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47화 (247/361)

247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6)

[보스턴 다시 연패]

[연승 동력 잃었나]

필라델피아와의 원정경기에서 보스턴은 2승 1패를 거뒀지만 이어지는 뉴욕과의 홈경기에서 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최근 5년 동안 홈에서 뉴욕을 상대로 19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기록, 이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도 일어났다.

“You are a picky old buffer!!”

= 넌 늙다리야!!

한 팬이 외야로 나선 데이브 셰퍼드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 부진하다고 해도 4년 동안 팀의 중심 타선을 책임져 준 선수에게 이게 할 말인가.

격분한 셰퍼드는 관중석에 난입, 한바탕 난동이 벌어졌고 셰퍼드는 관중석에 난입한 죄로 10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셰퍼드는 원래 팬들에게 불친절했다.]

눈치 없는 기자들은 불붙은 집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사실 메이저리거의 팬 서비스는 예전부터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얼핏 보면 사인에 잘 응해주는 것 같지만, 팬이 20달러를 주고 산 공에 사인을 해주는 게 관행으로 잡았다.

선수가 사인을 해주기 전, 공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건 사인을 해도 되는 공인지 확인하는 절차, 마크가 찍히지 않은 공에 사인을 해 줄 의무가 없다.

그래도 어지간한 선수는 코 묻은 볼에 사인을 해주지만, 셰퍼드는 구단 절차를 철저하게 지켰다.

성적이 좋았을 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늙다리 취급을 받는 신세,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지자 브라이스 감독은 긴급 미팅을 소집했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최근 우리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선수들은 말을 아꼈다.

문제가 뭔지는 알고 있지만 말해봤자 내 얼굴에 침 뱉기, 보다 못한 다카기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감독의 동의를 구한 다카기는 화살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 아니 처음부터 스포츠는 기록이 전부다. 그렇다고 해도 본질은 팀의 승리, 너희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이 이런 식이라면 내가 중간계투로 뛰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거냐?”

다카기의 질책에 선수들은 입을 다물었다.

올 시즌 철벽의 에이스는 5경기에서 14점 득점지원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 중 뒤에서 10위에 해당하는 기록, 그나마 지난 필라델피아 전에서 4점을 지원받아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지, 그 전엔 정말 바닥을 기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보스턴 선수들은 오래전부터 다카기가 나오는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게임으로 여겼다.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달라졌다.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외부로 빠져나가고 이제는 어린 선수들이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상황, 다카기가 승리 없이 물러나는 날이 많아지자 선수들은 시키지도 않은 부담감을 떠안았다.

그게 눈에 보인다는 게 문제, 예를 들어 주앙 고메스가 올 시즌 실책 절반을 다카기의 등판에서 저지른 게 우연일까.

선수들이 내 승리에 부담을 느낀다면 중간계투로 뛰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장 내일 선발 등판이 잡혔지만 다카기는 이런 분위기라면 나가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내일 선발은 레이븐으로 하시죠.”

“자네 진심인가?”

“저 농담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다카기는 선발등판을 거부했다.

지난 5년 동안 팀의 에이스를 책임졌지만, 솔직히 보스턴은 그동안 다카기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했다.

그러다 보니 야수에 비해 선발진에 신경을 못 쓴 것도 사실, 선발진이 무너진 지금은 다양한 유망주를 기용하며 미래를 다져야 한다.

유망주들을 앞세우고 정 안 되면 내가 뒤처리를 하겠다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브라이스 감독은 조금 진정하라고 다독였다.

“자네 심정은 이해하겠는데 조금 진정하는 게 … ”

“아니요. 내일 선발 거르겠습니다.”

다카기는 끝내 선발 등판 기회를 달라스 레이븐에게 돌렸다.

구단에서 나름 기대를 하고 있는 유망주, 삼일 전 마이너리그에서 콜 업 된 게 우연일까. 어차피 조만간 등판할 선수, 갑자기 떨어진 출격 명령에 레이븐은 당황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에이스가 나갈 자리를 대신하다니,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팬들도 내일은 다카기가 선발로 나서는 걸로 알고 있을 텐데, 내가 등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이게 뭐야?!!”

“다카기는 어디 있어?!!”

“저기 있다!!”

다음 날, 보스턴 팬들은 불펜에 앉은 에이스를 보고 경악했다.

홈에서 2패를 당했는데 에이스를 불펜에 앉히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 중계 카메라도 다카기를 집중 조명했다.

“자, 보스턴은 달라스 레이븐이 선발로 나섭니다. 오늘이 메이저리그 첫 등판이군요.”

“최고 166km까지 던지는 강견이죠. 여기에 슬라이더 커브를 주무기로 활용합니다.”

“조만간 등판할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설마 오늘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설마 다카기 선수가 부상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카메라가 날 찍든 말든 코를 어루만지며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는 다카기, 부상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진 않고 해설위원들의 궁금증은 더해졌다.

‘괜찮아. 날 믿으라고’

노련한 호프만 포수는 능숙하게 애송이를 리드했다.

빠른 볼 구위만 따지면 다카기에게도 밀리지 않는 레이븐, 제구가 다소 불안정하지만 그런 건 내가 처리해주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거 뭐야.’

‘생각보다 강하잖아.’

뉴욕 타자들은 레이븐의 구위에 혀를 내둘렀다.

다카기가 안 나와서 좋아했는데, 이건 그냥 괴물 아닌가. 101마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뿌려대는데 제구를 떠나서 이 정도면 알고도 치기 어려웠다.

야유를 보내던 팬들도 ‘어라?’ 하는 분위기, 레이븐은 호프만의 유도대로 95마일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택했다.

빠진 공은 어지간하면 다 잡아주는 호프만, 통산 첫 탈삼진을 잡아낸 레이븐은 혀를 날름거리며 긴장감을 쫓아냈다.

“좋아!! 그렇게 하면 돼!!”

다카기도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내가 더그아웃에서 빠져주니까 뭔가 느슨해진 분위기, 경기에서 집중력은 당연히 필요한 거지만 너무 과하면 긴장을 하게 된다.

다카기라는 거물을 지탱하기엔 아직 약한 애송이들, 조금 멀리서 지켜봐 주자 주앙 고메즈도 한결 가벼운 움직임을 보였다.

‘아주 날아다니네. 괘씸한 놈 … ’

분위기를 탄 고메즈는 멋들어진 역동작으로 대포알 송구를 날렸다.

내가 등판한 날엔 실책을 연발하던 놈이 이래도 되는 건가. 지난 경기에선 잘 해줬지만 그래도 괘씸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날 지탱할 거물로 성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따악 ~ !!

“당긴 타구가 …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도 3루를 지나 홈까지!! 들어갑니다!! 알 디즌은 3루까지!! 보스턴이 3대 0으로 달아납니다!!”

“지난 2경기와는 확실히 다르네요. 타선에 역동성이 살아났습니다.”

4월 내내 부진했던 알 디즌이 살아나면서 공격도 조금 매끄러워진 느낌, 분위기를 탄 레이븐은 통산 첫 승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완급조절이 미숙해 4회부터 슬슬 힘이 빠지는 분위기, 5회 첫 실점을 내준 레이븐은 6회 들어 볼넷 2개를 내주며 흔들렸다.

‘나머지는 내가 한다.’

이때, 5회부터 몸을 풀던 다카기가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다.

뉴욕 입장에선 대마왕의 강림과 비슷한 연출, 보스턴 팬들도 열렬한 환호로 응했다.

무사 주자 1 - 2루 위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투구를 이어가는 끝판왕, 첫 타자 모리슨을 2구만에 내야 뜬공으로 처리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딱 ~ !!

“유격수 정면!! 2루로 송구!! 다시 1루에서 ~ !! 아웃 입니다!! 더블 플레이!! 보스턴이 위기를 넘어갑니다!!”

“포스트 시즌 통산 21승을 그냥 세운 게 아니죠. 역시 철의 심장을 가진 선수입니다.”

공 3개로 정리한 위기, 더그아웃에서 그 위풍당당한 투구를 지켜본 레이븐은 경의의 박수를 보냈다.

5회 들어 퍼져버린 나와는 너무 다른 위용, 매 경기 7이닝 정도를 소화하는 다카기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올라온 이상 승리를 포기해라.’

다카기는 이후에도 뉴욕 타선을 완벽히 봉쇄했다.

선발 투수진이 부진하다 보니 불펜진도 과부하가 걸린 상황, 올라올 때부터 나머지 이닝은 내가 막겠다며 결정했다.

브라이스 감독도 더는 말릴 수 없는 상황, 3이닝을 6탈삼진 퍼펙트로 막아내는 투구에 팬들도 한껏 달아올랐다.

‘9회가 너희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다카기는 9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4월 투구는 약간 마음에 안 들었지만 5월 들어 확실히 올라온 구위, 이런 투수 앞에서 아웃카운트 3개의 기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첫 타자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뉴욕의 희망을 지워버렸다.

나머지 두 타자도 삼진과 땅볼로 처리, 4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한 다카기는 호프만 포수와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무대에서 무려 2년 만에 나온 4이닝 세이브,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날아들었지만 다카기는 거부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레이븐입니다. 그 친구에게 가보시죠.”

오늘도 까칠한 철벽의 에이스, 얼떨결에 첫 승을 거둔 레이븐은 붕 뜬 얼굴로 기자들을 마주했다.

“갑자기 선발 등판이 잡혔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음 …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 스토리입니다.”

레이븐은 덤덤한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팀 미팅부터 시작된 스토리, 기자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홈에서 2패를 안고 시작하는 경기, 거기다 셰퍼드가 안 좋은 일로 출장정지 처분을 당했으니, 다카기가 선발로 나선다면 선수들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았을 거다.

그렇다고 레이븐이 떠안은 책임이 적다고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언젠가는 보스턴의 선발진을 책임져야 할 투수, 이 정도 부담도 못 이겨내면 어떻게 장밋빛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레이븐은 쉽지 않은 데뷔전이었지만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은 하루였다며 소감을 밝혔다.

“저는 물론 선수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승리입니다. 올해는 저희가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이것도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다카기가 제 뒤를 책임져 줬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경기를 마무리 할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카기 선수를 밟고 올라설 생각은 없으십니까? 오늘 구위를 보니 가능성이 보이던데요?”

짓궂은 기자의 질문, 잠시 머뭇거리던 레이븐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직은 제가 따라가야 할 존재입니다. 많이 배우고 차이를 좁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경기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보스턴은 지구 1위 탬파베이를 홈으로 불러 2연승을 달렸다.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5할 위를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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