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Respect - (22)
“자, 휴스턴의 1회 말 공격, 다카기 하루요시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제로,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선수를 이 무대에서 계속 본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포스트 시즌 진출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거든요.”
메이저리그는 미국의 4대 스포츠 중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이 가장 어려운 무대다.
30개 팀 중 열 팀만이 올라올 수 있는 무대, NBA만 봐도 16개 팀이 포스트 시즌에 올라온다.
이렇게 어려운 무대인데 다카기는 작년을 제외하면 포스트 시즌 무대를 매년 밟았다. 그것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제패, 보스턴 지역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카기를 영입한 보스턴이 운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보스턴의 일원이 된 다카기가 운이 좋은 것인가.’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라는 난제와 비슷한 질문, 나는 오늘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조용히 경기를 지켜봤다.
‘나 보기 싫었지?’
다카기는 가볍게 초구를 던졌다.
2차전에서 기분 좋은 반격에 성공한 휴스턴에게 다카기는 절대 만나선 안 될 선수, 브라이스 감독도 다카기를 4차전까지 아끼려 했지만 수더랜드 단장의 조급증이 지옥의 악마를 소환하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휴스턴은 홈구장과 호텔을 겸비한 특이한 구조, 호텔은 원정 선수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어느 멍청한 구단이 먼 길을 날아와 피곤한 상대 팀 선수들에게 호텔을 내주겠나?
그래서 보스턴의 에디슨 헨리 구단주는 자기 이름으로 호텔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그 방을 다카기에게 내줬다.
“나는 상관없지만 그 선수는 피곤하면 안 된다.”
구단주가 선수를 위해 자기가 쓸 방을 내주다니, 어느 쪽이 고용자고 누가 월급쟁이인가.
하지만 배경을 알면 이런 대우를 해주는 게 납득이 됐다.
[11승 1패, 평균자책점 1.27, 탈삼진 133개]
지난 8월 초부터 다카기가 지금까지 거둔 성적, 상대 팀들은 이 기막힌 투구를 넋 놓고 지켜봐야 했다.
4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구단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활약, 호투만 해준다면 그까짓 상전 취급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다시 땅볼입니다. 유격수가 잡아서 1루로 송구, 투 아웃입니다.”
“다카기가 마지막 실점을 한 게 언제죠?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네요.”
“글쎄요.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피트 오어가 기록지를 뒤적거리는 사이, 다카기는 1회를 마무리하고 내려갔다.
이젠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도 될 텐데, 동료들도 기가 막힌다는 얼굴, 몇몇 선수들은 수상한 대화를 나눴다.
“오늘도 완투할까?”
“아니, 그것보다 실점을 하느냐 마느냐에 거는 게 어때?”
도박은 절대 하지 말라고 따끔한 충고를 들었지만, 선수들끼리 개인적인 내기를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버스태드는 오늘도 무실점으로 끝날 거라며 선수를 쳤고, 한발 늦은 스티븐 루카스는 실점하는 쪽에 100달러를 걸었다.
“하아 … 내가 먼저 무실점에 걸었어야 됐는데 … ”
“흐흐 ~ 100달러나 준비해 둬, 지금 바로 쏴줘도 괜찮고”
경기는 어느덧 6회 초, 다카기는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다.
쌩돈 날리게 생긴 루카스는 뭐 씹은 표정, 반면 하버스태드는 입금할 준비나 하라며 루카스의 속을 긁었다.
따아악 ~ !!
“어?!!”
“뭐야?!!”
그런데 여기서 예상 못한 상황이 터졌다.
7대 0으로 뒤지고 있는 휴스턴이 솔로 홈런으로 1점을 만회한 것, 루카스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틀어막았다.
순식간에 역전된 입장, 하지만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다카기는 포수가 던져준 공을 받아들었다.
겨우 솔로 홈런 한 방, 카운트를 잡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 개의치 않았다.
‘넌 이미 아웃당한 거다.’
다음 타자 J. J. 핵먼을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다카기는 몸 쪽 빠른 볼을 결정구로 삼았다.
핵먼은 스윙 궤적이 바깥쪽에 맞춰진 선수, 간결하게 돌아 나온 방망이를 바깥쪽으로 밀면서 스윙 거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몸 쪽 빠른 볼은 잘 때려도 안타 밖에 안 나온다.
문제는 이런 좌우 제구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투수가 많지 않다는 것, 올 시즌 30홈런을 넘긴 핵먼에게 몸 쪽 빠른 공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지만, 다카기 앞에선 예외였다.
‘언제 내리지?’
한편, 브라이스 감독은 다카기의 심기를 살폈다.
던질 만큼 던지고 내려온다고 호언장담했던 에이스, 지금이 교체 타이밍이긴 하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 3경기 연속 완투라는 대기록이 걸린 경기, 눈치만 살피다 불펜에 지시를 내리는 걸 깜빡했다.
그 사이 저 멀리까지 가 버린 투구, 이제는 잡을 수도 없었다.
“헛스윙!! 삼진입니다!! 대기록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이제 5개!! 이 선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모두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설상가상 바람을 넣는 중계박스의 캐스터, 7회를 마친 다카기는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브라이스 감독은 코치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 있지만, 분위기상 교체는 아니다.
뭣보다 정말 교체할 생각이 있다면 내게 동의를 구했겠지,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자, 이제 보스턴의 8회 초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타석에는 제임스 올슨, 오늘 첫 타석에서 쓰리 런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게 결정타였죠. 다카기 선수가 오늘 공격적인 투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초반에 점수가 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한편, 피트 오어는 경기 전부터 품었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보스턴이 아닌 다카기, 다카기 없는 보스턴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다. 주례를 맡은 신부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이 관계가 앞으로도 쭉 이어지길 희망했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는 좌측!! 높은 곳으로!! 날아갑니다!!!! 제임스 올슨의 솔로 홈런!!!! 오늘 혼자서 4타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스코어 8대 1!! 보스턴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입니다!!”
“지금은 바깥쪽 높은 공인데, 올슨이 작년 시즌 높은 공에 약점을 보이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거든요. 그런데 올 시즌은 확실히 커버가 되고 있네요.”
홈을 밟은 올슨은 태연한 얼굴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날 두고 뒷담화를 하고 무시하던 녀석들이지만 오늘 2홈런을 쳤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죄를 지은 몸이지만 떳떳하게 가슴을 폈다.
‘뻔뻔한 녀석이군. 마음에 들어.’
다카기도 왼손을 내밀어 축하의 뜻을 표했다.
솔직히 올슨이 도박 사건으로 팀에 누를 끼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자기 플레이를 못하는 것도 팀에 누가 되는 일, 이런 때는 뻔뻔한 성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메즈는 실책을 하면 자기 플레이를 못하는 성격, 이런 유형은 큰 경기에서 활약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슨처럼 뻔뻔한 성격이라면 어떨까?
다카기는 독하고 승부욕이 있는 선수를 좋아하는 편, 그렇게 큰일을 벌이고도 자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올슨을 높이 평가했다.
‘너는 빛이고 나는 어둠이다. 그럼 된 거야.’
올슨도 다카기를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다.
화장실에서 장난처럼 주고받던 대화를 끄집어낸 건 저 녀석, 하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뒷담화를 하진 않았다.
그날 따끔하게 충고하고 끝, 올슨도 남자다운 성격이라 그런 깨끗한 성격을 좋아했다.
아주 친하게 지낼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 얼굴 붉힐 이유도 없는 사이, 다카기는 지난 7년 동안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에 비해 올슨은 풀타임 1년 만에 문제를 일으키고 지금은 동료들에게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는 신세, 어둠이지만 그래도 빛과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경기는 흘러 어느덧 휴스턴의 8회 말 공격, 다카기의 공격적인 투구는 계속됐다.
따악 ~ !!
“이번에는 중견수 쪽으로 갑니다. 디즌이 그 자리에서 잡아내는군요.”
“칠 테면 쳐보라고 던지고 있는데, 안 되네요. 그만큼 휴스턴 타자들의 심리가 위축됐다는 뜻일 겁니다.”
다음은 안타성 타구가 나왔지만 제임스 올슨이 처리하면서 투 아웃, 8회를 마무리한 다카기는 기어이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너무 객기를 부렸나.’
철벽의 에이스는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나도 사람인데 3경기 연속 완투를 하면 지치는 법, 그렇다고 숨이 턱 막히는 수준은 아니다. 기왕 시작한 객기라면 끝장을 봐야겠지, 남아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
딱 ~ !!
“밀립니다. 98마일!! 구위는 아직 건재합니다.”
“이 선수는 정밀 검사 한 번 받아봐야 합니다. 약물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인지 의심이 됩니다.”
“땀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저게 증거 아닙니까?”
“저것도 과학의 유산일지 누가 압니까.”
최근 미국은 오버 테크놀로지를 실현해 냈다.
많이 움직일수록 열을 내는 건 사람이나 로봇이나 마찬가지, 미국 연구진은 인간의 신체 기능을 토대로 땀 흘리는 로봇을 만들었다.
여기에 인조피부를 이식하면 그냥 사람, 다카기는 그 기술의 최종완성품 아닐까.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최근 활약을 보면 농담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짝 ~ 짝 ~ 짝 ~
보스턴 중계진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사이 다카기는 투 아웃을 잡아냈고, 다 포기한 휴스턴 홈 팬들은 박수 세례를 보냈다.
적이지만 훌륭한 투구, 박수라도 쳐 줘야 덜 비참해지지 않을까.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수더랜드 단장과 에디슨 헨리 구단주도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여정에 박수를 보냈다.
“됐어!!”
포수 앞에 떨어진 타구, 스탠리 호프만이 1루로 송구하면서 ALCS 3차전이 끝났다.
설마 했던 3경기 연속 완투 승, 한걸음에 달려온 스탠리 호프만은 주인을 보고 흥분한 강아지처럼 매달렸다.
하지만 지쳐있던 다카기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환대, 눈치를 살피던 호프만은 뒤로 물러났다.
“너도 지치긴 지치는구나?”
다카기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누가 툭 치면 픽 쓰러질 정도,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동안 줄에 묶인 강아지처럼 주인이 줄을 당기면 멈춰야 했는데, 간만에 자유를 만끽한 기분, 그래도 객기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Lord Takagi]
경기가 끝나고, 보스턴의 한 기자는 재미있는 기사를 내보냈다.
포스트 시즌 3경기 연속 완투를 소개하는 기사, 다카기의 이름은 4번 언급됐는데 그때마다 Lord라는 말이 붙었다.
평범한 선수가 아니니 앞으로 존경의 의미를 담아 그렇게 부르겠다는 뜻, 독재자들이 본인을 드높이기 위해 공문서에 자신을 찬양하는 경칭을 붙이도록 하는 경우는 역사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 미국,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경칭을 붙인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컸다.
[Lord Takagi pitched a complete game that led to victory]
= 다카기가 완투승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Lord Takagi, he always wins in the end]
= 다카기, 그는 언제나 승리한다.
뒤를 잇는 기자들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경칭을 붙여 기사를 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경칭을 붙이는 기자들, 조금 민망했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보겠나.
다카기는 눈 딱 감고 며칠 동안 왕이 된 기분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