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13)
[보스턴, 오늘 1위 탈환 노린다]
미국 현지 시각으로 8월 24일, 보스턴은 AL 중부지구 1위 휴스턴과의 3연전을 앞뒀다.
보스턴은 현재 68승 52패로 탬파베이와 동부지구 1위 동률을 이루고 있다.
8월 승률만 놓고 보면 보스턴이 11승 10패, 탬파베이는 9승 12패,
탬파베이는 올 시즌 첫 14경기에서 12승을 거뒀고 6월 중순까지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지만, 최근 들어 페이스가 확연히 떨어져 있다.
하지만 그건 보스턴도 마찬가지, 탬파베이는 오늘 경기가 없다. 여기서 앞서가지 못하면 1위 탈환은 언제 가능할지 모를 일, 거기다 오늘은 다카기를 앞세운 경기라 반드시 잡아내야 했다.
‘또 실수하면 바보다.’
경기를 앞두고 주앙 고메즈는 송구 연습에 집중했다.
우아한 사이드 스텝과 몸을 틀며 날리는 유격수의 송구는 야구에서 가장 화려한 수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동작으로 2루 송구를 하는 건 정말 어렵다. 특히 병살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절대 지양해야 할 행동, 이런 때는 노 룩 송구를 하는 게 현실적이다.
실제로 유격수나 2루수는 수비수를 보지 않고 토스를 하는 연습을 자주 한다.
지난 경기에서 몸을 틀며 송구를 하다 병살을 놓친 고메즈 입장에선 개선이 필요한 부분, 오늘은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 경기라 2루수와 토스 훈련을 주고받았다.
“그만해. 오늘은 캡틴이 등판하는 날이잖아.”
리퍼드는 고메즈에게 그 정도 해두라고 충고했다.
다카기는 위기 상황에서 병살보다 삼진을 우선으로 하는 타입, 내야수에 의지하는 타입도 아니고, 공이 워낙 빠르다 보니 땅볼이 나와도 강습 타구가 많다.
굳이 노 룩 송구를 연습할 이유가 없는 경기, 하지만 고메즈는 만일 이라는 게 있으니 내버려 두라며 연습을 계속했다.
“병원 가 봤어?”
[응]
한편, 다카기는 아내와 전화 통화를 나눴다.
원정경기 일정만 잡히지 않았어도 동행해 줬을 텐데, 어쨌든 키리코는 남편에게 슬픈 소식을 알렸다.
임신인 줄 알았는데 단순한 생리불순, 책임질 식구가 하나 더 늘길 바랐던 가장은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임신 아닌 게 그렇게 서운해?]
“괜찮아. 다시 노력하면 되지 뭐”
시즌이 끝나면 남는 게 시간인데 뭐 어떤가.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딸 하나는 더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잖아도 딸 한 명 데려오려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키리코는 조만간 고양이를 데려오겠다고 선포했다. 키우는 건 아니고,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가 일이 생겨서 고양이를 돌볼 수 없게 된 것, 친구가 수술을 한 엄마를 간호할 때까지만 고양이를 돌봐주기로 했다.
“난 그런 딸은 필요 없어.”
[왜 그래 얼마나 귀여운데, 애교도 많아. 자기도 직접 보면 좋아할걸?]
키리코는 영상통화로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동물에겐 흥미가 없는 다카기는 무미건조한 반응, 아이들 다치지 않도록 발톱 조심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내가 이젠 남의 집 고양이 밥까지 책임져야 하나, 이래저래 책임질 게 많은 가장은 심드렁한 얼굴로 불펜 투구에 나섰다.
“자, 1회 초 보스턴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몬테로, 올 시즌 타율 0.266, 홈런 7개, 3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입지가 애매한 상황이죠. 고메즈 선수가 유격수로 투입되면서 올해부터 2루를 보게 되지 않았습니까. 뭐 … 본인은 큰 불만은 없다고 하는데, 속마음은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몬테로는 1년 전, 보스턴과 5년 60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한때 3년 연속 올스타에도 뽑히며 아메리칸 리드를 대표했던 유격수,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됐다.
부상으로 수비 범위가 좁아지면서 포지션은 2루로 이동, 공격이라도 잘해줬으면 괜찮은데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2할 후반대의 타율과 18홈런을 치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10홈런도 어려운 공격력, 사실 수더랜드 단장은 올 7월에 몬테로도 팔아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몬테로보다 계약 규모가 크고 트레이드 카드로 가치가 있는 울반스키가 먼저 팔려나가면서 일단 보스턴에 남았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보스턴에 남을 수 있을까.
수더랜드 단장이 도허티를 장기계약으로 묶을 생각이 있다면 몬테로는 가장 먼저 팔려나갈 신세, 트레이드 되더라도 본인의 미래를 위해 남은 경기에서 가치를 끌어올려야 했다.
따아악 ~ !!
초구를 잡아당긴 몬테로는 보란 듯이 배트를 집어던졌다.
31경기 만에 나온 시즌 8호 홈런, 홈런을 허용한 윌리 크리스텐슨은 베이스를 도는 몬테로에게 얼른 꺼지라며 욕을 퍼부었다.
‘잘 안 들리는데?’
몬테르는 왼손을 귀에 대며 크리스텐슨을 거듭 도발했다.
사실 두 선수는 예전부터 악연이 있던 사이였다. 때는 몬테로가 캔자스시티 소속이었던 2021년, 몬테로는 크리스텐슨을 상대로 한 경기 멀티 홈런을 때려냈다.
그때도 반복됐던 몬테로의 배트 플립, 다음 맞대결에서 크리스텐슨은 빈볼로 응수했지만 몬테로는 보란 듯이 쓰리 런 홈런으로 응수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반복된 기싸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가.
감정을 제대로 못 풀어서 벌어진 일, 불펜에서 몸을 풀던 다카기는 그럴 거면 차라리 제대로 붙어보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왜 말리는 거지?’
벤클에 왜 제 3자들이 끼어들어야 하나.
부상 방지? 빈볼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동업정신은 팔아치운 일이다. 다카기도 빈볼을 던질 땐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던지는 편, 사실 이곳은 전장이나 다름없다.
상대를 꺾어야 성공하는 무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예의를 따지나.
정말 그게 통하는 무대라면 매년 반복되는 벤치 클리어링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겉으론 스포츠맨십을 중시하고 있지만 그 이면엔 널 밟고 올라서겠다는 의지들이 수도 없이 충돌한다.
저렇게 계속 얼굴 붉힐 거면 날 잡아서 죽기 살기로 싸워보는 것도 방법, 하지만 캡틴이라 난투극에 휩싸인 동료를 방치할 수도 없었다.
‘자리 깔아줄까. 아니면 그만둘까.’
1회 말, 마운드에 오른 다카기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여기서 내가 빈볼을 던지면 또 벤클이 일어나겠지, 그럼 몬테로와 크리스텐슨은 제대로 맞붙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지구 1위 등극이 달린 경기, 팀의 승리에만 집중했다.
선두 타자 조시 개릿은 2구만에 2루 땅볼로 처리, 올 시즌 휴스턴으로 둥지를 옮긴 J. J. 핵먼이 타석에 들어섰다.
“자, J. J. 핵먼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97, 홈런 28개, 84타점, FA 계약의 모범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회 초 벤치 클리어링에서 선수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확실히 성격은 신사적입니다. 물론 실력도 출중하고 말이죠.”
핵먼은 보스턴에 있을 때부터 은근 당하는 입장이었다.
커리어 하이를 달려가던 중, 태클을 당해 한 달을 넘게 날려먹었지만 그냥 웃고 말았던 녀석, 몸에 맞는 볼이 나와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당연히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앞장서기보다 선수들을 말리는 편, 그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다카기는 몸 쪽 승부를 걸었다.
‘저게 … ’
핵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크리스텐슨은 혼자 흥분했다.
몸에 맞춘 것도 아니고 정당한 몸 쪽 승부였는데, 몬테로와 한 판 충돌한 다음이라 사소한 것도 눈에 곱지 않았다.
상대가 저렇게 나온다면 나도 똑같이 해줄 뿐, 2회 초 보스턴의 공격에서 사건이 터졌다.
‘뭐야 이게’
초구부터 엉덩이에 맞는 공, 고메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1루로 걸어 나갔다.
“뭘 봐 꼬맹이!! 불만 있으면 한 번 덤벼보라고!!”
뒤따르는 크리스텐슨의 시비, 이때 몬테로가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3년 동안 이어진 악연을 끝맺을 때,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됐다.
“너희들!! 이러지 마!!”
핵먼은 이번에도 동료들을 붙잡았다.
하지만 다카기는 이런 것도 경험이라며 어린 선수들을 전장으로 내몰았고, 특히 난투극을 벌이는 크리스텐슨과 몬테로 주위엔 아무도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이거나 먹어라!!”
고메즈는 다카기의 뒤로 돌아가 크리스텐슨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본의 아니게 2대 1이 된 싸움, 빈볼 하나 잘못 던진 대가로 크리스텐슨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퇴장!! 퇴장!!”
격노한 주심은 양 팀 벤치에 레드 카드를 연발했다.
일단 빈볼을 던진 크리스텐슨은 바로 퇴장 조치, 직접 주먹을 휘두른 몬테로와 고메즈도 퇴장당했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꼬맹이!!”
“그냥 지금 붙어 보지 그래?!! 어?!!”
고메즈는 마지막까지 크리스텐슨과 언쟁을 주고받았다.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겪어보니 진짜 쓰레기 같은 녀석,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한 판 붙어보자며 언쟁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제대로 치고받은 건 처음, 고메즈는 나름 만족스러운 얼굴로 퇴장을 받아들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 캡틴에게 훈계를 들어야 했다.
“네가 거기에 왜 끼어들어?”
“그게 무슨 소리야?”
고메즈는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빈볼을 맞았으니 당사자 아닌가? 하지만 다카기는 네 행동은 별로 현명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내가 왜 다른 놈들 못 끼어들게 했는지 생각은 해 봤냐?”
“그건 … ”
“그래, 너도 빈볼을 맞았으니 당사자는 맞지, 하지만 이번은 어디까지나 몬테로와 그 자식의 싸움이었어.”
1대 1로 제대로 붙어서 결판이 났다면 몬테로와 크리스텐슨의 악연은 거기서 끝났을 거다.
하지만 고메즈가 1대 1 싸움을 2대 1로 만들면서 두 사람의 악연은 현재 진행 중이 됐고, 여기에 고메즈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 졌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다카기는 다음 싸움에 대비하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기왕 시작한 싸움이라면 절대 지면 안 된다. 다음에는 1대 1로 붙어도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해 둬”
고메즈는 유격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체격이 그렇게 크진 않다.
그에 비해 크리스텐슨은 190이 넘는 키에 체중도 제법 나가는 편, 나중에 그 자식과 맞붙었을 때, 고메즈는 1대 1로 이길 수 있을까.
말싸움을 주고받으며 동료들이 개입할 시간을 버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진짜 벤클을 할 생각이라면 다짜고짜 마운드로 달려가는 게 맞다.
고메즈에게는 그럴 용기와 싸움 실력이 있을까? 아직 1년 차밖에 안 된 애송이는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1대 1로 싸워서 이길 자신 있어? 확실하게 말해. 자신 없으면 우리가 끼어들 테니까.”
“아니야. 이길 수 있어.”
고메즈는 훗날을 기약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나중에 한 판 붙자고 약속까지 했으니 언젠가는 벌어질 일, 그때도 빈틈을 노려 크리스텐슨의 몸통을 가격할 건가.
지금 생각하면 약간 치졸했던 작전, 다음 맞대결에선 정정당당하게 1대 1로 맞붙겠다고 약속했다.
“너희들도 명심해, 동료들이 끼어들 때까지 시간 끄는 건 벤클이 아니야. 기왕 시작한 싸움이라면 1대 1로 이기라고, 알았어?”
다카기는 다른 어린 선수들에게도 주의를 줬다.
맞대결에서 패배해 깔리면 도와줄 순 있지만, 다른 선수들이 난입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치졸한 짓, 그런 녀석은 앞으로 도와주지 않겠다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