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먹어본 놈이 먹는다 - (1)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한국입니다.”
12월 1일, 다카기는 약물 검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비시즌에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다카기의 본가는 해외에 있지만 그렇다고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대응방식, 검사관은 왜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있느냐며 심문을 시작했다.
“내가 어디 가는지 당신한테 보고까지 해야 합니까?”
[아니 ··· 그게 아니라 일본이 아니라 굳이 왜 한국에 ··· ]
검사관은 이미 일본으로 향하는 티켓을 끊어놓은 상황, 한국에서 언제 돌아오느냐며 묻는데 순간 신경질이 난 다카기는 자리를 옮긴 뒤 거친 말투로 상대를 쏘아붙였다.
“당신들은 올 때 예고도 없이 오잖아? 언제 가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얼마 전에 왔으면서 뭘 더 그렇게 캐내고 싶은 거야?”
[아니요. 캐내는 게 아니라 저희는 규칙대로 ··· ]
“됐고,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때려 치워, 난 당신들 눈치 보고 살 인간 아니니까.”
폭풍처럼 몰아치는 말에 검사관은 입을 다물었다.
상대는 만테냐 어워드를 4년 연속 수상한 실력파,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일이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웃기고들 있네.’
시즌 중 불쑥불쑥 찾아오는 건 이해하지만 비시즌 기간까지 통제하려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어느 선수는 비시즌 중 3번이나 불쑥 찾아온 검사관을 집에서 내쫓았다가 벌금을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연봉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그까짓 거 내고 만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다카기도 마찬가지, 비시즌 약물 검사라면 일본에 있을 때 이미 했다.
그런데 17일 후 다시 오겠다는 검사관, 그럼 열일 마다하고 그 자리로 가야 되는 건가. 다카기는 만테냐 어워드 4회 우승 포함 메이저리그 정상에 군림하고 있는 선수, 그까짓 약물 검사관은 두렵지 않았다.
“이거 맛있네요.”
다시 식탁 앞에 앉은 다카기는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
친척들 입장에선 봐도 또 봐도 신기한 얼굴, 김인호의 어머니는 음식이 입에 맞느냐며 대화를 이어갔다.
“입에 맞아요?”
“네”
“신기하네. 일본에서 살아서 한국 음식은 입에 안 맞는 줄 알았는데”
“진짜 맛있는 음식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 법이죠.”
우문현답에 친척들은 함박웃음, 더 먹겠느냐는 말에 다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빈손으로 와서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치우는 손님, 하지만 다카기는 제사상이 치워질 즈음 흰 봉투를 숙모에게 건넸다.
“이거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뜻으로 드리는 거예요.”
“아니 ··· 뭘 이런 걸 주세요.”
“그냥 받으세요.”
숙모는 봉투 안을 보고 경악했다.
찢어질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간 현금, 이렇게 큰 돈은 못 받는다고 했지만 다카기는 그동안 제사를 혼자 책임지신 보답이라며 밀어붙였다.
종묘 땅 가지고 장난친 놈들이 제사는 제대로 지냈겠나. 외면할 수도 있었는데, 8년 동안 제사를 책임져 온 분,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이 정도 성의는 당연히 표하지 않았을까.
그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다카기는 확실한 성의를 표했다.
“그리고 앞으로 밥 자주 먹으로 올 거거든요. 식비라고 생각하셔도 상관없어요.”
“그럼 다음 제사상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야겠네요.”
숙모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닌데, 솔직히 모든 제사를 책임지려니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도 있었던 게 사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숙부는 괜히 얼굴을 붉혔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써요? 조금 더 있다가 가시지 ··· ”
“운동선수라 훈련해야 되거든요. 시즌 끝나면 다시 찾아 뵐 게요.”
한국 방문을 마친 다카기는 바로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 소식을 접한 약물 검사관은 한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유턴,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말만 했지 그 자리에 있으라고 통보한 게 아니라 아무 말도 못했다.
‘뭐 어쩌겠어.’
검사관은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검사를 마쳤다.
진짜 무서운 선수는 내 집에서 꺼지라며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은 그에 비하면 양반, 다카기는 성격도 보통이 아니라 괜히 자극하진 않았다.
뭣보다 17일 만에 이곳으로 돌아 온 건 샘플을 잃어버린 탓, 관리의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라 보스턴 구단도 그냥 있을 일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샘플을 가지고 돌아가는 게 정답, 그렇게 정신없는 약물 검사가 끝났다.
그리고 시작된 훈련, 훈련 파트너가 된 타키야마 요이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선배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몸 쪽을 어떻게 쳐야할지 모르겠어요.”
“허리를 좀 더 세워봐.”
타키야마는 작년 시즌 타율 0.257, 홈런 21개를 기록했다.
유격수 치고 훌륭한 타격 성적이지만 타율은 납득할 수 없는 수준, 뭣보다 몸 쪽 공에 대응하지 못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몸 쪽은 정확하게 치는 것도 어렵지만 스윙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어렵다. 배트를 몸 쪽에 붙여서 간결하게 나오라고 하는데, 스윙거리가 짧을수록 파워가 죽어버리는 건 당연, 특히 타키야마처럼 전형적인 거포가 아니라면 비거리는 더 죽어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뭘까. 다카기는 나름대로 조언을 줬다.
“바깥쪽 공을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공을 최대한 몸에 붙여 놓고 쳐”
타키야마는 선배의 지시대로 스윙을 해 봤다.
확실히 허리를 세웠더니 여유가 생긴 몸 쪽 공간, 덕분에 스윙이 돌아 나오는 거리가 조금은 길어졌다.
하지만 몸을 최대한 비틀어 파워를 내는 유형이라 어깨나 허리 쪽에 무리가 오는 게 사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타격 폼이 어디 있겠나, 몇 가지 문제는 따라오는 게 현실,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가기로 했다.
“다시 말하지만 홈런은 치는 놈들이 치는 거다. 넌 홈런 타자 유형은 아니니까 최대한 컨택에 집중해.”
“네”
다카기는 한 가지 조언을 덧붙였다.
스윙거리를 늘리라고 한 건 타구 질을 높이라고 한 거지, 홈런을 치라는 뜻은 아니었다.
지금 타키야마에게 필요한 건 타율 향상, 타구 질이 좋아지면 타율은 따라올 거라며 격려했다.
* * *
“이 선수가 좌익수로 뛸 수 있을까요?”
“글쎄 ··· ”
이곳은 보스턴의 구단 사무실, 폴 돈론과의 연장계약에 차질이 빚어지자 수더랜드 단장은 B플랜을 가동했다.
올 시즌 FA 자격을 얻은 돈론은 8년 2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원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MVP도 한 번 수상했고,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했다는 게 여론의 평가,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수더랜드 단장도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구단주에게 투자를 요구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다카기 - 울반스키에게 안겨 준 돈만 해도 5억 달러 이상, 거기다 돈론은 타격은 몰라도 수비가 안 되는 선수다. 이 선수에게 연 평균 25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자주 당하는 잔부상도 마음에 걸리는 일, 수더랜드 단장이 대안을 찾아 나선 건 당연했다.
올 시즌 포스팅을 신청한 후지타 겐고로(요코하마)도 대안 중 하나,
후지타는 지난 6년 동안 NPB에서 197홈런을 날렸으니 파워 툴은 어느 정도 증명됐다. 하지만 물음표가 수비 능력, 1000만 달러 이상을 주고 영입할 가치가 있을까.
내부회의에서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보스턴, 후지타 겐고로와 2년 1100만 달러 계약]
그로부터 얼마 후, 보스턴이 후지타와 계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상 돈론과 결별하겠다는 통보, 돈론은 보란 듯이 시카고와 6년 1억 5천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
보스턴에 요구한 금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 일이 이렇게 되자 여론은 보스턴이 처음부터 돈론과 계약할 마음이 없었던 거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당황한 수더랜드 단장은 후지타의 가치를 여론에 어필했고, 같은 일본인인 다카기까지 동원해 선수 홍보에 나섰다.
‘내가 왜?’
하지만 다카기는 입단식 참석을 거부했다.
후지타는 청소년 대표 시절, 다카기에게 ‘너는 자이니치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라는 폭언을 한 적이 있다.
일본 대표 팀 내부에서 사건을 잘 단속해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카기는 지난 사건을 잊지 않았다.
정말 실력이 있는 선수라면 과거 따윈 잊고 입단식에 나섰겠지만, 후지타는 미국에서 아무 것도 보여준 게 없는 선수다.
뭣보다 작년 일본에서 거둔 성적은 타율 0.271, 홈런 25개, 메이저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돈론을 포기하고 잡은 선수가 겨우 이거라니, 솔직히 실망했다.
‘뭔가 잘못 됐어.’
수더랜드 단장은 에이스와 대화를 시도했다.
선수영입에 이런 태도를 취할 선수가 아닌데, 왜 이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는 걸까. 같은 일본 선수를 영입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반응, 다카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대화를 거부했다.
[선수 영입은 구단에서 알아서 할 일인데,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그러지 말고 대화를 좀 해보자고, 혹시 돈론을 놓쳐서 서운해 하는 건가?”
[그런 거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입단식에 갈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알아두십쇼.]
일방적인 통보,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간파한 수더랜드 단장은 더는 에이스를 건드리지 않았다.
‘왜 그러지?’
반면, 일본 여론은 다카기의 반응에 의문을 품었다.
청소년 대표에서도 같이 뛴 사이로 알고 있는데 입단식도 참여하지 않겠다니, 이유가 뭐냐고 물고 늘어졌지만 다카기의 입장은 단호했다.
‘입이 근질근질한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이시다 토모카츠, 마이키 요시토모는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일본 청소년 대표로 뛰었던 선수들이라 당시 일어난 사건은 눈앞에서 목격했다. 다카기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지만 본인이 확답을 피하고 있는데 이게 우리가 끼어들 문제일까.
뭣보다 메이저리그 포스팅을 거친 몸, 본인 코가 석 자라 남 일에 참견하진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지는 의혹, 여론을 의식한 후지타가 직접 입을 열었다.
“청소년 대표 팀 시절에 다카기 선수와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나요?”
이어지는 질문에 머뭇거리던 후지타는 진실을 털어놨다.
8년 전 대표 팀 내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 그런 상황에서도 우승을 이뤄냈다는 게 기적, 기자들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렸고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카기 선수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후지타가 고개를 숙이자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 용서하느냐는 물음에 다카기는 표정 없는 얼굴로 답했다.
“용서를 안 했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겠죠.”
“그럼 좀 환영해주시죠.”
“제가 환영해야 할 건 돈론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실력입니다. 후지타 선수가 팀에 도움이 된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환영하겠습니다.”
기자들은 흠칫했다.
말만 용서했지 실상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팀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면 앞으로 볼 일도 없을 거라는 선언, 보스턴 극성팬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팀 프랜차이즈 스타를 버리고 영입한 선수, 후지타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구단도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