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3)
[다카기, 올해도 순항]
시즌 개막 후 어느 덧 한 달이 지났다.
다카기는 3승 무패 평균자책점 1.45, 25이닝 동안 무려 삼진 37개를 쓸어 담으며 변함없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문제는 다른 선발투수의 부진, 로버트 클레이튼은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5.40, 나머지 투수들도 4점대 중반의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숨어 있던 실력자인가, 아니면 보스턴의 후광인가]
이렇게 되자 다카기의 전담 포수가 된 스탠리 호프만이 자연스럽게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10년 동안 무려 5번이나 우승을 한 보스턴, 그 뒤엔 크로스(3회), 울반스키(2회)라는 명포수의 리드가 있었다.
강속구 투수가 넘쳐나는 팀에서 몸을 날리는 포수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 크로스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줬지만 울반스키는 지표상으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빠른 볼에 약간 아쉬운 수비를 보여줬다.
다만, 브라이스 감독이 체력 안배 차원에서 울반스키를 자끔 1루수로 기용하고 경기 막판에 백업 포수들을 기용해 문제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원래 포수는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이라 전 경기를 스타팅 멤버로 소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야진에 비해 백업의 출전이 많은 포지션, 당연히 스탠리 호프만도 지난 5년 동안 적지 않은 경기를 소화했다.
연봉은 3백만 달러로 많지 않지만 백업 포수 이직률이 높은 메이저리그에선 매력적인 카드, 실제로 수더랜드 단장도 호프만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려 한 적이 있다.
■ 프레이밍 득실(2000구 이상 기준)
= 울반스키 : + 2.9%
= 호프만 : +3.7%
하지만 이런 저런 지표를 보고 트레이드를 고민했다.
일단 프레이밍 득실만 봐도 호프만은 울반스키보다 나으면 나았지 수비에서 절대 뒤지는 선수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지표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순 없는 게, 예를 들어 작년 시즌 클리블랜드의 포수 찰스 올리베라스는 7000구 이상을 받아내면서 프레이밍 득실 - 2.3%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올리베라스는 최악의 포수인가? 프레이밍이란 구장은 물론 투수의 제구에도 영향을 받는 법, 실제로 클리블랜드는 최악의 투수력을 지닌 구단이다.
올리베라스의 프레이밍 득실이 낮은 게 전적으로 포수의 책임이라 할 수 있을까? 다카기라는 뛰어난 선발 투수와 수준급의 불펜들을 보유한 보스턴에서 포수들이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수더랜드 단장도 호프만이라는 선수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선수의 재능을 수치화해서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 분명한 건 제법 많은 팀들이 호프만을 원했다는 거다.
보스턴이 아니라도 어느 팀에서 백업 포수로 30 ~ 40경기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선수, 그렇잖아도 포수가 부족한 보스턴이 이런 재원을 외부로 방출해야 했을까.
구장 빨이든 선수 빨이든 호프만이 리그 최상급의 수비능력을 갖춘 선수라는 건 사실, 그걸 알고 있으니 울반스키도 에이스의 파트너 자리를 양보한 게 아니겠는가.
보스턴 지역방송의 해설위원이자 MLB 칼럼 진행을 맡고 있는 피트 오어도 호프만을 숨어 있는 실력자로 인정했다.
‘이제야 내 가치를 인정받는구나.’
호프만은 여론의 평가에 울컥했다. 드디어 내 가치를 알아주는 날이 오다니, 연봉 300만 달러도 적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천만 달러 이상을 턱턱 받아내는 스타플레이어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칭찬은 누구든 춤추게 하는 법, 다카기를 좀 더 완벽하게 리드하기 위한 연구도 시작했다.
저 녀석이 빛나야 나도 빛나는 법,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뭔가 잘못 됐는데’
시즌 4번 째 등판 중, 다카기는 팔꿈치 통증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MRI 검사에서 발견된 미세한 팔꿈치 부상, 지난 4년 동안 200이닝은 기본에 포스트 시즌까지 합쳐 1000이닝을 넘게 소화했으니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했다.
거기다 올 시즌 하드 슬라이더 비율을 높였으니 몸에 무리가 오는 건 당연, 다행히 의사는 부상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브라이스 감독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선발 등판 한 경기를 걸렀고, 5월 14일, 필라델피아 원정에서 다카기를 다시 선발로 내세웠다.
‘네가 아프면 나는 어떻게 하냐.’
호프만은 열흘 만에 돌아온 에이스를 마음속으로 격하게 환대했다. 다카기의 전담 포수가 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저 녀석이 없어지면 다시 원상복귀 아닌가.
미트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다시 한 번 달려보자는 의욕을 드러냈다.
“초구!! 들어옵니다. 97마일이 기록되는 군요.”
“팔꿈치 부상이 있는 상황이지만 심하진 않다고 들었거든요. 그 정도 부상은 많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으니 심각하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원정 중계를 나간 피트 오어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지난 4년 동안 절대 흔들리지 않았던 다카기의 위용, 부상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와 건재함을 과시하는 에이스, 나이가 젊은 만큼 당분간은 문제없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슬라이더 요구하면 안 되려나?’
한편, 볼 배합을 두고 스탠리 호프만은 고민을 거듭했다.
올 시즌 하드 슬라이더를 너무 많이 던져서 부상이 왔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는데, 그럼 체인지업을 요구해야 하나? 하지만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져야 더욱 빛나는 나의 존재감, 갈등이 길어지자 다카기가 직접 사인을 보냈다.
“스윙!! 삼진입니다!! 다카기 선수가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역시 슬라이더죠. 솔직히 체인지업을 던져도 위력적이지만, 부상 걱정 때문에 이 마구를 아낄 이유는 없습니다.
다카기는 이날 4회까지 53개를 던지며 삼진 9개를 잡아냈다.
평소라면 몸이 덜 풀릴 정도의 투구 수, 그런데 어깨가 무거운 이유가 뭘까. 뭔가 불길함을 느낀 다카기는 더그아웃을 향해 사인을 보냈다.
“아직 불편하나?”
“네. 오늘은 이만 내려가는 게 좋겠습니다”
“ ··· 그렇게 하게”
다카기가 마운드를 내려가자 보스턴 팬들은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졌다.
앞으로 8년, 3억 달러 정도의 계약이 남아 있는 선수인데, 설마 고장이 난 건가. 월드시리즈 4회 우승을 달성했으니 단물이라면 어느 정도 빨아먹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게 사실, 에디슨 헨리 구단주도 수더랜드 단장과 진지한 논의를 주고받았다.
[혹시 부상이 심각한 건가?]
“지금은 저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의사 진단으로는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구단주의 질책 아닌 질책에 수더랜드 단장은 얼굴을 붉혔다.
부상은 어느 투수들이나 겪는 일, 뭣보다 다카기는 지난 4년 동안 어느 누구보다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휴식을 주면 제 기량을 찾을 선수, 그런데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고 득달 같이 달려들다니,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꼬투리를 잡아 선수의 연봉을 후려쳤던 게 수더랜드 단장이라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단물을 빼 먹고 버릴 타이밍을 잘못 정한 건 아닌지, 수더랜드는 앞으로 다카기의 전성기가 5 ~ 6년 이상은 갈 거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를 보니 생각보다 짧아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 보스턴 현지 여론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군.’
하지만 다카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난 4년 동안 내 실력은 보여줄 만큼 보여주지 않았나, 그런데 조금 흔들렸다고 의심하는 중생들, 곧 회개하게 해주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너 오늘은 괜찮은 거냐?”
“그럼, 최고조지”
5월 24일, 다카기는 지난 2경기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스탠리 호프만은 그런 에이스가 걱정, 슬라이더는 조금 자제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권했지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잘 받기나 해, 알았어?”
“응”
상대는 아메리칸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뉴욕, 하지만 통산 뉴욕을 상대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 온 다카기는 자신 있게 투구를 했다.
따아악 ~ !!
“어 ··· 이 타구는 높게 날아가 우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선두 타자 모리슨의 솔로 홈런, 보스턴이 선취점을 내줍니다.”
“바깥쪽 약간 높은 공이었는데 받아쳤거든요. 구속은 96마일 ··· 눈에 띄게 떨어지거나 그런 건 아닌데 ··· 조금은 불안합니다.”
오늘도 평소답지 않은 에이스의 행보, 불안한 시선은 계속됐지만 철벽의 에이스는 개의치 않았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을 찌르는 궤적, 다카기는 볼을 던져도 스트라이크와 큰 차이가 없다.
포수 입장에선 장난질 치기 딱 좋은 파트너, 좋은 프레이밍 기술을 보유한 스탠리 호프만은 볼을 스트라이크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줬다.
선두타자 홈런 외엔 이렇다 할 흠이 없는 투구, 92마일에 이르는 하드 슬라이더는 연신 헛스윙을 끌어냈다.
“스윙!! 낫아웃이지만 포수가 잡아 1루로 송구합니다!! 오늘 경기 8번째 탈삼진!! 다카기가 오늘은 건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들 반성해야겠군요. 잠깐이나마 의심한 거 사죄합니다.”
피트 오어는 7이닝을 1실점, 8K로 막아낸 에이스에게 경의를 표했다.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 최강의 타선을 상대로 이런 압도적인 투구를 하다니, 피 홈런 하나에 살짝 흠집이 났지만 그래도 빛이 나는 존재라는 건 분명했다.
“저 다음 이닝도 나갑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무리요? 열흘 넘게 태업해서 힘이 남아돕니다.”
브라이스 감독은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카기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계속했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끊을 줄 아는 성격, 열흘 넘게 이렇다 할 투구를 못한 팔은 쌩쌩하다 못해 미쳐 날 뛸 지경이다.
8회는 삼진 3개로 삭제, 9회에도 보란 듯이 마운드에 올랐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판정에 모리슨은 인상을 구겼다. 분명 조금 빠진 것 같은데 계속 잡아주는 주심, 덕분에 호프만의 장난질은 계속 됐다.
“스트라이크!!”
“아!! 이건 아니잖아!!”
모리슨은 결국 폭발했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성격이 다혈질이라 금방 달아오르는 게 문제, 오늘 홈런을 하나 때렸지만 그 정도로 만족할 선수가 아니었다.
“스윙!! 삼진입니다!! 오 ~ 모리슨이 굉장히 흥분한 것 같은데요.”
“뭐, 이건 볼 것도 없는 퇴장이네요.”
헛스윙 삼진을 당한 모리슨은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주심과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 입이 닿을 듯 말 듯 한 아찔한 광경, 보스턴 팬들은 키스라도 할 생각이냐며 조롱을 퍼부었다.
그러건 말건 보스턴 배터리는 다음 투구에 집중, 모리슨이 퇴장 조치를 당하면서 경기가 재개됐다.
‘오늘도 내가 사냥 당했네.’
후속 타자 조 프리츠는 시원하게 3번 돌리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오늘 경기 전까지 다카기를 상대로 통산 16타수 2안타, 삼진만 9개를 헌납했다. 그런데 오늘 4타수 무안타에 삼진 2개를 추가 적립, 아프다고 들어서 오늘은 좀 두들겨 줄려고 했는데 또 사냥을 당했다.
이날 다카기는 9이닝을 3피안타 1실점, 13탈삼진으로 마무리,
완벽한 쇼를 보여준 철벽의 에이스는 믿음이 부족한 팬들을 향해 질책의 의미가 담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