선발을 맡겼다는 건 그만큼 신뢰가 회복됐다는 뜻입니다.”
클레이튼은 선두 타자 알렉스 니브스를 땅볼로 처리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옆으로 휘는 싱커보다 떨어지는 싱커에 집중하면서 찾은 희망, 오늘도 빠른 볼은 바깥쪽으로 던지고 싱커를 한가운데로 떨어트리는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조금 미끄러운데?’
그렇게 경기는 흘러 3회 초 애틀랜타의 공격, 파울이 나오자 스탠리 호프만 포수는 주심에게 볼 교체를 요구했다.
그런데 너무 미끄러운 공, 다른 공을 달라고 했고 공을 살펴보던 주심은 그 요구에 응했다.
“이거 왠지 수상한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왜 또 공을 바꿔주는 거죠?”
애틀랜타 해설위원은 이 장면을 문제 삼았다.
다카기가 스플리터를 던질 때 진흙을 조금 더 묻혀준다는 주장이 나온 게 불과 며칠 전,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졌다.
그러건 말건 클레이튼은 호투를 이어갔고, 5회까지 1실점 투구를 펼쳤다.
문제는 타선이 2점밖에 내주질 못했다는 것, ALCS의 영웅 제임스 올슨이 여기서 일을 냈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 높게!! 잘 가라고 인사나 해두시죠!!!! 제임스 올슨의 솔로 홈런!! 이번 포스트 시즌 4번째 홈런입니다!! 스코어 3대 1!! 보스턴이 리드를 벌립니다!!”
“정규 시즌에서도 장타력이 있는 선수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포스트 시즌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홈을 밟은 올슨은 달아오른 관중석을 향해 양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다들 나를 숭배하라는 요구, 팬들은 ‘You're not guilty'를 연호하며 올슨의 입장을 변호했다.
팬들에게 재판까지 받았으니 이제는 떳떳한 입장, 올슨은 가슴을 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무죄야!!”
문제 좀 일으켰다고 뒷담화 하고 날 욕했던 동료들, 올슨은 너희들도 들으라는 뜻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실력과 성과가 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 그렇다고 이제 와서 친한 척하기도 뭣하지 않은가. 선수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도 무죄판결 받아야 하나?’
다카기는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들썩였다.
포스트 시즌 3경기 연속 완투로 한껏 여론의 칭송을 받았는데 별 같잖지도 않은 논란에 휘말렸다.
다음 경기에서 흔들리면 이걸 걸고넘어지는 놈들이 있겠지, 그동안 보여준 성과는 뚜렷하지만 여론은 당장의 성적만 따진다.
요즘 잘 했다고 우쭐할 필요 없다는 뜻, 다카기는 우쭐해하지 않고 다음 등판에 집중했다.
‘안 바 꿔’
경기는 흘러 이제 6회 초, 플라이 타구를 처리한 중견수 디즌은 2루수 올슨에게 공을 건네줬다.
클레이튼은 이리 달라며 글러브를 벌렸고, 올슨은 그대로 해줬다.
야구에서 공을 바꾸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타구가 된 공을 바꿀 수도 있지만 매번 공을 바꾼다면 경기 진행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에 민감한 투수가 아니면 그냥 쓰기도 한다.
하지만 호프만 포수는 바꿔야 한다는 사인을 보냈고, 클레이튼은 그 지시에 따랐다.
“이봐!! 공에 장난치지 말라고!!”
애틀랜타의 감독 멜빈 하비는 바로 견제에 나섰다.
딱히 문제가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보스턴의 심기를 건들기 위해 한 번 찔러본 말, 그러건 말건 호프만은 교체한 공을 투수에게 건네줬다.
‘불만 있으면 내 꼬리 잡아보시지.’
호프만은 이후에도 공을 계속 교체했다.
한 이닝에 볼 교체 요구는 2번으로 제한되지만, 호프만은 굳이 안 바꿔도 될 공까지 바꿨다.
심지어 유니폼에 공을 슬쩍 문지르는 동작까지 하며 애틀랜타를 도발, 계속 그랬다면 모를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애틀랜타 입장에선 따지고 들기도 뭣했다.
그만큼 노련한 포수, 크레이튼의 뚝 떨어지는 싱커도 문제없이 막아냈다.
따악 ~ !!
“와아아 ~ !!”
클레이튼은 6회까지 1실점 호투를 펼치고 내려갔고, 보스턴은 6회 말 공격에서 연속 3안타를 묶어 2점을 추가했다.
스코어는 이제 5대 1, 브라이스 감독이 필승조를 투입하면서 월드시리즈 1차전은 보스턴의 완승으로 끝났다.
[공을 조작하는 건 사실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애틀랜타 여론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단순한 볼 교체였지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니 진짜 그렇게 보였던 것, 사무국은 딱히 문제될 장면이 없다는 입장을 표했고, 사무국이 방패막이를 자처하면서 보스턴 구단은 입을 다물었다.
문제는 내부 고발자를 찾아내는 것, 끈질긴 추격 끝에 범인을 찾아냈다.
범인은 보스턴의 클럽하우스 직원, 그런데 직원이라고 다 같은 직원이 아니다.
구단과 정식 계약을 맺은 정사원도 있지만 심부름을 해주면서 선수들에게 팁을 받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선수들이 주는 팁이 수익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최근 심부름 값이 줄어들자 불만을 품은 것, 수더랜드 단장이 내부 단속에 나섰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컨트롤하는 건 무리였다.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는군.’
보고를 받은 수더랜드 단장은 얼굴을 붉혔다.
보스턴의 팀 연봉은 메이저리그 1위, 그럼 선수들이 클럽하우스 직원에게 주는 팁도 그만큼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돈을 주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건 대형계약을 맺은 선수들이나 가능한 일, 일부 선수들은 팁 주는 돈도 아까워서 심부름을 안 시킨다.
그런데 왜 굳이 다카기를 저격하는 글을 올린 걸까.
하지만 범인은 조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는 중, 화가 머리끝까지 난 수더랜드 단장은 선수들에게 앞으로 심부름 값을 주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까짓 푼돈, 월급에 합산해서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선수들이 주는 팁으로 클러비 월급을 채워주는 것도 웃긴 일, 죄가 없는 직원들은 이 조치에 아쉬움을 표했다.
심부름을 해주고 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젠 구단이 주는 돈만 받아야 한다니, 살아가는 낙이 하나 사라진 기분이었다.
“걱정하지 마. 나는 계속 줄 테니까.”
“정말이야?”
“그럼, 너와 내가 입만 다물면 되는 거지. 어때?”
이 와중에도 다카기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직원을 흔들었다.
팁이 좋긴 좋은지 비밀을 지키겠다는 녀석, 다카기는 정신 차리라며 혼을 냈다.
“단장이 팁 받지 말라고 한 거 잊었어?”
“아, 아니 … 네가 준다고 한 거잖아?”
“네가 구단 지시에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지 시험해 본 거다.”
제대로 속은 직원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저쪽으로 멀어졌다.
왠지 낚인 기분, 그래도 구단의 지시는 확실히 머리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