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61화 (261/361)

261화. Respect - (3)

[제임스 콜튼, 스프링캠프 현장 도착]

2월 13일, 보스턴 현지 여론은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했다.

제임스 콜튼은 다카기의 에이전트, 작년에 7년 2억 8천만 달러 연장계약에 합의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일을 크게 키우는 여론, 공격력 보강을 선언한 수더랜드 단장이 아무 수확도 거두지 못하자 기자들은 사실상 포기한 거 아니냐는 기사를 남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턴의 전력은 작년보다 크게 하락했다.

울반스키, 포데스와, 도허티, 채근성까지 나간 선수들이 많은데 빈자리를 채운 선수들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공격력을 보강하겠다는 건지 감감무소식, 이러다 다카기까지 트레이드 되는 거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졌다.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만약 시장에 나온다면 보스턴은 연봉보조나 부가적인 부담 없이 다카기를 넘길 수 있다.

정말 팀 방향이 리빌딩으로 잡혔다면 유망주를 대거 얻어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그런데도 연기를 피우는 여론, 제임스 콜튼의 등장은 좋은 기삿거리가 됐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나?”

“제 고객은 언제나 건강합니다.”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과 제임스 콜튼이 나누는 대화는 평범했다.

아직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는 이른 시간, 다카기는 제임스 콜튼을 사신 자격으로 캠프에 보냈다.

소속 팀이 있어도 메이저리거는 돈을 받고 뛰어주는 용병 같은 존재, 다카기도 냉정하게 말하면 보스턴과 독립된 존재다.

할 말이 있으면 직접 가서 해도 괜찮겠지만 사신을 통해 전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은밀한 대화가 시작됐다.

“구단의 행보에 실망하진 않던가?”

“전혀요. 마침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임스 콜튼은 고객의 뜻을 단장에게 전달했다.

보스턴은 분명 돈을 쓸 계획이 있었다. FA 최대어 숀 스팸을 영입하려 했지만 뉴욕에게 패배하면서 일이 틀어진 게 그 증거, 스티브 도허티는 처음부터 보스턴과 맞지 않는 선수라 잡을 생각도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 수더랜드 단장은 채근성까지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사업 수완이 좋은 단장이 이런 실수를 연달아 저지르다니, 팀이 잘 나갈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렇다고 투자에 손을 놓을 단장도 아닌 사람, 다카기는 나름대로 조언을 줬다.

“단장님은 지금 신중한 쇼핑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내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는 어떤 물건이든 흔쾌하게 살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생각이 많아지고 신중해지기 마련이죠. 너무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팀이 잘 나갈 때, 수더랜드 단장은 거침없는 행보로 전력을 보강했다.

트레이드는 척척, FA 영입도 술술, 연장 논의 역시 아주 부드럽게 진행됐는데, 작년은 뭔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도허티의 트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 여파로 포스트 시즌 진출도 실패, 이러다 보니 수더랜드 단장은 생각이 많아지고 특유의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게 됐다.

그럼 지금이라도 FA 시장에 남은 선수들을 쓸어 담아야 하나? 다카기는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없는 게 물건이지 돈이냐.’

부자라고 눈에 보이는 건 막 쓸어 담지 않는다. 진짜 가치가 있는 물건에만 돈을 내는 법, 수더랜드 단장이 진짜 원했던 건 숀 스팸이었다.

원하는 물건이 팔렸는데 지갑을 열어야 하나? 현명하지 못한 소비, 다카기는 전력을 보강할 타이밍은 놓쳤으니, 올해는 유망주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번에 7200만 달러들 들여 스프링캠프 시설을 보강한 보스턴, 눈이 번쩍 뜨이는 초호화 시설을 보면 마이너리거들도 뭔가 의욕이 끓어오르지 않겠나.

다카기는 마이너리거들에게도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게 어떻겠냐는 뜻을 전했다.

“너무 잘 해줘도 안 좋은 것 같은데 … ”

“메이저리거가 이런 거다 라는 맛은 보여줘야죠. 매일 빵만 먹는 사람이 그 이상의 맛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건 제 고객의 뜻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콜튼은 설득을 이어갔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으면 메이저리그에 오를 수 없다? 매일 지옥을 나뒹구는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의 기쁨을 알겠는가.

열악한 환경에 놔둬야 선수들이 성장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 다카기는 천국의 맛을 경험하게 해줘야 지옥에 떨어졌을 때 간절해진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군.’

단장이 뜻을 정하면서 기존에 있던 시설을 쓰던 마이너리거들은 메이저리거 급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너무 호화찬란해서 눈이 부실 지경, 체력단련실은 아직 새 운동기구들이 들어오지 않아 휑한 느낌이 들었지만 선수들은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여기서 운동하면 없던 근육도 튀어나올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지금 당장 시작하자고”

이밖에 샤워실, 화장실, 치료실, 전력 분석실, 라커룸도 모두 최신식, 이게 바로 실존하는 천국 아닐까.

그렇게 어린 선수들은 잠시나마 메이저리거가 된 기쁨을 누렸다.

* * *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2월 21일, 보스턴 클럽하우스를 경비하던 경찰관은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선수는 분명 다카기, 첫사랑이라도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뛰었지만 일단 모른 척을 했다.

경찰이 클럽하우스에서 선수에게 아는 척을 하거나 사인을 요청하는 건 근무수칙 위반, 몇 년 전에도 동료 경찰관이 클럽하우스에서 선수에게 사인을 요청했다가 직원에게 저지당해 쫓겨난 일이 있다.

팬심과 직업정신은 별개, 아쉽지만 그냥 보내줘야 했다.

“그동안 잘 지냈어?”

“나야 늘 잘 지내지.”

검문을 통과한 다카기는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악수를 나눴다.

어려운 시즌이 되겠지만 이 녀석들과 어떻게든 해봐야겠지,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농담은 집어 치우고 훈련에 열중했다.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마다 날아드는 사인요청, 다카기는 가던 길을 멈추고 펜을 잡았다.

“보스턴 떠나는 거 아니죠?”

“적어도 제 발로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슈퍼스타는 불안에 떠는 팬들을 안심시켰다. 기자 놈들이 쓸데없는 기사를 남발해서 괜히 민심만 동요하고 있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선을 그었다.

“단장이 트레이드 시킬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때는 제가 소속된 팀을 응원하세요.”

마음에 불만 질러놓고 가버린 나쁜 사람, 어쨌든 사인요청을 마친 다카기는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더그아웃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 선수들은 철제 의자에 쿠션을 박아두고 전용석으로 삼았지만 다카기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쿠션은 몸에 긴장감을 빼놓기 때문에 멀리하는 편, 딱딱한 의자에 앉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몸을 충분히 풀어주는 스트레칭은 필수, 다른 선수들은 대충하고 필드로 나갔지만 다카기는 제일 마지막에 그라운드에 발을 들였다.

‘또 뛰어?’

단체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은 잠시 숨을 돌렸다.

다음 훈련장으로 이동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쉬어도 괜찮을 텐데, 다카기는 외야에서 홀로 체력 훈련에 열중했다.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마다 반복되는 광경, 2시간 동안 이어진 단체 훈련이 끝나자 브라이스 감독은 해산을 선언했다.

나머지는 자유시간, 다카기는 그 많은 훈련을 소화하고도 체력단련실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1월 내내 반복했던 웨이트, 스프린트 훈련의 연장,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량에 어린 선수들은 경악했다.

‘쓰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일 뿐’

다카기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다.

구단에서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춰줘도 활용을 못하면 이 비싼 운동기구도 고철덩어리와 다를 게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게 선수의 몫,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는데 단체 훈련이 끝났다고 훈련장을 떠날 건가. 그건 본인들의 자유, 깨달은 게 있는 선수들은 체력단련실에 모여들었다.

캐치볼은 재미있지만 런닝과 웨이트는 힘들고 귀찮은 법,

메이저리거라고 다들 이런 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스프링캠프 기간에 한정된 일이다.

시즌 중 페이스가 떨어지고 근육량이 빠지는 선수들이 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체력단련은 매일 해줘야 하는 작업, 그런데 이걸 안 하는 선수들이 있다.

메이저리그가 무슨 유치원 집합소도 아니고 그걸 일일이 지적해주는 코치는 아무도 없다.

결국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 다카기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계속했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한편, 경찰관은 클럽하우스 근처를 맴돌았다.

훈련 시간이 끝났으니 경찰관도 공식적인 업무에서 해방됐다. 제법 많은 선수들이 나왔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다카기, 가만히 있는 것도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데, 아직도 훈련을 하고 있는 걸까.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기다리던 사람과 얼굴을 마주했다.

“실례하지만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흔쾌히 사인에 응하는 슈퍼스타, 경찰관은 그 사이 다카기의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살벌하게 벌어진 어깨와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 덩치도 여느 메이저리거들보다 훨씬 거대했다.

이런 몸은 타고나는 걸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 체력단련실에 남아 있는 시간을 고려해 보면 노력이 8할 이상이라고 봐도 좋았다.

괜히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는 게 아니라는 뜻, 전에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존경심마저 들었다.

“역시 4천만 달러는 괜히 받는 게 아니군요?”

“그럼요. 그만한 대우엔 책임이 뒤따르니까요. 당신도 중요한 일을 하는 만큼 책임감을 느끼지 않나요?”

슈퍼스타의 질문에 경찰관은 얼굴을 붉혔다.

미국의 경찰은 연봉이 꽤 되는 편, 야구팀 클럽하우스 경비를 책임질 정도면 구단에서 지불하는 수익도 꽤 된다.

나는 그 대가에 걸맞은 책임감을 지니고 있나.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뱃살이 마음에 걸렸다.

‘나도 운동 좀 해야겠군.’

그날부터 경찰관은 퇴근 후 몸을 격렬히 움직였다.

탄탄한 몸은 남자의 로망이지만 그걸 떠나서 경찰관이라는 직업 앞에 당당히 가슴을 펴고 싶었다.

“자, 2027시즌 시범경기가 오늘 시작됩니다. 보스턴의 선발은 역시 이 선수죠, 다카기 하루요시 선수가 올라옵니다.”

“작년 10월을 그냥 보낸 탓인지 인터뷰에서 힘이 남아돈다는 말을 했거든요. 올해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2월 28일에 열린 첫 시범경기, 다카기는 초구부터 97마일 빠른 볼을 선보였다.

기술은 이미 정상에 올랐으니 몸 관리만 철저히 해주면 올해도 왕좌는 지켜지겠지, 경기를 지켜보는 보스턴 관계자들의 믿음은 확고했다.

‘수비만 받쳐주면 괜찮을 거야.’

브라이스 감독은 올 시즌의 키워드로 수비를 꼽았다.

공격력 저하는 감수하고 가는 시즌, 다만 투수력은 예나 지금이나 튼튼한 편이다.

주앙 고메즈 - 제임스 올슨이 지키는 내야, 알 디즌 - 키스 폰스가 지키는 외야, 그리고 수비하면 정평이 나 있는 스탠리 호프만 포수까지, 그물망은 탄탄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팀이 어디에 있나.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가며 어찌어찌해나가는 것뿐, 11년 동안 보스턴의 지휘봉을 쥔 브라이스 감독의 경험과 지휘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