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36화 (236/361)

236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12)

뉴욕을 완파한 보스턴은 인디애나 램페이저스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1차전은 다카기를 앞세운 보스턴의 4대 0 완승, 2차전 선발 로버트 클레이튼도 7이닝 3실점 투구를 펼치며 팀의 6대 4승리를 이끌었다.

이제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2승 뿐, 보스턴 선수단은 남은 2경기를 잡아내기 위해 적지로 침투했다.

[Show some backbone(근성을 보여라)]

인디애나 홈 팬들은 선수단에게 근성을 강조하는 팻말을 흔들었다.

상대가 아무리 최강이라도 마지막까지 최선은 다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렇잖아도 인디애나 주는 미국에서 후저(Hoosier)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시골뜨기라는 뜻, 인디애나 사람들은 이 별명을 친근한 뜻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걸 멸칭으로 여기며 놀려대는 보스턴 팬들, 인디애나 팬들은 너희들이 자존심이 있으면 뭣 좀 해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좀 팽팽하게 가네.’

벤치에 앉은 다카기는 표정 없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언제나 쉽게 가면 그게 인생인가, 멋있게 폼을 잡고 걸어도 5cm도 안 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게 인생이다.

더군다나 이건 수백억 대가 걸린 거대한 무대, 사소한 실책도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2승을 거뒀다고 방심하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 박수를 치고 목소리를 높이며 동료들을 독려했다.

따악 ~ !!

“아 ··· 이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군요.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인디애나가 선취점을 올립니다.”

“보스턴이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선취점을 내 준 건 처음이네요. 그래도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잘 이겨 낼 겁니다.”

하지만 후속타자의 볼넷과 안타가 이어지며 추가 실점, 보스턴은 4회까지 2대 0으로 끌려가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한 경기도 그냥 내줘선 안 되는 포스트 시즌, 타선이 막히자 브라이스 감독은 평소 하지 않는 번트와 희생타까지 동원해 쥐어짜내기에 나섰다.

따악 ~ !!

그 방점을 찍은 선수가 알 디즌, 7회 초 2사 주자 1, 2루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3구를 받아쳐 우중간을 가르는 시원한 장타를 날렸다.

2사라 가릴 것이 없던 상황, 주자들이 모두 홈을 밟으면서 보스턴은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수비와 타격, 클러치 능력까지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선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알 디즌은 더그아웃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따악 ~ !!

“됐어!!”

이어지는 8번 타자 호프만의 추가 적시타, 2루 주자 알 디즌이 홈을 밟자 브라이스 감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펜 3인방을 동원해 걸어 잠그면 끝나는 경기, 브라이스 감독의 통산 8번째 우승을 향한 도전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자, 이제 7회 말 인디애나의 공격으로 이어지겠습니다. 마운드에는 하버스태드 선수가 올라왔군요. 올 시즌 67경기 출장, 5승 2패 평균자책점 2.83, 73이닝 동안 볼넷 25개, 탈삼진은 92개를 잡아냈습니다.”

“트레이드 소문도 있었지만 결국 보스턴의 일원으로 남게 됐죠. 앞으로 3번 더 우승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지금 그 기회가 본인의 손에 걸려 있습니다.”

하버스태드는 98마일 빠른 볼을 스트라이크 존에 집어넣었다.

불안한 제구가 문제점으로 지목됐지만 작년부터 대거 개선된 불안요소, 호프만이 주전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슬라이더 구사율도 높아졌다.

덕분에 탈삼진율도 급격히 증가, 자신 있는 투구는 계속 됐다.

“젠장!!”

하지만 그 기세는 2구만에 깨졌다.

바깥쪽 높게 들어간 공이 배트에 걸리면서 우측 담장을 넘어가버린 것, 어떻게 뒤집은 경기인데 2구만에 동점을 내줄 줄이야. 핵심 불펜 중 1인으로서 고개를 들 면목이 없었다.

‘나는 안 괜찮아.’

동료들은 괜찮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다카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차가 쌓이다보니 이제 경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대략 감히 잡힌다. 1, 2차전은 보스턴의 흐름이었지만 3차전부터 뭔가 달라진 흐름, 이쪽도 승리를 원하는 열망은 대단하지만 인디애나의 집념도 만만치 않다는 걸 확인했다.

9회까지 3대 3,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승부를 연장전으로 넘겼고, 브라이스 감독은 아껴뒀던 스캇 포데스와 카드를 꺼내들었다.

앞으로 4년 동안 보스턴의 뒷문을 책임질 선수, 단장이 거액을 안겨 준만큼 선수단의 믿음도 절대적이었다.

따악 ~ !!

“아 ··· 이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군요. 선두 타자가 출루합니다.”

“포데스와 선수의 구위가 워낙 좋기 때문에 여기서는 번트를 댈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정상대로 수비하면 됩니다.”

해설위원 피트 오어의 예상대로 인디애나는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호프만이 포수가 되면서 슬라이더 구사율이 높아진 포데스와,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주전으로 나설 기회가 거의 없던 호프만은 조금씩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풀타임 시즌이 이렇게 힘든 거였다니, 2볼 2스트라이크에서 날아온 슬라이더에 몸을 날렸지만 공이 뒤로 빠지면서 낫아웃이 되고 말았다.

그 사이 1루 주자와 타자 주자는 모두 진루(무사 주자 1-2루), 최악의 상황과 직면한 보스턴 선수단은 오히려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월드시리즈 4연패를 거두면서 이런 위기가 없었겠나,

호프만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도 이해되는 일, 이번 위기만 잘 넘어가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번엔 안 놓친다.’

카운트가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자 호프만은 다시 한 번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3루수는 2루 주자의 대시를 막기 위해 베이스에 달라붙었고 마음을 정한 포데스와는 결정구를 던졌다.

“스윙!! 삼진입니다!! 주자들은 움직이지 못하는 군요!!”

“슬라이더를 놓쳤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보스턴 선수들도 대단하네요.”

적이지만 인디애나 지역 방송도 보스턴 선수단의 열정을 인정했다.

이런 팀을 상대로 진다면 분하진 않겠지만 이긴다면 더 짜릿하겠지, 후속 타자 팀 호지스에게 기대를 걸었다.

홈 플레이트에 바짝 붙는 타자, 못 치면 맞고라도 나가겠다는 건가, 위협구를 던져볼 수도 있지만 1 - 2루에 들어찬 주자들, 보스턴 배터리에게 몸 쪽 승부를 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가자.’

호프만은 몸 쪽 승부를 요구했다.

지금 타자는 분명 시야를 바깥쪽에 두고 있다. 물고기가 아무리 힘이 좋아도 그물망을 뚫고 나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몸 쪽도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바깥쪽 승부가 되는 법, 포데스와도 동의했다.

“스트라이크!!”

“좋아!! 좋아!!”

과감한 볼 배합에 다카기는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타자는 바깥쪽만 볼 수 없는 상황, 아니나 다를까 호지스는 바깥쪽 꽉 차는 빠른 볼에 멈칫 하다 타이밍을 놓쳤다.

포데스와의 빠른 볼 평균 구속은 101.2마일,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기회가 없다. 물론 그만큼 커지는 포수의 부담, 연장전까지 가는 승부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호프만은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이게 안 나오네.’

3구는 바깥쪽으로 조금 더 빼봤지만 참아내는 호지스, 또 슬라이더를 던져야 하나.

하지만 구위로 잡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포데스와는 빠른 볼 사인을 냈다.

“다시 골라냅니다.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이제는 결정구가 나와야 됩니다. 또 볼이 되면 빠른 볼을 던질 수밖에 없거든요.”

호지스가 외야 먼 곳을 바라보자 포데스와는 발을 풀었다.

그렇잖아도 적지라 신경 쓰이는 사인 교환, 사인 훔치기는 MLB 사무국에서 엄격히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리야 없겠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따악 ~ !

투수 옆을 빠져 나가는 타구, 2루수 J. J. 핵먼이 몸을 날려 타구를 막아냈다.

글러브를 막고 튀었지만 다행히 멀리 가지 않고 멈춰선 타구, 2루 주자가 3루에 멈춰서면서 홈팬들은 아쉬운 탄식을 쏟아냈다.

‘어떻게 이걸 받아놓고 치지?’

포데스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시즌 포데스와의 WHIP은 0.81, 한 이닝에 주자를 두 명 이상 내보낸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거기다 100마일이 넘는 빠른 볼과 하드 슬라이더, 가끔 89마일짜리 커브도 던진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배트를 내는 인디애나 타자들, 뭔가 꺼림칙했다. 어쨌든 이렇게 1사 주자 만루, 보스턴 배터리는 역시 빠른 볼을 택했다.

따악 ~ !!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 인디애나 팬들은 다들 승리의 함성을 부르짖었지만 우익수 채근성은 공을 잡자마자 홈으로 송구했다.

끝내기에 열광하며 더그아웃에서 튀어나온 인디애나 선수단의 발목을 잡은 송구, 하지만 이걸 받아줄 선수가 없었다.

‘아차!!’

호프만 포수는 뒤늦게 홈으로 돌아왔다.

3루에 있는 주자, 안타가 나왔을 때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신속했던 우익수의 송구, 급히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허무하게 끝난 3차전, 포데스와는 홈에서 한덩이로 뒤엉킨 인디애나 선수들을 노려보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보란 듯이 받아친 타자, 뭔가 수상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이건 다 나 때문이야.’

반면 호프만은 머리를 움켜쥐고 절망했다.

우익수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송구를 했는데, 포수라는 놈이 홈을 비우는 게 말이 되나. 그 짧은 순간에 승리를 포기해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은 많지만 할 수가 없네.’

다카기는 그 모습을 보며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사람이 기계도 아니고 언제나 집중할 순 없다. 거기다 시즌 첫 풀타임을 치르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던 호프만, 다만 그 방심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왔다는 게 아쉬웠다.

훌훌 털고 내일을 준비할 뿐, 보스턴 선수단은 클럽하우스에서 역전패를 되돌아봤다.

“신경 쓸 것 없어. 자네는 ··· 휴식이 좀 필요한 것 같네”

브라이스 감독은 호프만에게 책임을 묻진 않았다.

풀타임이 처음이라 체력 안배를 해줬어야 했는데, 다음 경기는 울반스키에게 포수 자리를 맡기기로 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때 조용히 있던 데이브 셰퍼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인디애나의 공격은 조금 수상했다. 패전을 당한 입장이라 포데스와는 직접 입을 열지 않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선수들은 뭔가 구린 게 있는 것 같다며 입을 모았다.

“뭔가 증거라도 있는 거야?”

이때 다카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심증 뿐 아닌가. 이렇게 많은 눈에 듣는 귀가 있는데, 찾아낸 게 심증뿐이라면 굳이 논할 가치가 없었다.

“호지스 그 자식이 잠깐 외야를 쳐다보긴 했어.”

이때 가려운 곳을 긁힌 포데스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타자가 수비 시프트를 확인하는 건 늘 있는 일, 그것도 증거가 될 순 없었다.

“그런 사소한 거 신경 쓰지 마. 우리 그동안 너무 많이 이겼잖아, 가끔 졌다고 그 원인을 죽기 살기로 잡아낼 이유는 없어. 다들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그래, 알았어.”

다카기의 조언대로 보스턴 선수단은 4차전에서 경기에만 집중했다.

상대가 어떤 더러운 수를 쓰든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자질구레한 건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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