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34화 (234/361)

234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10)

[보스턴에 돌아와서 행복하다]

10월 6일, 필리핀 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한 존 쿨먼은 SNS에 귀국 소감을 남겼다.

존 쿨먼은 미국에서도 유명한 보스턴 광팬, 다카기가 보스턴의 우승에 큰 일조를 하자 이 선수를 미국에 보내준 일본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보스턴이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럼 가장 슬펐을 때는 언제입니까?”

“보스턴의 우승을 일본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인데 무슨 말을 더 하겠나.

어쨌든 이제 해외생활도 청산했겠다, 존 쿨먼은 4년 6개월 만에 백 베이 파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역만리에서도 보스턴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한 광팬, 마침 중계카메라가 그 모습을 잡았고 쿨먼은 ‘렛츠 고 보스턴’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자, ALDS 1차전!! 다카기 하루요시가 선발로 나섭니다. 올 시즌 31경기 등판 21승 1패 평균자책점 1.48, 234이닝 동안 탈삼진 351개를 기록했습니다.”

“평소에도 잘해줬지만 오늘은 쿨먼 대사가 돌아온 날 아닙니까. 그 열정을 생각해서라도 더 좋은 투구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보스턴의 ALDS 상대는 뉴욕,

뉴욕은 올해도 보스턴에 밀려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2위에 그쳤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거쳐 올라온 만큼 피로도는 높은 편, 거기다 철천지원수의 홈에서 벌어지는 경기라 선수단의 부담은 컸다.

‘올해만큼은 기필코’

선두타자는 모리슨, 모리슨은 올 시즌 타율 0.327, 홈런 31개를 기록하며 4년 연속 3할, 200안타, 20홈런을 달성했다.

특히 31홈런은 커리어 하이 기록, 아메리칸 리그 MVP 수상도 노려볼 수 있는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 기록보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우선, 다카기가 이끄는 보스턴에 막혀 한 번도 그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만큼 피할 수 없는 승부, 초구부터 힘찬 스윙을 돌렸다.

딱 ~ !

“타격!! 파울입니다.”

“모리슨이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컨택 능력을 가지고도 다카기를 공략하지 못하는 이유가 지금 나왔네요.”

보스턴 지역 방송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모리슨의 약점을 분석했다.

현재 메이저리그는 당겨 치는 타격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모리슨은 그 유행을 역행하는 선수, 철저하게 밀어치는 타구로 성적을 낸다.

문제는 몸 쪽 공 대응 능력, 모리슨은 타격 할 때 허리를 많이 굽히는 편이다. 바깥쪽 공을 밀어치는 타격에 최적화 된 폼, 그러나 허리를 굽힌 탓에 몸 쪽 공은 스윙거리를 낼 수가 없다.

몸 쪽 공 타율은 0.311로 나쁘지 않지만, 95마일이 넘는 빠른 볼에 장타율이 0.314로 급감, 몸 쪽 승부를 즐기는데다 평균 구속이 97마일이 넘는 다카기를 상대로 고전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통산 다카기를 상대로 홈런 2개를 때려냈지만, 이건 공이 몰렸을 때 일어난 일, 상대 타율은 0.214에 불과하고 삼진도 17개를 당했다.

거기다 쉽게 흥분하는 성격도 문제, 몸 쪽에 약점이 있다는 게 간파됐으니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거는 횟수가 늘어난 건 당연하다.

올해도 21개나 맞은 사구, 한 번 흥분하면 자제를 못하는 선수라 보스턴 배터리는 그 점도 적극 파고들었다.

딱 ~ !!

“으악!!”

이번에도 몸 쪽 공, 빗맞은 타구가 발등을 때리자 모리슨은 펄쩍 뛰며 고통을 호소했다. 보는 사람만 없었어도 발을 부여잡고 낑낑 거렸을 텐데, 배트 박스를 어슬렁거리며 겨우 고통을 가라앉혔다.

“다음도 몸 쪽이야. 조심하라고”

호프만 포수는 바로 심리전을 걸었다.

저렇게 아파하는데 또 몸 쪽이 들어온다면 몸이 움츠러들겠지, 예고와 달리 결정구는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슬라이더, 완전히 낚인 모리슨은 헛스윙을 돌렸다.

“맙소사!! 내가 이 장면을 직접 보다니!!”

존 쿨먼 전(前) 대사는 다카기의 삼진에 누구보다 흥분했다.

TV에서 볼 수밖에 없었던 투구를 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런 장면에 익숙한 주변의 팬들은 쿨먼을 다독였다.

“뭘 놀라요? 이제 시작인데”

“이제 시작이라고요?”

“올 시즌 삼진을 351개나 잡은 선수라고요. 당신, 벌써부터 그렇게 환호하면 나중엔 기절해 쓰러질 지도 몰라요.”

아니나 다를까 다카기는 후속타자 조 프리츠까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뉴욕은 올 시즌 221홈런을 기록한 장타군단, 그만큼 잡아당기는 선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모리슨을 제외하면 잡아내는 패턴은 거의 비슷, 바깥쪽을 찌르는 날카로운 구위와 좌타자 발등으로 떨어지는 느린 슬라이더로 강타선을 봉쇄했다.

따악 ~ !!

이어지는 보스턴의 1회 말 공격, 선두타자 몬테로는 초구를 받아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날렸다.

리드오프 치고 타율(0.268)과 출루율(0.338)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지만, 넓은 컨택 범위와 적극적인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 내는 선수, 여기에 주루 능력도 수준급(올 시즌 도루 36개)이라 일단 루상에 나가면 골치 아팠다.

“자!! 채근성 선수가 통산 첫 포스트 시즌 타석을 맞이합니다!! 올 시즌 타율 0.279, 홈런 17개, 65타점, 한국 선수 중 야수로는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게 됐습니다.”

“한국 야구 역사에도 의미가 있는 장면이네요. 경기 전에 지금이 아니면 우승할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면서, 한 타석 한 타석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했거든요. 그 각오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초구는 바깥쪽을 찌르는 빠른 볼,

스트라이크 콜에 채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가 1루에 있기 때문에 성급한 타격은 금물, 뭣보다 지금 공은 내 입맛이 아니라 무리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컨택률이 떨어져도 선구안으로 어느 정도 커버하는 유형, 장타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 뉴욕 배터리는 승부에 신중을 기했다.

“좋아!! 잘 보고 있어!!”

2구도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 보스턴 선수단은 박수를 치며 활약을 독려했다.

채근성은 올 시즌 타석 당 투구가 4.13개를 기록할 정도로 공을 많이 보는 편, 볼을 많이 볼수록 결과가 좋은 선수라 기대감은 높아졌다.

따악 ~ !!

“우와아 ~ !!”

조 프리츠가 몸을 날려봤지만 1루수 옆을 빠져 나가는 강습 타구, 스타트를 끊은 몬테로는 2루를 지나 3루, 내친 김에 홈까지 파고드는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다.

채근성은 여유 있게 2루까지 진루, 흥분한 팬들은 렛츠 고 보스턴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석에는 데이브 셰퍼드, 올 시즌 타율 0.314, 홈런 42개, 12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울반스키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거르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잘 하면 초반에 승패가 갈리겠네요.”

뉴욕의 선발 리처드 그라함(좌완)은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지 못했다.

그라함은 신장이 183cm에 불과하지만 유독 긴 팔로 그 약점을 대체하는 투수, 팔각도는 사이드암보다 약간 높은 편이지만 몸의 중심을 최대한 왼쪽으로 밀면서 투구를 하기 때문에 공이 1루에서 날아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특이한 투구 메커니즘과 몸이 왼쪽으로 쏠리는 현상 때문에 제구는 약간 기복이 있는 편, 당연히 좌타자를 상대할 때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좌타자인 채근성에게 몸 쪽 승부를 하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 하지만 지금부터 상대하는 타자들은 다 우타자다.

그럼 좀 더 적극적인 승부를 해도 될 텐데, 상대가 데이브 셰퍼드라는 게 문제, 후속타자 울반스키도 만만한 타자가 아니다.

거기다 다카기와의 선발 맞대결에서 선취점을 내줬으니 심리적으로 더 큰 압박을 받는 상황,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다.

‘여기서 끝낸다.’

후속타자 울반스키는 투수를 향해 방망이를 뻗는 특유의 자세를 취했다.

올 시즌 좌투 상대로 타율 0.347, 장타율 0.679를 기록한 좌투 킬러, 그라함은 자신의 장점을 살려 바깥쪽을 찌르는 투구를 했지만 울반스키의 히팅 범위를 지나치고 말았다.

따악 ~ !!

“밀어 친 타구가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들어옵니다!! 연속 적시타!! 보스턴이 2대 0으로 리드를 벌립니다!!”

“울반스키가 피츠버그 시절과 달라진 점이 바로 이거죠. 예전에는 이런 공도 잡아당기려고 했는데, 지금은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할 줄 알게 됐습니다.”

“원래 능력이 있던 선수였어요. 본인이 뒤늦게 깨달은 것뿐이죠.”

1루를 밟은 울반스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겼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만 나오는 포즈, 기세를 잡은 보스턴은 2회에 1점, 3회에도 2점을 추가하며 스코어를 5대 0으로 벌렸다.

‘지원은 정도면 충분하지’

타자들이 점수를 벌어주자 다카기는 스트라이크 존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4점 이상을 지원해 준 경기에서 패배를 당한 적이 없는 에이스, 49년 을 보스턴 팬으로 살아오면서 포스트 시즌 경기를 이렇게 마음 편하게 본 적이 있었던가.

맥주잔을 부딪치며 승리의 함성을 부르짖는 팬들, 존 쿨먼도 그 흐름에 몸을 던졌다.

“다시 따라 나옵니다!! 슬라이더!!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입니다.”

“지금도 보세요. 그라함도 팔각도가 낮은 편이지만, 몸을 1루로 밀면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중심이 많이 흔들리거든요. 하지만 다카기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다카기가 낮은 팔각도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제패하면서 많은 투수들이 그 폼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끔은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필요한 법, 선천적으로 체구가 작은 그라함은 다카기와 비슷한 구위를 만들어 내질 못했다.

이래저래 비교가 되는 투구 내용, 보스턴 팬들도 다카기를 흉내 내려는 일부 선수들을 자극하는 팻말을 흔들었다.

[He is the one and only Takagi]

= 그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이런 선수는 절대 없을 거라는 절대적인 신뢰, 다카기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11번째 탈삼진으로 6회를 마쳤다.

이쯤 되면 거의 포기 단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뉴욕 선수들은 2차전은 반드시 잡자는 눈빛을 나눴다.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단 한 명, 모리슨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늘 졌는데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무리하게 분위기를 끄어봤자 따라오지 않는 동료들, 타석에서 결과를 내야 했다.

‘몇 번이고 덤벼 봐라. 넌 나한테 안 돼’

다카기는 철저한 몸 쪽 승부로 모리슨을 몰아세웠다.

이쯤 되면 본인도 문제를 뭔지 알았을 텐데 오기만 부리는 녀석, 호프만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요구했지만 다카기는 고개를 저었다.

몸 쪽만 던져도 못 치는데 뭐 하러 볼 배합을 비트나, 4구도 빠른 볼을 집어넣었다.

“헛스윙!! 삼진입니다!! 모리슨은 오늘 세 타석 모두 삼진!! 완벽한 패배입니다!!”

“또 저러고 있네요. 그래봤자 본인만 손해죠.”

모리슨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배트 격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배트, 몇 번이나 같은 짓을 시도하다 배트를 집어던졌다. 그것도 한 번에 못 부수냐는 보스턴 팬들의 야유, 이래저래 망신을 당한 모리슨은 애꿎은 보호펜스에 발길질을 퍼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