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77화 (277/361)

277화. Respect - (19)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포스트 시즌 선수는?]

ALDS 3차전이 끝나고 보스턴 지역 여론은 기사를 쏟아냈다.

역대 포스트 시즌에서 가장 맹위를 떨친 선수는 누구일까? 물어봤자 의미 없는 엎드려 절 받기, 보스턴 여론은 1위에 다카기의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세인트루이스의 마이크 무손, 3위는 뉴욕의 전설 샘 파슨스가 선정됐는데 뉴욕 여론은 격한 항의를 표했다.

“1위는 인정한다. 하지만 마이크 무손이 2위인 건 인정 못 한다.”

마이크 무손은 현역 시절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샘 파슨스는 5번이나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에이스, 비교할 걸 비교하라며 발끈했다.

[포스트 시즌 3경기 연속 완투승, 라이브볼 시대의 유일무이한 단일시즌 300이닝 투구]

하지만 보스턴 여론은 무손이 2위에 오를 자격은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샘 파슨스가 포스트 시즌 최강자로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역대 최다인 22승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기록은 다카기가 24승으로 갈아치웠다.

■ 1956년 2승 1패, 평균자책점 4.78(월드시리즈 우승)

■ 1957년 3승 2패, 평균자책점 2.45

■ 1958년 2승 1패, 평균자책점 3.22(월드시리즈 우승)

■ 1959년 3승 무패, 평균자책점 3.43(월드시리즈 준우승)

■ 1961년 4승 무패, 평균자책점 3.53(월드시리즈 우승)

■ 1962년 3승 무패, 평균자책점 4.54(월드시리즈 우승)

■ 1964년 2승 1패, 평균자책점 3.81

■ 1967년 2승 2패, 평균자책점 3.00

■ 1968년 1승 1패, 평균자책점 4.50(월드시리즈 우승)

■ 1970년 0승 2패, 평균자책점 5.35

파슨스의 포스트 시즌 커리어는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무려 15년 동안 포스트 시즌 무대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1958년부터 62년까지의 기록을 제외하면 활약에 약간 기복이 있었다.

특히 1962년은 무려 평균자책점 4.54를 기록하고도 3승을 챙기며 월드시리즈 우승, 운이 따라준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에 반해 마이크 무손의 포스트 시즌은 짧고 굵게 끝났지만 3경기 연속 완투, 정규시즌 포함 포스트 시즌에서 339이닝을 소화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길고 굵은 놈이냐. 짧고 완전 굵은 놈이냐.”

결국 여론의 요지는 이것, 1위는 이미 정해졌고 어느 선수가 역대 포스트 시즌 최고의 투수 2위에 올라야 하는가.

기자들은 다카기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1위 앞에선 2위든 3위든 의미 없습니다.”

다카기는 논란을 깔끔히 정리했다.

1위가 압도적이면 나머지 순위는 사람들 기준에 따라 갈리는 거 아닌가. 15년 동안 포스트 시즌에 10번이나 진출한 파슨스도 대단하고, 팀의 멱살을 잡고 이끈 마이크 무손도 대단, 그래봤자 내가 최고라는 말로 기자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참, 그것도 아십니까?”

“뭐가 말입니까?”

“요즘 도박꾼들 사이에서 당신의 완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 같은데요.”

포스트 시즌 3경기 완투는 마이크 무손이 유일, 다카기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2경기 연속 완봉이라는 역대 급 퍼포먼스를 치렀다.

설마 3경기까지 갈까? 투구의 신은 내가 알 바 아니라는 입장을 표했다.

“한때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난리를 떨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결국 신은 인간 세상에 관심 없는 겁니다. 세상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결국 인간의 몫이죠. 도박사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너희들 날 두고 주사위 놀이를 하는 건 자유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는 뜻, 기자들은 역시 투구의 신답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다카기 완투에 배당 7배 측정]

그러건 말건 도박꾼들은 신을 두고 주사위 놀이를 거듭했다.

설마 3경기 완투까지 가겠나? 많은 도박꾼들이 이번만큼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래도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완투에 돈을 걸었다.

‘나한테는 왜 안 물어보는 거야?’

브라이스 감독은 들끓는 여론 사이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카기가 투구의 신이라고 해도 이 선수를 올리고 내리는 건 내 권한이다. 신 위에 군림하는 자가 있는데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 약간 서운했는지 다카기를 툭 건드렸다.

“자네 다음 경기도 완투하고 싶나?”

“왜 그런 말을 하세요?”

“하고 싶으면 하게, 내가 허락할 테니까.”

“웃기지 마세요.”

완봉을 할 수 있어서 한 거지 이 사람이 허락했다고 했나? 완투를 하고 마는 건 내 능력이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 내가 내리면 어쩌려고 그러나?”

“저야 상관없어요. 그랬다간 누가 욕을 먹을까요? 적어도 저는 아니겠죠.”

한번 고개를 숙일 법도 한데 끝까지 뻣뻣한 선수, 약간 토라진 브라이스 감독은 저쪽으로 가버렸다.

사실 지금 다카기의 완투보다 더 중요한 건 디비전 시리즈 4차전, 여기서 패배하면 다시 뉴욕으로 가서 어려운 경기를 해야 한다.

4차전에서 끝내는 게 최선, 브라이스 감독은 투수 기용을 두고 머리를 쥐어짜 냈다.

일단 필승조 3명은 모두 투입하기로 했다.

다카기가 3차전에서 완투를 해 준 덕분에 불펜진의 체력은 충분, 문제는 선발인데 다카기와 레이븐은 제외하면 나머지는 비슷비슷, 2년 전까지 2선발로 활약하다 밀려난 로버트 클레이튼을 선택했다.

로버트 클레이튼은 한때 싱커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은 투수, 하지만 이것도 옛 영광이 됐다.

‘뭐가 문제였을까?’

브라이스 감독은 클레이튼의 몰락을 안타깝게 여겼다.

싱커는 회전이 걸리는 구종 특성상, 그립이나 팔의 회전에 따라 무브먼트가 다양해진다.

전성기 시절, 로버트 클레이튼이 던졌던 싱커는 타자 몸 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질 만큼 역동적인 무브먼트를 보였다.

빠른 볼이 아니라 역회전 브레이킹 볼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하지만 공이 이렇게 휘었다는 건 팔을 그만큼 무리하게 틀었다는 뜻이다.

유연성이 타고 났다면 어느 정도 버텼겠지만, 클레이튼은 그게 아니었던 것, 빠른 볼 구속이 떨어지면서 싱커도 같이 죽어버렸다.

특유의 무브먼트는 예전과 다르지 않지만, 빠른 볼이 받쳐주질 않으면 의미 없는 짓, 클레이튼은 올 시즌 빠른 볼 구위에 따라 경기 내용이 갈렸다.

오늘 끝내려는 보스턴, 5차전까지 가려는 뉴욕, 양 팀 모두 호프만의 구위에 집중했다.

“초구,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오늘은 괜찮아 보이는데요.”

“정말 안 좋을 때는 90마일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는데, 일단 시작은 좋습니다.”

클레이튼은 이날 최고 93마일 빠른 볼을 던졌다.

97마일까지 던졌던 예전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치, 하지만 이 정도만 나와도 문제될 건 없었다.

‘이건 또 뭐냐?’

뉴욕 타자들은 변화무쌍한 싱커에 혀를 내둘렀다.

싱커는 보통 밑으로 떨어지는 공, 옆으로 휘는 움직임은 그만큼 떨어진다. 반면 클레이튼이 제대로 챈 싱커는 옆으로 휘어나가며 타자들의 스윙을 유혹, 아웃카운트는 빠르게 쌓여갔다.

따악 ~ !!

“투수 옆을 빠져나가지만 잡아서 1루로 송구합니다!! 제임스 올슨의 멋진 수비!! 보스턴은 오늘도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안타깝네요. 클레이튼이 지금까지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면, 보스턴은 역대 최강의 선발진을 보유할 수도 있었는데 몸이 재능을 받쳐주질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보스턴 내야진이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클레이튼은 5회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갔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호투인지, 정규시즌 평균자책점 5.14를 기록하며 미운오리 취급을 받았던 클레이튼은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빠른 볼!! 지켜봅니다!! 삼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건 떨어지는 싱커를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역시 싱커 하나는 기가 막히게 던지네요.”

필이 제대로 왔는지 클레이튼은 평소 잘 던지지 않는 떨어지는 싱커를 보여주고 빠른 볼을 던져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떨어지는 싱커는 빠른 볼과 회전이 비슷해 구별하기 어려운 편, 왜 나는 옆으로 휘는 싱커를 고집했던 걸까.

너무 떨어지는 구종만 던지는 것 같아서 투심처럼 옆으로 휘는 공을 던지려고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더 꺾이면서 효과를 보자 주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보고 느끼는 그대로, 망가진 커리어지만 아직 29살 아닌가.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딱 ~ !

‘이리 오너라.’

다시 떨어지는 싱커, 타구를 잡은 고메즈는 바로 1루로 송구했다.

어느새 6회, 심지어 투구 수는 77개 밖에 안 된다.

이러다 클레이튼까지 완봉승을 하는 건가. 동료들은 갈 데까지 가보라며 바람을 넣었지만 브라이스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필승조 3인방을 불펜에 대기 시켜놨기 때문에 클레이튼은 길어 봤자 6회라고 정해뒀다. 그리고 지금은 포스트 시즌, 개인기록보다 팀 승리를 우선하는 건 당연했다.

“자네는 오늘 훌륭했어.”

감독의 칭찬에 클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6회까지 퍼펙트게임을 했지만 야수진의 호수비가 없었다면 안타 3개는 맞았을 거다.

여기까지 이닝을 이끌어 준 것도 기대 이상의 활약, 나머지는 동료들에게 맡겼다.

‘갚을 게 있지만 일단 넘어간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하버스태드는 첫 두 타자를 모두 범타 처리했다.

다음 타자는 숀 스팸, 베논 리퍼드가 맞은 빈볼을 갚아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뉴욕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최고의 복수, 초구부터 몸 쪽 빠른 볼을 밀어 넣었다.

딱 ~ !!

“파울입니다. 101마일, 하버스태드는 오늘 힘이 넘칩니다.”

“이제 9년 차에 접어든 선수인데 구속 하락이 전혀 없습니다. 특히 불펜 투수들이 구속 하락으로 말년에 고생을 하는데, 내구력은 정말 타고 났어요.”

하버스태드는 다시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아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라도 치기 어려운 구위, 호프만은 슬라이더를 요구했지만 하버스태드는 빠른 볼이면 충분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와아아 ~ !!!!”

몸 쪽 높은 빠른 볼로 헛스윙 삼진, 하버스태드는 가슴을 치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스티븐 루카스가 8회까지 지워내며 경기는 이제 9회 초 뉴욕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브랜든 바이어가 마운드에 올랐다.

구속은 빠르지 않아도 빠른 볼과 비슷한 회전을 가진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뺏는 고수, 풀스윙을 많이 하는 뉴욕타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엿 먹였다.

“스윙!! 떨어집니다!! 삼진!! 이제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1개뿐입니다!!”

“여기서 잡아내면 팀 퍼펙트거든요. 마무리를 잘 했으면 합니다.”

피트 오어의 요구대로 바이어는 2루수 앞 땅볼을 이끌어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올라가는 순간 브라민 파크는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 메이저리그 역사상 포스트 시즌 퍼펙트게임은 1번 있었지만, 팀 전체가 만들어낸 기록은 이게 처음이다.

말 그대로 위대했던 팀, 기자들 앞에 선 클레이튼도 비슷한 소감을 밝혔다.

“6회까지 퍼펙트게임을 이어갔는데, 교체가 아쉽진 않았습니까?”

“퍼펙트게임은 원래 팀이 만들어내는 기록입니다. 아무리 투수가 잘 던져도 모든 아웃 카운트를 자기 힘으로 잡아낼 순 없죠. 그런 점에서 저는 오늘 경기를 커리어 최고의 경기로 꼽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 완벽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팀의 일원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보스턴은 위대합니다.”

이 인터뷰로 미운오리는 백조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못 던진다고 욕을 퍼부었던 팬들의 양심을 찌르는 발언, 일부 팬들은 보스턴의 일원인 당신도 위대하다는 말로 크레이튼의 활약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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