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44화 (244/361)

244화. 불경기는 투잡으로 - (3)

[보스턴 브라민(Brahmin) 파크 오늘 개장]

3월 27일, 수더랜드 단장의 야심작이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라민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따온 용어, 법적으로 신분제가 없는 미국이지만 어디에나 상류층은 존재한다.

특히 보스턴이 있는 메사추세츠 주는 1860년대부터 미국의 상류층 백인들이 기반을 둔 지역으로 이 지역의 가문들은 오랫동안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지배해 왔다.

미국의 2대 대통령 좀 애덤스가 보스턴 브라민의 일원,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외가가 보스턴 브라민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하버드대에 동문이 있고, 이 특권층에서 계속해서 장관이 나오고 있으니 실존하는 미국의 지배계층이라고 봐도 좋겠지.

보스턴의 광팬으로 유명한 존 쿨먼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해 필리핀 대사를 거쳐 미국 내무부장관까지 오른 전형적인 보스턴 브라민, 민주주의 사회인 미국에서도 특권층은 엄연히 존재했다.

“그래, 너희들 잘났다.”

사실 처음부터 이들이 보스턴 브라민으로 불린 건 아니다.

똘똘 뭉쳐 특권을 유지하는 게 너무 꼴 보기 싫어서 일부 사람들이 카스트 제도의 브라민이라는 계급을 붙여준 게 출발점, 하지만 수더랜드 단장은 이 멸칭을 보란 듯이 새로 개장한 개장에 붙였다.

“그래, 우리는 잘났어.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해 먹을 거야. 불만 있어?”

수더랜드 단장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해 보스턴 단장으로 취임한 전형적인 보스턴 브라민이다.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5연패를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팬들도 있는 게 사실,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건가.

앞으로도 특권층을 유지할 뿐, 그 뜻을 확인한 팬들은 개막전 매진으로 답했다.

구장 이전에 반대했던 팬들도 수더랜드 단장의 정책에 동조하는 분위기, 이렇게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6연패 달성을 위한 출항을 시작했다.

“자, 2026시즌 개막 전!! 오늘은 존 쿨먼 씨가 시구를 하겠습니다.”

“장관이 된 것보다 보스턴 개막전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게 더 기쁘다는 말을 했죠. 아무튼 못 말리는 사람입니다.”

존 쿨먼은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입장했다.

출렁거리는 배에 비해 너무 부실한 하체, 저러다 넘어지는 거 아닐까.

몸을 풀고 파울 라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카기는 불안한 눈으로 초대 손님을 바라봤다.

시구를 하기 전 팔을 휘휘 돌리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단추, 경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다들 빵 터지고 말았다.

설상가상 하늘 위로 솟구친 시구, 개망신을 당했지만 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존 쿨먼은 렛츠 고 보스턴을 외치며 퇴장했다.

“가자!!”

드디어 시작된 경기, 주앙 고메즈는 파이팅을 외치며 그라운드에 섰다.

18살에 맞이하는 메이저리그 데뷔전, 솔직히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다.

전문가들도 너무 이른 승격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지만, 7년 전 다카기를 콜 업 했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수더랜드 단장은 보란 듯이 고메즈를 선발로 내보냈다.

겨우 15살 때 보스턴의 선택을 받은 유망주, 수더랜드 단장은 전문가들의 지적보다 자신의 눈을 믿었다.

딱 ~ !

마침 정면으로 오는 타구, 약간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고메즈는 차분하게 타구와의 거리를 좁혔다.

“유격수가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원 아웃!! 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이 선수도 브라민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죠. 아니, 왕이라고 해야 하나요?”

다카기의 열성 팬으로 유명한 피트 오어는 오늘도 무리수를 던졌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보스턴 왕조를 지탱해 주는 에이스, 브라민 가문도 가끔 대통령을 배출하지만, 이 선수는 무려 5년 연속 만테냐 어워드를 수상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한 기록, 이 정도면 종신 집권 아닌가. 브라민보다는 왕이라는 호칭이 어울린다며 칭찬을 시작했다.

“다시 빠른 볼, 돌아 나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작년 시즌 투수들의 빠른 볼 평균 헛스윙율은 14%였습니다. 그런데 다카기 선수는 22%를 기록했죠. 변화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치입니다.”

“351탈삼진이 그냥 나온 게 아니죠. 여기서 못 치면 삼진입니다.”

오클랜드의 2번 타자 피터 허스트는 2구도 헛스윙을 돌렸다.

보스턴의 러브 콜을 뿌리치고 오클랜드를 택한 선수, 극성으로 소문난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당연했다.

“평생 거지구단에서 썩어라 이 얼간이야!!”

“너 같은 건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어!!”

이에 응하듯 다카기는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시즌 첫 탈삼진을 잡아냈다. 특권층이 평민을 마구 짓밟는 현장, 다음 평민도 내야 뜬공으로 처리한 다카기는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품위가 너무 없군.’

다카기는 이런 분위기를 즐기진 않았다.

특권층이란 기품이 중요한 법, 사실 건방 떠는 귀족은 일본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무사라고 평민에게 마구 칼을 휘둘렀을까?

부레이우치라고 해서 자신에게 모욕을 준 평민을 벨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기가 없는 평민을 죽이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진짜 결투를 원한다면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던져주고 1대 1 승부를 했고, 만약 패배하면 무사의 치욕으로 여기고 자결해야 했다.

“멍청한 놈”

“싸울 상대가 없어서 평민하고 싸워?”

이긴다고 해도 다른 무사들에게 좋은 대접은 못 받았다. 얼마나 처신을 잘못했으면 농민에게 무례를 당했을까, 봉건시대에서 농민은 귀중한 노동력, 이걸 베어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나.

일이 커지면 막부에서 사람이 내려와 조사를 했고, 농민의 죽음이 부당한 것이었다고 밝혀지면 무사는 목을 내놔야 했다.

‘그냥 피하자.’

‘평민하고 부딪쳐 봤자 좋을 게 없지.’

이러다 보니 무사들이 농민을 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는데, 성을 중심으로 신분 별로 사는 구획이 철저하게 나눠진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특권층이라면 자신의 체면을 지켜야 할 줄 아는 법, 지금 보스턴 팬들의 행동은 특권층과 거리가 멀었다.

‘공 하나라도 품위 있게.’

다카기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투구에 임했다.

일본에서 제일가는 그룹의 일원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만, 체면 떨어지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체면이 모욕을 당했을 때는 예외, 고영길 회장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기자들은 왜 그 사실을 숨겼냐며 공격을 가했지만, 다카기는 당신들은 친구 사귈 때 가족 관계 다 밝히고 사귀냐며 역공을 가했다.

무례한 평민은 몽둥이가 약, 특권의식이 강한 만큼 꼿꼿한 태도를 유지했다.

“스윙!! 삼진입니다!!”

“지금은 뭔가 불만이 있는데요. 이런 건 의미 없습니다.”

3회 초 오클랜드의 공격, 헛스윙 삼진을 당한 피터 허스트는 주심과 언쟁을 벌였다.

1회 초 첫 타석 때도 그렇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판정, 당신은 잘못하고 있다며 쓸데없는 말싸움을 벌였다.

“그냥 들어가라고!!”

이때 다카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저 자식은 심판의 판정 때문에 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실력을 무시하는 행위, 삼진 당했으면 더그아웃으로 꺼지라고 독설을 날렸다.

“넌 뭔데?!! 네가 그렇게 대단해?!!”

지지않고 맞받아치는 허스트, 다카기는 글러브를 집어 던지고 덤빌 테면 덤비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걸 또 넙죽 받아먹는 허스트, 보스턴 내야진은 바로 마운드로 향했지만 승부는 한 방에 끝났다.

‘헉 … 사람도 하늘을 날 수 있구나.’

주앙 고메즈는 클로스라인을 맞고 나뒹구는 허스트를 보고 경악했다.

농담이 아니라 잠깐 공중에 뜬 허스트의 몸, 프로레슬링에서 선수들이 적극적인 연출을 위해 클로스라인을 맞으면서 몸을 뒤로 눕히긴 하지만 이건 실제 상황이다.

없는 살림에 1억 달러를 넘게 주고 잡은 선수가 일격필살을 맞고 다운 되다니, 오클랜드 선수단은 충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넌 뭔데? 너도 덤빌 거냐?”

“아니, 그냥 말리려고”

협박에 알아서 길을 여는 선수들, 다카기는 아직도 멍하니 있는 허스트를 한 번 흘겨보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3회도 못 채우고 퇴장 당했지만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박수갈채, 브라이스 감독이 엉덩이를 쳐줬지만 다카기는 외면하고 더그아웃 뒤편으로 사라졌다.

개막전 6연승을 달리고 있었는데, 그 기록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져버리다니, 해설위원들도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이날 경기는 5대 2, 보스턴의 승리로 종료, 인터뷰를 할 기분은 아니었지만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 섰다.

“음 …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허스트는 주심의 판정 때문에 삼진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실력을 모욕한 행위였죠. 과거 일본에는 부레이우치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실행한 것뿐입니다.”

일본의 역사를 모르는 기자들은 다들 어리둥절한 반응, 통역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욕을 당했다고 진짜 쳐버리다니, 그래도 조금 민감한 반응 아니었냐는 질문에 다카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가 조금 민감하긴 했죠.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다카기는 홈런을 때린 타자가 배트 플립을 하는 건 지금까지 뭐라고 한 적이 없다.

정당한 1대 1 승부였으니 패배했다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치욕, 하지만 오늘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저는 한때 허스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단장이 그 친구를 영입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좋아했던 게 저였으니까요. 저는 허스트의 실력을 인정했는데 그 녀석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모욕적인 대우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의를 지켜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냉정함,

이 소식을 접한 일본 여론은 진짜 무사라며 다카기를 치켜세웠다. 그동안 재일한국인이라며 별로 좋게 보지 않은 팬들도 있었는데 한층 더 두터워진 팬층, 보스턴 일대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Execute the roughie]

= 무례한 놈을 처형하라

왕에게 대든 평민은 죽음뿐, 보스턴 팬들은 왕이 일개 평민에게 1대 1 승부를 걸어준 것도 영광으로 여기라며 허스트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다카기는 침묵을 유지, 왕이 평민과 싸운 게 무슨 자랑인가.

예의를 지켜줄 필요가 없는 상대였지만, 직접 칼을 빼든 걸 자랑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5경기 출장정지를 마치고 4월 5일 토론토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 1회부터 98마일을 넘나드는 광속구를 뿌리며 타자들을 몰아세웠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초구를 지켜본 에릭 핸더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빠진 것 같은데 잡아주는 주심, 하지만 여기서 또 항의를 하면 저 자식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클로스라인을 맞고 나뒹구는 피터 허스트의 사진은 이제 미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프로레슬링 경기장과 합성한 사진이 돌 정도로 유행이 된 사건, 목소리를 높여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따아악 ~ !!

계속되는 타격, 3구를 잡아당긴 핸더슨은 자기도 모르게 배트 플립을 해버렸다.

순간 아차 했지만 다행히 별 반응이 없는 투수, 헬멧을 깊게 눌러쓰며 서둘러 1루로 향했다.

홈런을 치고도 타자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 하지만 이런 건 뭐라고 안 하는 다카기는 씁쓸한 얼굴로 포수가 던져 준 공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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