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13)
[너희들 모두 조심해]
ALCS 4차전을 앞두고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시카고는 올 시즌 ALDS까지 진출했지만 인디애나에게 패하며 탈락, 집에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돈론은 3차전에서 패배한 친정팀에게 이런저런 충고를 줬다.
인디애나가 사인을 훔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인디애나는 부인했다.
각 팀이 챌린지 위해 비디오 분석실을 운영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사무국에서 파견한 보안 직원 6명이 코칭스태프의 비디오 분석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예전엔 비디오 분석실을 이용해 사인을 훔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시카고 선수들은 투구가 시작될 때 인디애나 벤치 쪽에서 누군가가 박수를 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코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관중석에 앉아있던 팬이 그런 행동을 반복했던 것, 하지만 팬은 조사 결과 인디애나 구단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게 밝혀졌다.
비디오 판독실도 철저히 통제되고 있고, 문제가 된 팬도 혐의 없음으로 밝혀졌는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뭔가.
다카기는 SNS에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넌 이제 시카고 선수야. 이쪽 동네일은 신경 끄라고]
남의 집 사정에 무슨 신경을 그렇게 쓰나, 정말 사인 훔치기가 알게 모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 다른 선수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진짜라면 헤드 샷을 날려주겠어.’
오랜만에 포수마스크를 쓴 울반스키는 미트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사인 훔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역 사인도 그중 하나, 바깥쪽이라는 신호를 잡아냈어도 그게 진짜 바깥쪽으로 들어와야 사인을 훔친 의미가 있는 거다.
실제로 역 사인에 속아 낭패를 당한 경우도 꽤 있는 편, 어떤 선수는 더그아웃에서 의미 없는 박수를 흘려 투수가 빠른 볼을 던지도록 유도하도록 한 적도 있다.
거기다 들켰을 때 헤드 샷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 사인 훔치기란 하는 쪽도 위험하다.
서로 머리 복잡해지는 일은 안 하는 게 정답, 그래도 울반스키는 확인 차 역 사인을 내보냈다.
‘이런 때는 몸 쪽이었지?’
보스턴의 선발로 나선 에릭 가이어는 바깥쪽으로 휘는 손가락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급한 판단은 무린가?’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브라이스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쪽 공을 타격할 땐 일반적인 스윙을 할 때보다 팔목의 회전이 뒤에서 시작된다. 히팅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뒤에 뒤기 위한 것, 타격하는 것만 봐도 그 선수가 어떤 공을 노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몸 쪽으로 공이 들어왔기 때문에 타이밍이 완전히 틀어졌다. 설마 역 사인에 걸린 건가. 하지만 성급한 판단은 금물, 울반스키는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갔다.
‘왜 다르지?’
헛스윙을 돌린 이반 나바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저리그 더그아웃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가? 거기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누구나 휴대전화와 TV를 볼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인디애나는 어제 경기에서 휴대폰 와이파이를 해독하는 방식으로 사인을 훔쳤다.
볼 배합은 코치도 관여하는 일, 하지만 코치가 직접 사인을 주면 상대 팀이 눈치 챌 거 아닌가.
그래서 경기 전, 보스턴 코치는 특정 선수를 지목하고 그 뒤에 숨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선수는 팔짱을 끼거나 오른 볼을 귀에 만지는 등 행동을 취했고, 조금 지나면 다른 선수가 코치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
인디애나 구단은 이 행동에 주목, 매수한 팬이 경기 장면을 사진에 담는 척 하면서 코치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선수를 촬영하게 했다.
박수를 친 팬은 관심을 끌기 위한 미끼였을 뿐, 실제로 사인을 훔치는 팬은 따로 있었다.
인디애나 구단은 와이파이를 해독해 정보를 입수, 와이파이 암호화 기술은 해독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심지어 여러 가지 문자, 숫자 조합을 입력해 비밀번호를 찾아주는 앱 까지 횡횡하는 상황, 미국 내에서 이 앱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1천만번이나 다운로드 됐다.
이젠 첨단 기술과 팬까지 동원해 사인을 훔치는 시대, 하지만 보스턴 구단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찾았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슬슬 움직여야겠군.”
수더랜드 단장은 팬으로 위장한 구단 직원을 통해 이 장면을 입수했다.
그리고 바로 비디오 분석 실에 있는 MLB 보안직원에게 신고, 현장으로 출동한 사무국 직원은 문제의 팬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망 쳐, 도망치라고]
“네?”
[뭔가 눈치 챈 것 같아]
이 장면을 보고 있던 인디애나 구단 관계자는 대피 명령을 내렸다.
문제의 팬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도주,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자 직원들은 문제의 팬을 쫓아 전력으로 내달렸다.
‘금방 들킬 짓을 왜 하냐?’
경기가 없어 코치의 아바타 노릇을 하던 다카기는 구단 직원의 보고를 받고 쓴 웃음을 지었다.
팬이라는 놈이 이런 일에 동조하다니, 사인 훔치기에 열을 올리는 구단이나 거기에 동조한 팬이나 다를 게 뭐가 있나.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졌으니 이 사건이 터지면 MLB도 직접적인 타격을 입겠지, 어쨌든 내가 사인을 보내고 있다는 게 들킨 건 확실하지 않은가.
다른 선수에게 아바타 노릇을 넘겼다.
“한방 꽂아 버릴까?”
4회 말,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울반스키는 격노했다.
역 사인부터 시작해 잡아낸 도둑질, 이 사건을 남의 손에 맡겨야 되나?
이게 터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사무국도 모르지 않다. 분명 사건을 어떻게든 축소하려 할 텐데, 그 전에 우리가 터뜨려버리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다카기는 전권을 울반스키에게 넘겼다.
지금 그라운드를 지휘하는 사령관은 울반스키, 나는 코치 사인이나 전달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전쟁이 터지면 앞으로 달려 나갈 뿐, 다만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는 말은 덧붙였다.
완전히 보내버리라는 뜻, 마음을 정한 보스턴 배터리는 머리를 노리는 위협구를 날렸다.
싸해진 분위기, 아직 사건의 진상을 모르는 인디애나 팬들은 보스턴을 향해 야유를 퍼부었지만 울반스키는 끝내 헤드 샷을 완수했다.
“아 ~ 이게 뭔가요? 양 선수들이 뒤엉킵니다.”
“이건 아니죠. 경기가 과열되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장면은 좋지 않습니다.”
다카기는 누구보다 먼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당장 체포해 경찰서로 보내버려야 하는 놈들, 지시는 구단에서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하는 선수들은 뭔가.
신성한 무대를 더럽힌 사기꾼들, 평소 투구 때문에 어지간하면 움켜쥘 일이 없는 주먹까지 휘둘렀다.
“You little freak!!”
겁도 없이 달려드는 돈 유델리 코치, 다카기는 달려오는 백발 노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광기에 휩싸였던 그라운드는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고, 깜짝 놀란 인디애나 선수단은 쓰러진 코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네가 그러고도 코치냐 인마?!! 당장 여기서 꺼져 이 사기꾼아!!”
다카기는 마지막까지 폭언을 퍼부었다.
코치라는 놈이 이 사기극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을까, 그런데도 욕을 하며 달려온 뻔뻔한 인간, 이 자리에서 때려죽이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하라며 펄펄 뛰었다.
“충분히 했어. 그만하게”
브라이스 감독과 코치 두 명이 미쳐 날 뛰는 에이스를 붙들었다.
이러다 정말 살인이라도 일어날 분위기, 인디애나 여론은 노인을 내팽개친 다카기를 비난했지만 그 목소리도 이내 잦아들었다.
경기가 끝난 후 사무국에서 사인 훔치기 논란에 대해 입을 연 것, 구단이 팬과 짜고 조직적으로 사인을 훔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인디애나 팬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인디애나는 당장 해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연루된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도 영원히 메이저리그에서 퇴출 시켜야 합니다. 이건 약물복용보다 더 악질적인 범죄이며, 팬들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명분을 얻은 다카기는 사무국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내가 이런 쓰레기들과 뒤엉키겠다고 먼 바다를 건너 미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나. 이 자리에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피가 어린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그 노력을 배신하는 행위, 수더랜드 단장도 몰수 패를 요구했다.
5차전 자체를 폐기해 달라는 것, 하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고 사무국은 징계는 시리즈가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게 너희들이 저지른 죄의 결과다.’
다음 날, 시리즈 5차전은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실망한 팬들이 티켓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한 것, 우리는 그동안 이런 구단을 응원해 왔단 말인가. 그동안 인디애나 주의 일원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지만 이젠 그것도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결국 5차전은 인디애나의 패배로 끝나면서 보스턴은 5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 폭력 사건에 휘말려 출장정지를 당한 다카기는 보스턴에서 이 장면을 지켜봤다.
이겼지만 뒷맛이 찝찝한 결과, 며칠 전만 해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디애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배신감은 더 컸다.
시리즈가 끝나자 사무국은 본격적으로 착수, 해킹까지 낀 일이라 FBI까지 사건에 개입되면서 사건은 큰 불길로 번져갔다.
인디애나의 에드먼스 사장은 사퇴, 말이 사퇴지 단장에게 잘린 거나 다름없었다.
인디애나의 구단주 짐 에릭슨은 야구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사업가, 모든 일은 에드먼슨에게 맡겼는데 뒤에서 그런 수작을 벌이고 있었다니, 3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뻐했건만, 구단 이름에 먹칠이 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
“다시 구단을 재정비해서 팬 여러분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릭슨은 직접 사죄 인터뷰까지 했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미국 전역이 인디애나는 해산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에릭슨 구단주에게 지분 일부를 사무국에 넘기라고 권했다.
사실상 좀비 상태가 된 구단, 메이저리그 일정을 고려하면 30구단 체제는 반드시 유지 돼야 한다.
인디애나에서 야구 열기를 회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진 일, 최악의 상황엔 연고지 이전까지 검토해야 한다.
그걸 구단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건 어려운 일,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한 에릭슨은 나머지 주주들과 회의를 거쳐 구단 지분 일부를 사무국에 위탁했다.
“커미셔너로서 이번 사건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검토하겠습니다.”
오브라이언 커미셔너는 강력한 대안을 예고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전자기기도 모두 반입 금지, 최악의 경우 팬들의 휴대폰 반입도 금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휴대폰 반입이 안 된다면 어느 팬이 야구장으로 오겠나. 다른 스포츠와 달리 사인에서 시작하고 사인으로 끝나는 스포츠, 인디애나가 쏘아올린 불신의 고리는 메이저리그에 흥행 부진이라는 재앙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