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66화 (266/361)

266화. Respect - (8)

[다카기 하루요시, 내일 시즌 10번째 등판]

시즌은 어느덧 6월 초, 다카기는 휴스턴 원정 등판에 나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올해까지 7년 동안 반복된 등판, 하지만 여론은 그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공략할 방법이 없다.”

“이제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공은 공략이 불가능하다.”

“신이 내려와서 투구를 한다면 바로 저 모습일 거다.”

곳곳에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증언이 터져 나왔다.

상대팀 선수를 칭찬하는 건 메이저리그에서 늘 있는 일, 이건 대부분 상대를 띄워줬다가 처박아 버리는 작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분위기, 세부지표를 들여다보면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 8승 무패, 평균자책점 1.09, 74이닝, 6볼넷, 83삼진

■ 9이닝 당 홈런 : 0.48개

■ 9이닝 당 볼넷 : 0.72개

지금은 탈삼진, 피홈런, 볼넷 허용률로 투수를 평가하는 시대, 다카기는 이 3가지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한 투수다.

어떻게 이런 투구가 가능한 걸까. 구위도 구위지만 경기 중에 바뀌는 투구 스타일도 큰 몫을 차지했다.

“처음엔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던지다가 나중엔 빠른 볼과 체인지업으로 패턴이 바뀐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활용한다.”

다카기의 동료로 지내왔다가 올해 휴스턴으로 팀을 옮긴 J.J. 핵먼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메이저리그에는 스트라이크 존 위 아래를 공략하는 타입이 드물다.

슬라이더의 구종가치가 주목을 받으면서 스플리터나 커브볼의 유행이 많이 죽은 게 원인, 실제로 슬라이더에 비해 스플리터와 커브볼이 손에 익히기 어려운 구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브나 체인지업을 잘 던지는 동양인 투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의외로 선전할 수 있었던 것, 실제로 미국은 고등학생들에게 변화구나 스플리터를 조금 더 빠르게 던지도록 가르치지만, 일본은 눈에 조금 보이더라도 더 떨어지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확실히 차별성을 보인다.

이것만 잘해도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정도 통할 수 있는데, 다카기는 그 차원을 넘어섰다.

다카기는 예전부터 바깥쪽 높은 공으로 삼진을 잡는 패턴을 몸에 익혔다. 그럼 이 공을 던지기 전에 뭘 던졌을까? 82 ~ 90마일 사이를 오가는 스플리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구위가 떨어져서 변화구 구속을 늦췄습니다.”

한 예로 지금은 전설이 된 뉴욕의 선발 투수 러스트 벨린(통산 267승 평균자책점 3.54)은 전성기 시절 90마일 후반대의 직구와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으로 많은 탈삼진을 뽑아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직구 구속이 떨어져 변화구와 큰 차이가 없게 되자 난타를 당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변화구 구속을 낮춘 것,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2년 동안 평균자책점 5점대 이상을 기록하며 난타를 당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부활하며 18승,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 변화구 구속을 컨트롤 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다카기는 30도 안 된 나이에 이게 가능한 수준에 올라선 것, 무기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좌우를 찌르는 제구력도 환상, 덕분에 타자의 타이밍을 흔들어 가며 투구를 할 수 있다.

타자 입장에선 그저 기가 막힐 노릇, 여기에 평속 97마일에 이르는 구위까지 갖췄는데 뭘 어쩌라는 건가. 메이저리그 경력이 쌓이면서 약점을 드러내는 투수들이 많은데, 다카기를 분석할수록 상대팀이 느끼는 건 압도적인 실력 차와 절망뿐이었다.

“자,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가 시즌 10번째 등판을 치릅니다. 올 시즌 9경기 등판, 8승 무패 평균자책점 1.09, 74이닝 동안 볼넷 6개, 탈삼진은 83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모든 경기에서 8이닝 이상을 소화했죠. 여기에 완투도 2번 … 참고로 여러분들은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고 계십니다.”

다카기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피트 오어도 경이로운 성적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대학리그에서도 안 나올 성적, 그런데 이게 지구상 최강의 괴수들만 모인 메이저리그에서 나올 기록인가.

말 그대로 불펜이 필요 없는 투구, 여론은 이미 7년 연속 만테냐 어워드 수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정말 다카기의 이름을 딴 상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만테냐 어워드가 다카기 어워드가 되어버린 상황, 팬들은 7년 연속 왕좌 등극을 위해 달려가는 위대한 여정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젠 마법까지 부리냐?’

선두 타자 존 해먼드는 초구를 지켜봤다.

평상시 패턴이라면 바깥쪽 빠른 볼인데, 들어온 건 82마일짜리 체인지업, 거기다 스트라이크 콜이 울렸다.

다카기는 평소 체인지업을 헛스윙을 유도하는데 쓰지만, 가끔은 이렇게 스트라이크를 잡는 용도의 체인지업도 던진다.

노리고 친다면 얼마든지 공략할 수 있지만, 빠른 볼을 잔뜩 노리고 있던 타자 입장에선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는 공, 다음 공은 바로 몸 쪽으로 붙였다.

“스윙!! 크게 헛칩니다. 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지금은 완전히 타이밍이 늦었네요. 하지만 누구도 이 선수를 비난할 순 없습니다.”

존 해먼드는 올 시즌 타율 0.307, 홈런 8개, 출루율 0.357을 기록하고 있는 수준급 리드오프다.

부진에 부상이 겹치면서 한동안 다른 선수들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올해는 완벽히 부활, 최근 3경기에서 5안타를 칠 정도로 페이스도 좋다.

메이저리그에서 주전급에 올라선 선수가 못 칠 공이라면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다음 공은 바깥쪽 높게 들어왔고 해먼드는 겨우 커트해 냈다.

‘하나만 치자. 딱 하나만’

해먼드는 목표를 높게 잡지 않았다. 저런 투수를 상대할 땐 안타 하나만 쳐도 그날은 성공, 다시 바깥쪽 높은 공이 들어오자 힘껏 밀어냈다.

‘아빠에게 오세요.’

하지만 2루수의 글러브에 걸린 타구, 제임스 올슨은 한 타이밍 늦게 송구를 하는 여유를 보였다.

저 정도 여유를 부릴 수 있다면 이제 다 컸다는 거겠지, 다카기는 거침없이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했다.

‘이거 왜 이래?’

다음 타석은 J.J. 핵먼, 바깥쪽 빠른 볼을 노리고 있던 핵먼은 몸 쪽으로 들어오는 체인지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와 너무 다른 패턴, 당황한 핵먼은 옛 동료였던 호프만 포수에게 농담을 걸었다.

“너무 머리 쓰지 말라고, 그러다 당할 수도 있어.”

“글쎄, 당하는 건 어느 쪽일까.”

호프만은 보란 듯이 바깥쪽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눈에 보이는 공, 핵먼은 반사적으로 스윙을 돌렸지만 생각보다 더 떨어지는 궤적에 헛스윙을 돌렸다.

‘아 ~ 이거였구나.’

핵먼은 그제야 자신이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빠른 볼을 결정구로 삼고 있었던 배터리,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흔든 건 결정구를 던지기 위한 밑그림이었다.

그럼 빠른 볼을 노려 치면 될 거 아닌가.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 다카기는 상하좌우 제구가 되는 투수다.

몸 쪽으로 오면 타이밍을 조금 더 빠르게 잡아야 하는데, 그러다 바깥쪽이 들어오면 당한다. 뭘 던질지 알아도 공략이 쉽지 않은 것, 일단 빠른 볼에 타이밍을 잡았다.

“스윙!! 떨어집니다!! 체인지업 3개로 핵먼을 돌려세우는군요!!”

“지금은 90마일이네요. 분명 체인지업 3개를 던졌는데 종류가 다 다릅니다. 뭐 이런 투수가 다 있습니까?”

“핵먼의 눈에는 분명 빠른 볼로 보였을 겁니다. 아마 본인도 빠른 볼을 노리고 있었을 텐데 … 철저하게 농락당했네요.”

삼진을 당한 핵먼은 투수 쪽을 쳐다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통산 6번 째 올스타 선정을 노리고 있는 날 어린애처럼 가지고 놀다니, 동료였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남이 되고 나니 저 녀석이 얼마나 무서운 투수인지 깨닫게 됐다.

“야, 체인지업 조심해. 체인지업이 좋아.”

“그걸 누가 몰라서 당하냐?”

머쓱해진 핵먼은 동료들에게 농담을 걸었다가 역풍을 맞았다.

안 하느니 못한 썰렁한 농담, 그 사이 다카기는 후속 타자를 땅볼 처리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투구 수는 겨우 9개, 무실점 투구가 7회까지 계속되자 브라이스 감독은 손을 놔버렸다.

‘할 일이 없군.’

불펜 야구 운용은 브라이스 감독의 전매 특허, 하지만 다카기가 나오는 날엔 의미가 없다. 도대체 나는 왜 여기에 앉아 있는 건지, 심심했는지 옆에 있던 존 자일스 코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너무 말이 없는 거 아닌가?”

“그러게요.”

“자네 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존 자일스 코치의 아들은 현재 대학 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들이 명문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건 기쁜 일이지만 뼈가 휘는 등록금이 부담이 되는 건 사실, 그래도 아들을 위한 일이라 아버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잘 지내고 있죠.”

“조금만 참으라고, 아버지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나. 혹시 또 누가 아나, 자네 아들이 훗날 저 친구처럼 활약할지”

“하하 ~ 그렇게 된다면 바랄 게 없죠.”

솔직히 자일스 코치는 아들이 이 무대를 밟는 게 두려웠다.

운동이란 원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것, 아들을 대학으로 보낸 것도 실패를 대비한 보조 장치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직장에 취업하길 바라는 게 솔직한 속마음, 하지만 다카기의 활약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욕심이 생겼다.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건가.’

자일스 코치는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아들에게 내 뜻에 따르라는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 아들이 언제까지 내 보호를 받으며 살 순 없지 않은가. 지원은 해주되 갈 길은 알아서 정하게 했어야 하는데, 아버지라는 권위로 너무 찍어 누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악 ~ !

“아 ~ 여기서 안타가 나오는군요. 다카기가 오늘 첫 피안타를 허용합니다.”

“7회까지 잘 왔는데 어쩔 수 없죠.”

그 사이 휴스턴의 존 해먼드는 팀의 첫 안타를 기록,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

“안타 쳤잖아.”

보스턴의 1루수 로날드 라이트는 해먼드에게 농담을 던졌다.

팀은 지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하지만 안타 하나만 치자는 목적을 달성한 해먼드는 누가 뭐라고 하든 말든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휴스턴 선수단도 박수갈채에 동참, 무안타로 끌려가던 팀에 안타를 선물했으니 박수를 받을 만했다.

‘시끄럽다 이것들아.’

하지만 다카기는 J.J. 핵먼을 상대로 유격수 앞 땅볼을 이끌어냈다.

순식간에 사라진 주자, 휴스턴 벤치를 잠재운 다카기는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7회를 마무리 했다.

오늘도 8회 이상 채울 기세, 하지만 브라이스 감독은 이쯤 해두자며 강판을 권했다.

“오늘 몸 풀 투수가 몇 명 있네. 자네가 양보 좀 하라고”

“그럼 경기 끝나고 기자들한테 말하세요. 저 체력 떨어져서 강판 된 거 아니라고”

“알았네.”

브라이스 감독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7회면 충분히 오래 던졌는데, 이것도 적게 던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경기 후, 브라이스 감독은 약속대로 기자들 앞에서 다카기의 체력은 충분했지만 다른 투수들 점검 차원에서 강판 시켰다는 말을 내놨다.

“그냥 완봉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습니까?”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은 팀의 승리를 이끄는 것뿐만이 아닙니다. 선수들이 부상 없이 시즌을 마무리하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지요. 저는 다카기가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하게 관리를 해줘야겠죠. 앞으로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브라이스 감독은 이후에도 100개를 넘기지 않도록 투구 수를 관리했다. 주변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마이 페이스,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 다카기도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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