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15)
따악 ~ !
계속되는 보스턴의 공격, J.J. 핵먼은 2구를 밀어 쳤지만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갔다.
2루로 달리던 채근성은 조디 웨스트리지와 충돌, 이 상황에서도 웨스트리지는 1루로 송구를 했다.
악송구는 되지 않았지만 아웃 타이밍은 이미 지난 상황, 이때 2루심이 양팔을 높이 들어올리며 수비 방해를 선언했다.
채근성이 고의적으로 수비를 방해했다고 판단한 것, 이렇게 되면 타자와 주자는 모두 아웃된다.
주루 방해가 아니었다면 채근성은 2루수 송구 실책으로 2루, 타자주자도 1루에서 살 수 있었던 상황, 보스턴의 브라이스 감독은 바로 그라운드로 튀어나와 격한 항의를 퍼부었다. ‘다들 모여 봐’
주심도 보호 마스크를 벗으며 심판 진을 한자리에 모았다.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장면, 한참동안 의견을 나누던 주심은 채근성에게 수비 방해를 선언했다. 하지만 충돌에 고의는 없었다고 봤고 타자 주자 핵먼은 1루에 남게 됐다.
양 팀 모두에게 아쉬운 판정, 아웃 판정을 받은 채근성은 고개를 저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건 불공평해!! 저 녀석이 내 앞을 막았다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피하라는 거야?!!”
아쉬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온 괴성, 동료들은 넌 잘못 없다고 위로했지만 채근성은 인상을 구긴 채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자, 이제 데이브 셰퍼드 선수의 타석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5타수 무안타,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볼넷은 3개를 얻어내고 있죠. 경계는 할 겁니다.”
워싱턴은 높은 빠른 볼을 앞세웠다.
셰퍼드는 방망이 머리가 투수 쪽으로 향하는 전형적인 거포의 자세, 방망이를 세우는 교타자들과 달리 공을 들어올리기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이건 타격감이 좋을 때 가능한 일, 높은 공을 들어 올리는 건 쉽지 않다.
뭣보다 오늘 워싱턴의 선발 카일 존스는 4년 연속 180이닝, 170탈삼진을 달성한 투수, 최고 96마일 빠른 볼에 슬라이더, 체인지업, 싱커 등이 모두 플러스 피치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못 던지는 구종이 없다.
삼진도 잘 잡지만 간간이 던져주는 싱커로 땅볼을 유도하는 기술도 뛰어난 편, 초구 높은 볼을 놓친 셰퍼드는 낮게 떨어지는 싱커에 낚여 병살타를 때렸다.
달아오르는 관중석, 다카기는 적지 한 가운데를 가로 질러 마운드에 올랐다.
“자, 다카기 선수가 출장 정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포스트 시즌은 기록은 4경기 출장,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00, 27이닝 동안 볼넷 2개, 탈삼진은 38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워싱턴은 오늘 등판한 카일 존스를 포함해 선발진 5명이 모두 180이닝 이상을 소화했습니다. 그에 비해 보스턴은 다카기가 234이닝, 로버트 클레이튼이 192이닝을 소화했고 ··· 나머지는 눈에 띄는 선발이 없었거든요. 뭣보다 지난 1 ~ 2차전을 되돌아보면 보스턴이 워싱턴을 압도한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오늘 다카기 선수가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시리즈의 향방이 결정될 것 같네요.”
워싱턴 지역방송 해설위원 켄 자일스는 3차전이 분수라는 전망을 내놨다.
워싱턴에 비해 확실히 떨어지는 보스턴의 선발진, 그래도 특급 불펜의 활약과 타선의 지원으로 부족한 점을 채워갔다.
하지만 상대는 투타 밸런스가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는 워싱턴, 여기서 다카기가 미끄러지면 선수단에 미칠 충격파는 대단했다.
‘역시 바깥쪽이군.’
한편, 대기 타석에 선 조디 웨스트리지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다카기는 몸 쪽 승부를 즐기지만 역시 바깥쪽을 던지기 위한 사전 작업인 경우가 많다.
우중간으로 타구를 보내는 연습을 했는데 잘 될지는 미지수, 선두 타자 잭 마이어스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우와아아 ~ !!!!”
조 웨스트리지의 등장에 워싱턴 팬들은 열광했다.
8년 연속 20홈런을 넘긴 프랜차이즈 스타, 올 시즌도 타율 0.307, 홈런 28개, 96타점을 올리며 제 몫을 다했다.
NLCS에서는 살짝 부진했지만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결승타를 때리며 부활, 팬들의 기대가 큰 만큼 뭔가를 해야겠다는 각오는 남달랐다.
‘아차 ~ ’
초구는 예상대로 바깥쪽 빠른 볼, 역회전이 걸리며 휘어져 나가는 볼에 웨스트리지는 헛스윙을 돌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꺾이는 공, 차분하게 다음 공을 노렸다.
“다시 헛칩니다!! 지금은 슬라이더로 보이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커브를 개량한 슬라이더죠. 그립은 커브인데 손날을 타자 쪽으로 세워서 던집니다. 보기에도 낙차가 상당하죠.”
“웨스트리지 선수가 릴리스 포인트를 보고 구종을 파악할 만큼 눈썰미가 좋은 편인데도 대응이 안 되네요. 이 선수의 선구안은 누구나 알아주지 않습니까.”
웨스트리지는 데뷔 1년 차에 출루율 4할을 찍으며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던 천재 타자,
다카기가 만 15살에 유격수로 청소년 대회를 휩쓸 때 비교됐던 선수가 바로 웨스트리지, 그만큼 정교한 타격에 파워 선구안을 갖춘 선수다.
이런 선수에게도 공략하기 쉽지 않은 공, 그래도 바깥쪽으로 낮게 들어온 빠른 볼을 커트해 삼구 삼진은 면했다.
“몸 쪽!!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삼진!! 웨스트리지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지금은 대비가 안 됐네요. 보시면 웨스트리지가 홈 플레이트 쪽에 붙어있는데,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커브가 몸 쪽으로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웨스트리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스탠스를 넓게 쓰는 선수라 잘 맞으면 강한 타구가 나오지만, 다양한 구종 앞에선 의외로 힘을 못 쓴다.
그래도 자신만의 확고한 스트라이크 존으로 볼을 골라내고 유리한 카운트에서 빠른 볼을 밀어내는 타격으로 생산력을 내는 선수, 이런 접근 법 때문에 볼넷만큼 삼진도 많은 편이다.
그런데 설마 이 타이밍에 몸 쪽 커브가 들어올 줄이야. 빠른 볼만 노리고 있던 상황이라 완전히 타이밍을 뺏겼다.
‘나도 구종은 다양하다고’
다카기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섰다.
많은 팬들이 다카기를 빠른 볼, 체인지업, 슬라이더만 던지는 쓰리 피치 선수로 알고 있는데, 던질 수 있는 구종은 무궁무진 하다.
무수한 실험을 거쳐 살아남은 구종을 주력무기로 앞세웠을 뿐, 스탠스를 넓게 쓰는 웨스트리지에게 느린 커브가 먹힐 거라는 건 이미 계산에 넣었던 일이다.
‘넌 너무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 연기 공부 좀 해라.’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는 것도 너무 티가 났다.
8년차 베테랑이 이 정도 부담을 느끼는데 다른 선수들은 어떻겠는가. 웨스트리지도 못 치는 공을 우리가 칠 수 있을지, 이 삼진은 워싱턴 선수단 전체에 충격을 선사했다.
“됐어!!”
그에 비해 끓어오르는 보스턴 벤치 분위기,
웨스트리지의 수비에 아웃을 당한 채근성은 보호 펜스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왠지 내 억울함을 갚아준 것 같은 느낌, 한참 어린 동생이지만 압도적인 포스에 왠지 형이라고 불러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끝’
오늘도 삼자범퇴로 가볍게 시작하는 투구, 다카기는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이 녀석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지차이, 중계카메라에 잡힌 보스턴 벤치 분위기는 접전을 벌인 1 ~ 2차전과 분명 달랐다.
따아악 ~ !!
이어지는 보스턴의 2회 초 공격,
선두타자 울반스키는 바깥쪽 낮은 공을 싱커를 밀어 쳐 우측 담장을 넘겨버렸다. 제구가 된 공을 얻어맞았다는 게 뭣보다 충격적, 선취점을 내준 카일 존스는 글러브 속에 육두문자를 쏟아 부었다.
내 준 점수는 1점뿐인데 이 차이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걸까. 원인은 역시 마운드에 오른 그 녀석이었다.
“바깥쪽으로 떨어집니다!! 삼진!! 알고도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압. 도. 적, 이 한 마디로 모든 걸 정리할 수 있습니다. 카일 존스도 분명 뛰어난 선수인데 구위나 제구 구종 모두 다카기 선수가 명백히 한 수 위입니다.”
“괜히 연봉 4천만 달러를 받는 게 아니라는 거죠. 카일 존스 연봉의 정확히 3배입니다.”
다카기는 첫 9타자를 삼진 7개로 정리하는 괴력을 뿜어냈다.
1 - 2 차전에서 보스턴 투수진을 괴롭혔던 그 타자들이 맞는 건가. 말도 안 되는 투구에 홈팬들은 침묵, 3회 초 공격에선 더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따아악 ~ !!
“잡아당긴 타구가!! 낮고!! 빠르게!! 펜스 상단을 때리고 나옵니다!!!! 타자 주자는 1루에서 멈추는 군요.”
“작년 월드시리즈에서 멀티 홈런을 때렸던 선수죠. 그걸 잊고 있었던 거 아닌가요?”
잘못하면 넘어갈 뻔 했던 타구, 심장이 쫄깃해 지는 타구에 카일 존스는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렸다.
물론 다카기 입장에선 아쉬웠던 한 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1루에 발을 올렸다.
“What the hell are you(넌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워싱턴의 1루수 필립 크리스텐슨은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
투구는 그렇다 쳐도 타격도 미친 듯이 해내는 자식, 필립을 빤히 바라보던 다카기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타구 여기로 올 거니까 조심하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속타자 채근성은 몸 쪽 공을 잡아당겼다.
1루로 뻗어오는 강습 타구, 그 자리에서 폴짝 뛰어 오른 다카기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내달렸다.
우왕좌왕 하는 우익수, 선행 주자가 홈으로 내달리자 채근성도 기회를 엿보다 3루까지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2대 0, 미끄러지듯 홈을 쓸어내린 다카기는 3루를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내가 예상했던 그림을 그대로 그려낸 타격, 송구가 홈으로 간 사이 3루까지 진출한 주루 센스도 좋았다.
당하는 입장에선 그저 기가 막힐 뿐, 저 덩치에 이런 주루 플레이를 보여줘도 되는 건가. 여기에 후속 타자 핵먼의 희생타가 나오면서 관중석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았다.
다카기가 등판한 경기에서 3실점은 곧 패배를 의미, 하지만 우승에 목 마른 워싱턴은 어떻게든 경기를 뒤집어 보려 했다.
딱 ~
“타격!! 유격수 잡아서 1루에 송구합니다. 원 아웃, 17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또 투심이에요. 확실히 포스트 시즌 들어서 많은 구종을 던지고 있습니다.”
“좋은 시도죠. 정규시즌은 3경기 마다 상대하는 팀이 바뀌기 때문에 단순한 볼 배합으로도 어떻게든 되겠지만, 포스트시즌은 그게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이 선수가 볼을 다루는 능력은 다른 선수와의 비교를 거부하네요.”
“5년 동안 승리기여도 41.4를 기록한 선수입니다. 이제는 상 이름 바꿔야하는 거 아닙니까?”
보스턴 지역방송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만테냐 어워드를 다카기 어워드로 바꿔야 한다는 무리수를 뒀다.
이제는 명백한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선발,
프랜시스 만테냐가 27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세운 업적은 어마어마하지만 동시에 382패라는 역대 최다 패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카기는 100승을 넘게 거두는 동안 겨우 11패만 기록, 포스트 시즌에선 아예 패가 없다.
만테냐 어워드 이름을 고칠 수 없다면, 적어도 다카기 이름을 딴 상을 하나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캐스터는 그건 이 선수가 은퇴한 다음에 논의 할 일이라며 웃어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