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12)
“저는 트레이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브라이스 감독은 트레이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도허티가 타선에 합류한다면 팀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겠지, 그건 인정했지만 조만간 FA로 풀릴 선수다.
우리가 우승에 목마른 팀도 아니고, 유망주까지 얹어주며 트레이드를 할 이유가 있을까. 뭣보다 불펜 운영을 중시하는 브라이스 감독에게 포데스와 트레이드는 달갑지 않았다.
1루수는 도허티에게 맡긴다고 해도 마무리 구멍은 어떻게 메울 건가.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은 나름대로 정리한 논리를 앞세웠다.
“우리가 불펜이 약한 것도 아니지 않나? 포데스와의 빈자리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네.”
보스턴은 예전부터 불펜이 강했던 팀, 덕분에 포데스와는 포스트 시즌을 제외하면 이닝관리를 철저히 지켰다.
문제는 이렇게 관리를 해주는데도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 불펜이 약한 팀의 클로저는 8회나 7회에도 올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포데스와는 그런 것도 아니다. 감독이 세이브 상황만 골라서 챙겨주는데도 기량은 제자리걸음, 제자리걸음이라도 해주면 좋은데 빠른 볼이 요즘 눈에 띄게 공략당하고 있다.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아치우는 게 현실적, 마이너리그에서 콜 업 할 자원은 얼마든지 있다며 설득을 이어갔다.
‘이미 정해진 일이군.’
브라이스 감독은 단장이 처음부터 내 의견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7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감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실상은 프런트 중심의 야구,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라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그렇게 시작된 트레이드 논의,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폰스를 줄 순 없습니까?]
세인트루이스는 포데스와보다 키스 폰스에 더 관심을 보였다.
키스 폰스는 장타력과 컨택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보스턴의 유망주, 도허티를 보내면 타선 하락이 불가피한 세인트루이스가 투수보다 타자 유망주를 선호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직접 거래를 하는 건 무리, 수더랜드 단장은 애리조나를 끌어들였다.
■ 보스턴(포데스와 + 울반스키 + 유망주) <-> 애리조나(빈센트 맥킬립 + 브랜든 바이어 + 유망주)
일단 이렇게 트레이드 논의가 이뤄졌다.
빈센트 맥킬립은 한때 보스턴 선수였지만 애리조나로 트레이드 됐고 그곳에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돈 운은 없는지 작년에 부상을 당하면서 FA 자격은 2년 뒤로 미뤄졌다.
그래도 올 시즌은 타율 0.274, 18홈런으로 잘 해주고 있는 편, 브랜든 바이어도 연봉 조정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트레이드는 불가피했다.
보스턴은 포데스와와 울반스키를 세트로 묶고 여기에 일정 부분 연봉부담까지 감수, 아직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는 선수들이라 애리조나 입장에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몇몇 이름 있는 유망주도 맞교환, 준비를 마친 수더랜드 단장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는 이제 도허티 없어도 돼.’
빈센트 맥킬립은 수비와 공격을 겸비한 야수, 브랜든 바이어도 불펜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재원이다.
보스턴 입장에선 유망주까지 내주며 무리하게 도허티를 데려올 이유가 없어진 상황, 반면 세인트루이스는 무조건 도허티를 팔아야 한다.
원하는 유망주는 보스턴에 있는데 이미 트레이드를 마친 보스턴, 이러다 그냥 FA로 풀어주는 거 아닌가.
도허티는 5년 전 세인트루이스와 10년 장기계약에 합의하면서 6년 차에 실행할 수 있는 옵트 아웃, 트레이드 거부권까지 얻었다.
팔고 싶어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 거기다 도허티는 LA나 뉴욕으로 가라는 트레이드를 이미 거부했다.
도허티를 떠안을 수 있는 구단은 우승을 노리는 거물급뿐, 중산층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 협상할 수 있는 팀은 더욱 제한적이다.
보스턴은 이미 트레이드로 전력을 재정비했고, LA나 뉴욕은 선수가 싫다니 세인트루이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이때 수더랜드 단장이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맥킬립에 찰스 잭슨 얻어주겠네. 나쁘지 않잖아?”
찰스 잭슨은 보스턴이 애리조나에서 받아온 유망주, 올 시즌 유망주 랭킹에서 57위를 차지했다.
세부적인 평가는 히팅 45, 파워 50, 주루 50, 어깨 60, 수비 60, 특히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3할 타율과 20홈런을 기록하며 평가가 급등했다.
맥킬립도 평균 이상의 야수, 세인트루이스는 장고 끝에 보스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웃긴 건 그동안 트레이드에 콧방귀를 뀌었던 도허티가 이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는 것, 덕분에 빈센트 맥킬립은 친정팀에 복귀한 지 이틀 만에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떠나야 했다.
야구가 아무리 비즈니스라고 해도 선수입장에선 조금 잔인한 운명,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다카기는 폭풍이 휘몰아친 클럽하우스를 재정비했다.
너무 스펙터클했던 단장의 트레이드, 맥킬립에게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넨 게 불과 어제다. 그런데 이젠 도허티라는 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좀 더 기뻐하라고, 내가 왔잖아?”
도허티는 넋이 빠진 캡틴 어깨를 툭툭 쳤다.
하지만 이 자식도 내년엔 여기 남을지 어떨지 모르는 선수, 아니, 시즌이 끝나면 옵트 아웃 선언이 확실한 놈이라 일단 차갑게 대했다.
“너 내 목 노리는 거 아니었냐? 그럼 LA나 뉴욕으로 가지 여긴 왜 기어들어 왔어?”
다카기와 도허티는 월드시리즈에서 몇 번 불편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럼 뉴욕이나 LA로 갈 것이지 왜 여기로 왔는지, 다카기는 이해를 못하겠다며 속마음을 들춰냈다.
“뉴욕은 우승하고 거리가 있는 팀이야, 그건 LA도 마찬가지고”
“그럼 보스턴은 우승권이냐?”
보스턴은 젊은 선수들로 재정비를 하고 있는 입장, 이런 팀에서 우승을 노리겠다는 건가.
우승보다 경험을 쌓는 게 중요, 하지만 도허티는 나름대로 논리를 앞세웠다.
“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잖아. 나는 최고의 타자고,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됐고, 지금 여기서 최고의 선수는 별 의미 없어. 최고가 되고 싶으면 네 멋대로 되라고, 난 애들 챙기기 바쁘니까.”
다카기는 도허티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우승? 나머지 선수들은 바보 만드는 발언 아닌가. 어린 선수들 성장에 신경을 쓰고 있는 다카기는 도허티의 합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차라리 빈센트 맥킬립이 팀에 남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맥킬립은 애리조나로 보내기 아까운 선수였다.
중견수 수비도 괜찮았고 뭣보다 여차하면 내야까지 책임질 수 있는 다재다능했던 선수, 팀을 위해 포지션 변경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선수가 팀에 남았다면 어린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을 텐데, 트레이드로 이용되고 이틀 만에 떠난 건 좀 아쉬웠다.
[넌 내가 아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거기서도 좋은 결과 있을 거다]
다카기는 그날 맥킬립에게 격려의 문자를 보냈다.
보란 듯이 올 시즌 재기해서 FA 대박 치라는 응원, 애리조나로 떠나간 울반스키 - 포데스와에게도 따로 문자를 보냈다.
안 좋게 헤어졌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하는 법, 하지만 트레이드로 속이 상했는데 두 녀석은 답장도 주지 않았다.
‘내가 트레이드에 관여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카기는 그러려니 웃어넘겼다.
트레이드가 이뤄지기 전, 다카기는 불화를 일으킨 두 선수를 질책한 적이 있다. 거기다 수더랜드 단장이 큰일을 하기 전, 다카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건 보스턴 내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러니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 입장에선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카기는 사전에 아무 정보도 받지 못했다.
이번 트레이드는 단장이 자기 뜻대로 벌인 일, 오해를 사든 말든 그곳에서도 잘 지내라는 문자를 남겼다.
* * *
“자, 스티브 도허티가 보스턴에서 데뷔전을 치릅니다. 올 시즌 타율 0.337, 25홈런, 71타점, 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마운드에는 다카기, 타석에는 도허티, 최고의 선수들이 조합을 이루게 됐네요. 이 정도라면 6년 연속 우승도 꿈은 아닌 것 같습니다.”
7월 18일, 도허티는 브라민 파크에서 첫선을 보였다.
울반스키와 포데스와가 떠난 건 아쉽지만 그 대가가 도허티라면 팬들 입장에선 환영할 일, 하지만 의욕이 앞섰는지 도허티는 낮은 공을 무리하게 잡아당겼다.
타격 기술도 갖췄지만 운동 신경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는 유형,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출루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너희들은 저거 따라 하면 안 된다.”
벤치에 앉은 다카기는 어린 선수들에게 주의를 줬다.
저건 도허티니까 가능한 타격, 어린 선수들이 혹해서 따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차분히 볼을 보면서 나만의 히팅 존을 설정하는 게 우선, 시즌 초부터 시작된 보스턴의 유망주 실험은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 좌익수 앞에 떨어집니다!! 주앙 고메즈의 안타!! 11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갑니다.”
“최근 20경기 성적만 놓고 보면 3할 3푼 5리에 홈런도 2개가 있거든요. 18살 선수가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타구 질이 확실히 좋아졌어요. 5월까지만 해도 타구 평균 각도가 3도를 넘지 못했는데, 지금은 7도까지 올라왔거든요. 아주 뛰어나다곤 할 수 없지만, 일단 타구를 띄우는 모습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좋은 활약을 하는 건 베논 리퍼드도 마찬가지,
리퍼드는 6월에 타율 0.294, 홈런 4개를 기록하며 이 달의 루키 수상을 다퉜다. 팀 동료 고메즈에게 밀려 수상은 실패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 얼마 전 메이저리그에 승격한 키스 폰스까지 터져주면 공격력은 걱정할 게 없었다.
“안타 치면 양복 하나 맞춰 줄게!!”
6회 말, 다카기는 타석에 들어선 폰스에게 미끼를 던졌다.
고메즈와 리퍼드도 첫 안타를 쳤을 때 캡틴에게 양복을 선물 받았다.
폰스도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유망주, 하지만 오늘은 앞선 두 타석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올 시즌 폰스는 더블 A와 트리플 A를 거치면서 타율 0.353, 홈런 21개, 81타점을 기록했다. 마이너리그가 타고투저라고 해도 이 정도 성적을 아무나 거둘 수 있나.
그만큼 기대가 큰 유망주, 하지만 폰스는 낮게 떨어지는 볼에 헛스윙을 돌렸다.
폰스의 문제점은 선구안,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53볼넷, 삼진 108개를 기록했다.
주앙 고메즈는 타격을 제외한 어깨, 수비 능력에서 만점을 받았고 뭣보다 보스턴의 유격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일찍 승격을 했지만, 폰스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마이너리그 성적만 따지면 리퍼드가 나았고, 리퍼드가 메이저리그에 승격되고 나서야 팀 내 유망주 톱에 오른 입장, 기대만큼 결과가 시원치 않다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고 훗날 트레이드 카드로 버림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각오해야 했다.
“오늘 못 치면 양복은커녕 양말도 없어!!”
다카기는 다시 한 번 압박을 가했다.
단장이 삼각트레이드까지 하며 지켜낸 유망주인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운 경기력, 무조건 오냐오냐 하는 성격이 아니라 바로 면박을 줬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1루수 옆을 빠져 나갑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 내친김에 3루까지 내달립니다!! 키스 폰스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안타!! 가장 어려운 3루타로 장식을 합니다!!”
“트레이드 논의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수더랜드 단장이 마지막까지 지킨 이유가 있네요. 보스턴의 일원이 된 걸 환영합니다.”
3루에 안착한 폰스는 다카기를 향해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양복 사줄 거냐는 뜻, 이에 다카기는 열 손가락을 펴보였다.
활약만 해준다면 양복 10벌도 아깝지 않겠지, 그렇게 애송이들은 캡틴의 보살핌 속에 성장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