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5)
‘우리야 아쉬울 것 없지.’
일단 질러본 론 언더우드는 보스턴 구단의 반응을 기다렸다.
의외로 조용한 분위기, 돈론을 놓쳤기 때문에 수뇌부도 J. J. 핵먼은 반드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래서 가능한 세게 불렀다.
아니, 언더우드는 고객이 이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2년 전,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30홈런 + 시즌을 보냈을 고객, 메이저리그에서 2루수라는 존재는 작전 수행 잘하고 발 빠르고 수비만 잘해도 인정받았다.
그러다 1984년, 20(2루타) - 20(3루타) - 20(홈런) - 20(도루) 시즌을 기록한 조엘 미들턴이 등장하면서 공격형 2루수의 시대가 열렸다.
미들턴은 2루수로서 최초로 홈런왕(1988년 : 41개)에 오를 정도의 장타력과 50도루(1987년 : 52개)까지 달성해낸 주력, 그리고 통산 수비율 0.990이라는 최고의 수비율을 보여준 역대 최고의 2루수다.
112경기 무 실책, 10년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한 전설, 그의 가치를 현재 연봉으로 계산했더니 10년 3억 2천만 달러라는 수치가 나왔다.
물론 J. J. 핵먼을 조엘 미들턴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넌센스지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2루수라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매년 3할에 25홈런 이상, 수비율 0.980이상을 기록하는 2루수를 어디서 구해오나, 뭣보다 클러치 능력도 일품 10년 2억 5천만 달러가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며 언론 플레이를 펼쳤다.
“일단 30홈런 이상에 골드 글러브부터 수상하고 그런 말을 해라.”
보스턴 현지 해설위원이자 MLB 닷컴을 진행하고 있는 피트 오어는 언더우드의 주장에 코웃음을 쳤다.
J. J. 핵먼이 좋은 선수라는 건 누구나 인정한다.
다만 옛 전설을 소환해 현재가치로 연봉을 계산하고 핵먼을 거기에 비교하는 건 넌센스, 미들턴은 통산 18시즌 동안 2992안타, 489홈런, 314도루, 골드글러브 10회 수상에 빛나는 올 타임 넘버 원 2루수다.
그에 비해 핵먼은 어떤가?
3년 연속 3할에 25홈런을 넘겼지만, 30홈런 시즌을 달성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거기다 수비율은 높아도 좁은 수비 범위 때문에 팬 그래프에서 높은 평가는 못 받는 선수, 작년 시즌도 아메리칸 리그 2루수 골드글러브는 뉴욕의 조 프리츠에게 돌아갔다.
■ 조 프리츠(2019 ~ 2024)
= 타율 0.281, 113홈런, 골드글러브 3회
■ J. J 핵먼(2018 ~ 2024)
= 타율 0.310, 127홈런, 실버슬러거 3회
지금 핵먼과 비교할 상대는 조엘 미들턴이 아니라 뉴욕의 조 프리츠다.
프리츠는 핵먼에 뒤지지 않는 공격력에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한 스타 플레이어, 당연히 뉴욕은 프리츠를 장기계약으로 묶었다.
계약 내용은 7년 1억 3천만 달러, 그런데 프리츠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핵먼이 10년 2억 5천만 달러를 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의 값을 정하는 건 자유지만 그걸 평가하는 건 시장이다. 어느 구단이 핵먼에게 2억 5천만 달러를 지불할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1억 7천만 달러도 큰 것 같은데”
핵먼은 대책 없이 불러대는 에이전트 때문에 당황했다.
듣자하니 구단에서 8년 1억 7천만 달러를 불렀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도 구단에서 엄청 신경 써 준 금액, 에이전트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다카기의 계약이 불러온 파장]
이때, 한 기자가 올린 기사가 또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8년 동안 다카기에게 3억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보스턴, 울반스키나 다른 선수들에게 투자한 돈도 만만치 않지만 역시 다카기에게 지불하는 금액이 가장 크다.
보스턴이 돈론을 놓친 것도 그 때문이겠지, 그냥 생각 없이 쓴 기사에 보스턴 팬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다카기를 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거냐? 뭐 이런 XX 놈이 다 있어?]
-> 4년 연속 만테냐 어워드 수상에 월드시리즈 4연패 이끈 투수다. 네가 뭔데 3억 달러가 많다 적다 참견이냐?
-> 기자가 관심 끌고 싶어서 기사 썼네. 다카기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신을 모욕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을 텐데?
-> 처단해라. 제 정신이 아니다.
여론이 묘하게 돌아가자 기자는 다카기의 계약이 다른 선수들의 계약에 영향을 준 것일 뿐, 딱히 다른 뜻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결국 그게 그 말 아닌가? 핵먼의 에이전트 론 언더우드가 쏘아올린 2억 5천만 달러는 이렇게 에이스 쪽으로 불똥이 튀었다.
“트레이드 안 될 이유 없다.”
다카기는 끓는 기름에 폭탄을 들이부었다.
연 평균 4천만 달러 그냥 달라고 한 거 아니다. 구단에 부담이 되면 트레이드 하라고 거부권도 포기하지 않았나, 보스턴이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떠날 뿐, 여기에 뉴욕의 구단주 잭 샐리스버리가 논란을 더했다.
“우리는 다카기에게 연봉 5천만 달러도 지불할 수 있다.”
무려 16년 동안 우승을 못하고 있는 뉴욕, 4년 연속 보스턴의 우승을 이끈 다카기가 탐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상대가 유부녀라면 소용없다.
둘의 관계가 틀어지길 기다릴 뿐, 그런데 어느 멍청한 보스턴 기자가 보스턴과 다카기의 사이에 금을 내놨다.
언론플레이로 이간질시키기 딱 좋은 상황, 영악한 구단주 샐리스버리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혼 따윈 없다.’
수더랜드 단장은 바로 입장을 내놨다.
원래 미녀를 얻으면 피곤한 법, 예쁘다고 여기저기서 킁킁거리는 놈들이 있는데 앞으로도 다카기는 보스턴의 일원이고 트레이드 따윈 절대 없다며 못을 박았다.
‘2억 5천? 절대 못 줘’
수더랜드 단장은 핵먼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대안을 물색했다.
연봉은 낮아도 쓸 만한 수비력을 갖춘 2루수는 시장에 얼마든지 있다. 공격력은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이 받쳐주면 그만, 뭣보다 스탠리 호프만이 주전 포수로 나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울반스키의 공격력이 폭발하고 있다.
지금가지 성적은 타율 0.314, 홈런 9개, 34타점, 여기에 백전노장 데이브 셰퍼드도 지명타자 노릇을 잘 해주고 있다.
조금 부진한 알 디즌과 후안 위긴스만 터져주면 지구 1위 탈환도 가능, 핵먼과의 재계약이 틀어지자 다른 선수들의 계약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포데스와, 보스턴과 4년 5200만 달러 연장 계약 합의]
[루카스, 보스턴과 4년 4200만 달러 연장 계약 합의]
[하버스태드, 보스턴과 3년 3000만 달러 연장 계약 합의]
핵먼을 포기했더니 핵심 불펜 3인방이 세트로 묶였다.
단장이 내 준 1억 7만 달러를 다 쓰지도 않고 거둔 성과, 남은 돈은 내부회의에서 해외 유망주 투자로 돌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핵먼은 에이전트와 충돌했다.
어쩌자고 2억 5천만 달러를 지른 건지, 그만한 돈을 지불할 팀이 지금 어디에 있나.
아니, 보스턴 구단에서 1억 7천만 달러를 줄지도 의문, 하지만 론 언더우드는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앞으로 보란 듯이 활약한 그만한 돈 지불할 팀은 나타날 겁니다. 제 협상능력을 걸고넘어지기 전에, 성적부터 끌어올리시죠.”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야구 실력은 있지만 귀가 얇은 핵먼은 여기저기서 휘둘렸다.
“넌 내가 2억 달러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다카기는 핵먼의 질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부터 목표는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였고, 그 목표를 이뤄준 보스턴과 동거하고 있다.
연봉은 그만큼 선수에게 중요한 일, 2억 달러 받고 싶으면 본인이 노력해서 시장의 평가를 받으면 되는 일 아닌가? 다만, 지금 실력으로 2억 달러를 노리는 건 무리, 답은 너한테 있다고 선을 그었다.
“나도 돈론처럼 떠날 수도 있어,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떠나면 떠나는 거지, 다른 팀 가서 돈 많이 받아라.”
핵먼은 쓴 웃음을 지었다. 가지 말라고 잡아주지도 않다니, 월드시리즈 우승은 보스턴에서 3번이나 하지 않았나.
명예를 얻었으니 이제는 돈을 얻을 차례, 올 시즌은 2억 달러 도전을 목표로 삼았다.
* * *
“자, 이제 보스턴의 2회 말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선두 타자는 울반스키, 올 시즌 타율 0.317, 홈런 12개, 42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통산 타율이 0.273인 선수인데, 올 시즌 유독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특별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울반스키는 루키 시즌에 20홈런 - 20도루, 3할을 달성한 선수 아닙니까.”
어느덧 6월 후반으로 접어든 시즌, 초반에 잠깐 주춤했던 보스턴 타선은 조금씩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선 선수는 울반스키, 데뷔 시즌에 3할 20 - 20을 기록하고, 보스턴 입단 첫 해에 2할 5푼 40홈런을 넘긴 이 선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어쨌든 피츠버그 시절에 비해 타격이 한층 성숙해 진 건 사실, 스탠리 호프만이 포수에서 좋은 활약을 해주자 브라이스 감독은 최근 울반스키를 붙박이 1루수로 기용했다.
최근 10경기 성적은 타율 0.375, 홈런 3개, 5타점, 우타자에게 불리한 백 베이 파크를 홈으로 쓰고 있지만 장타력은 전혀 죽지 않았다.
따아악 ~ !!
“우와아 ~ !!”
센터 쪽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시즌 13호 홈런,
새로운 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따로 놀던 미운 오리는 이제 보스턴에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다.
6년 계약을 맺었으니 당분간 헤어질 일도 없겠지, 열정적인 팬들의 응원이 더해지면서 울반스키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 ~ 내가 2억 달러를 불렀어야 됐는데 ··· ”
울반스키는 요즘 틈만 나면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포수로 1억 달러가 넘는 잭 팟을 터뜨렸지만 2억 달러 운운하는 핵먼을 보면 너무 염가에 계약한 게 아닌가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럼 내가 나가줄 테니까 2억 달러 요구하던가.”
다카기는 바로 진압에 나섰다. 여전히 농담을 모르는 녀석, 울반스키는 네가 없으면 안 된다며 꼬리를 내렸다.
‘그 2억 내가 받는다.’
한편, 후속 타자 디즌은 좌중간에 떨어지는 2루타로 찬스를 이어갔다.
알 디즌은 지난 3년 동안 중견수 골드 글러브 3회를 달성한 선수, 여기에 20홈런 이상의 장타력도 기대할 수 있다.
작년 시즌은 30홈런도 넘겼으니 몸값은 계속 오르는 중, 하지만 올 시즌 타격이 약간 삐걱대면서 가치가 약간 내려갔다.
FA 자격 획득까지 앞으로 2년, 구단은 염가에 장기계약으로 묶어두려 하고 있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수비 되고 타격 되는 중견수는 어디서든 환영 받는 법, 내 가치는 시장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나도 받을 수 있나?’
후안 위긴스도 그 대열에 슬쩍 발을 뻗었다.
보아하니 보스턴은 당분간 대형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다.
떠날 몸이라면 여기서 몸값이라도 올려놔야겠지, 하지만 디즌과 달리 수비가 안 되기 때문에 공격력으로 어필을 해야 한다.
이런 내가 2억 달러를 받을 수 있을까. 욕심 부리지 않고 보스턴과 장기계약을 맺는 것도 좋을 텐데, 일단 내가 이 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걸 어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