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45화 (245/361)

245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4)

‘이거 내가 잡아야 되나?’

계속되는 경기, 내야를 조금 벗어난 뜬공이 나오자 주앙 고메즈는 머뭇거리다 책임을 좌익수에게 넘겼다.

그러나 좌익수는 유격수가 잡을 줄 알고 수수방관, 평범한 플라이가 출루로 이어이자 애송이들은 에이스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이른 콜 업이었나.’

다카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투구를 이어갔다.

지금이야 유격수를 쇼트 스톱(short stop)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쇼트 필더(short filder)라고 불렀다.

피처(pitcher)는 공을 던지는 사람, 캐처(catcher)는 공을 잡는 사람, 단어만 들어도 그 사람이 뭘 하는지 알 수 있는 게 야구 포지션이다.

그런데 왜 유격수만 쇼트 스톱이라고 부르는 걸까. 이건 야구의 역사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유격수는 가장 역사가 짧은 포지션, 야구 초창기는 타구가 내야를 넘기기 어려웠기 때문에 포수를 2명 출전시키거나 내야를 5명이 지키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 펼쳐졌다.

각 베이스를 1, 2, 3루수가 지키고 베이스 사이에 수비수를 뒀는데 바로 이들이 쇼트 필더, 유격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임무는 내야수비와 얕은 플라이를 처리 그리고 외야에서 날아오는 송구를 받는 중계 플레이였다.

즉, 쇼트 필더는 외야와 내야를 오가며 송구를 중계한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 그만큼 수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자리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를 18살짜리 애송이가 커버하고 있는데 실수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건 수더랜드 단장의 무리수, 다카기는 고메즈의 재능은 높이 샀지만 아직 외야와 내야를 총괄하기엔 무리라고 봤다.

따악 ~ !

“느린 땅볼, 유격수가 잡았지만 송구하지 못합니다!! 다시 출루, 토론토가 1사 주자 1 - 2루 기회를 맞이합니다.”

“지금은 고메즈 선수의 대시가 늦었어요. 기록상 안타가 주어지긴 했는데 … 두고 봐도 아쉽네요.”

고메즈는 점차 수세에 몰렸다.

타구가 워낙 강한 메이저리그 타자들, 전진 수비를 하자니 그렇고 뒤로 물러서자니 그렇고, 내야 뜬공이 나와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유격수가 원래 이렇게 힘든 자리였나. 고교 시절엔 문제없이 해냈고, 스프링캠프에서도 이렇다 할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정규 시즌에 들어서자마자 신세계, 그것도 에이스의 경기를 망치고 있으니 가출 나간 정신은 돌아오질 않았다.

‘삼진으로 가야겠네.’

호프만 포수는 볼 배합을 갈아엎었다.

젖먹이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유격수를 믿고 투구를 할 때가 아니다.

바깥쪽 높은 빠른 볼로 카운트를 잡고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마무리 하는 삼진 공식, 하지만 빠른 볼이 배트에 걸리면서 진루타가 되고 말았다.

이제 2사에 주자는 2-3루, 안타 한 방이면 3대 0이라 배터리는 긴장감을 바짝 끌어올렸다.

“스윙!! 따라 나옵니다.”

“역시 다카기 선수의 정신력은 알아줘야겠네요. 석연치 않은 수비가 나왔지만 제구는 건재합니다.”

바깥쪽을 찌른 다카기는 다시 바깥쪽 빠른 볼을 택했다.

밀어치기와 당겨치기는 타자 입장에서 공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바깥쪽 공을 잡아당긴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타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타구를 필드 안으로 보내는 것, 그래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바깥쪽 공도 잡아당기려고 한다.

타구 속도도 살벌하지만 투구 속도도 그에 못지않은 무대, 밀어 치는 공략법으로 다카기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았다.

다카기도 그걸 알고 바깥쪽 승부를 하는 중, 패를 다 보여주고 하는 게임이지만 선수들 칼 위를 걷는 것만큼 투구 하나, 스윙 한 번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됐어!!”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잡아낸 삼진, 위기를 넘긴 다카기는 글러브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포효했다.

긴장감이 풀렸는지 풀려버린 어깨, 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철벽의 에이스는 더그아웃 뒤편에서 긴장감을 유지했다.

‘진짜 노력파였구나.’

아직 젖도 못 뗀 고메즈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은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니 뭐니 하는데, 실제 겪어보니 그게 아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저게 진짜 프로의 모습 아닐까.

뭣보다 2사 주자 2 - 3루에서 삼진을 잡아내는 장면은 압도적, 나도 고교 시절 99마일을 던지는 강견이었지만 저 상황에서 저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을까.

고메즈는 투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 이제 보스턴의 3회 말 공격으로 이어지겠습니다. 타석에는 주앙 고메즈, 올 시즌 타율 0.182, 홈런 1개, 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위 싱글 A에서 2할 9푼을 치던 선수인데 … 물론 이게 나쁜 수치는 아닙니다만 당장 콜 업 하기엔 무리죠. 쇼 케이스 차원에서 잠깐 올리는 건 이해하겠지만,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수비에서도 아쉬운 모습이 나왔고요.”

피트 오어의 독설이 끝나기 무섭게, 고메즈는 강한 타구를 날렸다.

파울은 됐지만 따라갈 만한 공, 뒷다리를 살짝 굽히며 몸 쪽 빠른 볼을 힘껏 잡아당겼다.

따악 ~ !!

“좋아!!”

“달려!! 달려!!”

선상을 타고 흐르는 타구, 운동 능력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고메즈는 순식간에 1루를 지나 2루까지 파고들었다.

우중간으로 가는 타구가 아니라 3루까지 노리는 건 무리, 무안했는지 피트 오어는 독설로 망가진 요리에 조미료를 쳐줬다.

“체격이 크진 않은데 배팅 파워는 괜찮은 편이네요. 지금은 무릎이 주저앉을 정도로 큰 스윙을 돌렸는데, 밸런스는 괜찮은 편입니다.”

“파워 툴에서 60점을 받은 선수죠.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 적응한다면 15 ~ 20홈런 정도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후속타자의 안타, 멈칫멈칫하던 고메즈는 타구가 떨어진 걸 확인하고 3루로 향했다.

내친김에 홈까지 파고들면서 스코어는 동점, 마음의 짐을 던 애송이는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정신 차리자. 내가 뭘 해야 할지 생각하는 거야.’

타석에서의 집중력은 수비로 이어졌다.

물론 집중만으로는 안 되는 게 유격수 수비, 이 상황에서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고 타자가 어떻게 대응을 할지 생각을 해야 미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게 하루아침에 될 일인가.

아직 미숙하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모습에 다카기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확실히 싹이 보이는 녀석, 조금 더 훈련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딱 ~ !

다시 정면으로 오는 타구, 고메즈는 이번엔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타구가 생각보다 많이 튀면서 몸을 맞고 진로에서 이탈, 그래도 끝까지 쫓아가 잡아내 송구를 했다.

‘어디 가냐?’

대포알 송구는 1루수 키를 넘어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보는 사람도 어이가 없는데 본인은 얼마나 무안할지, 다카기는 모른 체하고 돌아섰다.

“자, 다시 한 번 보시죠. 지금 상황에서 꼭 송구를 했어야 했을까요?”

“정확히만 갔다면 아웃이 됐겠죠. 고메스가 어깨 항목에서 80점 만점을 받은 선수입니다. 어깨는 의심할 게 없는데, 송구는 가다듬어야겠네요.”

오늘만 몇 개째 실수인지, 그래도 브라이스 감독은 참고 기다려줬다.

고메즈는 수비와 어깨에서 모두 80점 만점을 받은 대형 신인, 처음부터 잘 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배팅 파워도 괜찮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건 아니라 중심 타선에 배치하면 병살 머신이 될 뿐이다. 이 선수를 잘 활용하는 건 감독의 몫, 다카기처럼 데뷔하자마자 날아다니는 선수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다.

조금만 참고 지켜봐 주면 언젠가는 빛을 볼 선수, 다카기도 동의한 일이라 계속 주전으로 밀고 갔다.

‘나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고메즈는 쓴 입맛을 다시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그라운드를 누비는 장면을 상상하며 메이저리거 꿈을 키웠는데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래도 넌 유격수를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칭찬을 떠올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따악 ~ !!

“아 ~ ”

실책 다음에 이어지는 안타, 추가점을 내준 다카기는 포수가 던져준 공을 거칠게 낚아챘다.

수비 실수는 둘째 치고 이게 내가 평소에 던지던 공인가?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돌아봤다.

나머지 타자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닝을 마무리했지만 추가점을 내줬으니 의미 없는 뒷북일 뿐, 7회까지 경기를 끌고 갔지만 팀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7이닝 7피안타 2실점(1자책), 11탈삼진 경기, 오늘도 개막전에 이어 승리투수 요건 획득에 실패했다.

거기다 팀이 3대 2로 패배하며 패전의 멍에까지 적립, 씁쓸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카기 선수, 출장정지 이후 복귀전이었는데 투구에 만족하십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제 투구는 최악이었습니다.”

7이닝을 2실점으로 막고도 최악이라니, 하지만 다카기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기자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 초반에 실책이 쏟아지면서 어려운 경기가 됐는데요. 뭐가 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패배는 선수단 모두의 책임입니다. 특정 선수에게 돌을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잘 할 때는 가족이라고 웃고 못 할 때 서로 얼굴 붉히면 그게 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카기는 이제 팀 최고 연봉자이자 실질적인 리더,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짓은 그만뒀다.

[선배님, 저 서운 합니다]

“뭐가?”

그로부터 며칠 후, 다카기는 일본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고교 후배 타키야마 요이치의 전화, 고교시절 다카기에게 엄청 깨져가며 야구를 배운 타키야마는 왜 고메즈는 혼을 내지 않고 감싸는 거냐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야, 그 자식이 너하고 같냐?”

다카기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당시 타키야마는 유격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도 없었다. 하지만 고메즈는 스카우트 평가에서 수비, 어깨 모두 만점을 받은 초특급 유망주, 그 당시의 타키야마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경험 부족으로 실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기본기는 확실한 편, 기회를 부고 지켜보면 성장할 선수라 혼낼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럼 … 저는 필요 없는 건가요?]

“야, 도대체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건데?”

[저 내년에 메이저리그 진출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자식이 선배님한테 예쁨 받는 거 솔직히 질투 나요.]

타키야마는 보스턴의 유격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온 자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선배의 총애까지 받고 있으니 슬슬 약이 오르는 게 사실, 피식거리던 다카기는 대안을 제시했다.

“너 내년에 2루수로 와라.”

[유격수는 아닌가요?]

“넌 어깨가 약해서 여기서 유격수는 안 돼, 그래도 수비 범위는 쓸 만하니까 2루라면 어떻게든 될 거다.”

다카기도 내색은 안 했지만 타키야마의 실력은 인정했다.

다만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으로 만들어진 유격수, 애를 써도 고메즈의 잠재력을 따라올 순 없다.

하지만 NPB에서 쌓은 경험과 실력이라면 2루 정도는 커버할 수 있겠지, 너도 필요한 존재라며 립 서비스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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