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5)
[보스턴 지구 3위 유지]
개막 이후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보스턴은 13승 11패, 승률 5할을 웃돌았지만 지구 3위에 머물렀다.
팀 연봉 2억 6천만 달러를 투자하고도 이 꼴이라니, 그에 반해 팀 연봉이 1억 달러가 안 되는 탬파베이는 20승 4패라는 팀 역사상 최고의 한 달을 보냈다.
앞으로도 계속 해먹겠다는 뜻으로 팀 구장도 브라민 파크로 명명했는데, 이게 무슨 망신인가.
보스턴 내부에서도 부진의 원인을 두고 분석에 나섰다.
[선발투수 부족]
[불안한 수비]
[떨어지는 공격력]
원인은 대략 이렇게 좁혀졌다. 보스턴은 예전부터 선발진이 강한 팀은 아니었다. 다카기가 워낙 압도적인 포스를 보였을 뿐, 사실 지금 시대에서 좋은 선발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그만큼 선발이 중요한 것도 사실,
메이저리그는 한 때 불펜 야구가 흥행했지만 지금은 선발과 불펜의 평균자책점 격차가 1이내로 좁혀졌다. 좋은 선발투수를 보유했다는 건 그만큼 승리에 유리한 일, 물론 보스턴엔 다카기만 있는 건 아니다.
로버트 클레이튼이라는 걸출한 선발이 다카기의 뒤를 책임져 줬지만, 올 시즌은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4.61로 부진하다.
수더랜드 단장이 그동안 내부 단속에 치중하면서 야수와 불펜진 보강에 치중한 것도 사실, 다카기라는 존재를 너무 믿었는지 선발진 보강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행보를 보였다.
수비 불안도 예전부터 지적됐던 문제, 범위는 넓지 않아도 안정적인 수비 범위를 보여준 J. J. 핵먼이 이탈하고, 18살 애송이가 유격수를 보면서 내야진은 더 얄팍해졌다.
땅볼 유도 비율이 높은 클레이튼이 부진에 빠진 건 이런 배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공격력도 문제,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보스턴 타석은 작년만 한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 시즌 리그 MVP까지 노렸던 울반스키는 지금까지 0.242, 홈런 3개로 부진, 600홈런을 앞둔 데이브 셰퍼드도 0.272, 2홈런에 그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10년 2억 2천 6백만 달러 계약을 맺은 알 디즌, 후안 위긴스 - J. J. 핵먼 - 폴 돈론이 모두 팀을 떠나면서 알 디즌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해졌다.
그런데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182, 홈런 없이 3타점, 이제 막 데뷔한 주앙 고메즈(타율 0.222, 홈런 2개)보다도 못한 성적이다.
4년 연속 20홈런을 넘긴 타자가 이렇게 몰락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얄궂게도 수더랜드 단장이 놔 준 핵먼은 타율 0.372, 홈런 5개를 기록하며 펄펄 날고 있는 중, 모든 비난은 단장에게 쏟아졌다.
‘5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한 건 잊어버렸네.’
다카기는 매정하게 돌아선 팬들의 태도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린 선수들이 대거 기용되고 있는 올 시즌, 올해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될 거라는 건 내부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일부 선수들이 떠나갔지만 내부 단속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상황, 그렇다고 내가 팬들과 싸워봤자 좋을 게 뭐가 있을까.
외부의 질문은 철저히 외면했다.
“다카기 선수, 최근 팀이 부진에 빠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카기는 경기를 앞두고 클럽하우스를 기웃거리는 기자들을 외면했다. 내가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 화살이 어느 쪽으로 가겠나. 하지만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화살은 내게 쏟아지겠지, 연봉 4천만 달러를 받는 만큼 팀의 방패를 자처했다.
[다카기도 책임이 없진 않다.]
예상대로 기자들은 바로 물고 뜯기에 나섰다.
팀 최고 연봉자가 개막전 퇴장 이후 4경기 동안 승리 없이 1패만 기록하고 있으니, 욕을 먹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이런 시나리오를 의도했던 다카기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너희들이 성장하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숲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어린 나무가 자라려면 외부의 바람을 막아주는 어른 나무의 보호가 필요하다. 다카기는 이제 완숙한 거목(巨木), 내가 어린 선수들을 외풍에서 보호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팀이 재건되겠는가.
누가 실수를 하든, 부진하든 동료를 탓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원래 저랬었나?’
동료들은 이런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카기는 예전부터 동료들에게 가차 없는 독설을 날렸다. 그런데 지금은 잘 해주던 인터뷰까지 거부하며 기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중, 덕분에 부진에 빠진 선수들은 여론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졌다.
원래 저렇게 살가운 녀석이었나?
다들 눈치를 살폈지만, 미안한 마음에 차마 입은 열지 못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이때, 눈치를 살피던 고메즈가 슬쩍 다가왔다.
실책을 연발한 사건도 있고 여러모로 미안하고 고마운 게 사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클러비한테 부탁했겠지. 네가 지금 내 심부름이나 신경 쓸 때냐?”
드디어 돌아온 까칠한 성격, 잘못 걸린 루키가 혼이 나는 동안 나머지 선수들은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네가 이곳에서 할 일은 첫째도 야구, 둘째도 야구, 셋째도 야구야. 네가 루키라고 심부름시킬 인간 여기에 아무도 없어. 알았냐?”
“응, 알았어. 명심할게”
고메즈는 이후 철저히 야구에만 집중했다.
루키라 베테랑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심부름을 하는 건 어느 정도 각오했는데, 스프링캠프부터 누구도 그런 일을 강요한 적이 없다.
각자 할 일은 알아서 하는 게 보스턴 클럽하우스의 룰, 베테랑이 루키에게 심부름 시키는 것도 이제는 몰상식한 행동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분위기를 선도한 건 다카기, 분위기를 재정비한 보스턴은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필라델피아도 돈 쓰고 못 이기는 사정은 마찬가지, 오프 시즌에 3억 9천만 달러를 투자하고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에 처져 있다.
보스턴의 알 디즌이 2억 2천 6백만 달러짜리 쓰레기라면, 필라델피아의 채드 마타는 3억 2천만 달러짜리 쓰레기,
패드 마타는 고교 시절 178m 홈런을 날려 여론의 주목을 끌었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자마자 20홈런, 올스타 전 출장을 달성하며 일약 스타에 올랐다.
하지만 성적은 매년 기복이 있는 편, 2024시즌은 타율 0.314, 43홈런을 날리며 폭발했지만 다음 시즌엔 홈런에 절반 이하(20개)로 줄어버렸다.
그러다 작년 시즌 32홈런을 날리긴 했는데, 절대 3억 2천 만 달러를 받을 선수는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올 시즌은 타율 0.222, 홈런 0개에 그치고 있는 중, 극성으로 소문난 필라델피아가 이런 선수를 그냥 놔둘 일은 없었다.
따아악 ~ !!
“멀리 가는 타구가!!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알 디즌의 올 시즌 첫 홈런!! 길었던 부진의 터널에서 빠져나옵니다!!”
“역시 야유가 대단하네요. 이 화살이 누구에게 쏟아지고 있는지 모를 사람이 있을까요?”
디즌의 홈런이 터지는 순간, 필라델피아 팬들은 마타를 향해 ‘넌 재수 없어’를 연호했다.
2억 2천 6백만 달러 쓰레기도 홈런 하나는 쳤는데, 넌 그것보다 1억 달러를 더 받고도 뭘 하고 있냐는 폭언, 거기다 오늘 상대는 다카기라 홈런이 나올 가능성은 더 낮았다.
“자, 오늘 보스턴의 선발은 다카기 하루요시입니다. 올 시즌 4경기 등판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2.62, 24이닝 동안 볼넷 2개, 탈삼진은 33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경기 당 득점 지원이 1.8점인데 어떻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평균자책점이 작년에 비하면 약간 높지만, 그렇다고 부진하다고 할 수도 없는 수치거든요. 그래도 오늘은 선취점을 안고 경기를 시작합니다.”
다카기는 첫 타자 후안 로페즈를 상대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박아 넣었다.
수비진이 불안정한 만큼 조금 더 삼진에 집중해야 하는 투구, 그렇다고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라 마음을 비웠다.
딱 ~ !!
“깊은 타구, 유격수가 잡아!! 1루로 던집니다!! 멋진 러닝 스로우!! 고메즈의 수비입니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처리하기 까다로웠는데, 역시 어깨 하나는 기가 막히네요.”
아웃이 확정되는 순간, 고메즈는 박수를 치며 포효했다.
올 시즌 24경기에서 무려 7개의 실책을 저질렀는데, 그 중 3개가 다카기의 등판에서 나왔다.
에이스의 경기를 말아먹은 대역죄인, 말이 3개지 보이지 않는 실책까지 따지면 현실은 더 심각하다. 이걸로 속죄가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는 덜게 됐다.
‘잡아줄 수 있었는데 … ’
고메즈는 마음속으로 하나 더를 외쳤지만, 다카기는 후속 타자를 삼구 삼진 처리했다.
지금이라면 어떤 타구도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삼진이 아웃 카운트를 쌓는 가장 좋은 수단이지만 그래도 약간 아쉬웠다.
“우우우 ~ 우 ~ ”
그 사이 3억 2천만 달러짜리 쓰레기는 홈 팬들의 야유를 받으며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보란 듯이 한 방 쳐주고 싶었는데 초구부터 헛스윙, 다카기는 다음 공도 높게 던져 카운트를 잡아냈다.
채드 마타는 타격할 때 뒷발이 유독 많이 들리는 편, 극단적인 파워 히터에게 일어난 현상이라 홈런이 나오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마타는 홈런도 못 치고 헤드가 흔들리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중, 이런 타자를 상대로 승부를 끌 이유가 없었다.
‘별로 기쁘지도 않다.’
빠른 볼만 3개 던져서 삼구삼진, 당연한 결과라 다카기는 덤덤한 얼굴로 더그아웃에 입성했다.
내셔널리그 룰로 치르는 경기, 이게 얼마 만에 잡아보는 배트인가. 다카기는 2사 주자 1 - 2루에서 첫 번째 타석을 맞이했다.
“낮게 들어옵니다. 지켜보는군요.”
“다카기 선수의 프로필 신장이 6피트 5인치(196cm) 정도 되거든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신장인데, 타격하는 걸 보면 중심이 낮게 잡혀 있습니다. 이렇게 키가 큰 선수가 저런 자세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는데, 한눈에 봐도 다른 투수들과는 뭔가 다르죠?”
“작년 시즌 내셔널리그 투수 평균 타율이 0.128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카기 선수는 통산 타율이 0.313에 홈런도 18개가 있어요. 일반적인 투수로 생각했다간 피를 보게 될 겁니다.”
[따아악 ~ !!!!]
“말씀드리는 사이!! 낮은 공을 걷어!! 올립니다!!!!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쓰리 런!! 본인이 직접 해결합니다!! 통산 19번째 홈런!! 엄청난 한 방이 터져나왔습니다!!”
“3억 2천만 달러는 이 선수에게 줘야겠는데요? 채드 마타는 아직도 홈런 없지 않습니까?”
“하하 ~ 그러게 말입니다.”
해설위원들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다카기는 먼저 홈을 밟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주전들 중에도 홈런 못 친 선수들이 있는데 투수가 홈런이라니, 울반스키는 우리 모두 머리 박고 반성해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반성하고 있어.’
울반스키는 뒷짐을 진 채 다카기 앞에 고개를 숙였다.
홈런 3개를 때리고 있지만 돈 값 못하고 있는 건 사실, 하지만 다카기는 녀석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지나갔다.
야구가 언제나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고메즈는 다카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투수가 통산 19번째 홈런이라니, 뭔가 비결이 있지 않느냐고 귀찮게 굴었지만 다카기는 친절하게 답을 줬다.
“그냥 치는 거야.”
“에이 ~ 그런 게 어디 있어? 전에 나한테 이런저런 조언 줬잖아?”
“내 타격 실력은 고등학교 이후 그대로야.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이제 없어.”
“ … 진짜야?”
“어, 넌 고등학교 수준의 타자한테 더 배우고 싶냐?”
고메즈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타격 실력이 고등학생 때 완성된 거라니, 정말 그날 이후 발전이 없었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타격에만 집중했다면 지금 어떤 성적을 내고 있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