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2)
[이시다 토모카츠, 토론토와 4년 5000만 달러 계약]
[마이키 요시토모, 애리조나와 2+1 3500만 달러계약]
[김성준, 세인트루이스와 2년 1100만 달러계약]
[채근성, 오스틴 텍산스에서 시애틀로 트레이드]
시즌을 앞두고 아시아 선수들의 MLB 진출, 이적 등에 대한 활발한 소식이 들려왔다.
다카기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아시아권 선수들의 MLB 러시는 계속 됐지만 이제는 확실히 탄력을 받은 모습, 그래도 다카기가 그들의 정점에 서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4년 연속 만테냐 어워드를 수상한 다카기는 올해도 고고히 그 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시즌을 앞두고 이런저런 전망을 내놨다.
“다카기는 데뷔 초 포심 비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구위에 의존하는 피칭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작년 시즌은 포심 비율이 56%로 줄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비율을 34%까지 늘렸죠.”
보스턴 현지 해설위원 피트 오어는 다카기의 투구스타일 변화에 주목했다.
포심 구위가 죽은 것도 아닌데 왜 변화구 비율을 늘렸을까. 다카기는 데뷔 시즌이었던 2019년, 전체 투구 중 12.8%를 헛스윙으로 이끌어냈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비율, 그런데 계속 상승하더니 작년 시즌은 무려 16.4%를 찍어버렸다.
타자들의 컨택 확률도 74.1%에서 68%로 급락, 이건 다카기가 보다 많은 삼진을 잡는 투수로 진화해 왔음을 증명하는 자료다.
빠른 볼 비율은 줄었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볼 비율은 43.8%에서 45 - 47 - 46으로 꾸준히 상승세, 이건 변화구로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투수로 진화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건 슬라이더, 데뷔 초 구종가치 15.6을 찍은 슬라이더는 체인지업이 주무기로 자리를 잡으면서 잠시 사라졌지만, 작년 시즌 새롭게 부활하면서 구종가치 23.9를 찍었다.
말 그대로 악마의 구종, 90마일 중반 대를 기록하는 하드 슬라이더에 커브를 개량한 느린 슬라이더까지 던진다.
체인지업이나 투심 위력도 만만치 않아 말 그대로 탈삼진을 쓸어 담는 편, 다만 투심은 헛스윙률이 높지 않아 거의 봉인한 편이다.
모든 구종 구속도 신인 시절에 비해 1.6마일 정도 상승, 덕분에 이닝 당 출루율이 1이 되지 않는 압도적인 시즌을 밥 먹듯이 찍어내고 있다.
미국 나이로 25살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나이도 고무적, 피트 오어는 올해도 다카기의 시즌이 될 거라는 믿음을 드러냈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
브라이스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다카기의 피칭을 점검했다.
작년에 빠른 볼 평속 96.7마일을 찍은 선수, 아무리 메이저리그가 파이어벌로 시대가 됐다고 해도 평속 96마일을 넘기는 선발 투수는 하늘의 별 따기다. 여기에 수준급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완벽한 제구와 멘탈로 삼진을 쓸어 담는 유형,
내가 현역이었다면 저 공을 직접 받아봤을 텐데,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걸 안타깝게 여겼다.
‘어떻게든 해야 되는데’
한편, 울반스키 포수는 하드 슬라이더를 두고 고민했다.
제대로 받아낼 수만 있다면 타자들을 미치게 하는 구종, 하지만 워낙 빠르게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구종이라 포수는 무게 중심을 바깥쪽에 둬야 한다.
곁눈질로 컨닝을 하는 놈들이 이걸 그냥 놔둘까.
구속이 느린 아시아 야구에선 포수가 사타구니에 미트를 두고 몸을 날리는 폼을 이상적으로 여기지만 MLB에서 그 따위 개념은 통하지 않는다.
구속이 워낙 빨라 바운드 볼이 아니면 야수가 빠른 타구를 낚아채듯 몸을 날리는 게 일상, 울반스키는 포구나 도루저지는 나무랄 곳이 없지만 좌우로 빠지는 볼에 대한 대응 능력은 뛰어나다고 하긴 어렵다.
바깥쪽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하드 슬라이더는 대응하기 어려운 편, 본인도 이 점을 인지했는지 브라이스 감독과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카기가 등판하는 날은 제가 1루를 보고, 호프만이 포수를 보는 게 어떨까요?”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예,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울반스키는 자존심을 내려놨다.
내가 이 팀의 주전 포수인건 맞지만 다카기의 재능을 완전히 끌어내긴 어렵다고 판단, 전체적인 능력은 나보다 떨어지지만 본래 야수를 봤던 스탠리 호프만이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판단했다.
‘기회다.’
브라이스 감독의 지시대로 호프만은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었다.
보스턴은 전통적으로 포수가 강한 팀, 월드시리즈 3회 우승을 이끈 데이빗 크로스가 은퇴하더니 울반스키라는 거물이 1억 달러 계약을 찍고 보스턴에 눌러 앉았다.
그런 내가 다카기의 투구를 받아볼 줄이야, 이름 값을 올릴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카기는 호프만의 수비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포구 안정성은 약간 떨어지지만 개선 가능성은 있는 편, 좌우로 빠지는 볼에 대한 대응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2년 전 뒷방으로 물러난 데이빗 크로스를 마주하는 기분, 감독에게 OK 사인을 내렸다.
‘이게 저 자식의 위용인가.’
올해부터 보스턴 유니폼을 입은 후지타 겐고로는 다카기의 입지에 경악했다.
한 선수를 위해 팀 전체가 돌아가는 느낌, 단장도 자주 찾아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간다. 팀을 위한 개인을 강조하는 환경에서 뛰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 게 사실, 하긴, 월드시리즈 4연패를 이끌어 낸 선수 아닌가.
8년 전만 해도 다카기는 일본 청소년 대표 팀에서 애송이 취급 받는 신세였지만, 이제는 구단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로 성장, 후지타는 내가 저 녀석과 비빌 존재가 아니라는 것부터 깨달았다.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 일단 다카기와 친분이 있는 선수들에게 접근했다.
“그냥 놔두는 게 제일 좋은 거야.”
통역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스캇 포데스와는 못을 박았다.
다카기는 클럽하우스에서 친목질을 하는 유형은 아니다. 재미없는 농담 걸었다가 저리 꺼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거기다 못하는 선수가 있으면 대놓고 구박을 하거나 방치해 버린다.
괜히 친해지겠다고 다가갔다가 데이기 일쑤, 다만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저 녀석은 능력 있는 선수는 확실하게 예우를 해줘.”
“능력?”
“그래, 인터뷰에서도 그랬잖아? 네가 돈론의 빈자리를 채워줄 실력을 갖췄다면 환영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 ”
말 하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는 뒷이야기, 하긴 프로에게 실력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후지타는 다카기와 화해하는 것보다 메이저리그에 연착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 * *
“오늘은 가볍게 30개만 던지겠습니다.”
“그러게”
드디어 다가온 시범경기, 다카기는 예정대로 스탠리 호프만과 배터리를 이뤘다.
울반스키는 1루수로 출전, 예상외의 조합에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카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투구를 이어갔다.
딱 ~ !
“파울, 밀립니다. 96마일, 아직 시즌 전이지만 구속은 올라왔군요.”
“글쎄요. 이게 아직 몸이 덜 풀린 건지 누가 알겠습니까.”
신인 시절부터 계속 올라오는 구속, 이게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일지도 모른다는 발언에 캐스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금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진다면 그건 포수에게도 악몽, 구속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며 맞불을 놨다.
‘올 시즌은 슬라이더, 너로 정했다.’
결정구는 93마일 슬라이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볼을 몸으로 막아낸 호프만은 1루 송구를 마무리 했다.
호프만이 이런 수비를 시즌 내내 보여준다면 미쳐 날뛰는 슬라이더에 재갈을 물릴 이유도 없겠지, 빠른 볼 - 슬라이더 조합의 효과는 분명했다.
매번 백업 포수로 활동했던 선수가 몸을 아낄 여유가 어디에 있나. 호프만의 수비를 지켜본 수더랜드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기와 좋은 콤비를 이룬다면 그까짓 연장 계약 못해주겠나.
호프만은 몸값도 싼 편, 긍정적으로 고려해 봤다.
문제는 타선, 후지타 겐고로는 폴 돈론의 빈자리를 채워줄 것인가. 다카기와의 개인적인 악연은 둘째로 칠 일, 실력이 받쳐주질 않는다면 1100만 달러는 버리는 셈 치고 방출해도 상관없다.
그만큼 거대한 돈론의 빈자리, 보스턴 팬들도 성과가 없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살기를 드러냈다.
같은 팀 선수라고 봐주는 게 없는 극성팬들, 후지타는 수준 높은 메이저리그 벽은 물론 여론의 편견도 넘어서야 했다.
“스윙, 따라오지 못하는군요.”
“후지타가 일본에 있을 때부터 강속구 대처 능력은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거든요. 프로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선구안과 변화구 대처 능력은 어느 정도 향상됐지만, 이것만은 아직도 해결이 안 되네요.”
“저희도 알고 있는 사실을 수더랜드 단장이 몰랐을 리는 없는데요. 수비도 안 되는 선수를 굳이 영입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보스턴 현지 해설위원은 벌써부터 비난의 칼날을 세웠다.
폴 돈론은 2년 연속 3할, 200안타, 20홈런을 넘긴 검증된 선수, 보스턴 구단이 얼마나 서운하게 했으면 6년 1억 5천만 달러를 받고 시카고와 계약을 맺었겠나.
올 시즌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수더랜드 단장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 후지타는 타율 0.275, 홈런 1개, 5타점으로 시범경기를 마무리 했다.
생각보다 떨어지는 생산능력이지만 그래도 출루율(0.365)이 높았다는 건 고무적인 일, 예정대로 주전 좌익수로 밀고 갔다.
“No 17!! Left Fielder ~ !! Fujita Gengoro!!”
“우우 ~ 우 ~ !!”
개막전 당일, 후지타는 보스턴 팬들에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우리는 폴 돈론을 원한다는 말은 물론 이곳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폭언도 속출, 이게 바로 보스턴의 분위기인가.
NPB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후지타라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All hail the king]
= 모두들 왕을 맞이하라
그에 비해 다카기는 홈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전광판에 왕을 맞이하라는 문구가 뜨자 모든 팬들은 자리에서 기립, 국왕을 호위하는 근위대처럼 근엄한 목소리로 King을 연호했다.
“자, 다카기 선수가 올 시즌 첫 등판을 치릅니다. 작년 시즌 성적은 19승 무패!! 1년 동안 단 한 번도 패전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올 시즌 시범 경기에서 24이닝 동안 탈삼진을 37개나 잡아내는 투구를 보여줬거든요. 특히 슬라이더 구위가 압도적이었는데, 올 시즌은 또 어떤 기록을 써내려갈지 기대됩니다.”
포수 마스크를 스탠리 호프만은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프로 생활 5년 동안 개막전 선발은 처음, 소풍을 나온 어린애처럼 살짝 흥분한 것도 사실이다.
‘던져 봐. 얼마든지 받아줄게’
자신 있게 내민 미트, 다키기는 그 안에 97마일 빠른 볼을 밀어 넣었다.
타자도 빠른 볼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구속,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헌납했다.
이제는 슬라이더가 들어올 타이밍, 누가 봐도 뻔한 패턴이었지만 몸 쪽을 한 번 찔러주고 들어오는 궤적이라 방망이가 안 나갈 수가 없었다.
호프만은 몸을 날려 블로킹한 공을 침착하게 1루로 송구, 사방에서 팬들의 환호가 박수가 쏟아졌다.
내 야구 선수 인생은 지금부터가 진짜, 호프만은 지난 5년의 무명생활은 오늘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며 의욕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