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68화 (268/361)

268화. Respect - (10)

“자,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가 전반기 마지막 등판에 나섭니다. 올 시즌 16경기 등판, 13승 2패 평균자책점 1.33, 128이닝 동안 볼넷 14개, 탈삼진은 151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페이스가 그렇게 좋진 않죠. 최근 3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페이스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운이 좀 없는 편이죠. 일단 평균자책점이 2.00이니까요.”

다카기는 요즘 득점 지원을 거의 못 받았다.

지난 등판에서 7이닝 2실점 투구를 했는데도 타선이 1점밖에 지원해주지 못하면서 패배, 하지만 승패는 실력이 아니라 운에 갈리는 거라 본인은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너 지금 뭐 하냐?’

초구를 던진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상대하는 팀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2위를 달리고 있는 오스틴 텍산스, 선두 타자 발렌틴 마츠는 번트를 대는 시늉을 했다.

물론 진짜 댈 생각은 없었겠지만, 최근 메이저리그에선 번트를 대다 아찔한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마이클 스틸, 번트 중 부상]

겨우 일주일 전, LA 머린스의 선발 마이클 스틸은 번트를 대다 타구가 얼굴을 가격하면서 안구 뼈 일부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현대 야구는 강속구가 지배하는 시대, 당연히 번트를 대다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아메리칸 리그 투수들은 인터리그를 치를 때 공에 맞을까 봐 아예 번트를 포기하는 지경, 내셔널리그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실제로 타석에서 부상을 입는 투수들이 늘어나자 내셔널리그 선수를 고객으로 보유한 에이전트나 단장들은 이젠 내셔널리그도 지명타자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 그만큼 번트는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민감한 일이 됐다.

‘나는 몸 쪽 안 가린다.’

다카기는 눈빛으로 헛짓거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저러다 타구에 맞아 다치면 본인 책임, 오스틴 텍산스의 감독 제이슨 배이도 어설픈 번트는 자제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약간 촐랑거리는 끼가 있는 발렌틴 마츠는 다시 번트 자세를 잡는 척하다가 기어이 사고를 쳤다.

딱!!

퍽!!

배트를 맞고 얼굴로 튄 타구, 발렌틴은 얼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고 바로 투입된 구급 요원, 텍산스의 배이 감독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괜찮아!! 괜찮아!!”

다행히 툭툭 털며 1루로 걸어가는 녀석, 하지만 다카기의 목소리에 발목을 잡혔다.

“어이!! 지금 뭐 하는 거야?!!”

배트에 타구가 맞았으니 파울 아닌가,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태연하게 1루로 걸어 나가는 건지, 그제야 발렌틴 마츠는 상황을 이해하고 타석으로 돌아왔다.

“적당히 까불어라. 그러다 진짜 먼저 가는 수가 있다.”

다카기는 한 번 더 경고를 날리고 마운드로 돌아갔다.

여유가 넘치다 못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녀석, 지금 날 상대로 여유를 부리겠다는 건가. 바로 응징에 나섰다.

“몸 쪽!! 삼진입니다!! 첫 타자를 공 세 개로 돌려세우는군요!!”

“발렌틴은 오늘 다카기에게 확실히 찍힌 것 같네요. 다음 타석 조심하길 바랍니다.”

보스턴 지역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발렌틴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러잖아도 요즘 부상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또 비극이 일어나서 좋을 게 뭐가 있나.

다카기를 상대론 번트를 자제하는 게 답, 마침 발렌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짝 자극해 보려고 했는데 잘못하면 내가 당하겠네.’

훅 치고 들어오는 빠른 볼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 공에 희생양이 된 선수들도 제법 있는 편,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발렌틴은 다카기의 무서움을 뒤늦게 깨달았다.

‘까불지 말아야지.’

나머지 선수들은 상대를 도발하겠다는 계획 따윈 처음부터 품지도 않았다.

수틀리면 바로 날아오는 위협구, 그 성깔을 알고 있으니 괜한 시비는 걸지 않았다. 어쨌든 다카기는 1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보스턴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돼’

타석에 들어선 고메즈는 의욕을 불태웠다.

평균 자책점 2.00을 찍고 2패만 당한 캡틴, 이건 누구의 책임인가.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한 최근 팀 타격, 덕분에 보스턴은 아메리칸 리그 1위 자리도 뉴욕에게 넘겨줬다.

캡틴은 물론 팀의 명예가 달린 경기, 고메즈는 투 스트라이크에 몰렸지만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가는 집중력을 보였다.

“낮은 공!! 배트!! … 돌았다는 판정이군요!! 고메즈 선수가 펄쩍 뛰어 오릅니다.”

“글쎄요. 지금은 배트가 돌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이런 상황에선 1루심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정상 아닌가요?”

아니나 다를까 중계카메라가 문제의 장면을 클로즈 업 했다.

돌지 않은 배트, 부당한 판정에 발끈한 고메즈는 주심의 귀에 대고 괴성을 질러댔다.

“안 돌았어!! 안 돌았다고!! 안 돌았다니까!!”

황급히 뛰쳐나온 브라이스 감독은 고메즈를 붙잡았다.

퇴장을 당하더라도 내 몫, 평소 얌전한 성격으로 유명한 브라이스 감독은 주심과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였다.

그 사이, 코치의 안내를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던 고메즈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주심에게 돌진, 문제의 장면을 확인한 관중들도 주심을 향해 괴성과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주심이 퇴장을 명령하면서 더욱 달아오르는 분위기, 흥분한 고메즈는 다시 주심에게 달려들었다.

‘가끔은 저런 것도 필요하지.’

불펜에서 몸을 풀던 다카기는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선수가 너무 얌전하면 주심도 선수를 깔본다.

클레임 없는 가게에 좋은 물건을 주는 사장이 있을까? 지랄을 떨고 끈질기게 괴롭혀야 사장도 알아서 좋은 물건을 챙겨준다. 판정에 항의하는 건 선수의 권리, 이런 장면은 좋게 받아들였다.

‘XX, 지금 장난해?’

이어지는 오스틴 텍산스의 2회 초 공격, 초구를 포구한 스탠리 호프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1회에는 잡아줬던 코스, 우리가 항의 좀 했다고 바로 불이익을 주는 건가. 몸 쪽을 요구하고 공을 슬쩍 피해 버렸다.

제대로 심판을 저격한 99마일 빠른 볼, 이런 상황을 바랬던 건 아니라 다카기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피하냐’

눈치를 줬지만 잘못한 게 없다는 얼굴로 홈 플레이트를 서성거리는 호프만, 한편 제대로 한 방 먹은 주심은 고통을 호소하며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다.

예상도 못했던 저격, 무방비 상태에서 맞은 공이라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미안합니다. 사인이 어긋났어요.”

다카기는 주심에게 다가가 뒷수습을 했다.

몸은 제법 살이 쪘는데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하체,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 주심을 보니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네들 날 해칠 생각은 아니었겠지?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방금 전까지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더니 갑자기 얌전해진 태도, 다카기는 다시 한 번 사과를 표하며 주심의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다는 뜻으로 팬들에게 서비스 좀 해줘요.”

“어떻게 말인가?”

다카기는 프론트 랫 스프리드 자세를 잡았다.

보디빌더들이 가슴 근육을 과시하기 위해 취하는 포즈, 균형이 잡힌 몸이라면 제법 폼이 나겠지만, 저런 드럼통 몸매라면 어떤 자세를 잡아도 꽝이다.

그래도 이런 소소한 세리머니가 관중들에게 주는 재미가 있겠지, 주심은 포즈를 취했지만 당장 집어치우라는 관중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뭘 잘했다고 세리머니를 하는 건지, 너는 헤드 샷 맞고 병원으로 실려 나가야 환영 받을 몸이라는 폭언도 쏟아졌다.

그러건 말건 주심은 씩 웃으며 보호 마스크를 뒤집어썼고, 호프만도 홈 플레이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완전히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아깝다.’

그럭저럭 상황은 수습됐지만 호프만 포수는 마음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렸다. 뜨거운 맛을 봤으니 본인도 느낀 게 있었겠지, 주심이 볼을 줬던 그 코스에 미트를 들이밀었다.

“스트라이크!!”

주심은 바로 시정에 나섰다. 바깥쪽을 잡아 줘야 몸 쪽으로 볼이 날아오는 불상사가 없을 거 아닌가.

실제로 바깥쪽보다 몸 쪽을 던졌을 때 타자 - 포수 - 주심이 부상을 입는 빈도가 더 높은 편, 덕분에 스트라이크 존은 약간 넓어졌다.

덕분에 한결 수월해진 투구, 다카기는 4회까지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지만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덕을 보는 건 오스틴 텍산스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터지지 않는 방망이, 번트라도 대서 쥐어짜내야 하나.

하지만 1회 초 나온 아찔한 장면 때문인지, 양 팀 감독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날 다카기는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도 노 디시전으로 마운드를 내려갔고, 보스턴은 10회 말 알 디즌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겨우 승리를 챙겼다.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이날의 영웅은 분명 다카기, 기자들은 아쉽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가 선발로서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많은 이닝을 버텨주는 겁니다. 오늘도 8이닝을 소화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오늘 댄 모리스 주심이 저격당하는 아찔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혹시 의도하고 던진 겁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다카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은 호프만이 저질렀는데 뒷수습은 내가 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최대한 성의를 표해 답을 했다.

“절대 의도하고 던진 건 아닙니다. 호프만이 바깥쪽을 요구했는데 제가 사인을 잘못 본 겁니다. 이 자리에서 모리스 주심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뜻을 표하겠습니다.”

그렇게 끝난 하루 일정, 다카기는 직관을 온 가족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뒤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아빠”

“왜 그러니?”

“정말 일부러 던진 거 아니에요?”

이때, 말없이 식사를 하던 장남 타다요시가 큰 눈을 깜빡이며 아빠를 심문했다.

어린 아들 앞에서 ‘그래, 내가 던졌다.’해서 좋을 거 없지 않은가. 그리고 고의로 던진 게 아닌 것도 사실, 사실대로 털어놨다.

“포수가 그렇게 한 거야. 아빠는 주심 노리고 던진 적 없어.”

“어? 그럼 아빠가 그 사람이 잘못한 거 뒤집어쓴 거예요?”

“뒤집어쓴 게 아니야. 윗사람이라면 아랫사람의 잘못도 안고 갈 줄 알아야 된다.”

캡틴이라는 놈이 그 자리에서 모든 일은 호프만이 꾸민 거라고 털어놨다고 치자, 사실이지만 얼마나 멋없는 인터뷰인가.

애정의 방향이 약간 어긋났을 뿐, 호프만은 분명 날 위해 주심을 저격했다. 그걸 내가 감싸 줘야지 누가 하겠나?

솔직히 주심 기분에 맞춰주느라 속이 약간 메스꺼웠지만 주심과 싸워봤자 팀에 좋을 게 없는 경기, 다카기는 어린 아들에게 큰 사람이 되려면 참을 줄도 알아야 된다는 충고를 줬다.

“사람은 내 편으로 만들어 두면 언젠간 쓸모가 있어. 너도 잘 기억해 둬라”

“그럼 그 사람은 아빠한데 쓸모가 있었던 거예요?”

“당연하지, 아빠 공 받아주는 사람인데, 필요 없는 사람이면 감싸주지도 않았어. 아빠가 작년에 선수 한 명 쫓아낸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아 ~ 아 ~ 그렇구나. 쓸모 있는 사람은 감싸주는 거구나 ~ ”

부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키리코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한테 저런 말을 하는 아빠도 가관이지만 그걸 또 알아듣는 아들은 뭔가,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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