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78화 (278/361)

278화. Respect - (20)

“그래서? 걸었데?”

“어,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지.”

이곳은 보스턴 클럽하우스의 화장실, 큰 경기를 앞두고 있지만 대화를 나누는 두 선수의 얼굴엔 긴장감 따윈 보이지 않았다.

최대 라이벌 뉴욕까지 완파하고 ALCS에 진출한 보스턴, 우리는 위대한 팀의 일원 아닌가.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뭐지?’

잠시 아래를 보고 걷던 제임스 올슨은 거대한 발과 마주했다. 위를 올려보니 가슴, 더 위를 올려보자 다카기의 얼굴이 보였다.

“뭘 걸었다고?”

“아 … 아니 … 그게 … ”

“지금 한 말, 조금 더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따라와.”

화장실에 가던 길이었지만 다카기는 문제가 된 두 선수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다른 선수들에게 기자들이나 외부인의 접근이 있으면 일단 막으라는 지시도 내렸다.

“그래서 뭘 걸었다고?”

“아니, 내가 직접 한 게 아니라 … 아는 사람한테 … ”

“헛소리하지 마라. 나 지금 진지하다.”

일본에는 한번 입 밖에 낸 말은 사마(駟馬)로 쫓아가도 붙들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사마는 네 마리가 이끄는 수레를 뜻하는데, 한 번 뱉은 말은 그만큼 빨리 퍼져나간다는 뜻, 자기들끼리 한 말이라도 문제가 되는데 클럽하우스에서 그런 말을 한다?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야, 너 풀타임 메이저리그 된 지 얼마나 됐어?”

“ … 올해부터야.”

“1년 만에 커리어 끝내고 싶냐? 어?”

다카기는 제임스 올슨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몇 년 전부터 주에서 허락한 스포츠 도박,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각 주는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박중독과 선수들의 승부조작 우려가 제기된 것도 사실, 그런 일은 남 일인 줄 알았는데 이 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 줄이야.

화장실에서 두 선수와 마주했을 때, 다카기는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너 얼마 걸었어. 솔직하게 얘기해”

“아 … 아니야, 신에게 맹세하는데 절대 나는 돈 안 걸었어. 친구한테 우리 팀에 걸라고 한 것뿐이야.”

“그게 사실이라도 문제는 문제야. 네 행동 때문에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올슨이 입을 다물자 다카기는 짧게 잔소리를 끝냈다.

“돈을 벌고 싶으면 도박을 하지 말고 실력을 키워. 승부욕을 발산하고 싶어? 그럼 그라운드에서 해, 알아들었어?”

상황을 정리한 다카기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는 감독, 하지만 다카기는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일이라며 짧게 답했다.

“위에도 알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야겠군.”

보고를 받은 보스턴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도박 수익 일부가 구단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선수 개인이 벌인 일이라도 팬들 눈엔 구단 전체가 공범이 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입막음을 해야 하는 상황, 수더랜드 단장은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문제없다, 나에겐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일단 제임스 올슨은 예정대로 출전시키기로 했다.

포스트 시즌인데 여기서 빼버리면 어디서 전력을 채우나, 자세한 내막은 더 들어봐야겠지만 처분은 시즌이 끝나고 난 뒤 결정할 일, 내부 사람들에게도 입막음을 해뒀다.

문제는 올슨에게 권유를 받은 사람들, 내부 입단속도 안심할 수 없는데 외부인이야 오죽하겠나. 구단 직원을 보내 결판을 냈다.

“올슨과 잘 아는 사이입니까?”

“예, 제 친구입니다.”

“제가 여기 왔으니 어느 정도 눈치는 채셨겠죠. 조금 문제가 생겼으니 협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슨의 지인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때는 그냥 친구들끼리 하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구단 관계자가 찾아왔다는 건 일이 제법 심각하다는 뜻 아닌가.

뭣보다 지금 보스턴은 매사추세츠 주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팀을 승부조작 논란으로 흔든다? 내 실명이 밝혀지는 순간 매장당하는 건 순식간, 수틀리면 살해협박까지 받을 수도 있다.

양 측 모두에게 좋을 게 없는 전개, 보스턴 관계자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서로 입을 다무는 게 좋지 않겠냐며 회유에 나섰다.

“당신이 이 도시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우리 팀을 응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중하겠습니다.”

상대가 순순히 응하자 보스턴 관계자는 다음 시즌 풀 관람 티켓을 선물하기로 약속했다.

금전거래보다는 그나마 덜 더러운 입막음, 이후 다카기는 선수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당부에 나섰다.

우리는 위대한 팀이라고 훈훈하게 디비전 시리즈를 마무리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다니, 문제를 일으킨 선수들은 따로 있지만 진짜 우리가 팀이라면 결과는 같이 책임져야 했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지?”

입을 다무는 선수들, 주위를 둘러본 다카기는 못다 한 말을 이어갔다.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이제 캡틴 아니다. 어린 선수들 이끌어줘야 할 이유 없고, 문제가 일어나도 해명에 나설 이유도 없어. 솔직히 내가 너희들에게 이런 말 하는 것도 불편해. 그런데 이것 하나만 확실히 해두자.”

다카기는 위대한 팀 그리고 위대한 보스턴은 허상이라고 못 박았다.

따지고 보면 다들 개인 사업자들, 보스턴과 계약을 맺고 용병으로 뛰어주는 것뿐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관계, 하지만 이번 시즌만큼은 보스턴의 우승을 위해 함께 가는 견해다.

다들 지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겠지, 그렇다면 각자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할 거 아닌가.

그 개개인의 노력이 합쳐져 ‘최고의 팀’이라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미 한 선수가 얼굴 붉힐 일을 저지르면서 보스턴은 명예에 흠집이 나 버렸다.

이번 시즌이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끝나도 우리는 앞으로 ‘그때의 보스턴은 위대했다.’라며 가슴을 펴고 말 할 수 있을까?

막말로 여기서 나간 선수가 나중에 이 사실을 폭로하면 팀 이미지 망가지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선수 개인의 선택, 이곳은 자유의 나라 미국 아닌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본인의 자유, 다카기는 다소 과격한 말을 쏟아냈다.

“그게 누가 될 진 아무도 몰라, 나중에 내가 직접 얘기할 수도 있겠지, 솔직히 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창피해서 미칠 것 같다.”

솔직하게 밝히고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맞는 일, 그런데 다카기는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내가 사과할 일도 아니지만, 어쨌든 진실을 알고 침묵한 건 사실 아닌가.

구단 관계자들이 입막음을 시도한 것도 침묵, 정말 이게 최선일까?

팬들을 속이고 날 속이는 게 아닐지, 너무 머리가 복잡했다.

“너희들이 이 팀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너희들 자유야, 내년에 나갈 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곳은 땀과 추억이 서린 보금자리야, 잠깐 머물러 갈 곳이라도 네가 머물던 자리는 깨끗하게 남겨두라고, 뒷사람들에게 민폐 되지 않도록”

할 말 다 한 다카기는 선수들을 남겨두고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얘기해 뒀으면 녀석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겠지, 그리고 나는 용병 아닌가. 언제까지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피곤, 더는 참견하지 않기로 했다.

* * *

“자, ALCS 1차전, 댈러스 레이븐이 선발로 나섭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는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4.91, 볼넷 2개, 3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4일 만의 등판이죠. 지난 경기 투구 수가 51개밖에 안 됐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을 겁니다.”

10월 19일, 오스틴 텍산스와 뉴욕을 연달아 격파한 보스턴은 휴스턴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단장이 입막음을 잘 해뒀지만 내부적으로 약간 동요하고 있는 보스턴, 덩치와 달리 약간 소심한 레이븐은 말할 것도 없었다.

‘너희들이 이 팀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너희들 자유라고?’

레이븐은 다카기가 던진 질문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팀이란 선수에게 집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집 없이 살 수 없듯이, 야구 선수가 팀 없이 어떻게 경기를 하겠나.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도 비슷, 그만큼 선수에겐 중요한 곳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뛴다고?’

레이븐은 다른 유니폼을 입은 자신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15살 때 보스턴 스카우터 눈에 띄었고, 입단하자마자 집중 관리를 받으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이자 직장, 다카기의 말대로 나중에 떠날 일이 있더라도 뒤에 올 사람을 위해 깨끗한 자리를 남겨주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그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문제를 일으킨 건 다른 선수들이지만, 이번 일로 느낀 게 많았다.

‘부끄럽지 않게 하자, 나와 모두를 위해서’

초구부터 정중앙을 찌르는 98마일 빠른 볼, 보스턴 팬들은 환호를 보냈지만 레이븐은 진지하게 투구를 이어갔다.

딱 ~ !

“이번에는 파울입니다. 98마일, 레이븐의 오늘 투구 어떻게 보십니까?”

“구위는 언제나 좋습니다. 문제는 제구죠. 스트라이크만 넣을 수 있다면 걱정할 게 없는 선수입니다.”

마침 굴러오는 2루 땅볼, 제임스 올슨은 타구를 잡아 1루로 송구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팬들의 함성이 왜 이렇게 가슴에 박히는지,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니 이런 환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우리는 위대한 팀이라는 말을 내뱉은 로버트 클레이튼도 더그아웃에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렛츠 고!! 보스턴!!”

“렛츠 고!! 보스턴!!”

선수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팬들의 함성, 그래도 어쩔 건가. 보스턴 선수단은 아무렇지 않게 연극을 이어갔다.

“스윙!! 삼진입니다!! 오늘 7번째 삼진!! 레이븐이 호투를 이어갑니다.”

“이제는 레이븐 차례인가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보스턴 선발진의 활약은 정말 놀랍습니다.

레이븐은 6회 투 아웃까지 2피안타만 내주고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심지어 볼넷은 제로, 레이븐이 제2의 다카기가 돼 주길 바라는 보스턴 팬들은 더 잘하라며 호투를 부추겼다.

따아악 ~ !!

“아 … 이 타구는 꽤 멀리 가는데요. 좌중간 담장을 넘어갑니다. 제이슨 버나드의 솔로 홈런, 휴스턴이 한 점을 만회합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6대 1인데요 뭘”

솔로 홈런이 나왔지만 팬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 레이븐은 후속 타자를 땅볼로 처리하고 6회를 마무리했다.

“더 던질 수 있나?”

투구 코치의 물음에 레이븐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찝찝한 기분은 몸을 움직여야 풀리는 법, 오늘은 내가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나는 이런 연기는 못해.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라고’

동료들은 레이븐에게 환호를 보냈지만, 다카기는 양팔을 교차한 채 감정 없는 표정을 유지했다.

상대를 도발하는 연기는 잘 하지만 거짓말은 못하는 편, 여기서 레이븐이 호투를 하면 더럽혀진 팀의 명예가 조금이나마 씻겨 나갈까.

어떻게 풀타임 1년 차밖에 안 된 녀석이 그런 짓을 한 건지, 제임스 올슨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그런 말을 태연하게 클럽하우스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건지, 생각하는 뇌가 없는 건가. 단장이 찍어뒀으니 조만간 처분이 내려지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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