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56화 (256/361)

256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15)

“아 씨 … 못 좁혔네.”

보스턴은 이날 볼티모어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지만 탬파베이도 승리를 거두면서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남은 경기는 2게임, 좁혀야 할 격차는 1, 절대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홈으로 돌아오기 전 토론토를 상대로 시즌 32번째 등판을 치른 캡틴은 휴식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다카기는 감독에게 내일 경기는 불펜으로 나가겠다는 통보는 하지 않았다.

다른 불펜 투수들이 있는데 앞으로 나서는 건 실례, 도허티는 면박을 주고 쫓아냈지만 다른 선수들까지 그런 식으로 대우하진 않았다.

“자네, 잠깐 나 좀 보지.”

퇴근을 앞둔 그때 수더랜드 단장의 측근이 클럽하우스를 방문했다.

지금 단장이 도허티를 만나고 있으니 자네도 좀 와 달라는 것, 하지만 다카기는 거부했다.

“내가 왜 그 자식을 만나야 되는 겁니까?”

“단장님이 … ”

“누가 권해도 갈 생각 없으니까 그렇게 전해 둬요.”

다카기는 한 마디 툭 던지고 클럽하우스를 나섰다. 도허티는 이제 팀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인간, 그런 인간을 왜 내가 붙잡아 둬야 하나.

단장이 기용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고개까지 숙여가며 다시 해보자는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아랫사람 시켜서 될 일이 아니군.’

보고를 받은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이제 연봉 4천만 달러를 받는 거물, 거기다 한동안 공석이었던 캡틴의 자리까지 내줬다. 팀에서 그 정도 믿음을 표했다면 문제를 일으킨 선수에 대한 처분은 맡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도허티는 이대로 삶아버리긴 아쉬운 선수, 한 번만 다시 만나서 오해를 풀자며 설득을 이어갔다.

단장이 직접 전화를 했으니 이 정도면 체면은 확보한 거겠지, 집으로 향하던 다카기는 핸들을 돌려 브라민 파크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허티, 하지만 냉정한 캡틴은 그쪽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본인도 반성하고 있으니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기회를 쉽게 줘도 되는 겁니까? 다른 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했으면 바로 벤치행 아닌가요?”

다카기의 반격에 수더랜드 단장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도허티는 보스턴에 와서 이렇다 할 활약을 못하고 있다.

다른 선수라면 주전은커녕 벌써 벤치에 앉았겠지,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린 이 중대한 상황에서 이름값에 의존하는 놈에게 무슨 기회를 주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6번으로 기용하는 게 어떻겠나.”

수더랜드 단장은 대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도허티를 꾸준히 3번으로 밀어줬지만, 이제는 실리도 명분도 없는 기용이 돼 버렸다.

6번으로 좌천 되도 할 말 없는 입장, 이 이상 단장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도 그렇고, 다카기는 제안을 받아들었다.

“너 6번 다음이 뭔 줄 아냐?”

“ … 7번 아냐?”

“멍충아, 그 다음이 어디 있어? 끝이야 끝”

다카기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바보에게 폭언을 날렸다.

한때 3번을 치던 자식이 6번을 넘어 7번까지 내려간다는 게 뭘 뜻하겠나. 너한테 6번 다음은 없다며 정신무장을 시켰다.

“너 내일 어떻게 하는지 내가 두고 볼 거야. 낭떠러지로 떨어지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니까 그렇게 되기 싫으면 알아서 기어 올라와. 알았어?”

할 말 다한 다카기는 자리를 떠났다.

다시 한 번 느낀 거지만 장난이 아닌 카리스마, 수더랜드 단장은 물론 세인트루이스에서 왕 대접을 받아온 도허티도 타오르는 분노 앞에 입을 다물었다.

“저 친구 말대로 자네에게 다음 기회는 없어. 이건 내가 자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야.”

“예, 감사합니다.”

제대로 혼난 도허티는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길에 올랐다.

나는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된 걸까. 올스타 브레이크 때만 해도 승승장구 했는데 보스턴으로 오자마자 몰락이라니, 26살에 벌써부터 쇠퇴기가 온 건 아닐 테고, 정신적인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겐 정말 우승의 간절함이 있는 걸까.

보스턴에게 2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저지당하고, 너무 분해서 소속 팀에 전력 강화를 요청했던 내 모습은 어디로 간 건가.

그런데 지금은 3억 3천만 달러 운운하며 언론 플레이나 벌이는 선수가 됐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웠다.

‘너한테 6번 다음은 없다. 절벽으로 굴러떨어져라.’

다카기의 폭언도 곱씹어 보니 틀린 말이 아니다.

내가 7번으로 밀려난다니,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올스타전에서도 3번을 친 선수가 거기까지 간다는 건 사실상 몰락,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

‘짜증 난 얼굴 아니지?’

한편, 집 앞에 도착한 다카기는 백미러로 얼굴을 살폈다.

내가 웃어야 화목해지는 집안 분위기, 웃는 얼굴을 몇 번이나 연습하고 나서야 집안에 들어섰다.

“꺄아아 ~ ”

“어이구 ~ 안 자고 있었어? 아빠 기다린 거야?”

다카기는 아내 품에 안긴 둘째를 끌어안았다.

이제 돌이 지났다고 아빠 보면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녀석, 뒤이어 쫓아온 장남도 다리에 들러붙어 애정을 표했다.

그다음은 아내와의 가벼운 키스, 입국 심사를 마친 가장은 소파 위에 자리를 잡았다.

‘넌 또 뭐냐? 저리 안 가?’

이때, 다카기는 화목한 가정에 불필요한 존재를 인지했다.

얼마 전 아내가 데려온 문제의 그 고양이, 건방지게 주인처럼 소파 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알아서 꺼지라는 눈빛을 보냈다.

야 ~ 옹 ~

“어이구 ~ 아빠한테 쫓겨났어요?”

고양이는 바로 키리코 품으로 피신했다.

눈칫밥 얻어먹고 사는 녀석에겐 유일한 피난처, 하지만 다카기는 그 꼴도 그냥 못 봤다. 아내 품도 내 소유권, 이리저리 채인 고양이는 구석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러지 말고 좀 예뻐해 봐. 얼마나 애교가 많은데”

“난 짐승한테 애정 주는 남자가 아니야.”

키리코는 남편 눈치를 살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이번 기회에 한 마리 입양할까 하는데 철벽을 치는 남편, 다시 한 번 교섭에 나섰다.

“아빠한테 가서 애교 좀 부려 봐. 응?”

고로로롱 ~

하지만 고양이는 접근을 거부했다. 한눈에 봐도 무서운 사람, 엄마 품 외엔 믿을 게 없었다.

“그 고양이 주인은 언제 데려간대?”

“어휴 ~ 진짜 이렇게 구박할 거야? 왜 그래?”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의견, 이때 눈치를 살피던 타다요시가 슬쩍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도 애완동물 키우면 안 돼요?”

“왜 키우고 싶은데?”

“그게 … 귀엽잖아요. 만지면 기분 좋고 … ”

“그건 이유가 못 돼. 동물 키우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알아?”

가장은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키울 자격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동물을 좋아한다면 그만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 귀여운 것만 생각하다 뒤치다꺼리가 늘어나면 버리는 인간이 한 둘인가. 정말 네가 책임을 지고 보살펴줄 각오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압력을 가했다.

좀 냉정하지만 맞는 말, 키리코도 지원군이 되어 줄 아들의 반응을 살폈다.

“키 … 키우고 싶어요.”

“진짜야? 나중에 못 키운다고 싫증내면 너 진짜 혼난다.”

“ … 잠깐만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아빠가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는 타다요시는 생각을 정리했다. 엄마가 바쁠 때 동생 보살피는 것도 힘든데, 애완동물까지 챙길 수 있을까.

거기다 공부에 운동도 해야 하고 스케줄이 생각보다 빡빡,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다며 발을 뺐다.

“그래, 잘 생각했다.”

기어이 아들의 뜻을 꺾은 다카기는 아내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냐는 아내의 공격, 하지만 다카기는 아들에게 책임지지 못할 거면 키울 자격도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네가 어른이 되고 큰사람이 되면 나중에 책임질 게 더 많아져. 그러니까 … ”

“그럼 키울래요!!”

갑자기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튼 아들, 결국 어른이 되면 이것저것 책임져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엔 지금부터 연습하는 게 낫겠지, 괜히 한 소리 덧붙였다가 역공을 맞은 다카기는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말이 좋아 가장이지 집안 식구들 눈치까지 살펴야 하는 입장, 그래도 클럽하우스에 비하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지켜보겠어.’

다음 날, 다카기는 예고대로 도허티를 예의주시했다.

어제 사건은 이미 기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보스턴 전역으로 번졌다.

팀이 갈 길 바쁜 상황이라 기회를 준 거지, 다른 때였다면 출장정지에 벌금까지 맞아도 할 말 없는 사건, 6번까지 강등된 도허티는 어서 떨어지라고 등을 미는 여론에 맞섰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일단 첫 타석은 순조롭게 시작하는군요.”

“이 정도로 속죄가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어디에서도 환영받기 어렵죠.”

보스턴 지역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도허티를 집중 공략했다.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makeup’이라고 해서 선수의 인성이나 근성을 평가하는 항목이 있다.

야구는 팀 운동, 팀원과의 원만한 융합을 위해 구단도 인성을 까다롭게 평가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는가.

도허티는 그동안 인성이나 근성 면에서 이렇다 할 문제점을 보이지 않은 선수, 그런데 어제 사건으로 성실했던 이미지가 완전히 박살 나 버렸다.

사회에서 인정받긴 어렵지만 매장당하는 건 순식간,

이번 사건으로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도허티는 첫째도 집중 둘째도 집중이라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 … 지금 타구장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숀 스팸이 쓰리 런 홈으로 탬파베이에 리드를 안겼네요.”

“숀 스팸은 올 시즌 정말 무섭네요. 뭐 … 어쨌든 보스턴은 오늘도 내일도 이기는 경기를 해야만 희망이 있습니다. 다른 건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올 시즌 유독 치열했던 AL 동부지구 순위 경쟁,

보스턴, 탬파베이, 뉴욕, 이 세 팀은 올 시즌 맞대결에서 백중세의 경기를 펼쳤다.

세 팀이 서로 물고 물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승률, 덕분에 보스턴은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3위로 쳐져 있다. 남은 경기 일정을 고려하면 2위 탈환은 불가능, 지구 1위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

올해부터 명문가 보스턴의 일원이 된 어린 선수들은 그 영광을 잇기 위해 발악했다.

“젠장!!”

하지만 좀처럼 풀리지 않는 공격, 첫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고메즈는 두 번째 타석에서도 풀스윙을 돌렸지만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만 앞서는 애송이들,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 캡틴은 타들어가는 목을 생수로 다스렸다.

‘내 어깨에 팀의 운명이 걸렸다.’

마운드를 지키는 댈러스 레이븐도 평소와 달리 긴장된 얼굴로 투구를 이어갔다.

올 시즌 레이븐은 28경기에 등판해 14승 8패, 평균자책점 3.54, 신인치고 빼어난 투구를 펼쳤다.

일각에선 신인왕 후보를 점치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건 15승도 신인왕도 아니라 포스트 시즌 진출, 내가 여기서 이기면 내일은 캡틴이 등판할 거 아닌가.

희망의 불씨를 살려줘야 하는 입장, 공 하나 하나에 모든 걸 쏟아 부었다.

따아악 ~ !!

“아!! 이 타구는 높게 떠서 … 좌중간을 넘어가는군요. 패트릭 글로스의 시즌 26호 홈런, 볼티모어가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보스턴이 4회까지 안타 6개를 치고도 득점을 못 냈는데 … 이 한 방은 조금 뼈아프네요.”

선취점을 내주면서 급격히 가라앉은 분위기, 속이 타들어가는 건 애송이들과 다를 게 없는 입장이라 다카기는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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