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55화 (255/361)

255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14)

[스티브 도허티 마지막 시리즈에서 반전 이뤄낼까.]

시즌 최종 시리즈를 앞두고 보스턴 지역여론은 도허티를 자극했다.

대반전을 위해 수더랜드 단장이 영입한 필승카드, 하지만 도허티는 보스턴 이적 후 타율 0.267, 홈런 9개에 그치고 있다.

옵트 아웃을 앞두고 있는 시즌이라 보스턴은 물론 본인에게도 아쉬운 결과, 물론 시즌 성적은 0.319, 홈런 35개, 93타점으로 나쁘지 않다.

이대로 옵트 아웃을 선언해도 좋은 계약을 얻어낼 수 있을까? 상황은 도허티에게 좋지 않았다.

■ 존 헤링(뉴욕) : 0.290, 21홈런, 72타점

■ 제레미 브라운(뉴욕) : 0.257, 30홈런, 90타점

■ 숀 스팸(탬파베이) : 0.312, 39홈런, 113타점

■ 헨리 퍼실(샌프란시스코) : 0.273, 27홈런, 83타점

■ 에릭 킴블(필라델피아 -> 탬파베이) : 0.259, 37홈런, 99타점

도허티 외에도 다음 시즌에 FA로 풀리는 외야 자원은 얼마든지 있다.

경쟁 상대들이 많은 만큼 협상이 길어지면 언제까지 고자세를 취할 순 없겠지, 거기다 올해만 보면 탬파베이의 숀 스팸은 도허티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탬파베이가 올 시즌 리그 우승을 다투는 입장만 아니었다면 숀 스팸은 벌써 트레이드 됐을 운명, 도허티는 본인을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수더랜드 단장은 도허티의 부진에 의외로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시즌 막판에 부진했다고 도허티가 옵트 아웃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지금 FA에 뛰어드는 건 타이밍이 별로 좋지 않다.

적어도 10년 3억 3천만 달러 이상을 요구할 텐데, 그 반도 안 되는 돈을 쓰고 잡을 수 있는 선수가 있지 않나.

도허티의 에이전트는 3억 달러 이상 받아낼 수 있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단장 생활 11년 차에 접어든 수더랜드는 그 발언에 콧방귀를 뀌었다.

일례로 아르만도 제이콥은 지난 2018년, 소속팀 콜로라도와 8년 2억 5천만 달러라는 초대형 장기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인연은 2년 만에 파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아르만도 제이콥은 콜로라도의 유일한 희망,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라 콜로라도 구단은 무리를 해서 제이콥을 잡았다.

문제는 그 이후, 제이콥은 우승을 위해 구단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구했지만 이미 많은 돈을 쓴 콜로라도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고 결국 트레이드 됐다.

누군가와 비슷한 스토리 아닌가?

도허티도 세인트루이스와 10년 장기계약을 맺었지만, 투자에 소극적인 구단과 불화를 겪고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됐다.

그럼 아르만도의 미래는 어땠을까. 아르만도는 트레이드 후 2년 만에 옵트 아웃 자격을 얻었지만 포기했다.

트레이드 되자마자 폭락한 성적, 아르만도를 영입한 샌디에이고는 6년 2억 달러짜리 폭탄만 떠안았다.

대형장기계약이 이렇게 무서운 것, 특히 도허티는 특유의 운동 능력으로 안타를 생산하는 배드볼 히터라, 나이가 들수록 하락 폭이 뚜렷할 위험이 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교롭게도 아르만도 제이콥도 배드볼 히터였고, 전성기 시절엔 타율 3할, 30홈런, 190안타, 100타점이 보장된 선수였다.

그런데 29살부터 시작된 급격한 에이징 커브, 물론 도허티는 아직 26살밖에 안 된 선수라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넌센스다.

하지만 아르만도의 몰락을 지켜본 구단들은 도허티보다 싸게 잡을 수 있는 대체자원 영입에 우선순위를 두겠지, 그 틈을 잘 이용하는 것도 단장의 능력 아니겠나.

수더랜드 단장은 이 틈에 수를 썼다.

“남은 경기에선 지명타자로 기용할 예정이다.”

1루수는 의외로 수비 능력이 많이 요구되는 자리, 울반스키가 애리조나로 트레이드되면서 그동안 도허티가 1루를 책임졌다.

도허티는 솔직히 수비 능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신인 시절 좌익수로 뛰었지만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었고, 3년 차부터 1루수와 좌익수를 오고갔다.

내셔널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라 어떻게든 수비를 시켜야 하는데, 솔직히 수비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수준, 하지만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지명타자 기용이 가능하다.

지금 타격도 개판인데 언제까지 1루에 둘 순 없지 않은가, 지명타자 기용은 선수 가치를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일, 그걸 알고 있는 수더랜드 단장은 도허티의 반발을 염려해 일단 1루에 놔뒀지만 이제는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시즌은 이제 막바지, 탬파베이가 1경기 차 1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도허티의 편의를 봐줘야 하나.

본인도 남은 경기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옵트 아웃에서 구단들을 상대로 홍보할 말이 있겠지, 도허티는 수더랜드 단장의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묶어두려고 하나? 무슨 생각이지?’

다카기는 지나치게 머리를 굴리는 단장의 행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허티가 1년 단기 계약을 맺고 FA 재수를 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옵트 아웃을 포기하고 6년을 염가 봉사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 정말 싼값에 1년이라도 묶어둘 생각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믿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너무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단장, 이런 팀 밑에서 1년을 더 뛰고 싶을까?

지금은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으니 도허티도 굴욕을 감수하고 있지만, 공동의 목표가 깨지는 순간 바로 이별이다.

물론 상황을 이렇게까지 악화시킨 건 도허티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수더랜드 단장은 왜 울반스키와 포데스와를 처분한 건가. 두 선수를 처분하면서 보스턴은 연평균 페이롤 3700만 달러를 아꼈다.

도허티가 이적 후 좋은 활약을 했다면 연장계약을 맺을 뜻이 있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 기회는 도허티가 차버렸다.

단장 입장도 이해가 되는 상황, 도허티가 활약만 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끝날 인연, 많은 것이 걸린 시즌 최종전이라 다카기도 심각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일단 볼티모어의 1회 초 공격은 득점 없이 종료, 보스턴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선두 타자 몬테로는 2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리퍼드가 볼넷으로 출루, 스티브 도허티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악 ~ !!

“초구 타격!! 유격수 정면으로!! 2루에 송구!! 다시 1루에서 ~ !! 아웃입니다!! 더블 플레이!! 아 … 이렇게 이닝이 마무리 되는 군요.”

“지금 무슨 산책 나왔습니까? 저게 장기계약을 원하는 선수가 할 행동인가요? 몸값을 스스로 깎아 먹고 있네요.”

피트 오어는 도허티의 산책 주루에 분개했다.

저딴 식으로 하는데 무슨 3억 달러를 달라고 하는 건가. 내가 왔으니 우승은 틀림없다며 건방을 떨던 주제에 하는 짓은 이류만도 못한 수준,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캡틴은 이 상황을 용납하지 않았다.

“너 오늘 야구하기 싫냐? 오늘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지구 우승이 걸렸는데 최소한 뛰는 모습은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도허티는 귀찮다며 듣는 둥 마는 둥 한 표정, 캡틴의 분노가 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우리가 지금 놀고 있는 줄 알아?!!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 치워!! 이 XX아!!”

다카기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저 자식 당장 빼버리라며 난리를 쳤다.

코치가 진정하라며 말렸지만 이미 수습 불가능한 상황, 내심 불만이 있었던 도허티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나는 이 팀에 별로 도움 안 되니까 빠져 줄게!!”

지명타자로 기용된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잔소리까지 듣다니, 도허티가 더그아웃을 빠져나가는 장면은 중계카메라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저 자식 옷 빼버려.”

“뭐?”

“다 빼버리라고!! 이것도 다 치워!!”

다카기는 클럽하우스 매니저에게도 압력을 넣었다.

저따위로 하는데 무슨 팀의 일원인가.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도허티는 넋이 빠진 얼굴, 세인트루이스에서 왕 같은 대접은 받았기에 이런 대접은 너무 어색했다.

“너 같은 XX없어도 우리 그동안 잘만 해왔어!! 착각하지 마 이 XX야!! 너 같은 XX한테 3억 달러 줄 팀 아무도 없어!!”

그러건 말건 다카기는 넌 집에 가서 잠이나 쳐 자라며 도허티를 쫓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시즌 보스턴은 데이브 셰퍼드가 갑자기 이탈해 버리는 사고가 일어나 중심타선 부재에 시달렸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채워줘야 할 놈이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으니, 캡틴으로서 화딱지가 안 나겠나.

본보기를 보이지 않으면 다른 어린 선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뿐, 너 같은 놈은 필요 없다며 클럽하우스에서 밀어냈다.

“맞고 나갈래? 아니면 네 발로 나갈래?”

“ ……… ”

잠시 동안 이어진 대치, 클럽하우스와 그 휘하 매니저들은 이 사상초유의 사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잘못하면 신성한 장소가 싸움판이 될 지경, 도허티가 스스로 발을 빼면서 운명은 결정됐다.

“도허티는 어디 갔나?”

스티브 드류 코치가 뒤따라 왔지만 다카기는 무시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드류 코치는 클럽하우스 매니저가 치워내는 유니폼을 보고 경악했다.

“그건 왜 치우고 있나?”

“캡틴이 빼라고 했습니다. 전부 다요.”

그냥 경고만 주는 게 아니었던 건가. 경악한 드류 코치는 이 사실을 바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수더랜드 단장은 보고를 받고 경악했다.

선수가 경기 중 자기 발로 클럽하우스를 떠난 사건은 있지만 다른 선수에게 쫓겨난 건 역대 최초, 그것도 중심타선인 도허티를 쫓아냈으니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건 내 오판인가.’

하지만 도허티의 플레이를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는 상황, 셰퍼드가 멋대로 은퇴를 한 이후 혼란에 빠진 팀 분위기를 수습한 게 누구인가.

바로 다카기, 그런데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여론은 그 지휘력에 의심을 품을 게 뻔하다. 조직의 안정을 위해 때론 누군가를 쳐내야 하는 법, 그게 팀의 핵심 인물이라도 다를 건 없다.

어쨌든 도허티를 영입한 건 단장의 독단, 거기다 결과도 시원치 않으니 수더랜드 단장은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도 지금은 아닌데’

일단 경기 관람을 중지하고 도허티를 만나보기로 했다.

이별할 땐 이별하더라도 남은 경기에선 써먹어야 할 선수, 그 사이 클럽하우스를 정리한 다카기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다들 건드리지 마라.‘

‘다가가기만 해도 살이 녹을 것 같아.’

보스턴 선수단은 알아서 기었다.

열 받으면 보이는 게 없는 캡틴, 설마 도허티가 저렇게 쫓겨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저 불타는 화통을 다스리는 방법은 승리뿐, 땅볼 하나를 때려도 전력으로 내달렸다.

따악 ~ !!

“좌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 득점!! 보스턴이 앞서나갑니다!!”

“지금 탬파베이가 2대 0으로 앞서나가고 있거든요. 보스턴이 지금 와일드카드 경쟁을 노릴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3연전은 무조건 다 잡아내야 승산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도허티의 플레이는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 보스턴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면 본인도 뭔가 느끼는 게 있겠죠.”

선취점이 났지만 다카기는 클럽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기강을 위해 한 일이지만 팀 주축 선수를 쫓아냈으니 본인도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나. 오늘은 캡틴이라는 지위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