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11)
“자, 스캇 포데스와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올 시즌 37경기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2.43, 19세이브, 37이닝 동안 볼넷 10개, 탈삼진 52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쁘진 않은데 최근 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전반기 마지막 등판인 만큼, 오늘은 깨끗하게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네요.”
7월 13일, 보스턴은 홈에서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6년 연속 올스타에 뽑힌 다카기는 벤치에서 경기를 관람, 여유가 있다면 올스타전 출전을 위해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겠지만, 팀이 지구 1위를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라 캡틴으로서 중심을 지켰다.
‘조금만 더 진지해지자.’
다카기는 포데스와가 조금 더 진지한 성격으로 경기를 대해주길 바랐다.
포데스와는 최고 103마일의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활용해 미친 듯이 삼진을 쓸어 담는 스타일, 다만 작년 시즌부터 슬라이더 효율성이 조금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포데스와의 상징은 빠른 볼, 포심 패스트볼 비율은 80%가 넘고, 지난 2024년엔 90% 가까이를 찍었다. 95마일까지 나오는 슬라이더는 구속 차를 이용해 헛스윙을 이끌어 내는 보조 수단일 뿐, 그렇게 무브먼트가 뛰어나다곤 할 수 없다.
빠른 볼만 던져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재능, 그런 재능에 너무 의지한 걸까. 포데스와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예전만 한 위용은 보여주질 못했다.
“그 공은 개한테 던져줬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야구를 대하는 태도, 포데스와는 보스턴에서 월드시리즈 우승만 5번을 경험했다.
이른 나이의 성공이 자만심으로 악화된 걸까, 월드시리즈 마지막을 장식한 공을 개한테 장난감으로 던져주고 히히거리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된 적도 있고, 뭣보다 성적이 예전만큼 안 나오면서 팬들의 반응도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본인이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다카기는 그동안 입을 다물었지만 팀의 반등을 위해선 포데스와의 활약이 절실했다.
따아악 ~ !!
“아 … 이 타구가 높게 떠서 … 담장을 넘어가는군요. 케네스 퍼먼의 솔로 홈런, 토론토가 1점 따라붙으면서 스코어는 5대 3이 됩니다.”
“문제가 있네요. 지금이 무슨 득점권도 아니고 … 아주 편한 상황에서 올라온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못 막아준다면 위기 상황에서 포데스와를 쓸 수 있겠습니까?”
브라이스 감독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런 지경이라면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도 문제, 하지만 싫은 말을 못하는 성격이라 포데스와를 직접 다그친 적은 없다.
하지만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일, 오늘 경기가 끝나면 면담 좀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거 안 되겠네.’
포데스와는 다음 타자에게도 볼넷을 내줬다.
잘못하면 다 된 밥에 코 빠트릴 지경, 하지만 여기서 교체를 하는 건 선수 자존심과도 연관된 일이다.
본인도 생각이 있다면 집중을 하겠지, 다카기는 일단 지켜봤고 투수 코치의 조언대로 사인을 내렸다.
견제구로 타이밍을 끊으라는 요구, 하지만 1루수 울반스키는 멍 때리다 이 사인을 읽지 못했다.
1루 주자가 3루까지 진출하면서 다시 실점 위기, 포데스와는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 거냐며 울반스키를 질책했다.
“네가 그런 말 할 자격 있냐?!!”
울반스키는 바로 언성을 높였다.
홈런 쳐 맞고 해롱거리는 놈이 뭐가 잘났다고 저 지경인지, 더는 두고 보기 어려웠는지 브라이스 감독은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자네들 정신이 있는 거야?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
“이 자식이 사인을 제대로 못 읽은 거잖아요.”
“그만하라고!! 지금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경기를 마무리 짓는 거야!!”
브라이스 감독은 선수들을 다시 다그쳤다.
가뜩이나 화가 나는데 눈치 없이 서로 싸우고 있으니, 다카기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오늘 쟤들 박살 나겠네.’
근처에 있는 선수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했다.
보아하니 오늘 클럽하우스가 한 판 뒤집힐 지경, 클럽하우스 매니저는 일단 값비싼 물건을 치워냈다. 다카기는 화가 나면 누구도 못 말리는 성격,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너희들 다 나가 있어.”
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끝난 후 다카기는 울반스키와 포데스와만 남기고 나머지 선수들을 클럽하우스에서 내몰았다.
당장 뭔가 터질 분위기, 브라이스 감독은 클럽하우스 입구를 기웃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내가 서른 앞둔 너희들 콧물까지 닦아줘야 되냐? 어디 말을 해 봐.”
다카기는 지금 어린 선수들을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젠 베테랑이라는 놈들이 쌍으로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 어디 해보자는 거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 그때 정신 어디에 두고 있었냐? 내가 사인 보낸 거 못 봤어?”
“그게 … 다른 자식이 사인 보내는 줄 알고 … ”
“그걸 변명이라고 해? 1억 달러 넘게 받는 자식이 무슨 아마추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울반스키는 속사포에 입을 다물었다.
당시 내가 정신을 다른 데 두고 있었던 건 사실, 캡틴 앞이라 변명 따윈 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너!! 네가 그러고도 승리를 책임지는 마무리냐?!!”
화살은 바로 포데스와에게 돌아갔다.
다카기는 어린 선수들이 실수를 연발해도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린 녀석들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긴 것, 그걸 다 일일이 잡아내서 뭐라고 했으면 팀 분위기는 개판이 됐을 거다.
울반스키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걸 대놓고 지적하며 팀 분위기를 박살낸 건 베테랑답지 않았다.
“그리고 너 요즘 던지는 거 마음에 안 들어. 뭐가 문제인지 생각은 해 봤냐?”
다카기는 포데스와의 구위는 인정했다. 문제는 발전이 없는 기량, 구위로 먹고 사는 스타일라도 몇 가지 결정구는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런데 슬라이더가 아직도 타이밍 뺏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으니,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는 건 당연, 참다 참다 한마디 퍼부었다.
“너희들 이따위로 하면 나 캡틴 안 할 거야. 내가 무슨 유치원 원장도 아니고 너희들 뒤치다꺼리까지 해 줘야 돼?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내 입장은 생각해 봤냐?”
대역죄인들은 고개를 숙였다.
팀은 혼자 이끄는 게 아닌데, 요즘은 다카기가 이것저것 다하는 분위기, 스트레스가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뭘 잘못했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적어서 내일까지 감독님한테 제출해. 알았어?!!”
다카기는 앉아 있던 의자를 걷어차고 클럽하우스를 떠났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몇 바퀴를 나뒹구는 의자, 눈치를 살피던 클러비가 응급조치에 나섰지만 의자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큰일이군.’
이 소식을 접한 수더랜드 단장은 인상을 구겼다.
캡틴이라고 어린 선수들까지 신경 쓰고 있는데 이제는 베테랑들까지 짐덩이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러다 나 안 한다고 트레이드 요청하는 거 아닐지 걱정됐다.
“자네들, 경고는 이게 마지막이야.”
수더랜드 단장은 문제를 일으킨 두 베테랑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다카기는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하지만 울반스키와 포데스와는 다르다.
울반스키는 올 시즌 타율 0.273, 홈런 14개로 리그 MVP를 노렸던 작년에 비하면 성적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건 포데스와도 마찬가지, 그래도 아직 트레이드 가치는 있는 선수들이다.
정 안 된다면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때 트레이드를 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여론도 여기에 합세하면서 상황은 대역죄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다카기, 올스타전 출장 포기한다.]
[사무국에 대체선수 요청]
결정타를 박은 건 다카기의 올스타 출장 거부 사건,
팀이 막장인데 어떻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겠나. 뽑아준 선수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기분으로 축제에 참가하면 훼방꾼만 될 것 같았다.
“와아 ~ 오늘 아빠 집에 있다아 ~ ”
아무것도 모르는 타다요시는 낮부터 집에 있는 아빠 주변을 맴돌았다.
그럼 나와 하루 종일 놀아줄 수 있겠지, 키리코는 아빠 힘들다며 주의를 줬지만 다카기는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집 밖의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푸는 건 정말 못난 가장,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둘째도 데리고 정원을 산책했다.
“아빠 집에 있어서 좋아?”
“네에 ~ ”
“그럼 아빠도 좋아.”
다카기는 자석처럼 다리에 들러붙은 장남 머리를 어루만졌다.
매일 보는 수컷들에 비하면 훨씬 귀여운 내 새끼들, 난 뭣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여기서 야구를 하고 있는 건가.
그동안 최고 연봉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뒤따르는 책임감이 이렇게 클 줄이야, 이젠 돈보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올스타전에 불참했으니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 기분도 풀 겸 가족여행 계획을 잡았다.
“구단에 안 알려도 돼?”
“그런 건 일일이 보고 안 해도 돼”
키리코는 구단에 먼저 알리는 게 좋지 않느냐고 권했지만 다카기는 손을 저었다. 마음 같아선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기분,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피행에 올랐다.
“여기서 딸만 하나 더 있으면 완벽한데”
여행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카기는 슬쩍 밑밥을 깔았다.
일주일이나 여유가 있는데, 그 정도면 대업을 이룰 시간은 충분하지 않을까. 마침 키리코도 셋째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남편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너도 여동생이 좋지?”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거예요?”
타다요시는 신중론을 앞세웠다.
이제 일곱 살이고 알 건 다 안다. 아빠 생각은 이해하는데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나, 조금 자중하시는 게 어떻겠냐며 아빠 얼굴에 미소를 피웠다.
“그땐 한 명 더 낳으면 되지”
“안 돼요. 엄마도 힘들단 말이에요.”
타다요시는 동생 돌보느라 힘든 엄마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동생이 생기는 건 좋은데, 엄마가 힘들어 하면 무슨 소용인가.
아군이 될 줄 알았던 아들의 반격에 다카기는 눈치를 살폈다.
“우리 아들 같이 착한 아기면 엄마는 괜찮아.”
“그럼 저 오늘 혼자 자야 돼요?”
솔직한 발언에 다카기는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이고 자시고 혼자 자는 게 싫은 모양, 아직 셋째는 무리인가. 아들의 귀여운 저항에 뜻을 접었다.
* * *
‘이걸 저렇게 저걸 이렇게 하면 … ’
올스타전이 끝나고, 수더랜드 단장은 새로운 판짜기에 돌입했다.
목표물은 세인트루이스의 간판스타 스티브 도허티, 도허티는 지난 6년 동안 월드시리즈 무대를 2번이나 밟았지만 전부 보스턴에 막혔다.
우승을 바라는 도허티는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지만 구단은 외면하고 있는 상황, 거기다 세인트루이스는 조만간 FA 자격을 얻는 도허티를 잡을 여력도 없다.
그렇다면 유망주를 받고 트레이드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략, 올 시즌 전반기에 타율 0.337, 홈런 24개, 68타점을 기록한 도허티는 우승을 노리는 팀의 눈길을 사고 있다.
보스턴도 그중 하나, 하지만 2억 6천만 달러나 되는 팀 페이를 고려하면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도 치워내야 한다.
누굴 보내고 도허티를 얻어올 것인가.
불펜을 중시하는 브라이스 감독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포데스와는 남겨둬야 하지만, 성장이 멈춘 선수를 언제까지 데리고 있는 것도 도박, 시간을 두고 감독과 의견을 좁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