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232화 (232/361)

232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8)

“아가, 이거 먹어야지?”

“우웅 ~ ”

이곳은 다카기의 가족이 머물고 있는 보스턴 시외의 저택, 키리코는 편식이 있는 장남과 기싸움을 벌였다.

채소는 잘 먹는데 고기를 못 먹는 아들, 그동안 이거 안 먹으면 키 안 큰다는 협박으로 어떻게든 먹였지만 그것도 약발이 다 됐다.

“정말 안 먹을 거야? 그럼 엄마 다 치운다?”

“네에 ~ ”

뒤도 안 돌아보고 휙 가버리는 녀석, 그렇게 이 날의 기싸움은 아들의 승리로 종료됐다.

채소도 부드러운 것만 골라 먹고 딱딱한 건 입도 안 대는 아들, 그래서 다져서 스튜에 넣거나 다른 방법도 써봤지만 이제 머리가 컸다고 귀신 같이 눈치 챈다.

충분히 부드럽게 해줬는데 한 번 맛 본 편견이 거부감으로 작용하는 거 아닐까. 키리코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놨다.

“오늘은 졌어?”

“응. 앞으로 어떻게 하지?”

“날 닮아서 그래, 조금만 지켜 봐.”

가장은 별일 아니라며 웃어 넘겼다.

다카기도 어린 시절 편식으로 엄마 속을 썩인 적이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기를 먹이겠다며 별의 별 방법을 동원했던 엄마, 어쩜 이런 것까지 빼닮았을까.

어쨌든 다음날 아침, 키리코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2차전 설욕에 나섰다.

“와 ~ 계란이다 계란 ~ ”

일단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경계를 푸는 노련함, 분위기를 살피던 키리코는 잘 구운 고기를 남편 앞에 내밀었다.

태연하게 고기를 먹는 아빠,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타다요시는 약간 관심을 보였다.

“아빠, 그거 맛있어요?”

“응.”

한마디 툭 던지고 다시 식사를 이어가는 아빠, 엄마 눈치를 살피던 타다요시는 고자질을 시작했다.

“아빠, 아빠는 그거 먹고 키 컸어요?”

“왜?”

“엄마가 그거 안 먹으면 키 안 큰다고 그랬어요.”

키 안 큰다는 말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던 모양, 다카기는 아내의 뜻은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협박까진 하지 않았다.

“고기만 먹을 필요는 없어, 다 잘 먹으면 돼.”

“으음 ··· 그럼 쪼끔만 주세요.”

키리코는 서운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엄마가 그렇게 애를 써도 안 먹겠다며 훌쩍 가버린 녀석이 아빠 앞에선 이렇게 변하다니, 그래도 눈을 찡긋거리며 어떻게든 먹어보려는 행동은 귀여웠다.

“이건 맛있다!!”

“정말? 그런데 어젠 왜 안 먹었어.”

“어제는 맛없었어요. 분명 엄마가 아빠한테만 맛있는 거 준 거예요.”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황한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놀란 둘째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이중고를 겪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가정, 다카기는 끅끅 거리는 둘째를 품에 안은 채 장남과 눈을 마주했다.

“엄마가 너 편식한다고 얼마나 속상해했는데”

“으음 그래요?”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은 다 널 위한 거야. 그런데 그런 말 하면 엄마가 섭섭하지.”

아빠 눈치를 살피던 타다요시는 엄마 옆에 앉아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이미 토라진 엄마,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럼 엄마가 해주는 거 앞으로 잘 먹을 거야?”

“으음 ··· 맛있으면 먹을게요.”

부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결국 내 입맛대로 해달라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강렬한 입맞춤으로 애정을 표했다.

소소한 전쟁을 치른 다카기는 진짜 전쟁이 벌어지는 그라운드로 출근, 시즌 26번째 선발 등판에 나섰다.

“자, 다카기 선수가 시즌 26번 째 선발 등판에 나섭니다. 올 시즌 성적은 17승 1패, 평균자책점 1.54, 175이닝 동안 볼넷 18개, 탈삼진은 253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등판에서 시즌 첫 패배를 당했죠. 무려 1년 9개월 만의 패전이었는데, 오늘은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지켜보겠습니다.”

포수 마스크를 쓴 호프만은 빠른 볼을 요구했다.

다카기의 구위가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빠른 볼을 너무 자주 던져도 문제, 실제로 다카기는 2년 전부터 패스트 볼 비율을 조금씩 줄여왔다.

그런데 지난 경기에선 빠른 볼을 너무 믿었다가 피를 본 편, 호프만은 조금 더 복잡한 볼 배합을 요구했다.

‘싫은데?’

하지만 다카기는 고개를 저었다.

경기 중반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초반, 맞는 걸 무서워해서 어떻게 투수를 하겠나. 평소처럼 빠른 볼을 앞세웠다.

“스윙!! 삼진입니다!! 빠른 볼, 에드윈 잭슨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지난 경기에서 빠른 볼을 결정구로 던졌다가 역전 적시타를 맞았는데, 의외네요.”

“내 공은 알고도 못 친다, 이런 건가요?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거죠.”

잘 하면 실력 못하면 고집, 그게 프로의 세계 아닌가.

다카기는 4회까지 볼티모어 타선을 2안타 6탈삼진으로 봉쇄, 위력투에 할 일이 없어진 채근성은 펜스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괜히 마시고 싶네.’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간 관중석, 커피를 홀짝거리는 여성 팬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맥주를 마시는데 왜 그 사이에 혼자 끼어있는 건지, 채근성은 커피가 없으면 불안증세에 집중력까지 떨어지는 성격이라 괜히 짜증이 올라왔다.

1시간 전에 마셨는데 또 생각나는 시커먼 물, 보스턴 선수단은 각자 뭘 하든 신경을 안 쓰는 스타일이다. 이걸 간파한 채근성은 더그아웃에 커피 종합 세트를 배치, 이닝 끝나면 한 잔 걸치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따악 ~ !!

마침 날아오는 플라이 볼, 집중력이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 잠깐 주춤했지만 타구를 처리한 채근성은 한걸음에 더그아웃으로 달려왔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커피 타임, 그동안 잠자코 있던 몬테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 좀 그만 마실 수 없어?”

“왜?”

“너 말 할 때마다 역겨워서 못 참겠어.”

커피는 그 자체의 향은 좋지만, 입에 들어가면 입 안을 약산성으로 바꿔놓는다. 박테리아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본인은 모르지만 옆에 있는 사람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시애틀에선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왜 저 자식은 난리인지, 채근성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게 이곳의 룰 아니냐며 받아쳤다.

“야, 너희들 지금 뭐 하냐?”

이때, 울반스키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다카기가 등판하는 날, 절대 지면 안 되는 게임이다. 지난 경기에서 타선의 부진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에이스, 오늘도 똑같은 꼴이 반복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다른 건 몰라도 패배는 납득 못하는 보스턴의 클럽하우스, 싸울 거면 이기고 나서 하라는 핀잔에 몬테로와 채근성은 서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이기고 나서 보자.’

5회 말 보스턴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채근성은 초구부터 배트를 힘차게 돌렸다.

마이너리그에서 마늘 냄새 난다는 말도 못 들어봤는데 커피 쩐내가 난다는 건 무슨 시비인가.

경기가 안 풀리니까 만만한 날 시비 상대로 삼은 거겠지, 울반스키는 몰라도 몬테로라면 기싸움에서 밀릴 이유가 없었다.

따악 ~ !!

“잡아당긴 타구가!! 오른쪽 멀리 ~ ~ !! 담장을 원 바운드로 때립니다!! 채근성 선수는 1루를 돌아 천천히 2루까지, 보스턴이 득점권 기회를 맞이합니다.”

“최근 10경기 타율이 0.357, 홈런도 2개나 있죠. 벡 배이 파크가 좌타자에게 불리한 구장인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2루타를 때린 채근성은 더그아웃을 힐끗거렸다.

나는 이렇게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데 냄새 난다고 시비 거는 놈은 지금까지 뭘 했나?

실력이 전부인 그라운드, 다음 공수교대 때도 그 건방진 얼굴 앞에서 커피 한잔을 기울이겠다고 중얼거렸다.

후속 타자 울반스키의 적시타로 0대 0의 균형을 깬 보스턴, 몬테로는 아예 자리를 피해버렸고 채근성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스트라이크!!”

선취점에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다카기는 위력투를 이어갔다.

변화구를 잊어버린 투구, 이렇게 계속 가도 되는 건가. 호프만은 편식 하는 에이스를 위해 변화구를 권했지만 다카기는 그때마다 빠른 볼을 박아 넣었다.

“들어왔다는 판정입니다!! 삼진!! 오늘 경기 8번째 삼진!! 이번에도 결정구는 빠른 볼이었습니다.”

“지금은 백도어로 들어갔네요. 좌타자 입장에선 정말 멀어 보이는 공입니다.”

로우 쓰리 쿼터에 공이 빠르게 튀어나오는 투구 폼, 볼에서 시작해 스트라이크로 끝나는 궤적이라 타자 입장에선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고기라도 찌거나 굽거나 양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법, 다카기는 빠른 볼을 던져도 그 맛을 다양하게 바꿔주는 능력을 갖췄다.

지난 경기에선 살짝 태워먹었지만 오늘은 실수가 없는 조리과정, 구속에 로케이션까지 바꿔주는 투구에 타자들은 연신 헛방망이를 돌렸다.

‘내가 졌다. 졌어’

호프만 포수는 고집 앞에서 백기를 들었다.

슬라이더가 있는데도 빠른 볼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혹시 지난 경기에서 빠른 볼이 공략당한 걸 아직도 가슴에 두고 있는 건가.

다카기는 끊임없이 강함과 승리를 갈구하는 성격, 이미 메이저리그 최강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신의 강함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있다.

그래서 공 하나가 맞아나가면 그게 통한다는 걸 다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기분이 좀 풀렸는지 다음 이닝에선 슬라이더를 섞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꼭 편식하는 아들을 상대하는 기분, 어쨌든 이 날 다카기는 7이닝을 무실점, 11탈삼진으로 막고 교체됐다. 시즌 18승은 덤, 여느 때처럼 기자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다카기 선수, 지난 경기에서 1년 9개월 만에 패배를 기록하셨는데,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오늘은 질문을 해도 될까요?”

한 기자의 질문에 다카기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워낙 오랜만에 당한 패배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 그래서 인터뷰도 거절하고 퇴근해 버렸다.

생각해보면 프로답지 못했던 장면, 나름대로 해명에 나섰다.

“전 이제 메이저리그 경력 5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클럽하우스에서도 나름 대우를 받는 입장이 된 거죠. 하지만 아직 루키같은 면도 남아 있습니다. 패배를 통해 배우는 게 있다는 말도 있는데, 저는 아직 그 레벨에 오르진 못한 것 같습니다. 성장의 여지가 열려 있는 행동이었다고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세상에 완벽한 선수가 어디 있겠나. 가끔 패배도 당하고 속이 상하면 인터뷰도 안 할 수 있는 법, 그동안 인터뷰에 성실히 응했기에 이 이상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이어지는 질문, 한 기자가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거의 다 빠른 볼을 던지셨는데요. 볼티모어 정도면 빠른 볼만으로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다카기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잘못하면 볼티모어 선수단 전체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 상황, 그럴듯한 말로 빠져나갔다.

“제가 지난 경기에서 빠른 볼을 결정구로 던졌다가 안타를 맞은 건 다들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전 제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 안타 하나로 믿음이 조금 흔들리더군요. 오늘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딱히 볼티모어를 만만히 본 건 아닙니다.”

“아 ~ 안 넘어 오시는군요.”

기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뻥 하나 터뜨려줘야 자극적인 기사를 쓸 거 아닌가. 5년 차라고 이젠 기자들을 다룰 줄 알 게 된 건가, 선수와 기자는 이렇게 서로 물고 뜯으면서 공존하는 관계, 오늘도 유쾌한 분위기에서 인터뷰가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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